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정권'에서 '특검 도입'이 과반의 지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 이유에 대해 윤석열 정부의 요직과 당의 곳곳에 포진한 검찰 출신 정치인들은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을까? 무려 '검찰 정권'인데 검찰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서초동은 속으로 부끄러울 것이다. 하지만 겉으론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지금 가장 핫한 특검은 '김건희 주가조작 특검'이다. 이 법이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을 수사하며 김건희 영부인을 단 한번도 소환하지 않았고 결론도 내지 않고 있다. 주가조작 혐의자들의 재판에서 '김건희 계좌'가 주가 조작에 사용된 게 발견됐는데도 그렇다. 검찰이 섣불리 무혐의 결론을 내지 못하는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다가, 검사가 범죄를 발견하고도 수사를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데에까지 미쳤다.
두 번째, 지난 2022년 9월 13일 자신에 대한 특검법이 발의된지 엿새만에 김건희 영부인은 태연하게 자신의 사무실에서 명품백을 받고 있는 동영상이 찍혔다. 영부인의 그 '멘탈'에 많은 이들이 놀랐다. 영부인의 품격이 바닥에 떨어졌다. 배우자인 윤석열 대통령은 '아쉽다'는 말로 이 상황을 갈음하려 한다. 유권자들은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영부인에 대한 조치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그의 도덕성을 의심하고 있다. 그래서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에 시선을 돌렸지만 대통령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거부권 행사 명분 중 하나는 '특검법이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야권의 정치적 의도에 의한 것'이란 주장인데, 거꾸로 '거부권 행사가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윤 대통령의 정치적 의도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도 성립시킨다. 오도가도 못하는 형국이다.
그래서 '제도적 장치'로 눈을 돌려본다. 대통령이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않는 이유는 짐작할 만하다. 특별감찰관이 임명되면, 1호 조사 대상은 '명품백 수수 의혹'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특감 임명은 대통령 입장에선 '자살골'이다. 영부인을 담당하는 '제2부속실 설치'는 어떨까. "제2부속실이 있었더라도 제 아내가 내치지 못해서, (상대가) 자꾸 오겠다고 하니까, 실상 통보하고 밀고 들어오는 건데 그걸 박절하게 막지 못하면 제2부속실이어도 만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제2부속실이 설치도 '박절'할 수 없다면 소용없단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거다.
'김건희 특검법'보다 더 큰 게 온다
'김건희 특검법'보다 더 큰 특검 이슈가 다가오고 있다. 우린 채상병 사망사건 특검을 눈앞에 두고 있다. 헌데 그 시점이 묘하다. 작년 10월 6일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야당 성향 무소속 의원들 182명이 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검법(채상병 특검법)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다. 이법안은 국회 법사위에서 최장 180일간, 본회의에서 최장 60일간 논의된 후 자동으로 표결에 붙여지게 된다.
10월 6일부터 계산했을 때 180일 후는 4월 초, 22대 총선 직전이다. 즉, 4월 총선이 지나면 채상병 특검법이 처리될 것이란 말이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채상병 특검법에 찬성하는 입장이고, 개혁신당도 그렇다. 개혁신당은 "문재인 정권 당시 윤석열 검사가 받았던 모멸감을 박정훈 수사단장이 느끼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한 바 있다. 그리하여 야3당은 '채상병 특검법 처리'를 공약으로 내세울 것이다.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단독 과반을 하지 못하면 야3당은 채상병 특검법을 처리할 것이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동원해도 된다. 명분에서 앞선다.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단독 과반을 차지한다? 그럴 경우에도 변수는 공천에 탈락한 국회의원, 낙선한 국회의원들이다. 그들이 무슨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특검법 처리가 달려 있다. 사실 통과 가능성은 매우 높다. 여론도 받쳐준다. 경향신문과 엠브레인퍼블릭의 여론조사(12월 29일~30일 실시)에 따르면 '채상병 순직의 원인 규명과 당시 대통령실, 국방부가 수사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특검 도입이 필요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73%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70대를 포함한 전 연령대에서, 대구·경북을 포함한 전 지역에서 특검이 필요하다는 답이 우세했다.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에게 투표했다는 응답자들 중에서도 특검이 필요하다(54%)는 의견이 필요하지 않다(34%)를 크게 앞섰다.
4월 총선 전후 특검법이 처리되면, 대통령은 또 다시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해온 행동 패턴이 그런 전망을 가능케 한다. 허나, 가족에 대한 비리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을 거부한 데 이어, 본인을 둘러싼 의혹 진상 규명을 거부할 경우 '방탄 거부'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 재의결 정족수(199석)를 야3당이 확보하게 된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결국 유권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채상병이 사망한 건 지난해 7월 19일. 한반도 폭우 사태 피해 지역에서 무리한 실종자 수색에 동원됐다가 급류에 휩쓸려 생을 마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는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고, 해병대 수사단이 나섰다. 그러나 수사단의 수사 결과는 갑자기 뒤집혔고, 엉뚱하게 수사단장이 항명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사건은 왜 일선 수사팀의 수사 결과가 뒤집혔는지, 왜 당초 임성근 사단장의 혐의가 국방부 보고를 통과하면서 빠지게 됐는지, 그 과정에서 대통령실이 관여했다는 수사단장의 말이 사실인지, 나아가 대통령이 일련의 과정에서 모종의 역할을 한 것인지, 셀 수 없는 많은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채상병 사망의 원인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수사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이 만약 사실로 드러난다면, '검찰 정권'엔 치명타가 될 것이다. 채상병 사망 사건이 정상적으로 수사가 진행됐으면 특검법 같은 건 필요 없는 일이었다.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와 보자. 깡패, 조폭, 범죄자 잡는 검찰이 정권을 잡았는데, 검찰 대신 특검 도입을 원하는 여론이 높다는 건 정상이 아니다. '곳간지기가 도둑질을 하겠느냐'는 막연한 믿음이 성립하려면 '곳간지기'가 투명하고 깨끗해야 하지만 '동료 시민'들은 그렇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검찰 정권'이 범죄 혐의로 의심받는다는 건, 다른 정권에 비해 두배로 치명적인 일이다. '정의 구현'에 대한 기대 하나로 정권을 잡았는데 그 유일한 기대가 무너진다면 유권자들의 분노가 어느정도일지 가늠하기 어렵다.
총선 전이 될지, 후가 될지 모르지만, 총선 즈음 통과될 '채상병 특검법'은 우리 정치사에 또 하나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건희 특검'처럼, '채상병 특검'을 이렇게까지 키운 것도 윤석열 정부다.
'검찰 개혁'은 낡은 말이 됐고,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은 주제가 됐다. 물론 일차적 책임은 검찰 개혁에 실패한 문재인 정부에 있을 것이다. 아예 '검사 정권'이 탄생하자 수사부터 기소, 공소유지까지 검찰의 '전천후 논스톱 시스템'은 살아남았고 카르텔은 더 공고해진 듯 보인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개혁'이란 건, 누가 원했을 때보다, 개혁의 대상이 된 카르텔이 안에서 무너질 때 찾아오곤 했다. 그런 상황이 왔을 때, 검찰은 감당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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