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위에 여자가 많을수록, 반란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1700년대 백인들은 아프리카에서 특수한 상품을 가지고 무역을 했다. 흑인. 노예무역 산업에서 흑인은 배에 싣는 '짐짝'이었다. 빼곡하게 쌓아 최대한 많이 운송할까, 아니면 적재량을 낮추더라도 상품이 최대한 죽지 않도록 여유 공간을 내줄까. 백인들은 수백 명 흑인의 효과적인 적재법을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다만 어떤 백인들은 바로 그 짐짝에 의해 바다 위에서 최후를 맞았다. 노예들의 선상반란. 계량사학자들은 400년여 동안 쌓인 3만 6000건 이상의 노예무역선 항해자료를 분석해 "항해 열 건당 최소 한 번은 반란이 있었음"을 알아냈다. 대서양의 망망대해에서, 구속된 노예들이, 대체 어떻게 반란을 일으켰을까?
역사학자 리베카 홀은 노예반란에 대한 수많은 기록 속에서 포착된 특이한 경향성에 주목한다. "배 위에 여자가 많을수록, 반란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는 재차 강조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노예무역선에 탄 여자가 많을수록 반란이 많이 일어난다." 그리고 놀란 듯이 되묻는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노예제를 연구해온 사학자들은 모두가 이 사실을 "직관에 어긋나는", "통계적인 우연"으로 치부했다. 거의 대부분의 기록에서 반란의 주동자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노예의 후예이자 현 시대의 흑인 여성 학자인 리베카는 달랐다. 그는 학자란 이들의 '직관'이 "여자를 향한 편견에 의해 왜곡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성적 편견을 버리고, 왜 여자가 많을수록 반란이 더 많이 일어나느냐는 질문을 다시 던져보면 어떻게 될까?"
기록에는 이미 답이 있었다. 1789년 영국 추밀원 고문관 보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성인 남성 노예는 족쇄를 채워 주갑판에 둔다. 여자나 여자아이는 족쇄 없이 선미 갑판에 둔다." 노예상들은 여자들은 싸울 수 없다고 믿어 족쇄를 채우지 않았다. 그리고 긴 항해 기간 동안 여자들을 성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손닿는 곳'에 뒀다.
싸울 수 없는 약자, 강간과 성폭력의 대상, 그래서 선원들의 '특전'으로 취급된 여성노예들은 그렇게 족쇄 없이 무기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했다. 경계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가장 낮은 위치, 그곳에서 여자들은 무기에 접근하고 반란을 계획하고 폭동을 추동했다. 바다 한 가운데 반란의 결과는 죽음뿐이었지만 그들은 기꺼이 그렇게 했다. 역사가들은 이 같은 반란 덕에 '팔려나가지 않을 수 있었던' 노예가 최소 백만 명에 이른다고 추산한다.
<웨이크(WAKE)>는 "노예무역으로 세워진 도시, 뉴욕"에서 억눌려온 조상들의 흔적을 추적하는 흑인 여성 역사학자 리베카 홀의 이야기를 담은 그래픽 노블이다. 노예의 후예인 그가 조상들의 흔적을, 특히 '반란을 추동한 여성 전사'들을 집요하리만큼 쫓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8년의 변호사 생활 동안 그가 목격한 '흑인여성을 향한 차별', 즉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가 정의를 뒤트는 모습" 때문이었다.
"무엇이 세상을 왜곡하는지 뿌리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서구사회 인종·성 차별주의적 폭력의 근원적 당사자들을 추적해야 했다. 노예제 당시의 흑인 여성들, 그들의 동료 남성과는 달리 투쟁의 역사조차 역사서에서 삭제된 "이름없는 노예"들. 리베카는 그들을 "반란의 주인공"으로 다시 주목하고자 했다.
"정의를 위해 싸운 흑인 여성의 이야기를 물 밖으로 가지고 나와야만 한다."
흑인이고 여성이라 기록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현시대에 되살리는 일은, 즉 흑인 여성의 피해 자체를 전복하는 과정이다. 다만 리베카는 자신의 결심을 두고 이렇게 회고한다. "그 여자들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일 자체가 싸움이 되리라는 것도 모르고..."
실제로 노예제에 맞서 싸운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는 그것을 복원하려는 시도만으로도 또 다른 고통과 피해를 야기하기에 충분했다. 백인 남성들이 기록한 '승자의 역사'에선 아무도 흑인의 이야기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흑인 '여성'의 이야기는 철저히 말살 당했다.
"두 겹으로 지워져 도무지 보이지 않는"(홍한별) 역사를 찾아나서는 것만으로도 고통이다. 여기에 승자의 역사 위에 세워진 현대의 서구사회에선 누구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춰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문제까지 겹친다.
리베카는 찾아도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여성들의 이름과 행적, 그들의 투쟁과 최후를 찾아 전 세계를 누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흑인 여성에겐 어떤 기록도 보여주지 않으려 하는, 이 세계에 여전히 만연한 "노예제의 여파"를 정면으로 맞닥뜨린다.
처형당한 노예의 재판 기록을 보기 위해 찾아간 형사법원 서기실에선 흑인 여성의 입장을 거부한다. 노예라는 '자산'을 피보험 상품으로 거래했던 영국의 보험회사들은 그 기록을 굳이 들춰내려는 리베카의 연구에 대해 그 어떤 협조도 거부한다. 그의 좌절이 책에 실린다.
"찾을 수가 없어, 나는 세라인지 에비게일인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영영 알 수 없을 거야."
"여자는 니그로 악마, 니그로 계집이라고만 언급되었다."
리베카의 고군분투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아니다. 가령 리베카는 1707년 퀸스 카운티 뉴타운의 지주 윌리엄 핼릿 2세의 노예들이 일으킨 봉기를 추적하면서 당시 여성 노예들의 사회적 처지와 그 구조성을 상당히 입체적으로 파악한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백인 일곱 명이 살해 당하고 노예 네 명이 처형된 이 사건은 이후 '노예들의 음모를 방지하기 위한 법령', 즉 구체적인 노예'제'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지는 주요 사건이었다. 그런데도 "이 일은 노예 반란의 역사에서 거의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왜일까? 이유를 알기 위해 리베카는 사건을 더 자세하게 뒤쫓는다.
사건에서 유일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이름은 남자 주동자 인디언 샘이었으며 여자는 '니그로 계집', '니그로 악마'라고만 언급됐다. 사건을 보고하는 정부 내 서신 속에서 샘과 니그로 악마 등 이들의 최후를 알 수 있었는데, 4명의 남자들은 교수형을 당했고, 여자인 니그로 악마는 화형대에서 화형 당했다. 질문이 꼬리를 문다. "왜일까? 왜 여자는 화형을 당했을까?" 리베카는 400년을 거슬러 올라가 답을 찾는다.
"1352년 에드워드 3세가 여자가 남편이나 주인을 살해하면 그 살해는 반역이며, 그에 따른 처벌은 화형이라는 법령을 만들었다. 이런 행위는 살인이 아니라 국가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된다. 여자의 남편이나 주인은 자연 군주로 간주하므로, 남편이나 주인을 죽이는 것은 국왕을 죽이는 것과 같았다. 따라서 국가에 대한 범죄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여자'와 '반란'을 둘러싼 당시 사회의 모순을 발견한다. 니그로 악마는 몇 백년 전의 법을 통해 반란죄로 화형을 당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사건은 어떤 역사서에서도 "반란으로 분류되지 않"았고, 어떤 주목도 받지 못했다. "주동한 사람이 여자였기 때문"이다.
"역사가들은 여자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여자가 감정이 상해 울컥해서 주인을 살해할 수는 있지만, 그건 반란에 참여하거나 심지어 반란을 획책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역사가들은 여자가 주인을 살해한 사건을 보았더라도 그냥 사적인 가정폭력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조직적이고 폭력적인 저항은 오직 남자들만 계획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노예를 배에 싣고 대륙으로 운송한 상인들도, 노예를 공급 받아 노예로 부린 지주들도, 노예의 반란을 본국에 보고한 주지사들도, 그 보고를 받은 정부 인사들도 "대체로 여자 노예들의 능동적 역할에 대해 몰랐다." 그 일련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가들은 여성의 이야기를 "직관에 어긋난다"며 기록에서 배제했다. 그렇게 생긴 역사의 공백을 이제와 찾으려 하자, 백인 남성 중심의 서구사회는 그조차 가로막았다.
흑인 여성으로서 리베카는 결국 자신 또한 '두 겹으로' 지워진 세계 속에 살고 있음을 인식한다. 과거를 추적하던 그를 과거가 오히려 추적해온다. '니그로 악마'의 기록을 찾으려 찾아간 퀸스 카운티 형사법원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고 뉴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리베카는 미셸 롤프 트루요의 격언을 되뇌인다.
"권력의 극치는 불가시성일지도 모른다. 궁극적 과제는 그 뿌리를 밝히는 것이다."
탁월한 능력과 투철한 의지를 갖춘 역사학자에게조차, 과거와 현재의 장벽을 넘어 흑인 여성의 온전한 뿌리를 찾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현대를 사는 노예의 후예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WAKE>는 그 고민의 과정이자 하나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리베카는 당대의 주변 기록들을 최대한 뒤지고 뒤져, 그림 작가 휴고 마르티네스의 손을 빌려, 거기에 본인의 상상과 추정을 더해 공백의 역사를 채워 넣었다. 세라와 아비게일과, 니그로 악마와, 선상의 여자 반란자들이 반란을 결심하고 계획하고 추동하며 마침내 최후를 맞이하는 과정들이 책에는 빼곡히 담겼다. 결국 이 책은 그들 본인은 물론 그들 후손의 "미래를 위해" 싸운 여자들의 이야기이며, 가까스로 그 미래를 살아내고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부단한 노력 끝에 과거와 미래의 여자들이 만나는 일은,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공고한 구조에도 균열이 생기는 것을 목격하는 일은 책의 독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일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동원 문제 등 과거사 속 여성들의 이야기에 민감한 한국 독자들에겐 더욱 특별한 감회를 주기도 한다. 옮긴이 홍한별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과거에서 눈을 돌리지 않을 EO, 아픈 역사를 마주할 때, 모순을 인지할 때에만 가능한 인식이 있다. 지워져서, 감추어져서, 억눌려서, 혹은 몰라서 아직도 하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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