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의문의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러시아 용병 집단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장례가 29일(현지시각)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에서 비공개로 치러졌다. 장례식 장소에 대한 허위 정보가 난무하며 '특별 장례 작전'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러시아 국영 <타스> 통신은 이날 소식통을 인용해 프리고진의 장례식이 상트페테르부르크 포로홉스코예 묘지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고 보도했다. 소식통은 친척들과 친구들만 참석한 이날 고별식이 유족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BBC 방송을 보면 프리고진의 언론 담당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장례식이 이날 "비공개"로 진행됐고 "작별 인사를 하고 싶은 이들은 포로홉스코예 묘지로 가면 된다"고 밝혔다. 이날 앞서 러시아 대통령궁(크렘린)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프리고진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6월 러시아 국방부와의 대립 끝에 용병 부대를 이끌고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반란을 일으킨 프리고진은 반란 실패 뒤 벨라루스 망명 수순을 밟았지만 지난 23일 모스크바 인근에서 탑승한 비행기가 추락하며 사망했다. 과거 푸틴 대통령 반대자들이 차례로 의문의 죽음을 맞은 탓에 프리고진 사망 배후에 러시아 정부가 있다는 추측이 제기됐지만 러시아 대통령궁(크렘린)은 연관성을 부인했다.
장례식의 정확한 시간과 장소가 공개되지 않은 가운데 이날 소셜미디어엔 이에 대한 지나치게 많은 거짓 정보가 떠돌았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운구차와 장례 행렬에 대한 거짓 소문을 비롯해 소셜미디어에 퍼진 허위 정보들이 대중들이 프리고진의 진짜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다고 짚었다.
매체는 관련 가짜 정보가 난무하는 것을 두고 소셜미디어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특별 군사 작전'으로 부르는 것에 빗대 '특별 장례 작전'으로 비아냥대는 말까지 퍼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BBC도 소셜미디어에서 적어도 4곳의 묘지가 장례식 장소로 거론됐다며 "러시아 당국 입장에선 (장례식에 대한) 관심이 적을수록 좋다"라고 분석했다. 방송은 "장례식은 조용히 진행됐지만 경비는 그렇지 않았다"며 묘지는 이날 문을 닫아 방문객을 받지 않았고 바깥엔 탐지견, 무인기(드론) 및 경찰이 울타리를 따라 빈틈 없이 배치돼 언론의 접근도 막았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매체 <모스크바타임스>는 반란으로 프리고진이 일종의 "진실 추구자"의 이미지를 갖게 돼 죽은 뒤에도 지속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익명의 러시아군 장교는 매체에 "러시아군과 시민들 사이에서 진실 추구자 이미지는 상당히 인기가 있다"며 "내 동료 군인 대부분은 그(프리고진)가 죽었다는 것조차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매체는 다만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 선임 연구원이 프리고진의 죽음은 "친군 세력이라도 푸틴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며 프리고진의 남겨진 지지자들이 정치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정부가 프리고진이 탑승한 항공기 추락에 대한 공동 조사를 수락하지 않음에 따라 사건의 진실이 묻힐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로이터> 통신은 29일 브라질의 항공사고 예방·조사센터(CENIPA)가 해당 사고에 대한 공동 조사를 요청했지만 러시아 당국이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추락한 프리고진의 전용기 '엠브라에르 레거시 600' 항공기는 브라질 제조사 엠브라에르가 만든 기체다.
통신은 러시아 쪽이 브라질 요청을 받아들일 의무는 없지만 미국 등 서방이 추락 배후에 크렘린궁이 있다고 의심하는 가운데 조사 거부로 의혹이 커질 수 밖에 없다고 짚었다.
이 가운데 <타스>는 30일 새벽 러시아 북서부 프스코프 지역 공항이 무인기 공격을 받아 군 수송기 4대가 파손됐다고 보도했다. 프스코프는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700km 가량 떨어져 있다. 매체는 민군 공용인 이 공항에서 이날 민간 항공편 운행이 중단됐다고 덧붙였다.
<AP> 통신은 러시아 국방부를 인용해 이날 프스코프 뿐 아니라 오룔, 브랸스크, 랴잔, 칼루가, 모스크바 지역 등에서도 무인기가 격추됐다고 전했다. 이로 인해 모스크바 지역 3곳 공항의 입출국편 비행이 중지됐다.
통신은 러시아가 점령한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에서도 무인기가 격추됐다고 현지 관리를 인용해 설명했다. 이날 러시아 영토에 대한 무인기 공격은 전쟁 발발 이후 최대 수준이다. 관련해 우크라이나 쪽은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최근 몇 달 간 러시아에 대한 무인기 공격이 증가하는 데 대해 독일 도이체벨레(DW) 방송은 무인기가 러시아군에 실질적 타격을 입힐 순 없지만 모스크바 등 영공 폐쇄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짚었다. 이스라엘 군사 전문가 이갈 레빈은 방송에 모스크바에 대한 무인기 공격은 "수백 만의 사람들을 죽이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다. 목표는 모스크바 영공 및 물류 창구를 막아 공항과 운송 체계를 마비시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방송은 따라서 무인기 공격이 계속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며 규모가 더 커질 땐 모스크바 공항의 영구 폐쇄를 이끌어 낼 가능성도 있다고 이스라엘 군사 전문가 세르게이 미그달을 인용해 덧붙였다.
<로이터>는 30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가 러시아의 대규모 미사일 및 무인기 공격을 받아 최소 2명이 죽고 2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한편 <로이터>는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이 29일 최고위급을 포함한 러시아와 중국 간 양자 접촉 일정이 조율되고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구체적 일정은 제시되지 않았다.
이날 앞서 <블룸버그> 통신은 이 사안에 정통한 3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푸틴 대통령이 오는 10월 일대일로 포럼 참석차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포럼에서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만난다면 지난 3월 시 주석의 러시아 국빈 방문 뒤 7달 만의 재회가 된다.
방문 성사 땐 지난 3월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우크라이나 아동 불법 이주 혐의 체포영장 발부 뒤 푸틴 대통령의 첫 국외 일정이 될 전망이다. 중국은 ICC 회원국이 아니다. ICC 회원국은 체포영장 집행에 협조할 의무를 갖고 있어 영장 발부 뒤 푸틴 대통령의 외국 방문이 사실상 제한됐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주 ICC 회원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도 불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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