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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이 남아돈다는 거짓말…윤석열이 저지른 또 다른 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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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이 남아돈다는 거짓말…윤석열이 저지른 또 다른 실책

[경제뉴스N시선]남태령 연대와 농업정책의 미래

남태령에서 농민과 시민의 연대가 추운 겨울을 녹였다. 트랙터를 몰고 올라온 농민들의 투쟁이 더욱 의미 있었던 이유는 '사회대개혁을 위한 폐정개혁안 12조'라는 이름의 요구안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과거 동학농민운동을 연상시키는 폐정개혁안 12조에는 △내란수괴 윤석열 처벌 △내란동조 국민의힘 해체 △군대·경찰·검찰 민주화 △농산물 공정가격 실현 △경자유전 원칙 △국가 책임 농정 실현 △노동기본권 보장 △대기업 경제력 집중 해소 △이태원 참사 등 진실규명 △여성, 장애인 등 차별 철폐 △선거연령 하향 △종속 외교 청산과 한반도 전쟁 종식 등이 담겨 있었다. 즉 농민들은 농업 정책을 포함해서 사회 전반의 새로운 밑그림을 그리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폐정개혁안 12조에 등장하는 국가 책임 농정이라든가 농산물 공정가격 같은 개념을 시민이 접할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우선 경제뉴스에서 농업 관련 보도를 찾아 읽으며 느낀 점을 정리해 본다.

윤석열 정부의 농정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농산물 가격 낮추기에 방점을 찍으면서 농민과 도시민을 갈라치기 하는 방식으로 농업 정책을 집행했다. 특히 윤석열 정부 2년 반 동안 벌어진 일은 상상을 초월했다.

윤석열 정부는 고물가에 대응한다면서 저율할당관세(TRQ)를 늘리고 또 늘렸다. TRQ는 원래 일정 물량까지만 저관세로 수입하고 그 이상의 물량은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인데, 애초 취지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수시로 시행규칙을 개정해 저관세 수입 물량을 늘렸다. TRQ 물량만이 아니라 품목도 늘렸다. 심지어는 국내 농민들의 마늘, 양파 수확을 앞둔 시기에 마늘과 양파의 TRQ 물량을 증량해서 가격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TRQ 증량 정책은 수출업자와 유통업자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국내의 농업 기반을 훼손하는 정책이다. 농산물 물가를 근본적으로 잡지도 못한다. 며칠 전 동네 슈퍼마켓에 갔더니 체리 한 팩에 1만900원, 딸기 한 팩에 1만2900원이었다. 2000원 덜 내고 농약이 도포된 체리를 사먹을 것인가? 2000원 더 내고 싱싱해 보이는 국내산 딸기를 사 먹을 것인가? 소비자 입장에서 윤석열 농업정책의 효과는 이런 것이다. 사실 이건 농업정책도 아니다. 기재부가 주도하는 보여주기식 물가 억제 정책이다.

쌀의 경우 매년 40만8700톤을 의무 수입한다. 이렇게 매년 낮은 관세로 수입되는 쌀이 시장을 교란해서 쌀값이 하락한다. 농민들은 40만8700톤이 신성불가침의 숫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정부의 의지에 따라 관련 5개국(미국, 중국, 태국, 베트남, 호주)과 재협상을 해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만약 재협상 노력을 해봤는데도 안 된다면 수입쌀의 활용 방안이라도 농민들과 협의하자고 요구한다. 일본의 경우 수입하는 쌀의 70퍼센트 정도를 사료용으로 돌린다. 반면 한국은 수입쌀의 3% 내외만 사료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식품 대기업 등에서 가공용으로 쓴다. 지난해에는 대한한돈협회에서도 수입산 옥수수 가격이 크게 올랐으니 수입쌀을 가축 사료로 사용하자고 제안했으나, 정책의 변화는 없었다. 정부는 매년 40만8700톤의 쌀 수입을 기정 사실화한 토대 위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국내의 쌀 재배 면적을 그만큼 줄이려고 한다.

'공급 과잉'이라는 프레임

언론은 TRQ라든가 수입쌀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대신 쌀의 '공급 과잉'이라는 프레임을 사용한다. 양곡관리법과 쌀에 관한 최근의 언론 보도를 보자.

[사설] 쌀 보관에만 연 4500억원 드는데 정부 매입 더 늘리자는 野(24.10.03 한국경제)

쌀 매입·관리에 혈세 3조…농망법 폭주 멈춰세워야 [사설](24.11.28 매일경제)

'쌀 과잉생산' 확 줄인 일본… 비결은 '시장논리'에 맡긴 쌀값'(24.12.10 매일경제)

필리핀 쌀 인플레, 15년 만에 최고치…"가격상한제 무용"(24.02.07 뉴시스)

<매일경제>의 11월 28일자 사설은 양곡관리법을 '농망법'이라 부른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의 표현을 제목에 그대로 넣었다. 사설은 "정부가 과잉 생산된 쌀을 매입·관리하는 데 쓰는 돈만 3조 원이 넘는다"면서 "남는 쌀"을 정부가 매입하기 때문에 농업의 경쟁력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래서 대통령이 양곡관리법에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일경제>가 보기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수요와 공급이다. 쌀의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서 생긴 "남는 쌀"을 정부가 매입한다는 것은 시장 논리에 어긋난다. 그러나 농민의 시각에서는 "남는 쌀"이 아니라 막대한 수입 물량 때문에 "남게 된 쌀"이다. 구조적으로 한국 농업은 벼농사 위주였는데 갑자기 수입쌀이 밀려 들어왔고, 그런 상황에 맞게 농민을 보호해 주는 정책은 수립되지 않았다. 농민들은 쌀 과잉생산의 주범이자 경쟁력 없는 산업의 종사자로 몰렸다.

쌀값은 단순히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2024년만 해도 폭염과 폭우, 이상고온 피해가 있어서 쌀 수확량이 줄었는데도 쌀값은 하락했다. 통상 7월부터 9월 사이에는 산지 쌀값이 오르는데, 2024년의 경우 8월 초에 17만 원대(80kg 기준)까지 떨어졌다. 통계청 국가포털에 게시된 2024년산 11월 5일자 산지 쌀값은 18만2700원. 2023년 수확기 평균 산지 쌀값 20만2797원보다 낮다. 1만 원으로 비빔밥 한 그릇도 사 먹지 못하게 된 지 오래인데 쌀값은 오히려 내려갔다.

2022년에는 즉석밥의 대표격인 햇반의 가격이 7% 올랐는데, 그해 쌀값은 45년 만에 최대 하락이라고 할 만큼 많이 내려갔다. 햇반의 제조사인 CJ제일제당은 연료인 LNG 가격과 포장재 가격이 올라서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럼 농민들은 어떨까? 비료 가격과 면세유 가격 등 모든 생산비가 올랐지만 쌀값에 반영할 길은 없었다. 이거야말로 경제신문들이 외치는 시장 원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지난 5년간의 수확기 산지 쌀값과 농가의 생산비 부담을 지수화한 '농가구입가격지수'(2020년=100)를 나타낸 표. 2022년의 경우 농가구입가격지수는 크게 뛰었지만 쌀값은 폭락했음을 볼 수 있다. ⓒ안진이

<한국경제>는 2024년 10월 3일자 사설에서 쌀 수입을 이야기했다. "쌀 수입을 위해 외국에 지급한 돈은 올 들어 8월까지 2억4000만 달러, 연말까지는 4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라며 "쌀이 부족하면 몰라도 넘쳐나는 상황에서 수입한다고 하니 이런 부조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부조리하긴 하다. 그런데 쌀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수입한다"는 표현은 부정확하다. 한국의 쌀 자급률은 2022년에만 104.8%를 기록했을 뿐 평년에는 100%에 못 미친다. 국내산 쌀의 일부에 대해 시장격리와 공공비축이라는 수단을 사용하는 이유는 수입 물량이 너무 많아서다.

식량주권과 기후위기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2022년 기준 46%밖에 안 된다. 정부와 언론의 시각은 '식량자급률은 낮지만 쌀은 남아돈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식량주권이라는 개념을 염두에 둔다면 '식량자급률이 그나마 46%인 것은 쌀 덕분이다'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 곡물 시장이 불안정한 가운데서도 우리의 식생활이 비교적 온전했던 것은 주곡인 쌀 생산이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입 물량이 있으니 쌀 생산을 줄여야 하지 않느냐고? 지금도 쌀 생산량은 매년 줄어들고 있으며 정부 정책도 쌀 생산을 줄이는 방향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임기 내내 농민들에게 쌀 생산을 줄일 것을 강요했다. 다수확 품종이라는 이유로 품질 좋은 신동진쌀 재배 면적을 강제로 줄이는 정책을 도입해 농민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가루쌀(분질미) 사업을 시행하는가 하면, 논과 밭의 오랜 구분을 깨뜨리고 논에다 벼 대신 논 콩을 심으라고도 했다. 그리고 올해는 벼 재배면적을 8만ha나 감축한다는 목표를 잡고 모든 벼 재배 농가에 논 면적 10%를 의무 감축하라고 통보했다. 지금은 윤석열이 직무 정지된 상황인 만큼 이런 정책들도 일단 멈춤이 필요하다.

무작정 재배면적을 줄이면 쌀마저도 수입에 의존하게 된다. 또한 우리는 기후변화라는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이상기후가 세계 곳곳을 강타하면서 주요 곡물 생산량이 감소하는 일은 이미 현실이다. 농식품부는 2027년 쌀 자급률 98%를 목표로 한다면서 목표 재배면적을 68만ha로 잡았지만, 2023년 감사원의 지적에 따르면 이 수치는 미래 기후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과거 쌀 생산성만을 토대로 설정한 것이다. 모의실험 결과를 반영할 경우 목표 재배면적은 78만2000ha로 상향해야 한다.('감사보고서: 기후위기 적응 및 대응실태I(물·식량 분야)', 2023.7, 감사원) 2024년의 벼 재배면적은 69만8000ha. 감사원의 지적대로라면 쌀 생산량 줄이기가 아니라 오히려 생산량 지키기에 나서야 한다.

사례 - 일본과 필리핀

2024년 12월 10일자 <매일경제>는 '쌀 과잉생산 확 줄인 일본… 비결은 '시장 논리'에 맡긴 쌀값'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한국보다 앞서 국가적으로 쌀 과잉생산을 해결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국가"가 일본이라면서, 1970년 약 1200만 톤의 쌀을 생산하던 일본이 2023년 660만 톤 수준으로 생산량을 대폭 줄인 것을 모범 사례처럼 제시했다. 기사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초기에는 각 농가에 일괄적인 쌀 감산을 강제했고, 2004년부터는 아예 쌀 생산을 '민간 주도'로 전환했다. 쌀 재배 시 지급하는 보조금도 폐지하고 다른 밭작물에 대한 보조금을 늘렸다. 아마도 한국의 고위 공무원들이 일본 정부의 쌀 감산 정책을 베껴온 것 같다.

그런데 <매일경제>가 일본의 정책을 칭찬하던 시점에 일본은 쌀값 폭등으로 난리를 치르고 있었다. 2024년 3월부터 오르기 시작한 일본의 쌀값은 11월 기준으로 전년 대비 63.3퍼센트나 올랐다. 일본 가정에서는 주곡인 쌀을 사재기하기 시작했고, 슈퍼마켓 매대에서 쌀 품귀 현상이 일어났다. 일본의 쌀값이 오른 원인은 쌀의 재배 면적이 감소하고 이상기후로 고온 피해를 입은 지역의 1등급 쌀 비율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밖에 엔저로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외식산업에서 쌀 소비량이 급증했고, 난카이 트로프 지진에 대비해서 비축용 쌀 수요가 늘었다. 쌀값 폭등으로 일본의 가계가 어려움에 빠지자 최근 이시바 시게루 총리도 쌀 생산 정책 재검토를 약속했다. 쌀 생산량을 늘리고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도 다시 언급했다.

한때 쌀 수출국이었다가 쌀 농사를 포기했던 필리핀의 사례도 있다. 필리핀은 1년에 4모작이 가능한 조건을 바탕으로 아시아 농업혁명을 주도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국제 쌀값이 1톤당 200달러(장립종 기준)로 안정세를 보이자 필리핀 정부는 '부족한 식량은 수입하면 된다'는 기조를 채택했다. 농지는 골프장·휴양시설·공장 등으로 바뀌었고 농민들은 도시로 떠나거나 관광가이드로 나섰다. 국제 비교우위론에 따라 필리핀은 쌀 수입국이 되었다.

그런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국제 곡물 가격과 석유 가격이 불안정해지면서 2023년 쌀값이 치솟았다. 인도 같은 나라들은 자국산 쌀 수출을 규제하고 나섰다. 쌀값이 급등하자 필리핀 정부는 쌀 가격 상한제를 실시했다. 하지만 세계 시장에서 쌀값은 높게 유지되었고, 2024년 필리핀에서는 물가 전반이 안정되었는데도 쌀값만 급등하는 '쌀 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2024년 1월 필리핀의 쌀값은 전년 동월 대비 22.6% 올랐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은 쌀과 옥수수 등의 식량 생산을 늘리기 위해 모든 조치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필리핀도 일본도, 쌀농사 포기의 결말은 행복하지 않았다.

세계 각국은 기후변화와 식량 위기에 대비해 농업을 지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럼 우리는? 농업을 시장에 맡길 것인가, 아니면 전략산업으로 대우할 것인가? 농민과 시민이 남태령에서 만났던 것처럼 이후에도 농업정책의 방향을 함께 토의해 나간다면 좋은 해답을 찾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이 윤석열 대통령 구속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 상경 시위에 나섰다가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20시간 이상 대치를 이어간 지난해 12월 22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 인근에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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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이

안진이 더불어삶 대표는 더불어삶 회원들과 함께 해고노동자 지원, 인터뷰, 강연 기획 등 노동 현장에 도움 되는 활동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모순을 파악하고 공론화하는 일에도 기여하고 싶어서 경제 뉴스와 각종 문헌을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김헌동의 부동산 대폭로>, <톡 까놓고 이야기하는 노동>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더불어삶 뉴스레터 구독 링크 https://livetogether.substa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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