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하던 해병대수사단이 임성근 해병1사단장의 혐의 적시와 관련해 해군 검찰단의 법리검토를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사단장에 대한 혐의 적용이 '박정훈 전 수사단장의 독단적이고 잘못된 판단'인 듯 강조해온 국방부의 입장과 대치되는 정황이다. 수사 외압 의혹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군인권센터는 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군 검찰단도 해병1사단장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가 적용 가능하다고 판단했다는 제보를 입수했다"라며 "국방부는 시종일관 죄 없는 사단장에게 박정훈 전 수사단장이 죄를 덮어씌우려 했다는 식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센터는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로부터 해군 검찰단의 사단장 혐의 관련 법리검토 내용을 제보받아 이를 요약해 공개했다. 해당 법리검토는 박 대령이 사단장 혐의가 적시된 수사자료를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한 날인 지난 8월 2일 박 대령에게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지만, 센터 측은 "이 같은 법리검토 협력은 이전부터 이어져온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검찰단은 "사단장에게는 '부대관리훈령' 제187조에 따라 일반적인 사고 예방책임이 있는데, (사고 당시 사단장은) 현장에 방문하거나 보고를 받음으로써 구체적인 위험도 인지했던 상황"이라며 "그럼에도 안전장비를 지급하지 않았고 입수지휘 압력을 계속해서 넣었고, 입수가 이루어진 상황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7월 사고 당시 대민지원 대응을 위해 조성된 해병대 카카오톡 대화방에선 "바둑판식으로 무릎 아래까지 (물로) 들어가서 찔러보면서 정성껏 탐색할 것"이라는 사단장 지시가 전파된 바 있다. 하급 지휘관이 불어난 물의 위험성을 건의했음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정황도 해당 대화방에서 확인됐다. (관련기사 ☞ 故 채 상병, 사단장에게 '물 들어가라' 지시받았다) 검찰단은 이 같은 증거 사항을 확인하고 법리검토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법리검토 내용에 따르면 사단장은 해병대수사단 조사에서 '사고가 날 줄은 몰랐다'는 취지의 해명을 한 것으로 확인된다. 검찰단은 "사고가 날 줄 몰랐다는 (사단장의) 해명은 말이 되지 않는다"라며 "여름철 불어난 강물에 들어가면 위험하다는 것은 각종 매체, 안전 교육을 통해 어려서부터 익히 들어온 바이기 때문에 별다른 지침이 없어도 상식선에서 알 수 있는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군에서는 장병들의 출타 시 출타자에게 '물놀이 시 익사 위험'에 대해 교육을 하게 되어 있는데, 검찰단은 '비가 올 때 물에 들어가지 말라', '급류에 들어가지 말라' 등 군 내 교육사항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위험한 작업을 하는 곳에 가는 인원들에게 그 지점을 강조하지 않은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검찰단은 '산업 현장에서 대표이사의 구체적 책임을 인정한 사례'로 2건의 민간 판례를 설시하며 사단장 혐의 적용의 타당성을 증명하기도 했다. 검찰단은 구체적으로는 △철도보수 작업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 철도공사 본부장의 업무상과실치사 책임을 인정한 판례 △대표이사가 현장 방문 시 위험을 인지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점을 과실이라 판단한 판례 등을 들어 "(안전사고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이 하급심을 중심으로 인정이 되고 있는 추세"라고 수사단 측에 조언했다.
이 같은 민간 판례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제15조에 따라 '안전보건관리' 책임에 대한 사업주의 추상적 책임과 구체적 책임을 따져보는 경우인데, 검찰단은 해병1사단장의 경우 부대관리훈령에 따른 추상적 책임과, 현장 방문 등 정황에 따른 구체적 책임이 모두 확인된다고 판단했다.
이종섭 국방부장관은 지난 21일 국회 국방위에서 "국방부 조사본부 재검토 결과, 해병대수사단이 8명 모두를 업무상과실치사 범죄혐의자로 판단한 조사 결과는 과도한 것으로 판단되었다"라며 "잘못을 엄중히 처벌해야 하지만, 죄 없는 사람을 범죄인으로 만들어서도 안 되는 것이 장관의 책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해병대수사단의 법리검토가 충분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국방부 조사본부가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결과에 나열되어 있는 대상자의 과실과 고 채 상병의 사망 간에 직접적이고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 법령에 따라서 재검토"(8월 9일)하겠다는 것이 국방부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날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내용을 보면, 해병대수사단은 이미 별개 군사법 기관인 해군 검찰단과의 협력을 통해 다각적인 법리검토를 수행하고 있었던 셈이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군 수사단과 검찰단 간의 이 같은 법리검토 협력은 특별한 절차도 아닌 통상적인 행위"라며 "결국 박 전 수사단장이 작성한 '사단장 혐의가 적시된' 수사결과는 박 전 수사단장의 개인적이거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군사법 시스템에 의해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고 완결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특히 "검토가 이루어진 8월 2일, 이 시기는 국방부가 해병대수사단에 사단장의 협의를 적시하지 말고 경찰에 이첩하라던가, 이첩을 보류하라는 등의 명시적 수사 외압을 행사하고 있을 때"라며 "그러한 상황에서 군검찰 역시 법리상 임성근 사단장에게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하고 법리검토를 해줬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로써 해병대수사단의 수사가 문제가 있었다는 국방부의 주장과 달리, 군 내 수사 관계자들은 임 사단장에게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라며 "임 사단장에 대한 혐의 적용은 박정훈 대령 개인의 판단이 아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단장 혐의 적시'가 군사법기관들이 일반적으로 공감하고 있는 판단이었다면, 최근 제기되고 있는 '대통령 수사 외압설'에 더욱 힘이 실릴 수 있다.
지난 7일 <아시아투데이>, 27일 MBC 등을 통해 제기된 '대통령 개입설'에 따르면 채 상병 수사 언론브리핑이 예정돼 있었던 7월 31일 오전 대통령 주재 회의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수사결과에 사단장 혐의를 적시한 일을 두고 국방부장관을 질책했다. 센터 측은 해당 의혹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라며 "국방부가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꾼 데에는 그보다 윗선의 개입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관련기사 ☞ 故채 상병 수사 '외압' 마지막 퍼즐은 '尹 지시'?)
김 사무국장은 "이번 제보에 따르면 (박 대령이) 개인적인 판단으로 사단장의 죄를 물으려 한 것이 아니고 '시스템'에 의해 법적 검토가 이뤄진 결과가 사단장의 혐의 인정이었던 것이지 않나" 물으며 "그런데 그 수사결과가 손바닥 뒤집 듯이 갑자기 뒤바뀐 것이다. 외압이 있다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군사법적으로 결정된 '사단장 혐의'에 대해서는 결국 사건 이첩 후 법조인들과 법원이 판단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 지금은 법과 관계없는 사람들이 중간에서 '사단장은 죄가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라며 "죄를 물어야 한다는 판단은 구체적인 반면, 죄가 없다는 사람들은 ‘억울하다’는 식의 추상적 얘기만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센터 측은 "오늘 제보 내용에 대한 국방부의 공식 답변이 필요하다"라며 국방부 측 입장을 촉구했다.
임 소장은 제보의 신빙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제보하신 분이 익명을 요구했기 때문에 (제보자 신상을) 밝힐 수는 없지만, 내부적으로는 신빙성이 매우 높은 제보라고 판단하고 있다"라며 "이에 대한 해명은 국방부가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군 측은 센터 측 주장을 부정하고 나섰다. 장도영 해군 서울공보팀장은 이날 국방부 정례 브리핑에서 "조사기록 인계 전날인 8월 1일 오후 해병대 수사단이 해군 군검사에게 인계서에 대한 법적 검토를 요청했다"라며 "(군검사는) 해군 검찰에 관할권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법적 검토가 제한된다고 명확히 설명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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