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1년 앞두고 국회가 전원위원회까지 열어 선거제도 개편 논의에 손을 담갔지만, 때아닌 '국회의원 정수' 논란에 전원위 논의의 상당 부분이 침식됐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지난주 돌연 '정수 축소'를 공개 주장한 여파였다.
그러나 직업 정치인이자 정치 전문가 집단이라 할 수 있는 국회의원 100명의 전원위 토론 결과를 전수분석해 보니, 의원 정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이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였고 그나마 야당 의원들의 경우 김 대표의 주장을 비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집권 여당 대표의 의제 선점 시도로 인해, 실제 이뤄진 논의 내용에 비해 정수 논란이 언론지상에 과대대표된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프레시안>이 지난 10~13일 국회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발언한 의원 100명 전원의 발언을 분석한 결과, 발언대에서 의원 정수 문제를 언급한 의원의 수는 모두 35명이었다. 이 중 13명이 '정수 축소', 16명이 '정수 유지', 6명이 '정수 확대'를 주장했다.
당별로 보면, 국민의힘 의원 38명 중 12명(32%)이 김 대표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정수 축소'를 주장했다. '정수 확대'를 주장한 의원은 없었지만 '정수 유지'를 공개 주장한 의원도 4명(11%. 이헌승·김선교·조은희·박형수 의원) 있었다.
다만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의 경우 "연동형 비례제, 중대선거구제 등 새로운 선거제 도입을 위해서 일정 부분 의석 확대를 양해할지, 의원 정수를 동결하는 대신 득표수와 의석 배분 간의 심한 불비례·불균형을 그냥 감수할지는 결국 국민이 선택할 문제"라며 상대적으로 열린 태도를 취했다. 조 의원은 지난 13일 한국방송(KBS)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의원 수를) 줄일수록 국회의원 1명이 가진 권한은 훨씬 더 커진다"며 의원 정수 축소론에 비판적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민주당 의원 53명 중에는 1명(2%. 이원욱 의원)만 '정수 축소'를 주장했는데, 이 의원의 발언 요지는 '김 대표의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이를 지렛대로 비례대표 확대를 이루자'는 것이었다. 민주당에서는 '정수 유지'를 주장한 의원이 11명(21%), '확대'를 주장한 의원은 3명(6%. 홍영표·강민정·최혜영 의원)이었고, 정수 확대도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열린 태도를 취한 의원도 1명(고용진 의원) 있었다.
이밖에 정의당 의원 중 2명과 기본소득당 의원 1명은 '정수 확대'를, 무소속 의원 1명은 '정수 유지'를 주장했다.
국민의힘을 빼고 야권인 민주당, 정의당, 기본소득당 등만 보면 의원 정수 축소를 주장한 사람은 1명뿐(이원욱 의원)이었던 셈이다.
의원 정수 축소를 주장한 이들 중 대표 격은 여당 신(新)친윤계 실세로 꼽히는 여의도연구원장 박수영 의원이었다. 박 의원은 "국민의 70%가 국회의원 정수를 줄여야 한다는 여론조사도 있다"며 "선거제도 개선에 나선 정치권이 의원 정수를 줄이라는 국민들 뜻을 잘 받들고 있다고 화답 한번 해 보자"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 친문계 중진 홍영표 의원은 의원 정수 확대를 공개 주장하며 "대표성, 비례성, 다양성을 늘리기 위해 국회의 특권을 내려놓자고 제안드리는 것"이라며 "비례대표 확대를 위해서 의원 수가 늘어나더라도 법으로 의원세비 삭감, 보좌 인력과 예산을 동결하는 등 국회가 특권을 내려놓는 개정안을 만들어 국민께 이해를 구하자"고 말했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은 "국민이 찍은 표만큼 의석을 나누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필연적으로 비례대표 정수 확대를 요구한다"며 "비례대표를 늘리려면 지역구를 줄여야 한다. (그런데) 1당과 2당의 '기득권'이 '그럴 수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의원 정수 확대이고 세비 감액"이라고 정수 확대 논의의 발원점을 짚었다. 류 의원은 "정의당의 '지역구 240명, 비례대표 120명' 제안은 그렇게 나왔다"며 자당안 취지를 이같이 설명했다.
지역구 선거제도는…국민의힘 '도농복합', 민주당 '소선거구제 유지' 다수
선택지가 '확대·축소·유지' 3지선다밖에 없는 의원 정수 논란과 달리, 지역구 선거제도 및 비례대표제 해법을 놓고는 분류 방법에 따라 수십 가지로 나뉠 수 있는 다양한 의견이 분출됐다. 예컨대 사실상 직능대표인 현행 비례대표 제도를 지역(권역)별 대표 제도로 바꾸자는 제안(민주당 박주민 의원 등)은 단순히 '비례대표 확대 또는 폐지'로 분류하기 어렵다.
다만 논의의 편의를 위해 일정 수준의 추상화는 불가피하다. 이번 기사에서는 우선 전체적인 전원위 논의의 구도를 개략적으로 정리한 뒤, 후속 기사를 통해 지역구 및 비례대표 제도에 대한 세세한 논의를 소개하려 한다.
나흘 간의 전원위 회의에서 전체 100인의 의원 중 61명이 지역구 선거제도에 대해 언급했다. 다수 순으로 보면 26명은 소선거구제 유지를, 20명은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를, 11명은 대선거구제(통상 선거구별로 5인 이상을 뽑는 제도)를, 3명은 중선거구제(통상 2~4인)를 주장했다.
정당별로 보면, 국민의힘에서는 농산어촌에서는 소선거구제, 도시에서 중대선거구제를 시행하는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를 주장한 의원이 38명 중 14명(37%)으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소선거구제 유지 7명(18%), 순수 중선거구제 2명(8%. 윤상현·허은아 의원) 순이었다. 허은아 의원은 토론에서 '중대선거구제'라는 표현을 썼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한 선거구 안에서 1등만이 아니라 2등, 3등, 4등도 당선될 수 있는 중대선거구제"를 주장했으므로 '중선거구제' 도입 취지로 분류했다.
민주당에서는 소선거구제를 주장한 의원이 53명 중 17명(32%)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는 대선거구제 8명(15%), 도농복합형 6명(11%) 순이었다. 조응천 의원은 '중대선거구제'라는 표현을 썼으나 내용적으로 보면 "한 선거구에서 5명 이상 뽑는 중대선거구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었기에 대선거구제 의견으로 분류했다.
이밖에 시대전환 의원 1명은 중대선거구제, 진보당 의원 1명은 대선거구제를 주장했다. (☞전원위 전수분석② 기사로 이어집니다.)
비례대표제는…국민의힘 '병립형', 민주당 '연동형', 양당 모두 '권역별' 다수
비례대표제에 대해서는 전체 100인의 의원 중 75명이 관련 언급을 했다. 득표 결과에 따른 의석 배분 방식별 구분에서는 17명이 병립형 회귀를, 16명이 연동형 강화 또는 준연동형 유지를 주장했다. 비례대표 선거구 크기에 따른 분류로 보면 42명이 권역별 도입을, 5명이 전국구 유지를 주장했다.
정당별로 보면, 국민의힘에서는 의석 배분 방식과 관련해 38명 중 14명(37%)이 병립형을 주장했고, 연동형 강화 또는 준연동형 유지를 주장한 의원은 없었다. 비례대표제 선거구 크기를 놓고 보면 6명(16%)이 권역별, 3명(8%)이 전국 비례대표제를 선호했다.
반면 민주당에서는 의석 배분 방식과 관련해 53명 중 13명(26%)이 연동형, 3명(6%)이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했다. 다만 비례대표제 선거구 크기에 따른 분류에서는 32명(60%)이 권역별, 2명(4%)이 전국 비례대표제를 선호해 양당의 다수 의견이 같았다.
이밖에 정의당 의원 1명, 기본소득당 의원 1명, 무소속 의원 1명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진보당 의원 1명, 무소속 의원 2명(민형배·양정숙 의원)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주장했다.
비례대표제 확대를 주장한 국민의힘 의원은 없었고, 야권에서는 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 및 무소속 등 22명이 비례대표제 확대를 주장했다. 국민의힘 의원 8명(이헌승·윤상현·김승수·유상범·조경태·안병길·조은희·김병욱 의원)은 아예 비례대표제 폐지를 주장했다. 조응천 의원은 민주당에서 유일하게 비례대표제 폐지를, 주철현 의원은 유일하게 '비례대표제 축소'를 주장했다. (☞전원위 전수분석③ 기사로 이어집니다.)
토론에서 나타난 국민의힘·민주당 양당 의견만을 종합해 보면, 국민의힘에서는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의 조합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민주당에서는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권역별·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조합해야 한다는 의견이 각 당 내 다수를 점한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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