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 개편 논의를 위해 19년 만에 열린 국회 전원위원회에서, 지역구 선거제도에 대한 여야 양당의 의견은 뚜렷하게 갈렸다. 국민의힘은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 도입 의견이 가장 많았던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자는 의견이 다수를 이뤘다.
<프레시안>이 지난 10~13일 국회에서 열린 전원위원회 토론에 참여한 의원 100명 전원의 발언을 분석한 결과, 지역구 선거제도에 대해 언급한 의원은 61명이었다. 이 중 26명(43%)이 소선거구제, 20명(33%)이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 11명(18%)이 대선거구제, 2명이 전국적 중선거구제(5%)를 주장했다.
당별로 보면, 국민의힘 의원 38명 중에서는 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하는 의원이 14명(37%)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는 소선거구제 7명(18%), 순수 중선거구제 2명(5%. 윤상현·허은아 의원) 순이었다.
민주당 의원 53명 중에는 소선거구제를 선호하는 의원이 17명(32%)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는 대선거구제 8명(15%), 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 6명(11%) 순이었다.
소수 야당에서는 시대전환 의원 1명은 중대선거구제, 진보당 의원 1명은 대선거구제를 주장했고, 민주당 출신 무소속 의원 2명(민형배·양정숙 의원)은 소선거구제 유지를 주장했다.
국민의힘, 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 다수…불비례성 완화, 지방소멸 대응
국민의힘 의원들은 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를 옹호하며 수도권과 도시 지역에 중대선거구를 시행해야 하는 이유로 소선거구제의 불비례성 문제 보완과 정치 양극화 완화를 들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주장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그림자가 짙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연초 "중대선거구제를 통해 대표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지역 특성에 따라 한 선거구에서 2~4명을 선출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1월 2일 신년 인터뷰에서)라고 했었다.
황보승희 의원은 "수도권의 불비례성은 매우 심각하다. 2020년 총선 결과를 보면 수도권에서 1당의 득표율은 56.6%, 2당의 득표율은 43.4%이지만 의석수로는 104석(1당), 16석(2당)이었다"며 "경기도를 비롯한 수도권에 중대선거구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호 의원은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는 것만으로도 타협의 정치 문화가 촉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된다면 진보 성향 소수당뿐 아니라 보수 성향 소수당, 중도 실용 정당 등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한 정당이 출현할 것이다. 다당제는 양극단의 정치를 완화시키고 타협의 정치 문화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를 주장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농산어촌, 인구 감소·희박 지역에서 소선거구제 유지를 주장하며 지방소멸 대응과 균형발전을 꺼냈다.
황보 의원은 "농산어촌 지역에는 소선거구제를 유지해 1인을 선출해야 한다"며 "농산어촌뿐 아니라 비수도권 대도시 부산, 대구, 인천 등 일부 자치구와 경기도 일부 자치구 등 인구 감소 지역에 대해서도 농산어촌과 마찬가지로 소선거구제를 적용해 지역의 대표성과 책임성을 보장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형수 의원도 "소선거구제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중선거구제를 가능한 많이 적용하면 좋겠다"면서도 "한 선거구에서 3명 이상을 선출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인구 수는 50만 이상의 도시가 해당돼야 할 것 같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에서도 소선거구제 유지를 주장한 의원이 7명 있었다. 이헌승 의원은 "(여론조사에서) 현행 소선거구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훨씬 높다"며 "또한 내각책임제 하에서는 중대선거구제를 검토해 볼 만하지만 현행 대통령 직선제 하에서는 소선구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판 의원도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민주주의가 안착된 선진국가에서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나? 아니다.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다"며 "선거비용이 적게 드는 등 효율성이 높고 공천 부작용을 그나마 최소화한다는 역사적 경험에 의해 채택돼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상현·허은아 의원은 도농복합형이 아닌 전국적 중선거구제 실시를 주장했다. 윤 의원은 "우리 모두 소선거구제의 폐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21대 총선에서 각 당 지역구 득표율, 민주당 49.9%, 미래통합당 41.5%, 8.4% 차이였다. 그런데 의석수는 163대 84, 더블(double) 가까이 차이가 났다"며 비례대표 폐지와 함께 "4인 선거구 60개, 3인 선거구 20개, 300개 의석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허 의원은 "(현행 지역구 선거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소선거구제가 만들어 낸 거대한 공룡 정당이 자신만의 독선에 빠져 입법 독주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라며 "한 선거구 안에서 1등만이 아니라 2~4등도 당선될 수 있는 중대선거구제를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민주당, 소선거구제 다수…국민 선호, 지역 책임성, 대통령제 조응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다수가 소선거구제 유지를 주장했는데 지역 대표성, 대통령제와의 조응성 등이 이유였고, 소선거구제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표의 비례성' 문제는 비례대표 개편·확대로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을 주로 폈다.
이장섭 의원은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과반을 넘길만큼 소선거구제에 대한 민심의 선호도가 크다"며 "책임성 측면에서도 소선거구제의 장점이 분명하다. 한 명의 정치인이 지역 대표성을 띄고 한 지역을 책임지는 소선거구제와 달리 중대선거구제 하에서는 정치인의 책임 소재도 흐려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박상혁 의원은 "소선거구제는 대통령제와 조응성이 높은 제도이고 중대선거구제는 내각제와 조응한다는 것이 다수 정치학자의 견해"라며 "대다수 국민이 대통령 중심제를 원한다면 국회의원 선거제도 역시 이와 조화롭게 구축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라고 주장했다.
중대선거구제의 비례성 확대 효과가 확실하지 않다는 점과 선거 비용 증가, 파벌 정치 심화 등을 이유로 소선거구제를 지지하는 민주당 의원도 있었다.
이정문 의원은 "작년 동시지방선거 중대선거구제(3~5인) 시범 실시 지역 30개 선거구에서 총 109명이 당선됐는데 민주당이 55명, 국민의힘이 50명으로 양대 정당 당선자가 전체의 96.4%에 달했다"며 "정의당, 진보당 등 소수 정당 후보는 4명 당선에 그쳤고 이는 전체 당선자의 3.6%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정태호 의원은 "선거구 지역 범위가 넓은 경우 선거 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는 다선, 중진, 저명 인사 등 자금력·조직력이 높은 정치 인사에게 유리한 정치적 토양을 형성할 것"이라며 "파벌 정치가 심화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일본은 거대 정당의 복수 공천에 따른 후보자 간 경쟁이 과열되면서 파벌 정치, 계파 정치 등 부작용으로 1996년 (참의원 선거에 한해) 소선거구제로 회귀한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에서는 비례성 강화를 위해 대선거구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8명에게서 나왔는데,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를 주장한 의원이 3명(김상희·박주민·이용빈 의원)으로 가장 많았다.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는 지역구를 대선거구제로 나누고, 유권자가 먼저 정당에 투표한 뒤 해당 정당의 명부를 보고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방식이다. 한 선거구 안의 정당별 의석 배분은 정당 투표로, 실제 당선되는 후보자는 명부 투표로 결정되는 셈이다.
다만 이 제도는 권역별 개방형 비례대표제와 구별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장철민 의원은 전원위 토론에서 "일부 의원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중대선거구제는 반대하면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가자고 하시는데 사실 차이를 잘 모르겠다. 권역별 개방형으로 가면 대선거구제랑 무슨 차이가 있나? 이름만 다른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대선거구제를 주장한 이들 간에도 세부 의견은 갈렸다. 박주민 의원은 '지역구 253석을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로 뽑자'고 주장한 뒤 "남은 47석은 석패율제를 도입해 북유럽식 조정 의석으로 활용하면 남은 47명마저 지역구 낙선자 중에 선출되기 때문에 위성정당을 원천봉쇄할 수 있다"며 사실상 현행 직능대표식 비례대표제는 폐지하자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조응천 의원은 "현행 소선거구제를 한 선거구에서 5명 이상 뽑는 중대선거구로 바꿔야 한다"며 "비례대표제를 없애고 지역구 의석을 늘려 한 지역에서 5명 이상 선출하면 각계 전문가, 소외계층 대표 후보자를 대거 선출하고 소수정파 후보자 역시 득표한 만큼 의석을 확보할 길이 열린다"고 주장했다. 소선거구제를 대선거구제로 바꾸는 대신 아예 비례대표제는 폐지하자는 주장으로, 민주당 의원들 가운데 유일하게 비례대표 폐지를 공개 주장한 사례로 남았다.
반면 김상희·이용빈 의원과 이상민 의원 등은 대선거구제로 가면서 비례대표도 유지하자는 입장을 취했다. 김상희 의원은 "현행 지역구를 대선거구제로 바꿔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 방식을 도입하자"며 "이와 함께 전국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여성, 청년, 장애인 등 저대표성 계층의 대표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용빈 의원도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 도입과 함께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석패율제 도입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상민 의원은 "양당 독과점 구조를 다당제로 전환해 민심에 비례한 권력의 분할과 견제가 이뤄지도록 해야 된다"며 "지역구는 127명 대선거구, 권역별 비례는 지역구와 동수인 127명, 전국구 비례인 46명으로 합성한 모델"을 제시했다. 이는 김상희 의원 안과 비슷한 구조이나 지역구 의석을 거의 절반 가까이 줄이는 더 과감한 제안이다.
소수정당에서는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개방형 권역별 대선거구제'라는 명칭으로 사실상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를,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 중대선거구제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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