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을 대상으로 한 불법합성물(딥페이크) 제작·유포 범죄가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명백한 국가적 재난 상황"이라며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여야 정치권은 이 사건에 대한 대한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은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전국에 있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중복 숫자를 합쳐 가해자가 22만"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텔레그램 성 착취가 벌어진 'n번방' 사건을 최초로 공론화한 '추적단 불꽃' 소속 활동가였던 박 전 위원장은 2019년 텔레그램 성착취 대화방에 잠입 취재해 'n번방' 존재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바 있다.
박 전 위원장은 "논란이 되고 있는 딥페이크 성범죄의 경우, AI봇을 이용해 처음에는 무료로 합성을 하게 해주고 그 이후에 돈을 내거나 AI합성방을 공유하면 추가 '크레딧'을 준다며 여성의 피해를 재화로 거래하고 있다"며 "1분이면 딥페이크 성범죄물이 만들어지고, 누구나 인증 절차 없이 방에 들어갈 수 있다"고 적었다.
최근 인하대 여학생의 얼굴에 음란물을 합성한 딥페이크 영상물이 유포된 사건이 드러난 데 이어 비슷한 종류의 텔레그램 대화방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는데, 가해자들은 주로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온 피해자들의 사진을 무단으로 저장해 범행에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이어 군인, 교사, 간호사 등 특정 직업군의 여성도 불법합성물의 피해자가 되고 있고, 최근엔 여동생·누나·사촌 등 가족을 범죄 대상으로 삼았다는 '가족방', '근친방' 등도 확인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여성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자신의 사진이 담긴 SNS 계정을 비공개로 설정하고 사진을 내리라는 조언이 공유되기도 했다.
박 전 위원장은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 뿌리를 뽑아야 한다"며 "우리가 가진 모든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각국 정부와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공조수사를 본격화해서, 타인의 인격을 말살하며 성착취로 돈벌이를 하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자들을 빠짐없이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에 서버를 둔 텔레그램의 수사에 한계가 있다는 당국의 대응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박 전 위원장은 "경찰 수사의 벽에 막혀 '텔레그램은 못잡아요'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정부의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수사협조에 응하지 않는 해외 인터넷 사업자에 대해 정부가 직접적인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2022년 브라질은 텔레그램이 당국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며 구글과 애플 앱스토어에서 텔레그램 앱을 삭제해 자국에서 텔레그램을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며 "2023년 독일에서는 텔레그램이 경찰 수사에 응답하지 않자, 독일 내무부 장관이 나서 독일 정부가 텔레그램의 협조를 받게 되기도 했다"고 해외 사례를 들며 정부의 대응을 지적했다. 이어 "이처럼 텔레그램에 벌금을 부과하거나 정부가 나서 법적인 대응을 한 국가는 전 세계적으로 11개국 이상"이라고 강조했다.
박 전 위원장은 "(텔레그램 CEO인) 파벨 두로프가 잡힌 지금, 윤석열 정부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며 "국가적 재난 상황임을 선포하고, 시급히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텔레그램이 N번방 사건 때처럼 가해자들의 신상 협조에 수사를 거부한다면, 최소한 일시적으로 텔레그램을 국내에서 차단하는 조치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민주당을 향해서도 "민주당도 1당으로서 입법부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처리해주시기 바란다"며 "우선적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학생들을 상담할 수 있는 기구를 설치해 보호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불안해하고 계신 여성분들이 많으신 걸로 안다. 혼자 불안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며 "우리의 불안이, 또 우리의 분노가 결국 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나아지게 만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등 원내 정당에서는 이번 불법합성물 범죄 사태에 대한 논평을 내지 않았다. 원외정당인 정의당만이 논평을 내고 "제대로 된 수사로 가해자를 강력 처벌하고 범죄를 뿌리 뽑는 것이 근본 대책"이라며 "딥페이크 범죄의 가장 큰 문제는 일상을 위협하는 불안감이다. '지금 드러난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라는 불안감이 여성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특별 수사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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