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노인 폄하' 논란 나흘 만에 공식 사과를 했다. 그러나 일반 여론은 물론 당 내에서도 사퇴 요구가 나오는 등 김 위원장과 혁신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해 있어 당분간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잇단 설화로 혁신위가 혁신 동력을 스스로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지난 일요일(7월 30일) 청년좌담회에서의 제 발언에 대한 논란과 비판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공식 사과했다.
김 위원장은 "어르신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점에 대해선 더욱 정중히 사과드린다"며 "어르신의 헌신과 경륜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씀을 새겨듣겠다. 그런 생각에 한 치의 차이도 없음을 말씀드린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 이런 상황을 일으키지 않도록 더욱 신중하게 발언할 것이며, 지난 며칠 저를 질책해준 분들께 사과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사퇴 요구에 대해선 "혁신 의지는 그대로 간다"고 답변하며 선을 그었다.
김 위원장은 회견에 이어 이날 오전 서울시 용산구 대한노인회 사무실을 방문해 사과를 했다. 면담에 참석한 대한노인회 임원들은 김 위원장 호통을 치며 사퇴를 요구했다.
전날 김 위원장과 이재명 대표의 사과를 촉구했던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은 김 위원장을 향해 "혁신위원장이 당에 도움이 되어야지, 노인이 1000만이나 되는 사람이 유권자인데 노인을 폄하하는 발언을 하면 그 당에 도움이 되느냐, 당을 망치는 위원회냐"면서 분노를 표출했다.
최창환 부회장은 "어제 밤에 잠이 안 왔다"며 "이 자리를 내려놓으실 생각 없으시냐"고 직접적으로 사퇴 의사를 물었다. 김 위원장은 그러나 "그건 다른 문제"라고 대답했다.
이에 최 부회장은 거듭 "개인 문제가 아니다. 그냥 내려놓으시라고 자꾸 이야기하는 것이다. 여기 노인회에서 (직을) 내려놓으시면 960만 노인의 가슴이 시원하지 않겠냐"며 사퇴를 종용했다.
김 위원장은 "제가 많이 어설프고 서툴러서 마음 아프게 해드린 것에 대해 죄송스럽다고 (기자회견에서) 말씀을 드렸다"면서 남편과 사별하고 시어른을 모신 이야기 등 자신의 개인사를 전하며 "제 인생 어깨도 상당히 무겁다"고 했다.
약 40분간 면담을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난 김 위원장은 "노인 분들 마음을 아프게 한 점 죄송스럽고 사죄드린다. 다시는 이런 가벼운 언사를 하지 않도록 조심하겠다"고 재차 고개를 숙였다. '계속 설화가 나오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신경을 쓸 것이냐'는 질문에는 "말을 삼가겠다"고 했다.
대한노인회 임원들로부터 사퇴 요구가 나왔던 데 대해서는 동석한 황희 혁신위원이 "어르신들은 당연히 화나시고 그러니까 사퇴하라고 얘기하시는 것"이라며 "오늘 말씀(드리는 자리를) 갖고, 반성하고 사죄드리러 왔으니까 받고 가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이 논란을 일으킨 지 나흘 만에 결국 공식 사과를 하면서 사태 자체는 일단락됐지만, 논란은 쉬이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당내에서 비판 발언이 쏟아지고 있는 데다 당 원로들까지 나서 강하게 책임을 묻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공개적으로 김 위원장의 사퇴와 혁신위 해체를 강하게 주장해 주목받았다.
유 전 사무총장은 이날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사퇴 안 하면 혁신위가 권위가 서겠나"라며 "혁신위 해체하는 게…(맞다). (김 위원장은) '죄송합니다' 하고 그냥 사퇴하고. 그렇다고 지금 혁신위원장을 또 누구를 모셔오겠나"고 했다.
혁신위가 당 의원들에게 친전을 보내 혁신안 관련 여론조사를 진행하는 데 대해 유 전 사무총장은 "철없는 사람들이 그따위 짓 자꾸 해 봐야 뭐 하나. 철이나 좀 들라고 하라"며 "철도 없는 사람이 뭔 놈의 설문을 돌리고 계속 더 하려고 그러나"고 했다. 전날 강원도민과의 대화 행사에서 김 위원장이 "교수라 철없이 지내서 정치적 언어를 잘 몰랐다"고 해명한 것을 꼬집은 것으로 보인다.
유 전 사무총장은 "어차피 비대위로 가야 한다. 총선 앞두고"라며 "지도부가 그대로 있는 속에서 혁신위 만들어봐야 지도부 눈치 보는 혁신위가 무슨 혁신위가 되겠나.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거기 위원 중에 하나도 '우리는 전당대회에서 합법적으로 선출된 지도부 체제를 인정하는 한계 속에서 한다'고 얘기를 했었다. 그런 혁신위 만들면 뭐 하나"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원래 태생이 그랬고 그러고 저렇게 설화가 생겼으니 좀 빨리 해체하는 게…(좋다)"며 "개딸들 홍위병 노릇 할 거 아닌 바에야 그냥 지금 깨끗이 여기서 '죄송합니다' 하고 혁신위원장 내려놓는 게 민주당을 돕는 길 아니겠나"고도 했다.
김 위원장이 "윤석열 밑에서 임기를 마쳐 치욕스럽다"고 발언한 데 대해서도 "그것도 그야말로 좀 철이 없더라"면서 "그거 임기 다 채워놓고는 뭘 또 그런 소리를 뭐하러 하나"고 지적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혁신위 논란을 이재명 대표가 나서서 수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전 원장은 이날 문화방송(MBC) 라디오에서 "이 대표가 강하게 나가야 한다"며 "(김 위원장은)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 언어에 좀 서툴다. 본인도 그렇게 인정했던데, 이건 과감하게 사과시키고 책임을 물어야 된다"고 지적했다.
박 전 원장은 "김 위원장의 진의는 그게(노인 폄하가) 아닌데 어떻게 됐든 정치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대로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국민 반응이 이건 아니지 않나"라며 "만약 김 위원장이 안 된다고 하면 이 대표가 딱 불러서, 또는 지시를 해서 '사과해라' 이렇게 나가줘야 끊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가 흔들흔들하고 있다. 흔들리면 안 된다. 강하게 나가라"고 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7월 30일날 (여명 비례 투표) 말씀했는데 제가 8월 1일 날 전화했더니 다음에 해 준다고 해서 제가 문자를 보냈다. '사과해라'(라고)"라며 "딱딱 보면 그때그때 해결을 해나가야지 이렇게 나가다가 지금 이렇게 큰 이슈들이, 오송이, 김영환이, 명품이, 모든 게 그걸로 넘어가 버리지 않나"라고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김종민 의원도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대표가 휴가 중에 보겠다는 드라마 D.P도 '뭐라도 해야지'라며 잘못된 실상과 그 잘못을 방관하고 있는 사회에 대해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며 "민주당의 혁신과 미래를 위해 책임 있는 당대표로서, 정말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 대표가 사태를 책임지고 수습할 것을 촉구했다.
이어 김 위원장과 혁신위를 향해 "혁신위 대변인 입에서 '사과할 일은 아니다'란 말까지 나왔다. 민심 감수성이 정말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남은 수명에 비례해 투표하자'는 생각이 어떻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란 말이냐. 칭찬할 것이 아니라, 지적하고 바로 잡아줬어야 한다"며 "1인 1표 헌법, 민주주의까지 갈 것도 없는 상식"이라고 비판했다.
이렇듯 혁신위가 당내 대형 리스크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혁신위는 민감한 현안인 대의원제 손질을 예고해 또다른 논란이 예상된다.
김남희 혁신위 대변인은 이날 오전 한국방송(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저희가 좀 더 숙고하고 반성하겠다"면서도 "짧은 기간에 필요한 역할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그 남은 기간 동안 필요한 역할을 최대한 잘 수행하고 마무리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은 기간 동안 우선해야 할 과제를 "당의 구조에 대한 문제"로 적시했다.
김 대변인은 "정당법상 당연히 정당인의 대의기구가 있어야 되고 그렇기 때문에 대의원제가 운영되고 있지만 이 대의원들이 지금 현재 200만 명의 권리당원들을 잘 대표하고 있는가. 그 제도 사이의 이 연결고리 이런 것들이 좀 잘 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 대변인은 이어 "실제 의사 결정을 주로 하는 그런 기구들, 중앙위원회라든지 당무위원회라든지 이런 조직도 지금 기반에 있는 권리당원들과 딱 연결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면서 "어떻게 하면 당원들이 이 당이 민주적인 곳이고 또 여기에서 내가 참여함으로써 나의 정치적 의사를 잘 반영할 수 있는가,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것들을 발표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대의원제 폐지 또는 개선 요구는 현재 당내에서 권리당원 지지 기반이 탄탄한 친(親)이재명계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주장이다. '이재명 지키기' 위원회 오명을 받은 혁신위가 대의원제 손질에 나서면 비명계를 중심으로 반발이 일면서 당내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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