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경기 침체 대응을 위해 지금은 재정을 확장할 때가 아니라고 강변했다. 올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일본에 역전당할 가능성이 거론됐으나 한 총리는 "추락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7일 한 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윤석열 정부 들어 한국의 상반기 GDP 성장률이 25년 만에 일본에 역전됐다'는 지적에 "세계경제가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 때문에 옛날처럼 마음 놓고 재정 확장이라든지 금융 완화 정책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재정 관리 중요... 재정 줄여도 중장기 잠재력 투자 해"
한 총리는 "국가경제의 최후의 보루인 재정 쪽에서 위기 상황을 맞지 않도록 하는 것이 대단히 저희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그럼에도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경제가 지속 가능하고 중장기적 성장 잠재력을 확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육개혁, 또 3대 개혁을 통해서 우리 경제를 좀 더 지속적 성장이 가능한 그러한 방향으로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요약하면 이전 정부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재정 건전성 유지를 최우선 정책 목표로 삼고 있지만, 중장기적인 국가 성장 잠재력 확충을 위해 장기 투자가 필요한 부문에는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주장에 질문자로 나선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고(고금리, 고환율, 고물가) 현상은 한국만 겪는 게 아닌데, 왜 주요 국제기관이 하반기 세계 경제 성장률을 높여 잡으면서 유독 한국만 낮춰 잡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한 총리는 "지금 우리의 재정 상황은 국가 부채 (비율)이 50%에 달한다"며 "우리 재정이 옛날처럼 지출 위주로 쓸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답변했다.
한 총리는 이어 "타 국가와 (성장률 전망치를) 비교할 때 (한국의) 올해 성장 전망은 일본과 비슷하다"며 "확장적 (재정) 정책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나 국민이 좀 더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정부 지출 줄여 나라 살림 더 피폐해졌는데
하지만 한 총리 주장과 달리 가계와 기업 부문이 대규모 가계부채와 세계 경기 침체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마저 지출을 줄이자 한국 경제성장률이 타격을 입는 것은 물론, 현 정부가 우선과제로 삼은 재정건전성마저 악화하고 있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기획재정위원회)이 한국은행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의하면 정부가 올해 들어 8월까지 한국은행에서 빌린 일시대출액(누적 기준)은 113조6000억 원이었다. 이는 작년 전체 일시대출 누적액(34조2000억 원)의 3배가 넘는 규모다. 코로나19로 재정 투입 수요가 늘었던 2020년 전체 일시대출 누적액(102조9000억원)보다 많다.
현 정부가 '재정을 함부로 썼다'고 일관되게 비판한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에 대응할 당시보다 더 큰 돈을 한은으로부터 빌려쓰고 있다는 얘기다.
세수 부족 때문이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국세 수입은 2176000억 원이었다. 전년 동기간 대비 43조4000억 원 감소했다. 올해 남은 기간에 작년 수준의 세금을 걷는다손 쳐도 48조 원가량이 부족하다. 당초 정부의 '상저하고' 전망과 달리 하반기 한국 경제도 침체를 걸을 가능성이 커졌음을 고려하면, 실제 세수 부족 규모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세수 '펑크'가 크게 났다.
경기 침체와 소비 침체로 인해 민간 부문에서 세금이 당초 정부 기대만큼 걷히지 않는 와중에 법인세 감면까지 악영향을 미친 결과다. 이는 결국 정부가 당초 계획한 세출에도 문제를 일으킨다. 그 때문에 정부가 한은으로부터 급전을 당겨 쓰게 됐다. 이자비용까지 고려하면 악순환 고리가 만들어진다. 재정 건전성 집착이 국가 재정의 축소를 불러온 데 더해 오히려 재정 악화를 초래한 셈이다.
이 때문에 기획재정부가 계속해서 밀어붙이고 경제매체들도 도입 필요성을 주장하는 재정준칙의 법제화가 실제로는 한국 경제를 더 망칠 것이라는 우려가 일각에서 꾸준히 나온다. 정부 재정 지출 범위를 아예 법으로 고정해버리면 정부가 재정을 풀어 경기를 떠받쳐야 하는 위기 상황이 와도 이를 제한해 국세 수입 감소-경기 추가 침체를 낳는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 한은에 따르면 2분기 한국 GDP가 0.6% 성장하는 가운데 정부소비는 성장률을 0.4%포인트 끌어내렸다. 정부가 돈을 안 써서 성장률이 더 떨어졌다. 비록 한국의 증가 속도가 빠르다고는 하지만 GDP 대비 정부부채비율이 100%를 훌쩍 넘는 주요 선진국, 특히 256%에 달하는 일본의 국가부채비율과 54.6%인 한국을 비교하면 한국의 재정지출 여력은 충분하다는 게 상당수 경제학자들의 지적이다.
오히려 한국의 문제는 OECD에서 유일하게 GDP 대비 100%를 넘어버린 가계부채비율이다. 다른 나라는 경제를 떠받치기 위해 정부가 빚을 지는데 한국은 가계가 빚을 진 결과다. 과도한 가계부채는 가계의 소비여력을 깎아먹어 내수 소비 추가 위축을 부르고 이는 다시 세수 결손으로 이어져 정부 살림을 쪼그라들게 한다.
중장기 투자한다면서 R&D 예산 삭감?
결국 질의에서 '정부가 돈을 풀지 않으면 민간이 그 채무를 부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총리는 이에 관해 "그건(정부 재정정책 확대) 국민 전체에 더 높은 물가, 그리고 특히 자라나는 청년에게 엄청난 부담을 증가시키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이는 '정부 지출을 줄이더라고 미래 성장잠재력을 높이기 위한 투자는 한다'는 한 총리 발언과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정부는 내년도 예산을 짜면서 R&D 예산 5조2000억 원을 깎았다. 한국의 GDP 대비 R&D 투자는 OECD 최상위권이었다. 제국주의 시절 과학 기술력을 크게 강화한 주요 선진국에 비해 기초과학 분야 뿌리가 약한 한국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R&D 예산을 계속해서 늘려 잡아야 한다는 게 그간 과학계의 주장이었다.
정부는 그러나 부족해진 세수로 인해 내년도 살림 규모가 줄어들자, R&D 부문을 희생하기로 했다. 이는 중장기를 바라본다던 한 총리 말과 백팔십도 다른 조치다. 오히려 '미래 성장 잠재력을 갖다 미리 쓰기로 한' 조치가 현 정부로부터 나온 셈이다.
"한국 성장 전망 '추락' 아니다"
'한국과 일본의 올해 성장 전망이 비슷하다'는 한 총리 주장도 사실과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7월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5%에서 1.4%로 낮춰 잡았다. 이는 일본 성장률 전망치와 동일하다.
그런데 상반기 실제 한국과 일본의 경제 성장률을 비교하면 일본이 한국에 앞섰다. 한국 경제는 1분기 0.3%, 2분기 0.6% GDP 성장률을 각각 기록했다. 같은 기간 일본은 0.9%, 1.5%를 기록했다.
이에 정부의 상저하고 전망이 틀렸고 '한국의 성장률이 1.4%는 고사하고 1.3%, 1.2%까지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자 한 총리는 "저는 그건 추락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그건(성장률 추가 하락) 일방적인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한 총리는 "종합적으로 경제를 봐야 한다"며 "우리의 실업률은 2.7%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이고 "고용시장은 '핫(hot)'하다. 빈자리가 굉장히 많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예 구직활동을 포기해 실업률 통계에 잡히지 않는 청년을 고려하면 실제 한국의 실업률은 더 높다는 게 상식이다. 한국의 실업률 통계는 대체로 완전고용에 가깝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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