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보다 깻잎이 더 비싸"…마트 간 주부 놀란 이유(머니투데이 23.10.10)
쌀 19% 파 24% 상추 40%...밥상물가 다올랐다(문화일보 23.11.02)
사과 72% 등 농산물값 급등... 3%대 물가 상승폭 석달 연속 커졌다(동아일보 23.11.03)
농산물 가격이 올라서 장을 보는 사람들이 힘들다는 이야기. 특정 농산물의 가격이 유난히 치솟았는데 왜 그런지 알려주는 이야기. 나들이철이라 걱정이고 김장철이라 배추가 비쌀까봐 걱정이라는 이야기.
농산물 가격에 관한 기사 대부분은 소비자들의 고충이나 정부 입장만 다루고 농가의 어려움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농산물 가격이 비싸서 힘들다는 보도를 계속 보고 있으면 마치 작물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이런 보도는 철마다 쏟아져 나온다.
채소, 과일, 곡물 등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면 소비자들은 당연히 힘들다. 그리고 농산물 생산에 들어가는 노동과 생산비에 대해 소비자들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농가의 사정을 제대로 알려주는 보도가 없지는 않다. 열심히 찾아야 보인다는 게 문제다.
사과, 당근, 딸기 이야기
너무 비싼 '金사과'(경북매일 23.11.15)
본격 출하기 맞은 제주 당근...값싼 수입산에 '시름'(뉴시스 23.11.21)
최저임금 석 달 치도 안 되는 농업소득(MBC 뉴스데스크 23.10.29)
봄철 냉해와 여름철 잦은 비 등으로 과일 작황이 나빠져서 올해 출하되는 사과의 가격이 전년 대비 70퍼센트(%) 폭등했다. 소비자들은 사과 소비를 포기하거나 눈물을 머금고 비싼 값에 사과를 구입했다. 그러나 시장 가격이 높다고 해서 농민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작 사과 재배 농민들은 수확량이 줄어서 팔고 싶어도 팔 사과가 없다. <경북매일>에 따르면 농약 등 자재비와 인건비도 크게 올라서 사과 생산 농가들의 수입은 예년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작황이 좋아도 고민이다. 제주 당근의 경우 올해 재배면적이 지난해보다 크게 늘었고 생산량도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 당근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제주의 농민들은 제값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많다. <뉴시스>는 여기에 수입산 당근의 저가 물량 공세까지 겹쳐 농민들의 시름이 더 깊다고 전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농가의 2022년 농업소득(농민이 1년간 농사를 지어 얻은 소득)이 평균 949만 원으로, 10년 만에 1천만 원 밑으로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또 지난 10년 동안 고소득 작물인 딸기를 재배하다가 올해 딸기 농사를 포기한 농민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시설하우스 6동에 딸기를 재배한 A씨의 지난해 딸기 매출액은 1억1000만 원이었지만, 인건비와 토지임대료, 농자재비와 은행이자 등을 빼고 나니 소득은 1100만 원이었다. 부족한 생활비는 대출로 메워야 했다. 이 사례를 통해 농민들이 왜 농사를 포기하게 되는지를 알 수 있다.
물가 비상 걸린 정부
대통령 말씀 따라... 기재부 공무원들, 계란 공판장·배추밭 간다(한국일보 23.11.06)
추경호 "배추 2주간 2200톤 공급… 12개 농산물 최대 30% 할인 지원"(뉴스1, 23.10.17)
농식품부, 가을철 장바구니 부담 완화에 최선(농식품부 보도자료, 23.10.19)
물가안정 위해...설탕·닭고기 등 76개 품목 '관세 인하'(한겨레 23.11.22)
정부가 물가를 잡으려고 노력한다는 보도도 수없이 많다. 정부는 '민생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농산물 가격 떨어뜨리기에 집중한다. 농산물 가격을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수입 확대, 비축 물량 풀기, 가격 할인 지원 등이 사용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대통령이 주재한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는 물가부담을 완화하겠다면서 "농축산물 긴급 수입 확대"를 발표했다. 올해 8월 31일 발표한 정부 합동 추석 민생대책에는 파인애플과 망고 등의 무관세 수입을 확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지난달 17일 열린 민생·물가안정 관계장관 회의에서도 "수입과일, 탈지·전지분유 관세 할인"을 추진한다고 했다.
이달 들어서는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직접 나서서 비상경제 장관회의를 열었고, 지난 9일부터는 물가관계차관회의를 개최했다. 10개 부처 차관을 물가책임관으로 하는 체계를 만들었다고 한다. 계속 '비상'이고 계속 '긴급'하다. 원래 추 부총리가 10월부터는 물가가 안정될 거라고 공언했는데 그 예상과 반대로 10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3.7%로 미국보다 높게 나와서일까. 추 부총리와 기재부 관료들은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기준금리 인상과 같은 거시적 대책이 없이 공무원들이 품목별로 관리하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농민만 잡는 물가대책?
농산물 가격이 오를 때마다 수입을 늘려서 가격을 떨어뜨리는 정책에 대해 농민들은 매우 부정적이다. 쉽게 말하면 왜 농산물 가격만 때려잡느냐는 것이다.
지난달 25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에서 발표한 성명서의 제목은 <잡으라는 물가는 못 잡고 농산물가격만 때려잡는 무의미한 물가정책 중단하라>였다. 성명서는 지난달부터 정부가 수입과일 할당관세(TRQ), 농산물 할인 지원, 배추 비축물량 방출 등을 추진하는 데 대해 "소비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농산물가격을 낮춰 물가폭등에 대한 분노를 잠재우겠다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기만적 조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이런 조치가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이어져 "이미 20년 전 수준으로 떨어진 농업소득도 여기서 더 추락하게 되고, 안 그래도 불안정한 국내 생산기반 역시 더욱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서 농산물 가격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 차이가 확인된다. 정부는 농산물을 물가 관리의 주요 대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농산물 가격은 낮출수록 좋다고 본다. 반면 전농을 비롯한 농민단체들은 농산물을 국민 필수재로 바라보고 농업 기반 보호를 중시한다. 이 관점에 따르면 농산물은 무조건 가격을 억눌러야 하는 재화가 아니다. 농민들이 노동한 대가를 받으려면 농산물도 제값을 받아야 한다. 특히 정부의 과도한 농산물 수입 정책은 나라의 농업 기반 자체를 무너뜨린다.
다음으로 전농의 성명서는 "농산물이 실제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고 지적한다. 소비자물가지수 가중치가 가장 높은 품목은 전월세 등 주거비와 공공요금, 유류비 등이고 농산물의 경우 주식인 쌀도 "400여 개 품목 중 39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물가를 잡으려면 집값을 잡고, 냉난방비를 잡고, 기름값을 잡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통계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소비자물가지수 가중치'(현재는 2020년 기준)를 찾아보니 실제로 가중치가 높은 품목들은 농산물이 아니었다. 품목들을 가중치 내림차순으로 정렬하면 전세(54), 월세(44.3), 휴대전화료(31.2) 공동주택관리비(21), 휘발유(20.8), 외래진료비(19.2), 전기료(15.5), 고등학생학원비(12.8), 도시가스비(12.7)… 이렇게 한참 이어지다가 쌀(5.5)이 나온다. 전세와 월세만 합쳐도 가중치가 98.3이다. 쌀의 가중치가 5.5라는 것은 농산물의 가중치가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쌀값이 지나치게 낮게 형성되어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 가능하다. 어느 쪽이든 간에 정부의 물가안정 대책이 농산물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는 생각은 든다.
게다가 최근에는 생산비 급등 문제가 있다. 비료값, 자재비(농약, 필름 등), 유류비, 전기요금, 인건비가 모두 큰 폭으로 올랐는데 농산물 가격만 억누르면 농사를 포기하는 농민이 늘어나고, 나중에는 국민 전체가 피해를 입게 된다.
쌀값 이야기
정부만 만족하는 '쌀값 20만원'…농민들 "쌀값이 재해다"(한국농정 23.11.05)
면세유값 상승세 지속… 기름값 걱정에 농민 시름(KBS 23.10.16)
농민들은 올해도 못 웃을 것 같습니다(한겨레21 23.09.20)
그러면 소비자물가지수 가중치가 5.5인 쌀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모든 물가가 뛰었는데 쌀값만 내려갔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게시된 산지 쌀값은 정곡 20킬로그램(㎏) 기준으로 지난 5일 5만346원이었고, 지난 15일 기준으로는 4만9820원이다(25일 기준 가격은 아직 미발표). 80㎏으로 환산하면 19만9280원. 정부와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산지 쌀값 20만원 보장을 약속했는데 그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다.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쌀값 20만 원도 말이 안 되는 목표로 받아들여진다. 정부 목표대로 80㎏ 쌀값 20만 원을 유지한다고 쳐도 밥 한 공기 쌀값은 225원이다. 농민들은 밥 한 공기에 300원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벌써 10여 년 동안 나온 주장인데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의 집값과 쌀값 변동률을 생각하면 비교 자체가 안 된다. 참고로 지난 2019년의 정부 목표가격은 21만4000원이었다. 심지어 박근혜 전 대통령도 당선 전에는 쌀값 21만 원 보장을 약속했다. 물론 당선 후에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박근혜 임기 중 쌀값이 13만 원대로 떨어진 적도 있었다.
쌀값에 관한 주류 언론과 경제신문들의 논의는 '공급 과잉'이라는 프레임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는다. 올 상반기에 화두가 되었던 양곡관리법과 관련된 기사들 역시 ‘쌀 과잉생산’을 기정사실로 간주하고 있었다.
가장 충격적인 보도는 <한국경제> 7월 31일자 1면을 장식한 <稅면제·반값…성역이 된 농민·中企>였다. 기자는 충남 예산에 있는 정부양곡창고에 직접 가서 산더미처럼 쌓인 포대쌀을 직접 보고 나서 기사를 썼다. "정부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공공 비축과 수급 안정을 위해 남는 쌀을 매입했다가 보관 기간이 지나 헐값에 처분하면서 본 손실이 연평균 7300억 원에 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기사는 쌀 재고량이 올 4월 말 170만톤(t)을 넘어섰다면서 "농민과 중소기업 지원은 나랏돈이 줄줄 빠져나가도 구조조정이 힘든 '성역'이 됐다"는 지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는 검증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우선 정부가 "남는 쌀"을 매입한다고 했는데 쌀이 남는 이유가 농민들이 과잉생산을 해서인지 아니면 쌀을 무분별하게 수입하기 때문인지를 따지지 않았다. 정부가 수확기를 앞두고 쌀을 헐값 방출해서 인위적으로 가격을 낮추기 때문에 농민들이 속이 탄다는 사실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쌀을 매입했다가 헐값에 판매하니 예산 낭비라는 경제적 계산만 있다. 경제신문들과 정부의 관점에 따르면 한국에는 쌀이 남아돌고 그것은 농민들 탓이다. 그러나 쌀값이 4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폭락했던 지난해에도 한국이 48만t 넘는 쌀을 수입했다는 사실을 크게 보도하는 언론은 별로 없다.
<한국경제>의 보도는 민심과도 동떨어져 있다. 지난 4월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다수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찬성했다. '쌀값 안정화, 농가 소득 보장 위해 찬성'이 60%였고 ‘쌀 공급 과잉, 정부 재정 부담 늘어 반대’가 28%로 나타났다(의견 유보 12%). 또 세대별로 차이는 있었지만 모든 세대에서 찬성 의견이 더 많았다.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농정원)이 최근 농업인의 날을 맞아 진행한 '쌀 소비 트렌드 키워드 분석 결과'에서도 "쌀 가격이 오르는 것을 수용할 만하다"는 의견이 48%로 절반에 육박했다. 물론 국민 다수가 농촌의 현실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식량주권 차원에서 쌀 농사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분명 있다.
농업은 돈인가, 공익인가?
자본주의는 '돈 되는 것'을 좇는다. 언론은 농촌의 척박한 현실과는 거리를 두면서 스마트팜과 푸드테크 등 ‘첨단’ 농업기술을 예찬한다. 유튜브에도 '스마트팜 창업으로 월 ○○○ 벌기' 같은 콘텐츠가 넘쳐난다. 윤석열 정부는 처음부터 '투자' '수출' '산업화' 등의 키워드로 농업정책에 접근했다. 식량주권 같은 개념은 문서상에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식량이 주권인 시대에 들어섰으며, 농업의 공익적 기능은 부인하려고 해도 부인할 수 없다. 시장경제 원리와 수출액만으로 그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산업이 농업이다. 정부는 농산물을 물가 관리의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소비자들이 지불하는 농산물 가격을 낮추려고 노력한다면, 농민들에게도 농사를 지어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 최소한의 형평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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