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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노동' 줄이면 노동자도, 지구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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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노동' 줄이면 노동자도, 지구도 산다

[초록發光] 폭염과 노동시간, 전력수요 증가의 악순환

8월 하순인데도 무더위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낮 기온이 사람의 체온을 넘어서고 서울은 37일 동안 열대야가 계속돼 118년 기상 관측 이래 최다 열대야 신기록을 세웠다. 그런데 9월까지도 폭염과 열대야는 이어질 전망이다. 폭염을 만드는 티베트고기압이 다시 확장하는 가운데, 뜨거운 바다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까지 한반도로 몰려오기 때문이다. 폭염과 열대야가 지속되면서 온열질환자는 3000명을 넘어섰고, 28명은 사망했다.

폭염에도 야외에서 일하다 숨지는 노동자들

특히 야외 작업 노동자들은 폭염에 따른 온열질환에 그대로 노출된다. 한 해 평균 10명 가까운 노동자들이 일하다 숨지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폭염에 야외에서 일하다 숨진 노동자는 43명에 달한다. 건설 현장은 폭염에 더 취약하다. 달궈진 시멘트와 철근 사이에서 일하다 보면 온열질환에 쉽게 노출된다. 올해 들어서도 건설 현장에서만 온열질환 사망자가 2명이나 발생했다.

조선소도 다른 작업장보다 더위에 취약하다. 땡볕에 달궈진 철판이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판 위에서 용접 작업을 진행할 때는 체감온도가 40℃를 넘는다. 거제 지역에서만 최근 2건의 사망 사고가 발생했는데 온열질환으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폭염 속에 학교 급식실에서 에어컨 설치 작업을 하던 20대 노동자도 온열질환 증세로 숨졌다.

건설뿐만 아니라 외부 활동이 많은 이동·현장 노동자들도 폭염에 특히 취약할 수밖에 없다. 내근직 우체국 노동자가 인력 부족으로 소포우편물 픽업을 위한 외근업무를 다녀온 후 호흡 곤란과 경련 증세를 보이다 결국 숨졌다. 소방대원들의 여름철 온열질환 사고도 매년 반복되고 있다. 열 배출이 되지 않는 무거운 개인보호장비를 착용하고 활동하는 소방대원들의 방화복 내 온도는 45도를 훌쩍 넘는다. 폭염에도 장비를 착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열사병이나 탈진 등의 위험에 늘 노출돼 있다.

정부 폭염 지침, 휴식은커녕 '작업중지권'도 유명무실

고용노동부는 체감온도 35℃ 이상일 경우 옥외작업을 금지하는 내용 등을 포함한 폭염 단계별 대응요령을 제시하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31℃ 미만에서는 물과 그늘을 준비, 31℃ 이상 33℃ 미만은 관심단계로 매시간 10분씩 그늘에서 휴식, 33℃ 이상 35℃ 미만은 주의 단계로 옥외작업 단축, 35℃ 이상 38℃ 미만은 경고 단계로 옥외작업 중단, 38℃ 이상은 위험 단계로 긴급조치 작업 외 옥외작업 중단 등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강제 규정이 아니다 보니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동자 15%는 물조차 제공받지 못했고 매시간 쉬는 작업자는 전체의 18%에 그쳤다. 특히 무더위가 절정에 달하는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에도 10명 중 8명은 일을 계속한다고 답했다.

폭염 노동과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으로 보장된 '작업중지권'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2조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이 또한 강제 규정이 아니고 기준이 모호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고용의 불안정성, 현장에서 공사 기한을 맞춰야 하는 등 이유로 휴식은커녕 작업중지권을 먼저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건설 노조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작업중지권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해봐야 안 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30%로 가장 많았고, '현장에서 쫓겨날까 봐' 혹은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는 응답도 각각 26%에 달했다.

오후 4시 퇴근과 에너지 휴가, 그리고 주4일 근무제

한편으론 폭염 일수가 늘어나고 강도가 강해질수록 하루 최대 전력수요도 증가한다. 8월에만 6차례에 걸쳐 최대 전력수요가 경신됐다. 지난 20일 최대 전력수요는 97.1GW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최대 전력수요가 증가할수록 전력공급을 위해 발전소를 늘려야 하고 그만큼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한다. 온실가스가 증가할수록 폭염이 더욱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폭염 시즌에는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 작업중지권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폭염 대비책도 법적 강제력을 갖춰야 한다. 또한 무더위가 절정인 시점(오후 2시~5시)과 최대 전력수요 시점(오후 5~6시)을 감안해 폭염 시즌 '오후 4시 퇴근제'를 시행하면 노동자 건강도 지키고 최대 전력수요도 줄일 수 있다. 아울러 폭염이 절정에 이르고 최대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시기에는 공장 가동을 멈추고 노동자들을 위한 '에너지 휴가제'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노동시간 단축과 주4일 근무제를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국내외에서 시행된 주4일제 실험을 통해 노동자들의 스트레스가 감소하고 건강이 개선되고 일과 생활이 균형을 찾으면서 삶의 질이 개선되는 효과가 광범위하게 입증되고 있다. 게다가 노동시간이 줄어들수록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된 바 있다. 영국 환경단체 '플랫폼 런던'의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이 주4일 근무제로 전환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21.3% 줄일 수 있다.

▲불볕더위의 기세가 전혀 꺾이지 않고 있는 20일 정오 무렵 서울 송파구 잠실네거리의 전광판에 현재 기온과 습도가 표시돼 있다. 올여름 더위는 8월 하순에 접어들었지만, 서울 지역에 사상 처음으로 '한 달 연속 열대야'를 기록할 만큼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기상청은 태풍 '종다리'의 영향으로 21∼22일 비가 오면서 기온이 일시적으로 내려가지만, 23일부터 다시 상승해 폭염과 열대야가 월말까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보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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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나라를 보호하는 에너지 정의, 기후 정의의 원칙에 입각해 기후 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하는 독립 싱크탱크입니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로, 한국 사회의 현재를 '녹색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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