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가 <MBC의 흑역사>란 책을 펴내 국민의힘이 환영 논평을 내고 <조선일보>가 사회면에서 비중 있게 다뤘다는 소식을 한참 뒤에 들었다. 요즘 뉴스를 잘 챙겨 읽지 않는데다 집에서 구독하는 <한겨레>에는 그 기사가 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관련 기사를 읽어보니 국민의힘과 조선일보가 반색한 이유를 알만했다.
강준만 교수의 저술을 '칭찬'하는 기사가 조선일보 실린 것은 그 자체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한때 '안티조선 운동'의 투사였던 그가 세월의 풍화와 함께 이제는 '조선일보의 사랑을 받는 지식인'이 됐다. 조선일보는 지난 2021년 2월에 '문 정부에 날 세운 '진보 원로' 강준만 교수, 이달 말 정년퇴임'이라는 기사를 내보내는 등 이미 오래전부터 강 교수에게 따스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그가 쓰는 글과 책들이 조선일보의 구미에 맞기 때문일 것이다.
서점에 들러 <MBC의 흑역사>를 찾아 자리에 선 채로 읽었다. 신문 기사에서 인용한 대목 등을 중심으로 30분 남짓 읽으니 내용을 얼추 파악할 수 있었다. 굳이 돈을 주고 살만한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서점을 나와 한참 걷다가 마음이 바뀌어 다시 뒤돌아가 책을 샀다.
나는 오랫동안 강 교수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는 내가 몸담고 일하던 <한겨레>의 대표적인 외부 필자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의 글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때가 많아졌다. 뭐라고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불편함이 느껴졌다. 그러던 차에 이번 책을 접하면서 그 불편한 심정의 실체가 조금 분명해졌다. 나는 MBC를 변호할 생각도 능력도 없고, 그럴 위치에 있지도 않다. 다만 방송 문제를 포함한 강 교수의 전반적 인식, 글쓰기 태도를 한번 짚고 넘어가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래서 책을 샀다.
'방송사 암흑기' 건너뛴 역사 서술
강 교수의 이번 책 구성은 연도별로 나누어 기술한 방식인데 '2016~2019년'이 첫 챕터다. 책을 펴들자마자 실망한 첫 번째 이유다. 책 이름에 '역사'를 내걸었다면 고대사, 중세사는 그만두고라도 근현대사는 충분히 다뤄야 한다. 2008~2016년은 MBC는 물론 전체 방송계에 매우 중요한 현대사 기간이다. 그런데 강 교수는 그 기간을 '선사시대'로 거의 통째로 생략했다. 박근혜 정권 말기 <TV조선> <JTBC> 등 종편 채널의 활약상을 잠깐 언급한 뒤 문재인 정권 출범 뒤 MBC에서 일어난 '적폐 청산'에 대한 비난부터 시작했다. MBC 입장에서 보면 한국사의 일제강점기는 건너뛰고 곧바로 '반민특위'부터 서술한 격이라고나 할까.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인 2008~2016년은 종합편성 채널 출범을 위한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계법 강행통과, 검찰·국세청을 앞세운 KBS 정연주 사장과 MBC의 엄기영 사장 축출, YTN과 MBC 기자 해직 사태 등이 이어진 방송사의 '암흑기'였다. 그 당시 강 교수는 <한겨레>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연재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 출범 뒤인 2014년 5월에 '이젠 방송을 놓아주자'는 칼럼을 하나 쓴 것 정도가 고작이었다. 내용도 당시 방송계가 처한 처참한 상황에 비하면 맥빠진 원론 수준이었다. 인식의 기본적인 출발점도 "공정성을 둘러싼 지루한 정략 게임"이 계속되고 있다는 식의 철저한 양비론이었다.
이 시기 눈에 띄는 칼럼 하나는 2009년 3월에 쓴 '1억1400만 원의 정치학'이라는 글이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미디어 관계법안을 두고 '정권의 언론장악용'이라거나 '정권과 재벌·보수신문의 구린내 나는 유착'이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서민 대중의 관심은 오히려 'MBC 직원들의 실질적 평균 연봉이 1억1400만 원에 달한다'는 주장에 더 쏠리고 있다. 비극의 씨앗은 노무현 정권 시절에 뿌려졌다. 그토록 말 많은 대통령이었건만, 노 전 대통령은 단 한 번도 공기업의 '풍요'와 '도덕적 해이'에 대해 쓴소리를 한 적이 없다. 서민 대중은 미디어법 찬반 양쪽 모두를 불신하고 있다."
이 글에는 미디어 관계법에 대한 자신의 주장은 전혀 없다. 미디어법과는 별로 관계없는 일반 공기업을 끌어들여 '공기업의 풍요와 도덕적 해이'를 비난했다. 이 칼럼은 당시 한나라당 진성호 의원이 주장하던 MBC 직원 급여 문제를 '광고'하면서 '서민 대중의 정서'를 핑계로 미디어법 반대 주장에 사실상 재를 뿌린 글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이 칼럼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한 기억이 난다. '급여 문제를 따지자면 같은 언론업계에 종사하면서도 방송사의 절반 수준밖에 못 받는 한겨레 사람들이 더 부럽고 샘이 난다. 하지만 종편 출범은 그런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강 교수가 참 이상하게 글을 썼다.' 어쨌든 강 교수는 이 칼럼 앞이든 뒤든 종편 문제나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계법 날치기 통과 등 '본안'에 대해서는 한겨레 지면을 통해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다.
그가 끝까지 침묵으로 일관했으면 그나마 낫다. 그런데 이번 책에서 강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의 비선 실세 국정농단 사건을 JTBC 등이 보도한 것 등을 예로 들면서 '종편에 대한 우려는 기우였다'는 식의 논리를 펼쳤다. 자신이 종편 출범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마치 그런 미래를 예측했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도 5·18 광주항쟁 북한군 침투설 등 종편의 막말,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편파왜곡 방송, 미흡한 콘텐츠 투자, 보도의 과다 편성 등 숱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눈감았다. 애초 종편 출연을 거부했다가 철회한 민주당 쪽 사람들도 철저히 조롱했는데, 안티조선 운동의 기수였다가 지금은 조선일보와 밀월 관계에 있는 그가 이런 비판을 할 처지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보수정권의 방송장악에는 늘 침묵
방송 문제에 관한 최근 몇 년간 강 교수의 글쓰기 패턴은 명확하다. 방송사에 대한 보수정권의 폭력적 관여에는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점이다. 권력이 우격다짐으로 경영진을 몰아내도, 언론사상 30년만에 처음으로 대규모 기자 해직 사태가 일어나도, 입맛에 맞지 않는 방송 출연자들이 프로그램에서 줄줄이 쫓겨나도, "큰집 가서 조인트 까졌다"는 방문진 이사장 증언이 나와도, 해직된 이용마 기자가 암에 걸려 투병 끝에 숨져도, 강 교수는 아무런 분노도, 안타까움도, 연민도 표시하지 않았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2008년 6월에 언론학자 124명이 발표한 '언론의 공공성 수호를 위한 언론학자 선언'에 아름을 올린 것 정도가 아닐까 한다.)
누가 글을 쓰지 않는다고 종주먹을 들이미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그 사안에 별로 관심도 없고 할 말도 없다는데 어쩔 것인가. 하지만 명색이 글 쓰는 사람이라면 권력의 부조리한 폭압에 대한 침묵은 그 자체가 편향이다. 게다가 강 교수의 본업은 언론학자 아닌가.
강 교수는 이번 책에서 자신을 "진정 MBC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묘사했지만, 실제 '팩트 체크'를 해보면 사랑의 흔적은 엿볼 수 없다. 방송 수난 시대에는 '냉담'했고, 문재인 정권 들어서는 곧바로 '분노'로 바뀌었다. 그 분노의 결실이 바로 이번 책이다.
이제 이 땅에는 '권력의 공영방송 장악 시즌2' 막이 본격적으로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녀 학폭 논란 등 온갖 부적격 사유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송 장악 기술자'로 불리는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을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에 지명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남영진 KBS 이사장,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권태선 이사장과 김기중 이사에 대한 '묻지마 해임' 절차를 시작했다. 이에 앞서 KBS 수신료 분리징수 환원 조처, MBC 기자의 대통령 해외순방 전용기 탑승 배제 등 공영방송에 대한 권력의 노골적인 관여가 이어지고 있다. KBS 수신료 통합 징수 폐지도 KBS가 국가수사본부장에 지명된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폭 문제를 처음 단독보도해 권력의 심기를 건드린 게 발단이 됐다고 한다. 그런데도 강 교수는 여전히 그런 문제는 오불관언이다. 강 교수의 글쓰기 태도에 대해 첫 번째로 주목할 대목이다.
편향적인 '가위와 풀의 역사'
강 교수의 책에 MBC의 편향 보도라고 열거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이것들을 모두 검토하기는 힘드니 모든 사림에게 친숙한 사례 몇 가지만 대표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보도'다. 강 교수는 제목에 "범죄적 언론 사기극" 등의 표현까지 끌어다 쓰며 MBC의 대통령 비속어 발언 보도가 언론윤리에 어긋났다고 융단폭격을 가했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동원된 것은 나경원, 권성동, 윤상현, 하태경 등 국민의힘 의원들의 비난 발언, 신동흔(조선일보), 오병상(중앙일보), 전영기(시사저널) 등 보수언론 기자들의 칼럼이었다.
역사에 대한 약간 냉소적 표현으로 '가위와 풀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 역사 기술이란 결국 무수한 사료 중에서 필요한 내용을 뽑아(가위), 그 사실들을 시간과 공간, 인과관계에 따라 분류·배치(풀)하는 작업이라는 뜻이다. 강 교수는 '비속어 보도' 문제에 대해 국민의힘 및 보수신문 논평들을 가위로 잘라 풀로 덕지덕지 붙여서 '역사'를 만들고 여기에 '흑역사'란 명찰을 붙였다.
역사를 제대로 쓰려면 다양한 사료를 찾아 분석·고찰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강 교수가 한겨레, 경향신문 등을 외면한 것은 그렇다 치자. 그러나 KBS SBS YTN JTBC OBS 등 5개 방송사 기자협회의 공동성명, 한국영상기자협회 성명 등 현장 기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것은 결코 지나칠 수 없다.
"대통령 순방을 동행 취재한 방송사들은 MBC가 영상물을 올리기 전부터 각 언론사 스스로 이미 대통령 발언의 문제점을 파악했다. 각 방송사들도 MBC와 크게 시차를 달리하지 않고 잇따라 영상물을 유통했다." "이 영상물은 MBC 단독 취재가 아니기 때문에 영상물이 유통된 선후 시점을 따지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이것이 바로 이 사안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현장 기자들의 목소리다. 사료적 가치로 치면 정치권 성명이나 신문 칼럼 정도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귀중하다. 그런데 강 교수는 이런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했다. 이것이 '흑역사'를 쓰기 위한 강 교수의 역사 서술 방식이다.
조선일보에 대한 '오버 신뢰'
사실 강 교수의 글은 '스크랩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용에 인용의 연속이다. 가위와 풀은 그의 글쓰기 최대 도구다. 이 책도 마찬가지여서 뒷부분 색인을 보면 인용된 언론자료가 즐비하다. 그런데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펜앤드마이크, 뉴데일리 등 온통 보수언론 일색이다. 한겨레나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민들레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가위질 자체가 한쪽에 크게 치우쳐 있다.
강준만 교수는 <한겨레>에 가장 오랫동안 글을 써온 외부 필자 중의 하나다. 그런데 그는 정작 자기가 기고하는 신문의 사설과 칼럼은 과소평가하는 듯하다.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한 한겨레 사설은 두어 개 정도였디. 그나마 하나는 '종편 개국, 언론과 민주주의의 대재앙 시작이다'(2011년 12월1일)라는 사설인데, 글의 내용을 높게 평가해서 인용한 게 아니었다. 그 사설을 "독설"이라고 표현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종편의 '최순실 게이트' 보도 활약상을 강조하면서 애초의 전망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하는 조롱 섞인 인용이었다. 칼럼은 '유레카' 딱 한편이었는데, 그나마 내용은 없이 제목만 나와 있어 인용이라고 할 수도 없다. 반면에 조선일보 사설과 칼럼은 색인 한 페이지에 최소한 3~4개씩 나온다. <월간조선>까지 합하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난다.
"왜곡과 편견, 냉전적 대결 의식을 부추기는 반통일적 언론, 이념을 내세운 메카시즘적 발상, 청산되어야 할 역사를 미화하는 파시즘 언론…." 애초 강 교수 등 안티조선 운동 주창자들이 내건 조선일보의 문제점이었다. 이런 조선일보의 보도 태도는 변했는가. 최근만 해도 건설노동자 고 양회동씨의 분신 사망 당시 현장 동료가 분신을 막지 않았다는 기사 등 왜곡과 부풀리기 DNA는 여전하다. 그런데도 강준만 교수의 눈에는 조선일보야말로 가장 믿을만한 신문이요 '정론직필'을 펴는 신문으로 보이는 듯하다. 이것이 한때 "안티조선 운동의 사상적 뿌리"라는 말까지 들었던 강 교수의 현재 모습이다.
강준만 교수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이 했던 '안티조선 운동'을 스스로 부정해왔다. "지나치게 독선적이고 주관적인 비판을 남발한 점에 후회의 감정을 느낀다" "언론 개혁에 집착한 나머지 저지른 무리수였음을 인정하며 앞으론 절대 '오버'하지 않겠다"는 등의 '반성'을 했다. 강 교수가 요즘 자주 사용하는 어법으로 하면 '조선일보를 과도하게 악마화'한 것에 반성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제는 조선일보 대신 MBC를 악마화하는 데 올인하고 있다. 무엇보다 역설적인 점은 조선일보에 대한 '오버 신뢰'가 MBC 악마화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이다. 독선과 주관, 오버는 방향만 달리할 뿐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권력의 주먹질이 희화화 대상인가
''MBC 보호'를 위해 발버둥친 윤석열'. 강 교수 책에 나오는 소제목 중 하나다. 아니, 윤석열 대통령이 MBC 보호를 위해 발버둥쳤다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런데 내용을 읽어보니 쓴웃음이 나온다. "윤석열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연출했다. 그래서 윤석열에 대한 국민적 분노 덕분에 MBC는 마땅히 맞아야 할 매마저 피해갈 수 있었다. 윤석열 정권은 MBC를 '국기 문란 보도'의 주범으로 몰아가는 방식으로 대응했지만, 실은 MBC를 보호하기 위해 발버둥친 격이다."
윤석열 정권은 권력 행사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험악하다. 특히 검찰을 앞세운 공격은 집요하고도 잔인하다. 대통령 비속어 보도 이후 MBC에 대한 공격도 그렇다. 국민의힘의 고발 조처, MBC 기자의 대통령 해외순방 전용기 탑승 배제, MBC 기자 자택 압수수색, MBC 보도국에 대한 압수수색 시도 등 총공세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강 교수는 간단히 "MBC 보호를 위해 발버둥친 격" 정도로 격하했다. 국경없는기자회(RSF), 국제기자연맹(IFJ) 등 국제 언론인단체들까지 나서서 비판한 윤석열 정권의 언론자유 침해 행위를 "MBC 보호를 위한 발버둥"으로 희화화하는 것은 과연 온당한가? 이 대목에 이르면 강준만 교수의 글을 공들여 논평할 가치가 있는가 하는 회의가 밀려온다.
강준만 교수는 지난 2020년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 책을 내는 등 '권력' 문제에 깊이 천착해 왔다. '권력자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파괴하는가?'라는 부제를 단 이 책에서 그는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 권력 남용을 신랄히 비판했다. 그런데 정작 윤석열 정권의 벌거벗은 권력 행사에 대해서는 '애교'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고작해야 "스타일" "성격" "엉뚱한 뚝심"이 문제라고 말할 뿐이다. 하지만 그 빗나간 뚝심에서 나오는 권력의 오남용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는 무관심하다. 정권의 권력 행사에 대한 강 교수의 이중 잣대와 '비대칭적 접근'은 여기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송건호언론상'도 편향적인가?
강 교수는 MBC 탐사 프로그램인 <스트레이트>와 <PD수첩>이 "김건희 때리기"를 했다고 비난했다. '때리기 보도'란 언론사가 어떤 목적이나 사적인 감정 때문에 근거도 별로 없는 내용을 부풀려 특정인에게 공격을 가하는 보도를 뜻한다. 강 교수가 '김건희 때리기' 보도라고 규정한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 스트레이트가 두 차례, PD수첩이 한 차례 등 MBC의 대통령 배우자 의혹 보도 빈도가 너무 잦다는 것이다. 둘째는 PD수첩이 대역을 사용하면서 '재연'이라는 표기를 하지 않는 '조작'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보도) 빈도가 너무 잦고 '조작'이 가미된 방송"이기 때문에 "정당한 의혹제기"가 아니라 "김건희 때리기"에 불과하다고 결론지었다.
잘 알다시피 대통령 배우자인 '그분'을 둘러싼 논란과 의혹은 논문 문제부터 시작해 최근의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의혹, 리투아니아 명품 쇼핑에 이르기까지 손가락 열 개로도 모자랄 지경이다. 국정 전반에 걸쳐 어른거리는 그의 그림자를 생각하면 세 차례의 의혹 제기 보도가 그처럼 욕을 먹을 만큼 과한 것인가?
'재연'이라는 표기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MBC는 공식 사과했다. 방송 제작 과정에서 세심한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은 엄히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도적 조작'으로 몰아가는 것은 과잉으로 보인다. <스트레이트>에서 방영한 논문 의혹의 경우, 해당 논문들 자체가 수준 미달에 표절투성이고, 학문적 양심을 내팽개친 대학 당국의 뻔뻔함이 누가 봐도 확연해 굳이 보도에 조미료를 칠 필요도 없이 날 것 그대로도 싱싱하다.
"김건희를 '암묵적 금기어'로 만들어 성역시하던 관행을 계속 유지하겠다면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건가?" 강 교수가 최근 한 신문 칼럼에서 던진 질문이다. 명품 쇼핑 등 계속되는 논란이 강 교수가 보기에도 너무 민망해서일까? 어쨌든 금기와 성역을 깨는 역할은 결국 언론의 몫이다. 그리고 금기와 성역 깨기의 횟수가 너무 많다고 딴죽을 거는 것은 온당치 않다.
<스트레이트>는 지난해 12월 언론계의 영원한 스승인 고 청암 송건호 선생을 기려 제정된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했다. 시점상으로 보면 '김건희 때리기' 보도(지난해 9월18일과 9월25일)가 나온 뒤에 수상이 결정됐으니 그 보도의 공과도 충분히 고려됐을 것이다. 송건호언론상 심사위원회는 선정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그동안 190회 이상의 방송을 통해 정치 권력, 사법, 자본, 언론, 검찰, 종교, 환경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적 병폐와 부조리를 꿋꿋이 고발하며 공신력을 쌓고 있다."
강 교수는 지난 2005년 송건호언론상 제4회 수상자이기도 하다. 강 교수가 <스트레이트> 등을 편파로 비판하려면 최소한 <스트레이트>가 송건호언론상을 받은 내용쯤은 언급하면서 비판을 하든 폭격을 가하든 해야 옳은 것 아닌가? 혹시 강 교수의 눈에는 이제 송건호언론상 심사위원들도 모두 친민주당 사람들로 보이는 것일까? 만약 송건호 선생이 살아계신다면 이 상황에서 언론의 권력 감시 보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까. 결코 강 교수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권력의 방송 장악 응원하는 '어용 지식인'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는 지명 첫날부터 "공산당의 신문·방송을 언론이라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등의 말 폭탄을 터뜨렸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무책임하게 가짜 뉴스를 퍼 나른다거나, 특정 진영의 정파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 논리나 주장을 무책임하게 전달하는 것은 언론의 본 영역에서 이탈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의미심장한' 말도 했다.
이동관 후보자의 이 발언은 강준만 교수의 책 내용과 정확히 대구를 이룬다. 강 교수는 MBC를 '특정 진영의 정파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 논리나 주장을 무책임하게 전달하는 언론'으로 정확히 성격 규정을 해놓았다. 이제 이동관 후보자는 '책임을 묻는' 행동에 돌입할 것이다. <MBC의 흑역사>는 윤석열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을 뒷받침해주는 든든한 바이블이다.
이 후보자 지명이 발표된 뒤 한국기자협회와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등 15개 언론·시민단체가 "(이 후보자 지명은) 언론, 방송을 손아귀에 넣겠다는 독재 선언"이라고 규정하고 지명 철회를 요구했다. 앞서 방송기자연합회, 한국PD연합회, 한국언론정보학회 등 40여개 단체가 참여하는 언론개혁시민연대도 이 후보자의 방송위원장 지명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한국기자협회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현직 기자 10명 중 8명이 이 후보자를 '이명박 정부에서 언론탄압에 앞장선 인물'로 보고 방송위원장 지명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온다. 모두 '사료'로서 귀중한 가치가 있는 당대 언론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다. 그러나 강 교수는 이런 사료는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윤석열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시즌2'의 플롯과 스토리 전개는 시즌1과 너무 판박이여서 식상할 정도다. '이사장 및 일부 이사 축출→입맛에 맞는 새 이사진 임명→대표이사 등 경영진 교체→보도국 물갈이→권력에 순응하는 보도 체계 마련' 등의 순서를 착착 진행할 것이다. 이런 권력의 폭압에 맞선 공영방송 종사자들의 거센 항의와 파업이 뒤따르고 해직 사태가 다시 되풀이될 수도 있다. 이런 비극에 대해 강 교수는 뭐라 말할 것인가. "편파방송의 인과응보일 뿐"이라고 냉담하게 잘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강 교수의 이번 책은 발간 시점도 절묘하다. 자신의 책이 이 중차대한 시기에 정권의 방송 장악 지원군 역할을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면 그의 말대로 "천진난만"이고, 미리 예상하고 썼다면 '교활'하다. 개인적 견해를 굳이 말하자면 후자 쪽이다.
'어용'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권력에 영합해 줏대 없이 행동하는 것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특정 집단에서 독립된 척하면서도 사실은 우두머리의 손발 노릇을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라는 설명도 있다. 이 말에 강 교수를 대입해보자. 그는 '특정 집단에서 독립'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보수 정권의 방송 정책을 응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는 침묵으로. 그리고 이제는 행동으로. 현 정권의 방송 장악 정책에 국한해서 볼 때 그를 '어용 지식인'이라고 불러도 지나침이 없어 보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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