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8일, 전 세계 녹색 정치 활동가들이 모이는 글로벌그린즈(세계녹색당) 제5차 총회가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열린다. 각 대륙의 녹색당 전·현직 의원들과 청년 녹색 정치인들 약 450명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세계녹색당과 <프레시안>은 글로벌그린스 총회에 참석하는 각 국가 별 녹색당의 역사, 현황, 주요 정책, 주요 정치인 및 활동가 등을 소개하고, 그들과의 인터뷰를 한국 독자들께 전한다. 환경, 민주주의, 평화, 다양성 등 '녹색 가치'에 동의하는 분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 편집자 주
창당 42년 독일 녹색당, 16년 만에 집권 정당으로
2020년 독일 녹색당(Bündnis 90/Die Grünen)은 창당 40주년을 맞았다. 그해 4월엔 10만 당원을 달성했다. 그리고 2021년,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 다음의 총리를 뽑는 연방선거에서 녹색당은 14.8% 정당 득표율을 기록해 전체 연방의회 총 735석 중 118석을 차지했다. 제3정당이 된 녹색당은 사민당(SPD), 자민당(FDP)과 함께 연립정부를 구성했고, 이로써 16년 만에 다시 집권당으로 정부 운영에 참여하게 됐다. (녹색당은 1998년 사민당과 첫 적록연정으로 연립정부에 참여했고, 2005년까지 집권당으로 활동했다. 필자주.)
이번 정부에서 녹색당은 아날레나 베르보크 외교부 장관을 비롯해 5개 부처에 장관을 배출했다. 부총리와 경제기후부 장관에도 녹색당의 로베르트 하벡 의원이 임명됐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이 일어난 이후로 해당 장관들은 거의 매일 텔레비전과 신문 뉴스에 나오기 시작했다. 외교 및 전력 수급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인데, 녹색당의 독일 내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독일은 일찍부터 환경운동이 시작된 국가다. 1980년 녹색당이 창당된 이후 기후위기 담론이 떠오른 지금 시대까지, 환경과 기후를 이야기하는 많은 시민들이 독일에 살고 있다. 이들 중 많은 수가 녹색당에게 표를 주고 있다. 2019년 5월에 있었던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독일 유권자의 20.5%가 녹색당을 뽑았다. 그해 중반 한 기관에서 실시한 선호 정당 설문조사에선 녹색당이 메르켈의 기민당과 숄츠(현 독일 총리)의 사민당을 꺾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생태, 사회보장, 민주주의, 다양성을 키워드로 활동하는 독일 녹색당
독일 녹색당은 생태적이고, 사회보장이 강력한,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국가를 실현하고자 한다. 유럽연합을 통해 조화롭고 협력하는 미래를 꿈꾼다. 생태(Ökologie), 사회보장(Soziales), 경제(Wirtschaft), 민주주의(Demokratie), 유럽(Europa)은 전체 40여개 이상의 주제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핵심 주제이다. 이 다양한 의제들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정책적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놀랍다.
독일 녹색당의 지지율이 높아졌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녹색당의 정치가 독일 사회에 뿌리내렸다는 것이다. 녹색당이 이야기 하는 대부분의 의제들이 독일 사회의 중요한 의제가 되었다. 이제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별 선거 홍보지를 보면 이게 녹색당인지 사민당인지, 기민당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다. 독일의 모든 정당(일부 극우 정당을 제외하고)이 녹색당이 이야기 하는 탈핵, 기후보호, 사회복지 강화, 성평등, 성소수자 권익 보호를 얘기하고 있다.
"우리는 더 가깝게 연결되야 합니다" 독일 녹색당원들의 이야기
필자는 독일 베를린에서 녹색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곳에서 활동하며 독일의 다양한 녹색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창당 때부터 독일 녹색당과 함께하고 있는 관록의 활동가들, 기후위기를 실감하고 녹색당에 새로 가입한 청년들 등 그들의 나이와 경력은 각양각색이었다.
특히 유럽 내 한국 녹색당원들의 모임 '녹유'에서 발행한 독일 녹색당 창당 40주년 특별 매거진(똑똑똑, 녹유 제17호)을 만들면서는 독일 내 녹색당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바 있다. 녹색당에 언제, 어떤 이유로 가입했는지, 녹색당의 정책은 '내 삶'에 어떤 직접적 인 영향을 미치는지, 세계녹색당의 존재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지 이들에게 물었다.
그 인터뷰의 일부를 이번 글로 소개하고자 한다. 25세 야나 브릭스(Jana Brix), 81세 프란지스카 아이히슈체트 보흐리그(Franziska Eichstädt-Bohlig), 45세 홀거 쿤즈(Holger Kunz), 80세 프리델 그뤼츠마허(Friedel Grützmacher) 등 다양한 나이대의 활동가들과 나눈 ‘전 지구적 녹색 연대’ 이야기를 아래로 전한다.
필자 : 녹색당엔 언제 어떤 이유로 가입하게 되셨나요?
야나 : 제 친구 중 몇몇이 청년 녹색당에서 환경보호와 동물보호 관련 활동을 했는데, 그것이 멋져 보였고 함께 하고 싶어졌어요. 2016년부터 저도 청년녹색당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여기서 멋진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활동을 하면서 다른 분야에서도 정치적으로 의식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프리델 : 저는 1981년 녹색당에 가입했습니다. 이유는 당시 제가 살고 있는 곳 근처에 핵발전소 건설이 예정됐기 때문이었어요. 당시 저는 라인란트 팔츠(Rheinland-Pfalz)주에 살았고 그 핵발전소는 노이폴츠(Neupotz)에 세워질 예정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결국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핵발전소 건설을 막아 냈습니다.
홀거: 저는 2019년 8월에 녹색당에 가입했어요. 2019년 유럽 선거는 제가 녹색당에 가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유럽 선거 프로그램은 내 입장을 거의 100% 대변해 주었기 때문이에요. 녹색당의 풀뿌리 민주주의적 구조가 제게는 특히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프란지스카 : 저는 서독과 동독 통일(1990년) 이후에 녹색당에 가입했습니다. 저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동독과 서독으로 나뉜 가족에서 자랐는데, 어떻게 보면 통일과정에서 정치에 참여하게 된 셈이네요.
필자 : 독일 녹색당이 그동안 통과시킨 법안(Gesetz) 중 독일 사회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왔던 법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프란지스카 : 녹색당이 집권당이었던 2000년에 만들어진 재생에너지 법안은 태양에너지, 풍력에너지, 바이오매스 사용에 대한 경제적인 돌파구를 가져왔다고 생각해요.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의 국제적인 모델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핵에너지 폐지 법안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정말 중요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야나 : 하나만 고르기가 참 어려워요. 예를 들어 '탈핵'이나 '모든 이에게 결혼을(Ehe für Alle, 이성 이외 커플에 대한 결혼 허용)'과 같은 법안은 녹색당이 집권당일 때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관련 의제에 관한 (녹색당의) 수십 년 동안의 투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녹색당은 야당으로 있는 동안 강력한 정치적인 운동을 벌였고, 이를 통해 많은 것을 달성했습니다.
프리델 : 녹색당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가장 중요한 법안은 새로운 시민권(Staatsbürgerschaftsrecht)입니다. 이전에는 자신의 '혈통'에 독일인이 있어야지만 독일 시민권을 부여받을 수 있게 되었어요. 새로 바뀐 시민권은 우리 사회를 근본에서부터 긍정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홀거: 2000년대 포장제도(Verpackungsverordnung, '공병 보증금'이라고 함)의 변경은 독일의 모든 시민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녹색당이 개발한 가장 중요한 법은 아니었지만 모든 시민의 일상생활에 매우 광범위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법이었습니다.
필자 : 녹색당의 정책(Politik) 중 '내 삶'에 직접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나요?
홀거 : 녹색당이 반핵, 환경 및 평화 운동에서 시작된 것처럼, ‘녹색 정치’와 관련된 생태적, 경제적, 사회적 지속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고집하고 집중하는 것이 제 삶에도 영향을 많이 미칩니다. 녹색당의 이런 녹색정치 운동이 수년 동안 일상생활의 많은 영역과 대중의 인식에서 환경보호와 지속 가능성을 확립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프리델 : 여성 할당제(Frauenquote)입니다. 녹색당은 선거 정당 명부를 작성할 때, 모든 명단에 여·남 후보를 번갈아 가며 등록하고 있습니다. 제가 1991년 주선거에 출마했을 때, 정당 명부 1번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했고 결국 그것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저는 15년 동안 라인란트 팔츠 주의회에서 일했고, 마지막 5년 동안은 주 부통령(Vizepräsidentin)으로 지냈습니다.
한국 녹색당, 영국을 거쳐 독일을 꿈꾸자
독일에서 만난 녹색당 활동가들에게 한국 녹색당을 소개할 때마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인사를 듣는다. "한국에도 녹색당이 있다니 정말 반갑습니다." "벌써 1만 명이라니 놀랍습니다!"
창당 10주년을 지나 올해로 11주년을 맞은 한국 녹색당의 당원 수는 9400명이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정당 득표율 0.48%를, 2016년 제20대 총선에선 0.76%를, 2020년 제21대 총선에선 0.21%를 기록했다. 독일 녹색당과 비교하면 가야할 길이 멀고 또 대단히 열악한 상황이다.
국내의 정치지형을 탓해 볼 수도 있다. 소선거구 다수제 선거제도, 사표가 되느니 뽑힐 만한 후보에게 표를 주는 관행, 기후위기와 환경보호에 관심은 있어도 당장의 내 삶이 더 중요한 유권자 성향, 소수 정당에 대한 불신과 경험 부족 등등. 그런데 한국과 비슷한 정치지형 속에서 선전하고 있는 영국 녹색당은 우리에게 흥미로운 시사점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은 한국과 같은 소선거구 다수제 선거제도를 가지고 있다. 녹색당이 기성 보수당과 노동당을 이기고 당선이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녹색당은 지방선거에서 승리해 지역 의회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오랜 정치 운동과 '내 삶을 바꿔내는' 녹색당의 정치에 사람들이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녹색당의 노력은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한국 녹색당은 6번의 전국 선거(국회의원 선거와 전국동시지방선거 각각 3차례)를 치렀고, 녹색당 내 벌어졌던 크고 작은 분열과 사건사고를 투명하게 드러내고 건강한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다.
보이는 것과 함께,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변화를 중요시 여기는 녹색당. 이제 우리에겐 그동안 당연히 누려왔던 것을 낯설게 보고, 우리가 누리느라 어떤 존재에게는 해가 되지 않았는가, 나만 누리고 어떤 이는 누리지 못했는가 돌아보고, 늦었지만 돌이키는 것, 내 일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실질적인 녹색정책으로 사람들을 설득해 내는 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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