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난 화재로 23명이 희생된 아리셀 화재 참사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가 참사 발생 두 달 만에 발표됐다. 고용노동부와 경찰은 아리셀 대표를 비롯한 4명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상,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파견근로자보호법 등에 관한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신성장 녹색 산업의 핵심이라며 국가가 온갖 지원책을 마련하면서 배터리 산업은 확장일로다. 1,2차 리튬전지 업체들은 사업 규모를 크게 늘리고 있다. 그러나 산업의 확장이 곧 일하는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번 아리셀 참사로 다시 확인됐다.
아리셀 참사 이후,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전기차 배터리 폭발로 화재가 났다. 이로 인해 전기와 수도가 끊기고 주민 수백 명이 대피했다는 소식에 배터리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한껏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몇 가지 안전 권고사항을 발표했지만 정작 배터리 폭발 화재에 대비할 이렇다 할 사회적 인프라나 소방 역량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미봉책일 뿐이다. 기후 위기와 산업전환의 시대, 각광받는 새로운 물질은 계속 등장할 테지만 지금과 같은 재난 대응 시스템, 안전은 언제나 뒷전인 일터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더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특히 아리셀 참사는 무엇이 배터리를 제조하는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을 체계적으로 생산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적극적으로 방치된 위험한 일터
아리셀 참사에 대한 수사 결과에 따르면, 폭발성 화학 물질인 리튬을 제조하는 업체에 화재를 진압할 시설도, 안전소방 교육도 없었고 비상구 설치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게 확인됐다. 소량의 완제품을 제외한 나머지 배터리는 작업장이 아닌 별도의 공간에 보관해야 했지만, 노동자들의 작업 현장에는 3만5000개의 배터리가 있었다. 순식간에 23명의 노동자들이 희생되었다. 이번 참사 이전에 아리셀에 4번의 폭발 사고가 발생했지만 지금껏 제대로 된 재발 방지 대책은 세워지지 않았고 이에 대해 정부는 아무런 규제도 처벌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오히려 고용노동부는 아리셀을 3년 연속 위험성 평가 우수사업장으로 선정했다.
산업재해의 발생에는 위험관리에 따르는 자원과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부족한 경우에서부터 사업주의 의지, 비용투자의 우선순위, 규제 정책의 실행 방식 등의 여러 요인이 결부되어 있다. 그런데 일하는 모든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사업장의 차이가 사업주의 책임을 덜어주는 근거가 된다. 해당 법이 사업장 규모에 따라 차등 적용되기 때문이다. 안전관리에 여력이 없는 중소 영세 사업체는 업체 운영을 금지하거나, 공적 지원을 통해 이를 채워야 함에도 안전관리 책임을 면제해준다. 단적으로 사업장의 위험과 특히 화학물질 유해성 관리에는 전문성이 필요하지만, 상시 근로자 50명 미만 사업장은 안전관리자 선임 의무에서 면제된다. 지난 3년간 매출이 5배 성장한 아리셀이지만, 서류상 고용된 직원 수를 3년 내내 41명으로 유지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화재 안전 관리에서도 사업장 규모가 작으면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는 물론 소방당국의 화재 중점관리 대상에서 제외된다. 국내 1차 전지 공장 10곳 중 8곳이 이러한 점검 의무로부터 자유로운 게 현실이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할 의무조차 없는 미등록 영세 사업체까지 포함하면 이른바 안전 관리의 사각지대 범위는 더 커진다. 이 사각지대를 줄이겠다며 정부는 위험성 평가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의 핵심은 사업주 스스로 유해‧위험요인을 찾고 위험을 줄이기 위한 자기규율이다. 정부는 관여하지 않을 테니 그냥 알아서 하라는 말이다. 하지만 아리셀을 3년 연속 위험성 평가 우수 사업장으로 선정한 정부의 책임이 사라질 순 없다.
국가가 나서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 의무를 더 가볍게 또는 없애는 방향으로 제도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본디 사각지대란 보려고 해도 잘 보이지 않는, 의도치 않게 생기는 제도의 공백을 의미한다. 그런데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체의 만연한 산업재해 현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정부의 행태를 보면 이를 안전관리 사각지대라고 부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그보다 지금의 사각지대는 정부도 기업도 보지 않으려는 의지가 반영된, 의도적으로 노동자 생명과 안전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적극적으로 방치된 위험한 일터라고 부르는 편이 정확하다.
'진짜 사장'이 책임지게 하자
8월 23일, 고용노동부는 아리셀이 희생된 노동자들에게 직접 업무를 지시했고, 제조업에서 금지되어 있는 노동자를 파견받아 쓴 것이라며 이를 도급이 아닌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했다. 희생된 노동자들은 아리셀이 방위사업청에 납품해야 하는 리튬전지 생산지연에 따른 하루 5000개 생산 목표를 달성하는 데 투입되었다. 급하게 생산한 배터리에서 불량품이 만들어졌고, 그 배터리를 검수하고 포장했던 노동자들이 희생됐다. 노동부와 경찰 조사 결과,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교육도 없었고 아리셀 직원들에게 나눠준 비상구 출입카도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게 드러났다.
아리셀이 희생된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에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않았고, 실제 지려는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아리셀은 인력 파견업체였던 메이셀과 도급계약을 맺었다. 아리셀 공장에서 아리셀의 배터리를 생산하지만, 자신들은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기 위해 도급계약을 맺은 것이다. 메이셀의 공장에서 메이셀 노동자들이 도급계약 맺은 배터리를 생산한다는 이런 억지 논리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고용 전반에 대한 노동자 권리에 상응하는 책임 주체로서 사용자가 져야 할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의도와 목적을 가진 적극적인 행위였다. 누가 봐도 도급이 아닌 인력파견이었고, 고용노동부는 제조업 생산공정에 파견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다.
그간 경영계는 중소 제조업체들의 인력난이나 '고용 유연성' 필요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며 파견과 도급 허용 업종과 공정을 확대하라는 요구를 해왔다. 이에 호응하며 고용노동부는 올해 초 노동개혁 과제 가운데 하나로 파견제도 선진화를 포함시켰다. 아리셀 참사 며칠 뒤인 6월 28일 국회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자 파견의 복잡한 절차 때문에 사업주들이 이를 도급으로 위장하고 있으므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번 참사의 후속 과제가 위장도급을 근절하기 위해 제조업 파견을 확대해서 불법파견을 없애야 한다는 의미로 충분히 해석될 수 있다. 불법파견이 합법 파견이 된다고 한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사용자의 책임이 강화될 리 없다. 파견이라는 제도 자체가 바로 실제 일을 시키는 사용자는 노동자와 아무런 계약도 맺지 않는, 보장되어야 할 노동권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불법 여부가 아니라, 일터에서 사용자의 책임을 분명하게 지우는 게 중요하며 이를 피하기 위한 꼼수로 등장한 파견과 도급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서 어떠한 의무와 책임도 지지 않으려고 하는 사용자의 행태와 이를 가능하게 하는 고용관계를 바꿔야 한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요구가 가리키는 것
23명의 희생자 중 18명이 이주노동자이다. 아리셀은 희생된 노동자의 보상 기준을 비자 종류에 따라, 체류 기간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하겠다고 한다. 재외동포 비자로 입국한 경우 불법취업과 비자 연장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체류 기간 7년 이후 중국 임금 기준으로 보상하겠다는 꼼꼼한 기준도 세웠다. 사망 이후 사측이 보인 태도는 살아생전 이들이 대우받던 모습과 하등 다르지 않다. 참사는 노동자의 권리와 안전을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본과 정부가 만든 무권리 상태의 일터에서 발생했다.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은 무권리 상태의 일터 자체를 바꾸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유가족들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누가 어떤 업무지시를 했는지, 노동자들은 어떤 상황에서 일했는지,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지에 관한 진상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사회적으로 분명히 밝히고 바꿔나가야 할 것은 일터의 안전 관리에 대한 정부 제도가 만들어 낸 위험과 일터의 위험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부정하는 고용관계의 문제를 바로 잡는 것이다. 그것이 유가족들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가 가리키는 것이며,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우리들의 싸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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