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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게도 '가고 싶은 학교에 갈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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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게도 '가고 싶은 학교에 갈 권리'가 있다

[장애인 운동, 독일에 묻다 ⑤] 좌초하고 있는 독일의 통합교육  

[장애인 운동, 독일에 묻다] 지난 연재

☞ ① 열차·트램 운행 막은 독일 '전장연', 그들이 독일을 바꿨다

☞ ② 한국의 1년 장애인 예산, 독일 1개 도시에도 못 미친다

☞ ③ 장애인 탈시설이 가능한가? 독일에서 길을 찾다

☞ ④ 장애인 구직자에겐 '취업 시련'을 겪을 권리조차 없나

2007년 9월 유럽연합 이사회 의장국인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 유럽 29개 국가의 청소년 80명이 모였다. 이들은 장애를 가지고 있었으며 '교육에서의 다양성'이라는 주제의 공청회(Young Voices: Meeting Diversity in Education)에 참여하기 위해 리스본을 찾았다.

여기서 이들은 장애인의 통합교육에 대한 자신들의 시각을 담은 '리스본 선언문(Lisbon Declaration – Young People´s views on Inclusive Education)'을 만들었다. 선언문의 한 구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가고 싶은 학교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선언문은 유럽연합 모든 회원국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자를란트 대학 교육학과 교수 알프레드 잔데르(Alfred Sander)는 이 선언문이 독일에서는 '특수학교에 대한 거부'를 의미했다고 설명한다. 전직 교사로서 통합교육을 위한 다양한 선구적 시도에 참여했던 그는 장애인이 일반 학교가 아닌 특수학교에 가는 것이 독일에서는 오랫동안 의무였다고 말한다. 독일은 오랫동안 장애를 가진 학생들에 대해 ‘분리 교육’의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강제 분리 교육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함께하는 삶 – 함께하는 배움(Gemeinsam leben – gemeinsam lernen)' 협회와 '분리 교육에 반대하는 학부모(Eltern gegen Aussonderung)' 운동 측은 1996년 공동으로 장애인 학생의 학교 선택권을 위한 요구안을 발표했다.

이들은 단기적으로 장애아동의 부모가 아이를 특수학교에 보낼 것인지 집 근처 일반 학교에 보낼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법률이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아이가 일반 학교에서도 개인의 특성에 맞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일반 학교가 발전해 특수학교가 불필요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잔데르 교수는 1996년의 요구에서 의무적 특수교육에 대한 반대뿐 아니라, 의무적 통합교육에 대한 반대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장애를 가진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에게 적합한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이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일반 학교에 강제로 보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7년 리스본 선언도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통합교육을 위해서는 그에 맞는 지원과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최고의 통합교육은 우리에게 맞는 조건이 주어졌을 때 가능하다. 꼭 필요한 지원 및 시설, 그리고 잘 교육받은 교사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유럽연합 이사회의 장애인 통합교육을 위한 리스본 선언 ⓒEuropean Agency 간행물 <Lisbon Declaration – Young People’s Views on Inclusive Education> 표지

유엔장애인권리협약과 지지부진한 독일의 통합교육

독일 사회가 분리 교육에서 통합교육으로 원칙을 전환한 때는 2009년이다. 1980년대부터 장애인과 비장애인 학생의 통합교육을 실험적으로 시도하는 학교가 있었지만, 이는 예외적인 경우였다. 독일이 통합교육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2008년 독일 정부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공식 인준했기 때문이다. 장애인권리협약은 2009년 3월부터 독일에서 법적인 효력을 갖게 되었다.

장애인권리협약 24조에는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독일 정부에게는 장애인도 비장애인 학생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수업받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지원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연방국가인 독일에서 교육정책에 대한 결정권은 주 정부에 있다. 비록 연방과 각 주의 문화부 장관이 모이는 문화부장관 협의회가 독일 전체의 교육 방향과 틀을 정하는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할지는 주 정부의 몫이다. 2011년 문화부장관 협의회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통합교육에 대한 권고안을 만들었다. 그리고 해당 권고안은 각 주의 상황과 의지에 따라 서로 다르게 실행되고 있다.

2022년 12월 독일인권연구소(Das Deutsche Institut für Menschenrechte: DIMR)는 연방정부가 유앤장애인권리협약 24조의 실행을 책임질 것을 촉구했다. 연구소는 연방정부가 아닌 각 주 정부가 통합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구조가 장애인과 비장애인 학생의 통합교육 실현의 속도를 늦추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2020/2021년 기준 1학년에서 10학년에 해당하는 독일 전체 학생 중 일반 학교가 아닌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인 진흥학교(Förderschule)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비중은 4.4%였다. 장애인권리협약 인준 이전인 2008/2009년도 진흥학교 학생 비중 4.9%와 비교하면 하락 폭은 미미했다.

주별로 격차가 심해서 브레멘주의 진흥학교 비중이 0.9%인 것에 비해 작센-안할트주의 비중은 6.5%에 달했다.(독일에서는 새로운 학년이 가을에 시작한다. 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1-4학년까지는 초등, 4-10학년까지는 중등 1단계, 11-12학년까지가 중등 2단계 교육에 해당한다. 대다수의 학생은 10학년까지의 교육 과정을 이수하며 중등 2단계의 경우 대학 진학이나 상위 직업교육을 위한 과정이다. 필자.)

하지만 지난 10년간 독일의 통합교육이 전혀 진행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20년 6월, 꾸준히 통합교육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베르텔스만 재단(Bertelsmann Stiftung)이 독일 통합교육 10년을 결산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8/2019년도 기준 장애로 인해 도움이 필요한 학생 중 일반 학교에서 수업받는 학생의 비율은 43%였다. 10년 전에는 해당 학생의 겨우 19%만이 일반 학교에서 교육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많이 증가한 수치다.

통합교육을 받는 학생 비율이 많이 늘어났음에도 진흥학교 학생 비율이 그다지 줄지 않은 것은 장애로 인해 학업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분류된 학생의 숫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학습장애로 분류되는 학생의 숫자가 늘어났다. 통합교육이 실행되면서 학습장애 판정을 받은 아이도 일반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어 관련 전문가들이 학습장애 진단을 내리는 부담감이 줄었기 때문이다.

통합교육을 실시할 학교에 교사 충원과 재정 지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학교측에서 학생들을 학습장애로 분류하려는 경향이 강해진 것도 이런 상황의 배경이다.

▲장애인권리협약(CRPD) 및 선택의정서는 2006년 12월 13일 뉴욕 유엔 본부에서 채택되었으며 2007년 3월 30일 서명을 위해 개방되었다. ⓒUN(United Nations) 홈페이지

좋은 통합교육을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특수학교에 다니는 장애인 학생의 비율이 여전히 높기는 하지만, 통합교육이 실행되고 있는 학교의 숫자는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따라 다양한 성공 사례들 또한 보고되고 있다.

2018년 독일 학교상(Deutscher Schulpreis)을 수상한 마르틴학교(Martinschule)는 대표적인 통합교육의 성공 사례다. 마르틴 학교는 최초에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로 만들어졌지만 통합교육 초등학교로 발전했고 지금은 1학년에서 12학년까지 모든 학년을 갖춘 종합 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마르틴 학교는 2015/2016년 기준 550명의 학생 중 거의 절반가량이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마르틴 학교는 각 학생의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을 모토로 하고 있으며, 학생 각자가 자신의 수업을 계획하고 진행하게 한다.

마르틴 학교에서는 12명 정도의 소규모 그룹이 기본이 되어 수업이 진행된다. 각 학생은 공통 주제에 대한 각자의 수업 계획을 세우고 상황에 따라 다른 사람과 함께, 혹은 개별적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교실마다 선생님 외에도 장애가 있는 학생을 도와주는 2명의 특수 교사가 있다. 마르틴 학교의 학생은 9학년까지 숫자로 표시되는 성적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마르틴 학교는 해당 지역에서 평균 이상의 학업 성취도를 보여주고 있다.

통합교육을 성공적으로 이끈 학교와 단체에 주어지는 야콥무트상(Jakob-Muth-Preis)을 2017년에 수상한 안토니우스 폰 파다우 학교(Antonius von Padau Schule)도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안토니우스 폰 파다우 학교는 과거 발달장애 학생을 위한 특수학교였지만, 지금은 한국 학제로 초등학교 1학년부터 4학년에 해당하는 학생들을 담당하는 통합교육 그룬트슐레(Grundschule)다. 이 학교의 한 학년은 15명이며, 학생 중 5명이 장애를 갖고 있다.

안토니우스 폰 파다우 학교의 학생들은 각자가 자기 주간계획에 따라 공부한다. 학생들은 모두 수화를 배우고, 공통의 주제에 따라 함께 수업도 듣는다. 안토니우스 폰 파다우 학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각 학생이 자신의 수준에서 다음 단계를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학교의 수업 공간에는 문이 없기 때문에 학생들은 자신의 학업 수준에 따라 다른 학년의 수업에 참여할 수도 있다. 안토니우스 폰 파다우 학교에도 장애인 학생을 돕기 위한 특수교사가 존재한다.

2021년, 베를린 사회과학센터(WZB)의 마르쉘 헬비히(Marcel Helbig) 교수는 다른 팀원과 함께 독일의 통합교육 실태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는 보고서를 통해 너무 이른 나이부터 성적에 따라 아이들의 교육 진로를 결정하는 독일의 교육 구조가 통합교육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에 따르면 통합교육은 학업 성취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독일에서 통합교육의 모범 사례로 소개되는 다수의 학교는 학생의 개별적 수업 계획과 목표를 중요시하며, 이를 위한 적절한 교육 여건을 갖추고 있다. 다수의 전문가 또한 통합교육을 위해서는 적은 학생 수, 적절한 교육 공간, 통합교육에 대한 교사의 이해, 도움을 줄 수 있는 특수 교사의 존재가 필수적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독일의 대다수 일반 학교는 이런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교사 노동조합인 독일 교육협회(Verband Bildung und Erziehung)가 2020년 교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6%가 통합교육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장애인의 사회 통합 △학생들의 사회 교육 △장애에 대한 편견 제거 등이 주요 지지 근거로 뽑혔다. 반대 입장을 표명한 교사들은 근거로 △전문 인력의 부족 △교육 자료 및 시설 부족 등을 주요 근거로 꼽았다.

통합교육을 위한 학교의 준비에 관해서는 응답자의 16%만이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가 휠체어 등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베리어프리 시설이라고 밝혔으며, 통합교육을 실제로 실시하는 학급에 원 교사 외에 통합교육을 위해 추가로 특수 교사가 함께 근무하는 경우도 46%에 불과했다. 또한 통합교육을 위한 교사 교육 기회가 잘 제공되고 있냐는 질문에는 겨우 6%만이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헬비히 교수에 따르면 독일의 대다수 주는 학부모가 장애가 있는 아이를 일반 학교에 보낼지 진흥학교에 보낼지 선택할 수 있도록 법률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 학교는 통합교육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부모들은 집 근처에 있는 일반 학교 중 장애가 있는 아이를 받아주는 학교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통합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로 아이가 진학하더라도, 준비 미흡으로 어려움을 겪고 다시 특수학교로 옮기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헬비히 교수는 이런 상황이 '장애아동의 학부모가 일반 학교가 아닌 특수학교를 강제로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며 장애인 학생의 교육 권리가 박탈당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했다.

▲2018년 독일 학교상(Deutscher Schulpreis)을 수상한 마르틴학교(Martinschule)는 대표적인 통합교육의 성공 사례다. 사진은 마르틴학교의 상징 로고. ⓒMartinsch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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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건

한국과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독일에서 10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외부인의 시선으로 독일 사회를 관찰하고 있다. 독일 사회의 소식을 한국에 전하거나 텍스트를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무엇이 어떻게 전달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지속 가능한 삶’이란 키워드로 독일에 사는 한국 녹색당원들과 만든 <움벨트>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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