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개혁진보 선거연합'이 등장했습니다. 사회운동의 일부가 신자유주의 정치세력과 연합하는 광경을 마주하며 사회운동의 일원을 자처하는 우리는 참담한 분노를 느낍니다. 이윤 축적에 모든 것을 종속시키는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하기 위한 사회적 힘과 정치적 전망을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만들어가야 합니다.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 조직위원회'는 이러한 취지의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를 알리고, 더욱 많은 활동가들이 함께 하기를 기대하며 사회운동 활동가들의 네 편의 글을 싣습니다.
착취‧수탈‧파괴‧학살을 공약으로 내놓는 후보들
내가 사는 청주에는 총선 후보들이 내놓은 이색(?)공약이 화제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한 후보는 청와대를 이 곳 청주로 이전하겠다고 했고, 국민의힘 소속 후보는 삼성의 바이오산업 투자 계획을 청주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기업을 유치하겠다고 한다. 언론 보도를 본 지역민들은 헛된 공약이라는 걸 뻔히 안다. 그럼에도 내심 기대하는 마음을 접기 어렵다. 거대한 공공기관과 대기업이 들어서고 곳곳에서 부동산 붐이 다시 일어나면 일자리가 생긴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특히 인구감소로 인한 지방소멸 문제가 대두되다 보니 지역이 사라질까 두려운 데, 민생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후보들이 장밋빛 성장을 약속하니 안심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그 공약들이 다름 아닌 착취와 수탈, 파괴와 학살의 약속이라는 것을 안다.
거대 양당은 상대를 심판하기만 하면 한국 사회에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라도 하듯 떠들고 있지만, 그 둘이 그려내는 세상의 차이는 손가락 한 마디도 되지 않는다. 20년이나 반복된 일이다. 이걸 이번에도 또 하랴!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지방 소멸을 신자유주의로 해결하겠다는 거대 양당
정당들은 당선만 되면 모든 게 쉽게 해결될 것처럼 공약을 내놓는다. 그러나 지역에서 겪고 있는 삶의 위기는 심각하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 사는 곳을 떠나 수도권으로 향하지만 높은 물가, 불안한 주거, 불안정한 일자리로 도시 주변을 난민처럼 맴돌고 있다. 저출생-고령화가 심각하다고 떠들지만 산부인과는 사라지고 있고, 병원은 멀기만 하다. 혼자 사는 노인이 자살율은 늘어만 가고 있고, 주민들이 사는 인접지역과 농촌지역에 산업단지들이 들어서고 있다. 이처럼 소멸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삶이고 살아있는 생명체들이고 농촌이다. 산업단지, 산업폐기물 매립장과 소각장은 늘어가고, 농지를 뒤덮는 태양광패널들은 활개를 치고 있다.
물론 지역은 지방소멸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 한국고용정보원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은 51곳, 소멸 위험에 진입한 지역은 67곳으로 전국 시·군·구 243곳 중 118곳이 소멸 위험 지역이다. 이에 대한 거대 양당의 해법은 뻔하다. 출산율을 높이고 인구 유입을 늘리는 것이고, 여기에 행정과 재정을 동원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야심차게 나오는 전략이 바로 ‘메가시티’다. 메가시티의 다른 이름은 바로 ‘자본주의 성장과 개발의 종착지’이다.
지금껏 서울·수도권을 중심에 놓고 지역의 노동력과 자원을 수탈하고 착취하면서 자본주의 이윤체제를 유지해왔다. 한편, 메가시티는 지역 광역거점 도시를 중심에 두고 인근 소도시와 농산어촌을 연결해 인구와 자원을 집중시켜 각종 개발 사업을 통해 자본의 이윤 창출 기회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여기에 지역 고유의 문화와 공동체성은 깡그리 무시되고, 생태계는 착취와 수탈의 대상이 될 뿐이다. 여성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만 다뤄진다. 메가시티 조성을 위해 투입되는 막대한 재정은 자본의 호주머니를 두둑이 채워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수도권을 오가는 교통수단은 많아질지 몰라도 지역 내 공공교통 인프라는 축소된다. 지역마다 대기업과 공공기관 유치전쟁에 나서니 당연히 각종 규제는 철폐되고 유인용 지원책만 남는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만든다는 명목 하에 노동권을 제약하는 협약들이 난무하고 불안정 노동자들은 넘쳐난다. 메가시티의 중심 도시가 되기 위해 이리저리 지역민을 동원하는 동시에, 그들의 삶을 파괴한다. 이것이 메가시티다.
메가시티 성공을 위해 유포되는 논리는 오직 ‘성장’과 ‘개발’이다. 경쟁에서 이겨야 우리 지역이 성공하는 것이다. 청주의 이익을 위해 KTX 세종역 신설은 불가하고, 세종-청주 시민의 불편함을 고려해 KTX 오송역을 비판하는 청주시민은 적이 된다. 거점 도시 주변은 개발로 투기 바람이 불고, 지역은 헛된 욕망이 넘실거린다. 이 속에서 민주주의와 자치는 살아남을 수 없다. 거대한 도시의 출현은 오랫동안 차곡차곡 쌓아왔던 공동체와 주민자치의 실험들을 모조리 허사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성장과 개발의 종착지 말고, 다른 세상의 출발점이 되고 싶다
거대 양당이 내놓고 있는 성장과 개발 담론으로는 지방소멸 위기를 해소할 수 없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분노와 무기력을 반복하면서 삶을 유지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작은 실천이라도 쌓아가고 싶다. ‘지역’은 생산과 재생산이 교차하는 곳이며 ‘인간의 보편적 삶의 권리’라는 관점을 가지고 다양한 운동 주체와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른 세계를 재창조할 수 있는 가장 일차적인 거점이 지역인 것이다. 이곳에서 인구감소로 힘을 잃은 지역공동체를 재창조하고, 공공성과 생태성이 민주주의 속에서 어우러질 수 있도록 다른 세계의 상상력을 펼치고 싶다.
삶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공공성의 강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을 지키는 생태적 전환, 파괴와 학살로 떨어지는 부스러기 같은 불안정 일자리가 아닌 보편적 노동의 권리가 보장되는 일자리를 상상하고 싶다. 지역에 발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우리가 숨 쉬는 곳을 지켜내고, 존엄하게 살 방법을 함께 토론하고 싶다. 이에 필요한 지방 재정을 투입하고 운영을 가능케 하는 자치의 강화를 실험하고 싶다. 이 모든 것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런 정치다.
이를 위해 거대 양당의 낡고 게으른 정치와의 결별을 다짐한다. 거대 양당 정치에 절망하면서도 최악보다는 차악이 낫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일은 이제 그만하려고 한다. 앞으로는 우리의 이름을 숫자로 치환하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거대 양당 정치와 개발과 성장 담론으로 메가시티를 앞세우고 또 다시 착취하고 파괴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을 고민할 것이다.
물론 삶의 위기 속에서 이에 맞선 저항은 분노만으로 힘이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삶, 다른 세계를 위한 상상, 공동의 모색과 실천을 통해 그 힘은 완성될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우리의 삶을 조각내놓은 자본에 맞서 저항하는 힘을 상상하는 것, 존엄과 평등이 가능한 사회관계와 삶을 상상하는 것, 사회운동이 이뤄낸 그 힘을 권력자들에게 빼앗기지 않고, 이를 체제전환의 힘으로 모아내는 것, 이런 상상을 안내하는 체제전환 운동에서 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래서 나는 체제전환 정치대회로 간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공동의 경험을 나누고 공동의 전망을 궁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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