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위해 열린 국회 전원위원회에서 여야 간 가장 팽팽한 쟁점은 비례대표제 문제였다. 국민의힘에서는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가운데, 비례대표제 폐지·축소 목소리도 상당수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 주장이 주를 이룬 가운데 비례대표제 확대 의견이 많았다.
선거 개혁을 주장해온 시민단체들은 "비례대표제 폐지는 위헌적 발상이며 비례대표 의석은 확대되어야 한다"며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는 분명한 퇴행"(지난 19일 '정치개혁공동행동' 성명)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프레시안>이 지난 10~13일 국회에서 열린 전원위원회 토론에 참여한 의원 100명 전원의 발언을 분석한 결과, 토론에서 비례대표 선거제도에 대해 언급한 의원은 75명이었다.
의석 배분 방식과 관련해서는 이 중 17명(23%)이 '병립형'을, 16명(21%)이 '연동형'을 주장해 팽팽한 의견 대립이 나타났다. 비례대표 선거구 크기에 대해서는 '권역별'을 언급한 의원이 41명(55%)으로 '전국구' 주장(5명, 7%)을 압도했다. 현행 47명인 비례대표 의원 정원에 대해서는 '확대'가 24명(32%), '폐지' 9명(12%), '축소' 2명(3%) 순이었다.
정당별로 보면, 의석 배분 방식과 관련해 국민의힘 의원 38명 중 14명(37%)이 병립형을 주장했고 연동형을 주장한 의원은 없었다. 비례대표 선거구 크기별로는 6명(16%)이 권역별, 3명(8%)이 전국구를 주장했다. 비례대표 수에 대해서는 폐지 8명(21%), 확대 2명(5%), 축소 1명(3%) 순이었다.
민주당은 의석 배분 방식별로는 발언 의원 53명 중 13명(25%)은 연동형을, 3명(6%)만이 병립형을 주장했다. 비례대표 선거구별로는 32명(60%)이 권역별을, 2명(3%)이 전국구를 주장했다. 다만 권역별·전국구를 병행 실시하자는 취지의 주장도 두세 명 있었다. 비례대표 수에 대해서는 확대 15명(20%), 축소 1명(1%), 폐지 1명(1%) 순이었다.
소수정당과 무소속 의원들 사이에서는 정의당 의원 1명이 연동형, 진보당 의원 1명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주장했다. 정의당 의원 4명과 기본소득당 의원 1명, 무소속 의원 2명은 비례대표제 확대를, 진보당 의원 1명과 무소속 의원 2명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주장했다.
국민의힘,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 혹은 폐지·축소
국민의힘에서 다수를 점한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를 주장한 의원들은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입법 과정의 일방성과 복잡성, 위성정당 설립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헌승 의원은 "지난 제21대 총선 당시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그 시작부터 잘못됏다"며 "제2당인 미래통합당을 배제하고 정당 간 합의가 아니라 갈등 속에서 도입됐고 유권자 입장에서 그 방식이 너무 복잡해 자신의 표가 어느 정당, 후보를 찍는 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직접선거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이양수 의원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시작부터 위성정당 창당 문제가 예견돼 있던 제도였다"며 "병립형 비례대표제에서는 위성정당 출현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고 했다.
비례대표제 폐지를 주장한 국민의힘 의원들의 논리적 근거는 부정적인 국민 여론과 비례대표 선출 과정에서 각 당 지도부가 공천권을 전적으로 행사한다 점이었다.
유상범 의원은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 4월 2일 공개한 국민 인식 조사에서 비례대표제를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은 24%,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27.1%에 달했다"며 "특히 응답자의 62.8%는 비례대표 후보에 대한 공천 과정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상현 의원은 "다양성, 전문성을 보충시켜 뽑힌 비례대표 의원들이 오히려 정치 양극화를 부추기는 각 당 지도부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김병욱 의원은 "보스 정치인들의 전리품처럼 쓰여 온 비례대표제를 과감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례대표제를 폐지하지는 않되 현행 직능대표제 방식 대신 이를 지역구 선거의 보완재로 활용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조은희 의원은 비례대표제 대신 '지역대표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했고, 정운천 의원은 비례대표 47석을 각 정당별 열세 지역 낙선자를 구제하기 위한 석패율제 의석으로 쓰자고 제안했다.
다만 이런 가운데에도 전국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전제로 비례대표 고유의 가치를 강조한 의원들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지성호 의원은 "비례대표제가 없는 선거 지형이라면 결코 대변받을 수 없었을 유권자들이 대변을 받게 되었고, 원내에 진입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각계의 정치 신인들이 등장할 수 있었다"며 "일부 단점과 부작용은 민주적 절차를 통해 해결해나가야지 초가삼간을 태우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고 소신 주장을 펴 눈길을 끌었다.
장애인인 이종성 의원도 "소수 약자와 다양한 교섭단체의 국회 진출을 보장하기 위해 전국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근간으로 한 비례대표 할당제 도입을 주장한다"며 "정치적 약자를 대표하는 인물, 국방·외교·과학기술 등 직능 분야 전문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고유의 취지를 십분 발휘하게 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공천을 제도화하면 국민 반감은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 대한 국민 불신 해소를 위해 개방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한 이도 있었다. 허은아 의원은 "비례대표 선출 과정에서도 지역구 선거와 똑같이 유권자가 직접 (후보를) 선택할 수 있는 개방형 정당명부제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된다"며 "이렇게 되면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 개방성과 투명성 민주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역주의 해소를 위해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권역'을 동서 통합형으로 묶자는 의견도 눈에 띄었다. 박형수 의원은 "수도권인 서울, 경기, 인천을 하나로, 충천과 강원을 하나로, 경북과 전북을 하나로, 경남과 호남, 제주를 하나로 하는 권역을 제안한다"며 "이렇게 선거구를 획정하면 특정 정당, 후보자가 5.18을 폄훼하거나 영남 사람들을 수구꼴통이라고 비판하는 발언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각 정당 역시 화합적이고 중도적인 인물을 공천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 시행 및 비례대표 확대
민주당에서 다수를 점한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 시행을 주장한 의원들은 비례성 강화, 소수정당의 원내 진출 활성화, 지역주의 완화를 이유로 들었다. 이 경우 수도권 과다 대표를 막기 위해 지역 균형 의석 배분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전해철 의원은 "비례대표제는 권역별로 하는 것이 비례성과 대표성 강화, 지역주의 극복에 가장 효과적이고 선거제도 개혁의 취지를 잘 구현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며 "연동형에 대해서도 열어두고 검토하면 좋겠다. 위성정당 방지에 논의가 매몰돼서는 안 되고 선거제 개혁의 목표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위성정당은 독일, 뉴질랜드에서 정치적·사회적 합의를 통해 극복됐다"고 강조했다.
조오섭 의원은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소수 정당의 활로를 개척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다당제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며 "권역별 의석수를 배분할 때 무작정 인구 비례만 따지면 인구 밀집 지역에만 의석이 쏠릴 우려가 있기 때문에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 비수도권 위주로 지방 권역별 할당 비율을 조정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비례대표 확대를 주장하며 민주당 의원들은 비례성 강화, 국회 구성의 다양성 확보를 주 논거로 들었다.
홍영표 의원은 "선거제 개편의 두 원칙, 대표성과 비례성 강화는 결국 비례대표 확대로 귀결된다"며 "비례대표가 늘어야 지역에만 매몰되지 않는 각 분야의 전문가와 소외계층의 대표성을 가진 이들이 원내에 진입할 수 있다. 그래야 국회가 더 많은 국민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용진 의원은 "정치학자들은 비례의석 비중이 지역구의 절반 이상이 돼야 최소한의 비례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즉 지역구와 비례 의석 비율은 최소 2 대 1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인호 의원도 "국민 수용성에 주목해 300석 의원 정수와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 3 대1, 225석 대 75석으로 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발의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비례대표 의석 확대를 구체적 숫자와 함께 제안한 의원들의 주장은 그 구체성과 간명함으로 인해 눈길을 끌었다. 문진석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 대 비례대표 비율을 4대1, 즉 '240대60'으로 하자고 주장했다. 민주당 출신 무소속 양정숙 의원도 '240대60'을, 김영배 의원은 '비례대표 최소 60석 확보'를 주장했다.
최인호 의원은 지역구 대 비례 비율을 '225대75'로 하자고 했고, 윤호중 의원은 '75석 이상'을 주장했다. 고용진 의원은 '최소 2대1' 즉 100석 이상을 주장했다. 민주당 출신 무소속 민형배 의원은 '150대150'을 주장했다.
이상민 의원은 의석을 '지역구(대선거구) : 권역별 비례대표 : 전국구 비례대표'로 세 부류로 나누고 이를 각각 127:127:46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지역구 대 비례대표 비율로 보면 지역구 127석, 비례대표 163석으로 오히려 비례대표 의원 수를 더 많이 할당하자는 것이다. 이는 전원위 토론자 100명 중 가장 급진적 안에 해당한다.
반면 박주민 의원은 지역구는 253석을 유지하되 이를 대선거구제로 바꾸고, 비례대표 47석을 석패율제를 통한 권역(지역) 내 의석 조정에 쓰자고 제안했다. 국민의힘 정운천 의원의 주장과 매우 유사한 내용이다.
민주당에서도 개방형 비례대표제 도입 목소리가 있었는데, 소수자의 국회 진출을 위한 보완 장치를 둬야 한다는 의견이 같이 제시되기도 했다. 민병덕 의원은 "부분개방형 비례대표제"를 꺼내며 "국민의 선택을 보장하기 위해 개방형을 도입하되 여성·장애인을 배려하기 위해 그분들의 순서는 정해놓자"고 제안했다. 맹성규 의원도 "정당이 후보자의 순서까지 결정해 유권자의 투표권을 제한하는 폐쇄형 명부제를 여성, 청년, 장애인 등에 대해 우선권을 부여하는 개방형 명부제로 개선한다면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토론자들 중에는 험지 출마 낙선자를 위한 석패율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의원들도 9명으로 상당히 많은 수를 차지했다. 서영교 의원은 "지역에서 출마하고 열심히 했는데도 떨어지면, 비례로 당선돼 지역도 대표하고 입법 활동도 할 수 있게 하는 석패율제. 이것이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선거구 개편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문정복 의원도 "지역색이 강한 영호남, 강원에 출마해 낙선한다 하더라도 최다 득표자에 한해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할 수 있는 석패율제를 도입하는 것도 (지역주의 완화에)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했다.
소수정당, 비례성 강화가 선거제 개혁 핵심
소수정당에서는 비례대표 확대를 주장하는 기류가 뚜렷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이번 선거제도(논의)의 핵심은 비례대표의 숫자를 확대하고 정당 지지율에 의석수를 수렴하는 것"이라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가 (의석 수에) 100% 반영되는 정당 명부 비례대표제가 최선이지만, 현행 제도보다 비례성과 대표성이 높아진다면 그 어떤 제도도 열어놓고 검토하겠다"고 열린 태도를 보였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도 "진정한 선거제도 개혁은 기본소득당 같은 소수정당이 더 많이 국회에 진출하는 일"이라며 "정당 득표율이 그대로 의석에 반영되도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강화하고 비례 의석 확대를 위해 국회의원 정수를 확대하자. 소수 정당의 의회 진입 문턱을 낮춰 '3% 봉쇄' 조항을 1%로 낮추자"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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