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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 잃은 권력이 거부권을 남발하면…

[최창렬 칼럼] 절차적 민주주의와 거부권 정치의 한계

민주화 이후 분점정부(여소야대)가 낯설지 않은 현상으로 등장하면서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의 이원적 정통성은 정당체제가 직면한 문제 중 하나다.

권위주의 시절 여소야대는 상상할 수 없는 정당구도였고 민주화 이후 1988년 13대 총선 때의 여소야대는 국민에게 민주화를 실감하게 하는 정치현상이었다. 5공 청문회와 광주 민주화 운동 청문회 등이 열리고 국민들은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에 밤새는 줄 모르고 청문회 생중계를 시청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대통령제에서 분점정부는 집권세력과 야권과의 대립을 가중시키고 협치가 전제되지 않은 정당체제에서 정치실종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여야의 대치가 가팔라지면서 정치는 아무런 해결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지난 16일 윤 대통령은 국회에서 통과된 간호법에 대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에 이어 벌써 두 번째다. 간호사법의 내용을 논하자는 게 아니다. 여야 모두에게 책임이 있음은 불문가지다. 문제는 대통령 권력과 입법권력의 충돌이 일상화되고 여야가 상대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극단적 정치부재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형식적이나마 '협치'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진 정치판에서 특정 정파의 책임을 논한다는 자체가 한가롭고 무의미하다. 집권세력의 일각을 형성하는 여당의 무기력과 무능, 절대 다수를 확보하고 있는 야당의 일방적 입법 행태 모두 비판의 대상이다. 새삼스럽게 정치실종을 논한다는 것도 공허하고 진부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서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절대 다수 의석을 무기로 한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폭주가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비록 여당이 집권당이지만 국회에서 입법권력을 압도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야당이 여당과 협치하지 않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에 대처하는 대통령 권력의 행사 방식은 타당한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통령이 국회에 재의를 요구한 행위는 헌법 제53조(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대통령은 (…)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고 그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가 보장하고 있는 권한을 행사한 것이므로 법적 하자는 없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차원에서 문제가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절차'에만 집중하는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며, 언제든지 퇴행할 수 있는 위기에 노출되어 있다.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 이후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등의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었다고 해서 '실질적' 차원의 민주주의가 확립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이다.

대통령이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안에 이의를 제기하는 행위는 삼권분립의 견제와 균형의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다. 국회의 국무위원에 대한 해임건의권이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라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이러한 권한들이 남용될 때 '견제와 균형'이라는 대통령제의 운영 원리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권력이 절제를 잃고 남용될 때 민주주의는 위기에 직면한다. 가뜩이나 관용의 가치가 사라진 한국정치에서 절제와 자제가 상실된다면 절차적 정당성을 담보했다고 하더라도 권력의 도덕적 권위가 반감되며 상호존중과 공존의 틀이 깨질 수밖에 없다.

특히 대통령의 법률안 재의요구권은 국회의 입법권에 대한 지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이 헌법의 취지일 터이다. 현저하게 절차적 정당성을 위배했거나 전 국민의 대다수가 입법에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에 한정해야 한다. 특히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법률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번 간호사법 제정안 갈등은 의사와 간호사와의 상충된 입장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거부권 행사가 사회갈등과 분열을 해소할 수 없다. 정치는 양측의 최대공약수를 발굴해서 합의를 모색해 나가는 과정임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법조문에 명시되어 있는대로만 권한을 행사하는 데 그친다면 법치의 영역에서 한 치도 전진할 수 없다. 여야의 생각이 극명하게 갈리는 '노란봉투법'과 '방송법' 등도 민주당이 단독으로 통과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 법안들에 대해서도 거부권 행사로 응수할 건가.

간호사법은 폐기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갈등이 소멸되지 않는다. 법률안은 또 개정하거나 제정하면 된다. 입법권력의 담지자인 야당도 협치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통령이나 여당은 거부권에 기댈 게 아니라, 여야와 관련 직역들이 참여해서 원점부터 협의할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 거부권 행사를 의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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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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