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불법 비상계엄령 이후 광장에서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랫말이 울려 퍼졌고, 시민사회 각 영역에서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학생‧청소년들 역시 '학생인권법 제정'을 포함해 학생의 삶에 민주주의가 적용될 수 있기를 요구하며 광장을 지켰다. 12월 10일에는 온라인, 오프라인을 통해 4만9052명이 참여한 청소년 시국선언이 발표되기도 했다. 개별 학교의 학생회를 포함해 역사 동아리, 토론 동아리, 일러스트 동아리, 페미니즘 동아리 등의 이름으로 시국선언에 함께했다. 또한 여러 지역과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청소년들이 모여 시국선언을 진행하기도 하는 등, 청소년들은 적극적으로 12.3 사태를 함께 해결하고자 시민, 사회 구성원으로서 목소리를 냈다.
여전히 정치가 금지된 학교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의 예일여고를 포함해 여러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시국선언을 내리라고 요구하는 등 정치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당한 사례가 드러났다. 실제로 아직까지 학생의 정치적 행위를 금하고 정학이나 퇴학 등의 징계 사유로 삼는 학칙들이 버젓이 있다. 선거권과 피선거권 연령이 18세로 하향되고 정당 가입 가능 연령이 16세로 낮아졌지만 학생들이 제대로 권리를 누리기란 요원하다. 선거권 연령이 하향된 이후에 학칙을 손본 학교들조차도, 법에 따라 일부 학생들만 정치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학칙의 핵심 내용은 전혀 바뀌지 않은 채 예외를 둔다는 식으로 변경한 곳들이 많다.
'교육기본법'은 교육의 목적으로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는 것'을 꼽는다. 하지만 학교는 학생이 사회적·정치적 문제에 대해 의사를 표명하거나 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안전상의 이유'라는 거짓된 변명이나 '판단력 없이 선동된다', '학생 본분' 등을 언급하며 금지하고 있다. 학생의 정치 활동을 기본적인 인권이 아니라 문제적 행동으로 여기는 것이다. 학생들은 정치 활동을 했다가는 징계 등 실질적인 불이익 위협까지 받게 된다.
하지만 헌법에서는 정치적 활동의 자유를 정당 가입이나 선거 등의 특정한 행위뿐만이 아니라 언론·표현·집회·결사의 자유 등 넓은 범위에서 보장하고 있으며, 이는 민주주의 사회의 기초이자 필수적인 권리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정치적 활동의 자유를 공권력이 규제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학교의 학칙이 학생의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제한하고 있다.
정치적 활동의 자유는 선거권의 유무에 좌우되지 않고 주권자인 국민 전체에게 있으며, 어느 연령대라도 자신의 사상·신조에 기초하여 정치적 활동을 할 자유는 인정되어야 한다. 정치적 행위란 법률로 제한되거나 보장되는 선거, 정당 활동 관련 사안 외에도 온라인으로 정치적 의견을 밝히거나, 시국선언에 참여하거나,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단체에 가입하거나 직접 단체를 결성하는 등 다양한데, 이 모두를 제한하고 징계 규정까지 두고 있는 현재의 학칙들은 모두 헌법에 위반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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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은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없다는 사회
"이 성명은 광주광역시 중·고등학생 전체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며, 특정한 정당이나 시민단체와 관련되어 있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작년 12월 10일, 광주광역시 학생 7018인이 발표한 시국선언 첫머리에, 제목보다도 위에 달려 있는 참고 문구이다. 전 사회적으로 여러 집단에서 시국선언이 쏟아져 나온 가운데, 다른 어떤 시국선언에서도 이런 문구를 본 기억은 없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이 목소리를 낼 때 유독 '선동, 세뇌당했다'는 꼬리표가 따라붙었음을, 그래서 청소년들은 사회가 자신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들어주기를 바랄 때 내용에 앞서 자신들의 '순수함'을 입증해내야 했음을 말해주는 장면이다.
이 시국선언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학생·청소년 시국선언이 쏟아져 나올 때, 청소년이 정치적 존재임을 부정하는 보수 세력에서는 학생들이 선동당하고 있다, 배후세력이 있다는 주장을 쏟아내며 시국선언 자체에 대해 비난했다. 전에도 청소년들의 정치적 액션이 사회의 주목을 받는 모든 순간에 이런 말들이 달라붙었다. 한편, 이와 동전의 양면처럼, 정치 활동을 하는 청소년들을 똑똑하고 기특하고 생각이 깊다며 상찬하는 반응 또한 존재한다. '생각 없이 사는 요즘 애들'과 구분하여 정치적 목소리 내는 것을 용인받을 만한 '미래가 유망한 깨어 있는 청소년'이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정치 집단에 따라서, 자신들의 정치적 의견과 동일하면 기특하고 생각 깊은 청소년이고, 반대편의 입장에 동의하면 생각없이 선동당한 아직 생각이 어린 사람들로 폄하하는 식이다. 사실 두 반응 모두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온전히 인정하고 동료시민으로 존중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태도다.
모든 정치적 집단들과 개인들은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설득하려 애쓴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을 나열할 때도 있지만, 가짜 뉴스를 확산시키거나, 단순히 세력의 크기를 과시하거나, 대뜸 욕설을 내뱉고 고성이 오가는 등 그다지 온화한 장면이 아닐 때도 꽤나 자주 있다. 이런 속에서, 사회 구성원들은 모두 새로운 정보와 견해를 접하고 이 중에 본인이 동의하는 것, 동의하기 힘든 것들을 선별하며, 자신의 의견을 형성하고 의견이 바뀌기도 한다. 따라서 정치적 자유가 보장된 사회라면 어떠한 정치적 영향도 받지 않은 '순수한 개인의 의견'이란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정치적 의견 형성 과정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조금 더 능숙하게 하는 사람들, 자기 의견을 확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어느 연령대에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이 능력을 평가하여 그 결과에 따라 정치적 자유를 제한하지 않는다. 정치는 유능한 사람들만 누리는 특권이 아니라 이 사회의 구성원이면 누구나 가져야 할 권리이기 때문이다. '나이'라는 근거 박약한 기준에 따른 제한만이 현재 우리 사회의 유일한 예외다.
청소년은 나이가 어려 상대적 약자의 위치에 있으므로 양육자, 교사 등이 위력을 행사하여 정치적 견해를 주입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만약 그런 우려가 있다면, 청소년들이 그러한 억압적 상황에 처하게 되는 이유를 살피고 이를 고쳐나갈 일이지, 청소년의 정치적 목소리를 막을 일이 아니다. 과거 서구에서 여성 참정권을 제한하던 논리 중 하나가 여성은 남편이나 아버지 등 집안 남자의 주장을 따라갈 거라는 것이었다. 오늘날 한국에서 이 주장이 얼마나 어처구니없게 들리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청소년의 정치 활동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를 적용해서는 안 될 일이다.
청소년들은 정치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함에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치를 통해 만들어진 정책과 제도에 영향을 받고 책임 또한 공유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청소년은 학생으로서만이 아니라 학교 밖 청소년, 노동자, 성소수자, 여성 등 여러 위치에서 후퇴한 정책에 함께 고통받았다. 그리고 이제는 이러한 사회와 정치를 바꿔내기 위해 광장에 나와 목소리를 내고 있다. 12.3 내란이 일어나기 전에도 청소년의 삶은 민주주의가 없고 정치가 금지된 '계엄상태'였고, 민주주의의 질서가 '정상화된다'고 해도 그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에 그친다면 그 자리에 청소년들의 온전한 권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시민의 의무를 가능한 범위에서 수행하며, 우리 정치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지고 있다.
일상의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려면
시민들은 제도권 정치에 큰 문제가 생겼을 때, 몇 번이고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청소년들 역시 언제나 이 자리에 시민으로 함께하며 목소리를 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집회 또한 그 장면 중 하나이다. 8년 전에도 사람들은 박근혜 퇴진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억압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말했고, 일상에서의 민주주의를 원했다. 하지만 정부가 바뀌었을 뿐, 사람들의 삶이 쉽게 바뀌지는 않았다. 여전히 시민들은 정치를 일상의 한 부분으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의 삶과 정당 중심의 제도권 정치가 분절되어 있다고 느낀다. 일상생활과 밀접한 논쟁들은 사사로운 문제, 지엽적 문제로 취급되다 보니, 정치는 정당들과 정치인들이 하는 것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정치를 대하는 분절된 태도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주문하는 것이기도 하다. 토론 수업을 할 때 한정으로 교사가 배정해주는 대로 찬반을 나누어 이야기하는 것이 '정치'에 대한 교육이라고 생각되곤 한다. 이런 수업은 누가 더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과정일 때가 많으며, 자신의 삶에 연결되지 않은 시사 이슈를 다루는 것이 '정치'나 '민주주의'로 인식되는 환경이다. 실제로 나의 삶을 바꾸기 위해 학급 내 규칙이나 학칙 등에 대해서 의견 그룹을 형성해서 주장과 행동을 하려고 하면 징계를 각오해야 하는 환경, 의견 반영이라고는 충분한 소통과 설득의 과정 없이 만족도 설문이나 앙케이트 참여뿐인 환경에서 우리는 '높은 사람에게 혼날 것을 걱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발언하고, 서로 치열하게 설득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경험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가짜로, 일회적으로 토론이나 모의 투표 행위를 체험하는 것으로는 체득할 수 없다. 실제로 결정권이 주어진 자리에서 논의하고 결론을 도출해서,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며 우리 삶의 결과로 다가와야 익힐 수 있는 방식이다. 어떤 면에서는 민주주의를 택하고 있는 모든 국가의 국민들은 일생을 통해 더욱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고 시도하며 배워가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 나이라는 기준을 두어 특정 집단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막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청소년이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는 데에 나이를 이유로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면 이는 더욱 많은 지원과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될 수 있을 지언정 정치에 대한 접근과 권리 행사를 가로막을 이유는 되지 못할 것이다. 청소년은 이 사회에 태어난 것만으로 시민이며,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는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더욱 폭넓게 보장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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