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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초 교사 죽음, 단순직관적 처방은 문제 더 키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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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초 교사 죽음, 단순직관적 처방은 문제 더 키울 뿐"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잊혀지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죽음

서이초 교사의 죽음은 또 하나의 잊지 말아야 할 죽음이다. 그간 수많은 안타까운 죽음이 보도되었고 그러한 슬픈 소식을 접할 때마다 아픔이 더해진다. 생면부지의 남이건만, 그 선생님의 안타까운 죽음은 마치 나의 선생님이 돌아가신 것처럼 괴롭다. 그렇게 아픈 채로 어딘가에 충분하게 호소하지도 못한 채 생을 스스로 마감한 심정을 감히 헤아릴 길이 없다. 어떠한 심정이었을까 라는 상상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진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손 닿을 수 없었던 사고라는 것을 알면서도 죄스럽고 한스럽다.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와 공동체의 문제로써, 이 슬픈 죽음은 충분히 공감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금 깨닫는다.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옆에서 누군가 함께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을.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여야 한다는 주장과 학생인권조례와 교사의 권위, 통제력의 상실은 별개의 문제임을 지적하는 주장이 연일 치고받는 이 상황 속에서, 보다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한국 사회에서 인권은 충분히 조명되고 발전하고 있는가. 민주주의 사회이자 법치국가에서 인권은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 인권이 더 나아질 기미를 보이고 있는가. 억울한 한 교사의 죽음이 아무런 관련도 없는 학생인권조례 폐지라는 주장으로 이어지는 이러한 시국임을 감안하면, 그 누구의 인권이든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은 거의 불가능해보인다.

학생인권조례와 관련된 팩트 체크까지 가지 않더라도, 학생인권조례가 원인이 되어 교사의 자살로 귀결되는 단선적 인과관계는 매우 부적절하다. 세상 일은 그렇게 쉽게 설명되지 않고, 특히 자살과 같은 복잡한 문제는 더욱 그러하다.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단순한 직관적 처방은 현실을 왜곡시키고 문제를 더 키울 뿐이다.

▲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담임교사 A씨를 추모하는 메모들. ⓒ연합뉴스

너무나 쉽고 빠른 대안, 그래서 위험한

많은 국민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합계출산율 수치는 상당히 압축적인 지표이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런 생을 물려주기 싫다' 또는 '애 낳을 힘도 능력도 없다'에 가까울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그간의 원인분석과 대처방안은 무엇이었는가. 소위 '애 낳으면 돈 준다'였고 지금도 그러한 접근이 여전하다. 이러한 대처가 나오기까지 원인에 대한 인식을 역추적해본다면, 결국 돈 없어서 애 안 낳는다 정도일 것이다. 결혼하고 임신, 출산을 할 수 있는 환경과 상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금 지원으로 출산을 유도한다는 발상은 얼마나 우스운가. 그렇게 쉽게 해결될 일이었더라면 애초부터 생기지 않았어야 할 문제이다.

사회문제는 구조적이고 누적적이어서 단순 공식으로 해결할 수 없고, 해결해서도 안 된다. 언 발에 오줌 누면 잘라내야 할 정도로 심각해진다. 천천히 오래도록 자라난 병은 그만큼의 기간을 염두에 두고 치료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너무 단순하게 정리하고 한쪽으로 치워버리려는 악성 처방이 마치 능력이나 카리스마인 것처럼 포장되고 있다. 어떠한 투입을 통해 산출해내고 싶은 결괏값이 교육현장의 회복인가 아니면 학생인권조례의 폐지인가? 마치 전자를 위해 후자를 수단으로 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학생인권을 보호하는 자치법규를 없애야지만 교육현장이 정상화 된다는 것의 앞뒤가 전혀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교육을 살리고 싶다면 한국 청소년이 겪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인 학업스트레스의 해결에서 출발해도 부족하다. 사교육, 경쟁, 부모의 과도한 개입 등의 문제가 학생인권조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욱 심각하고 중대하다. 출산율을 걱정하고 건강하고 밝은 미래세대를 필요로 한다면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한다는 대응책은 전혀 말이 안 된다.

원인의 원인을 찾아 대응해야 한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정책적 대응은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구조적으로 생겨나는 문제를 면밀히 분석하고 그에 따라 적절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은 생각보다 난해한 문제이다. 4 + X = 10이라는 단순 산술 문제의 X 값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런데 한 차원만 더해져도 머리가 복잡해 진다. 4 + X1 + X2 = 10 이라는 산술 문제라면 X1에 어떤 숫자가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뒤가 달라진다. 경우의 수가 많아지고 복잡해진다. 하물며 사회적으로 발생한 어떤 결과에 대해서 원인을 찾는 것은 쉽지 않고, 심지어 원인이 단순하게 한 두 가지로만 설명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아무 근거도 없이 X1을 자의적으로 규정짓고 X2, X3를 이어나가는 상황에서 밑도 끝도 없이 세상만사가 쉽고 명쾌해지는 것은 사회적 불안함을 느끼게 되는 수준이다.

미국에서 제조업에 종사하던 남성들이 실직을 겪으며 어떻게 되었는가. 산업이 서비스업으로 전환되어가는 상황이니 서비스업으로 이직하면 될 일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제조업에 종사하던 남성들은 소위 여성의 일이라고 여기는 서비스업으로 넘어가지 않은 채로 차라리 서서히 침몰하는 생을 선택하였다. 이를 두고 생활력이 없다거나 현실파악이 떨어지는 존재라고 비난만 하는 것은 사회적 문제를 더 키울 뿐이다. 정말로 사회와 국가가 나아가야 할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일은 예방책을 세우는 일이다. 또한 보다 근원적인 원인을 찾아 중장기적인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 상황은 근원적 문제에 대한 대응과 예방책을 세우는 절차와 과정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으며, 눈 앞에 닥친 동상을 제거하기 위해 허겁지겁 물 마시고 소변만 뿌려대는 것 같다. 사회구조적인 관점에서 진득하게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를 단기적 처방으로 떼우는 방식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조만간에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서이초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의 사고를 통해서 드러난 핵심적인 문제는 부모의 과도한 개입과 악성민원 뿐이 아니다. 그것을 제재하거나 학생의 품행을 지도하는 전문교사를 두는 것 정도의 처방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 학생인권의 존중, 그리고 교실 권위의 회복이라는 큰 주제는 깊고 어두운 병리적 체질 개선을 요하는 문제이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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