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가 이렇다. 8년 전 박근혜 정권의 탄핵으로 거의 몰락하더니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등에 업고 부활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실로 진보개혁세력이 20~30년은 갈 줄 알았더니 5년 만에 끝나고 말았다. 바닥까지 내려가 새롭게 탈바꿈할 줄 알았던 보수는 껍데기만 바꾸고 빨간색으로 변신해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다. 몇 차례 보지만, 보수는 껍데기를 바꾸는 데 능하다. 국민이 너무 바쁘고, 순진한 탓도 있지만.
대한민국 보수는 무엇을 지키려고 할까?
보수는 무엇일까? 말 그대로 해석하자면, 무엇인가를 지킨다는 의미다. 무엇을 지키는 가에 따라 이름은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 그 변화의 흐름과 속도가 마땅치 않는 사람들이다. 이미 검증된 오래된 것이 좋고, 현재가 편한 사람들이다. 미래는 알 수 없는, 뭔가 불안하고 불편하다. 그럴 수 있다. 미지의 길을 나서본 사람들은 알 수 있다. 만사불여튼튼,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보수 성향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대한민국의 보수는 무엇을 지키려고 할까? 스스로 보수라고 자임하는 이들을 보면서 궁금했던 점이다. 전통적으로 보수가 지키려고 하는 것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가족, 민족, 국가, 헌법, 신앙 같은 것들이다. 독일 철학자 헤겔의 말을 빌리면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고,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다." 헤겔의 명제는 보수의 철학을 꿰뚫는 핵심이다. 지금 현실에 존재하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그런 것이니, 유토피아 같은 있지도 않은 것에 환상을 품지 말라는 뜻이다.
진보가 보다 개인에 초점을 둔다면, 보수는 보다 공동체에 초점을 둔다. 미국만 봐도 그렇다. 스스로 진보개혁이라고 하는 민주당은 개인의 자유에 초점을 두지만, 보수라고 하는 공화당은 가족, 종교, 국가와 헌법 같은 공동체적 가치 수호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가치 실현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는 둘째치고, 전통적인 위치 설정이다. 현재가 현실적이고 검증된, 이성적인 것이니 이를 함부로 버리거나 어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다. 논리적인 정합성이 있는 견해다.
그런데 윤석열이 보수의 정체성에 큰 질문을 던졌다. 지난 3일 헌법을 파괴하는 계엄령을 발동했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폐쇄하고, 국회의원을 감금하려는 내란을 일으켰다. 평온한 일상이 유지되던 한밤중의 느닷없는 계엄령이었다. 지난 1980년 계엄령의 기억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손발이 떨리고 한밤중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다행히 국회로 달려온 시민과 국회의 현명한 판단 때문에 한밤중의 소란은 일단 진정되었지만,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이번 계엄령은 헌법상의 사유가 없는, 명백한 위헌 사항임에 분명하다. 대통령이 발동한 계엄령의 지속여부를 국회가 판단하도록 헌법에 명시하고 있지만, 대통령은 오히려 국회의 모든 문들을 막고 국회의원들을 체포하려고 했다.
대한민국이라는 시공간에서 함께 사는 이들에게 가장 큰 약속은 헌법이다. 모든 법이 문제는 있기에 공론과 절차를 통해 바꿀 수는 있지만, 이를 합법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고 폭력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행위이기에 내란이다. 내란을 일으킨 자는 같은 하늘 아래서는 함께 살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다. 그래서 우리 법은 내란의 수괴를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처해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하도록 했다.
이번 위기에 가장 분노해야 할 사람은 누굴까? 자칭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국가공동체를 유지하는 헌법을 파괴하고 유린했으니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에 살면서 이보다 더한 일이 있겠는가? 진보에게 현실은 바꿔야 할 대상이지만, 보수에게 현실과 현실을 유지하는 헌법은 가장 이성적인 것이고 합리적인 것이다. 진정한 보수라면 이번 사태에 어느 누구보다도 분노하고, 헌법을 유린한 윤석열에게 탄핵과 처벌을 요청해야 한다.
역사와 공동체 앞에서 당당하고 준엄했던 보수의 목소리
올해 두어 차례 자칭 보수시민사회단체라고 하는 '범시민사회단체연합회'와 국회에서 공동주최로 토론회를 함께 진행했다. 진보와 보수로 극단적으로 나눠진 한국사회에서 대화의 실마리를 풀고, 우리 사회의 대안을 함께 모색하고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 정치인들은 정권이라는 이해관계 때문에 대화와 소통을 닫은 지 오래됐기에 이해관계가 덜한 시민사회가 먼저 합의점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 이런 시도를 두고 가능성에 대한 회의도 이야기했지만, 많은 이들이 응원을 보내주었다. 국회와 정부가 하지 못하는 일을 보수·중도·진보의 시민사회가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입장과 견해의 차이가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극단화된 한국사회에서 될 것 같으냐고 의구심을 표했지만,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성의 문제였다. 누군가는 물꼬를 트고, 함께 만드는 미래를 찾아야 했다. 세금으로 월급 받는 국회의원과 공무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지만, 이를 방치하고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기에 시민사회가 스스로 시간과 돈을 내가며 앞장 섰다.
이것도 윤석열이 파탄냈다. 진정한 보수라면 헌법을 유린한 윤석열과 그 일당들이 마땅한 처벌을 받도록 준엄하게 꾸짖어야 한다. 예부터 보수는 그랬다. 동네질서를 어지럽히는 양아치같은 이들에게 애비에미도 없느냐고 꾸짖는 이들은 보수였고, 대한제국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도 보수였다. 구한말 조선왕조에 불만이 있던 개혁세력은 어차피 비판세력이었기에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독립운동으로 나갈 필요는 있었지만, 조선왕조와 운명을 함께 할 이유는 없었다.
진정한 보수라면 윤석열과 그 일당을 준엄하게 꾸짖고, 무너진 헌법질서를 하루빨리 세우도록 해야 한다. 자칭 보수정당이라고 하는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에게 당장 윤석열의 직무를 정지하라 지적하고, 그에 합당을 처벌을 내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보수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보수 어른들의 당당한 위엄이 보이지 않는다. 자칭타칭 보수라는 자들은 허상이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조만간 알 수 있을 것 같다. 제대로 된 보수인지, 그냥 맹목적 수구집단 혹은 양아치였는지는 멀지 않은 시간에 드러날 것 같다.
언제나 역사 앞에서 당당하고 준엄했던 보수와 보수어른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그래서 올 초에 꿈꾸고 기대했던 보수와 진보가 각각 한쪽 날개의 역할을 맡아 국민들이 행복하고 안녕하며, 선진국으로 비상하는 대한민국을 다시 그려볼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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