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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계몽 좀비'에 물리지 않고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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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계몽 좀비'에 물리지 않고 살아남기

[안종주의 생명사회] '계몽 좀비'라는 가짜 유령의 광기, 어떻게 극복할까

대한민국에는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가짜라는 유령이다. 이 유령은 세 가지 모습을 하고 있다. 가짜뉴스, 가짜음모론, 가짜(사이비)과학이다. 이들은 모습만 다를 뿐 그 정체와 본질은 같다. 인간 사회에 끼치는 심각한 악영향도 같다. 사라진 것처럼 보이다가 다시 살아나는 점도 같다. 좀비 형제들이다. 이들 가짜 유령 삼 형제는 서로에게 품앗이하며 세력을 키운다.

한 유령에 뇌를 점령당한 사람은 다른 유령한테도 자신의 뇌 속에 쉽게 들어오도록 문을 연다. 영화의 좀비 세계에서는 다른 좀비에 물린 정상인들이 순식간에 좀비로 변한다. 그 좀비는 부모, 형제, 자녀, 친구를 가리지 않고 마구 물어 다시 그들을 좀비로 만든다. 이는 영화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다. 서부지법 앞에서, 한남동에서,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헌법재판소 앞에서 악다구니와 독설, 폭언을 쏟아내는 일부 여당 정치인과 사이비 종교인, 극우집단의 광란극이 이를 증명해 준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가짜 유령이라는 좀비가 사회 곳곳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치명적 바이러스처럼 마구 퍼져나가는 이들 좀비를 막을 뾰족한 예방백신도, 치료제도 없다. 그래도 우리는 대한민국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이들 가짜 유령의 탄생과 성장 과정, 특성,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효과가 뛰어난 처방으로 대한민국의 '계몽 좀비화'를 막아야 한다.

김계리, 계몽사상가와 절대 계몽 군주를 떠올리게끔 하다

첫 번째 이야기는 비상계엄에 혼을 빼앗긴 '계몽 좀비'다. "나는 계몽되었습니다." 윤석열 탄핵 심판이 열린 헌법재판소에서 피청구인, 즉 윤석열의 변호인단 일원으로 나선 김계리 변호사가 최종변론에서 한 말이다. 그는 아이를 낳고 돌보느라 세상일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가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순간 갑자기 자기 몸 안으로 '계몽'이 뇌 속으로 들어왔다고 간증 아닌 간증을 했다.

이런 김계리의 간증 식 변론은 극우‧보수 진영에서 윤석열의 최종 진술보다 더 인기를 얻었다. 아니 관심을 거의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김 변호사가 대한민국의 많은 이들이 고등학교 학창 시절 배웠던 계몽주의와 계몽철학자를 떠올리게끔 했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야당이 공산전체주의‧반국가 세력임을 국민이 깨닫게 만들기 위해, 즉 국민 계몽을 위해 비상계엄을 발동했고 김계리를 비롯한 다수 극우‧보수들은 이를 계기로 윤석열한테 계몽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윤석열은 17~18세기 계몽사상가였던 프랑스의 볼테르, 영국의 데이비드 흄, 존 로크, 독일의 임마누엘 칸트, 네덜란드의 바뤼흐 스피노자 등 비견된 셈이다. 윤석열을 사상가 반열에 올리는 데에 대해서는 보수 쪽에서도 마뜩잖게 여길 수 있으므로 그보다는 계몽 군주가 훨씬 낫겠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2세, 스웨덴의 구스타브 아돌프 3세 등이 대표적 계몽 군주이다. 당시 계몽주의는 신보다 인간을, 종교보다 이성을, 복잡성보다 단순성을 옹호했고 그 기치를 이어받아 교육의 개선, 미신과 편견의 근절에 힘썼다.

윤석열 정부 때는 어땠는가? 탄핵 반대 세력은 어떤 지향을 하는 집단인가? 계몽시대와 달리 인간보다는 이익을, 이성보다는 종교(전광훈 목사와 손현보 세력의 극우 집회)를, 교육의 개선보다는 교육 답보를, 미신과 편견의 근절보다는 미신 또는 무속(특히 선거와 정치에서)과 편견의 확산(부정선거 음모론) 시대였다는 역사적 평가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2020년대 대한민국은 18세기 유럽 계몽시대보다도 못한 면이 많았다. 정말 부끄러운 이야기다.

계몽주의를 정치 측면에서 보면 계몽절대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계몽전제주의 또는 개명전제주의라고도 한다. 이 시대 계몽 군주는 봉건 귀족적 세력을 유지하면서 왕권을 강화하고 국력 증대를 꾀하는 게 목표였다. 이 때문에 개혁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어 본질적으로는 절대주의임에 변함이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측 대리인단 김계리 변호사가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11차 변론에서 피청구인 변론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는 계몽되었습니다.", 윤석열을 계몽 군주로 만들어

윤석열과 그 추종 세력이 계엄령을 '계몽령'으로 규정하면서 졸지에 윤석열은 계몽 군주가 되었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발동하면서 국민에게 알린 계엄 선포문과 계엄포고령, 그리고 비상계엄 뒤 한 몇 차례의 국민담화문,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때 심판정에 직접 나와 발언한 내용 등을 두루 살펴보면 그가 '절대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싶어 했던 것은 거의 확실하다.

절대반지를 끼고 있어야만 아내 김건희와 자신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나는 명태균 게이트의 문을 다시 닫고 영구 봉인할 수 있다. 또 국회 해산과 함께 야당과 선거관리위원회를 22대 국회의원 부정선거 음모론의 주범으로 몰아 국회 해산과 함께 새로운 권력 구조 개편으로 절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사법부도 어렵지 않게 시녀로 만들 수 있게 된다.

그는 행정‧입법‧사법의 삼권 분립을 인정하지 않고 사실상 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도맡는 정치 시스템, 즉 박정희의 유신 시대와 유사한 권력 구조 개편을 하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공산전체주의 세력을 척결한다면서 실은 스스로 절대군주 행세를 하려 했다는 것이다. 신뢰할 만한 음모론이다. 하지만 국민과 야당 저항으로 야당 척결이 아니라 자신이 척결 당할 위기에 놓여 있다.

'좀비 왕'이 죽더라도 계몽 좀비는 쉽게 사라지지 않아

수많은 계몽 좀비를 만들어 낸 좀비 왕이 단두대에 오르더라도 그 즉시 계몽 좀비들이 한꺼번에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더욱 사나운 좀비가 될 수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이 좀비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집단지성을 발휘해 그 특효약을 찾아내야 한다.

계몽 좀비에 계몽은 통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그들이 믿고 있는 거짓말과 가짜뉴스, 가짜음모론의 실체를 아무리 알려보아야 마이동풍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의 수괴, 즉 우두머리가 자신이 실행한 계엄령은 '계몽령'이 아니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이 최종 진술에서도 변함없이 '계몽령'을 강조한 만큼 기대조차 하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겠다.

차선책은 '계몽령'을 믿는 계몽 좀비 가운데 중요임무 종사자, 예를 들면 김계리 변호사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전한길 한국사 강사 같은 인물이 자신이 지금까지 믿고 또 외쳐왔던 '계몽령 신앙'은 잘못됐다고 공개 선언토록 만드는 것이다. 이 또한 쉽지 않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한 인간으로서, 대한민국 국적을 지난 사람으로서,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한때 유명했던 한국사 강사로서 최소한의 양심이 살아 있다면 국민에게 '탈(脫) 좀비'를 말해야 한다.

변호사 김계리는 대한민국 국민을 타임머신에 태워 300년 전 계몽 군주 시대로 데려가 시간 여행을 하게 했다. 21세기 민주공화국에서 상식을 지닌 시민이라면 결코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말 "나는 계몽되었습니다."를 외쳤다. 아부가 지나치면 독이 된다. 자신의 주군을 향해서 사실상 패악질을 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계몽 좀비는 닫힌사회의 친구일진 몰라도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 우리의 적이다. 계몽 좀비는 거짓말, 가짜뉴스, 가짜음모론이 만든 '메이드 인 코리아' 유령이자 괴물이다.

*2022년 1월 준정부기관인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 직을 맡아 '안종주의 안전사회' 칼럼을 중단했던 안종주 센터장이 3년여 임기를 마치고 돌아와 다시 연재를 시작합니다. 안 센터장은 2010년 6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안종주의 위험사회' 등을 통해 12년간 우리 사회의 코로나19 유행을 비롯한 감염병과 기후 위기, 식품‧의약품 안전, 가습기살균제 참사 등 환경 질환, 산재‧직업병 등 각종 자연 재난과 사회재난과 관련한 의제들을 다루었습니다. 이번에는 '안종주의 생명사회'라는 타이틀로 그동안 다루어왔던 주제에다 폭을 더 넓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인공지능의 위험성, 가짜뉴스, 음모론, 가짜과학 등도 함께 다루게 됩니다. 자연과학‧기술적 관점뿐만 아니라 인문‧사회과학적 관점을 보태 더 깊고 폭넓은 시각으로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안종주 센터장은 서울대학교 미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보건학)를 받았습니다. <서울신문>에서 과학전문기자로 기자 생활을 시작해 <한겨레>에서 사회2부장, 심의위원, 보건복지전문기자(2004년) 등을 지냈습니다. 그 뒤 노무현 정부 때 국민건강보험공단 상임이사, 문재인 정부 때 정책기획위원회 안심사회소분과장 및 지속가능분과위원장을 지냈고 서울시 안전자문단장, 안전명예시장, 그리고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한겨레> 기자 시절 대한민국 최대의 직업병인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 참사와 석면 질환 실태를 최초로 알리고 공론화한 언론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안종주 센터장의 '생명사회'는 매주 목요일 또 대형 위험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독자 여러분을 만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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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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