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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처벌한다고 '학폭'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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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처벌한다고 '학폭'은 사라지지 않는다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학생 간 폭력을 말하기 위한 조건

요즘 한국 사회에서 '학교폭력'은 뜨거운 감자다. 학생 간 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 집단에게 사적 복수를 하는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흥행하고,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임명자의 아들의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요구되고 있다. 언론에서는 학교폭력이 심각하다고 연일 보도하고, 교육부는 지난 달 28일 학교폭력 가해자의 징계 이력에 대한 학교생활기록부 기록 보존을 강화하고 대학 입시에 반영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해자를 이런 식으로 처벌하고 응징한다고 학교폭력이 사라질 리는 없다. 이번 글은 학교폭력의 의미를 되짚고, 현재의 논의와 접근 방식에서 놓치고 있는 점과 함께 살펴야 할 점들을 다루고자 한다.

'학교폭력'이 말하지 않는 것

학교폭력은 학교와 폭력의 합성어로, 일반적으로 학생 간 관계에서 일어난 폭력 문제로 정의된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대체로 학생 간 폭력으로 해석한다. 학교 내외에서 일어난 폭력이 문제라면, 사실 검토해야 할 대상은 학생 간 폭력만이 아니다. 교사에 의한 학생 폭력은 물론이요, 입시 경쟁 체제에서 일어나는 억압과 배제, 여러 사회적 범주(나이, 인종, 계급, 성 정체성 등)에 의한 차별 등 모든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검토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학교폭력은 오직 '학생 간 폭력'으로 규정되어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학생 간 폭력의 의미로만 여기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외의 폭력들은 정당화되기 위해 다른 이름을 갖고, 규범이 되어 결국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갖는 폭력성을 은폐해왔다. 교사에 의한 학생 대상 폭력이 여전히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교육 상 필요'나 '교내 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관대하게 여겨지는 것처럼, 입시 경쟁 교육이 학생들에게 타인을 존중하지 못하는 태도를 가르치지만 어쩔 수 없는 문화로 간주되는 것처럼 말이다.

학교는 위계 서열화되어 있고, 갈등을 폭력에 의존하여 해결하려는 구조이다. 학교와 교사의 말을 듣지 않는 학생은 훈계나 벌점, 체벌, 징계 등 벌을 부과받게 되고, 입시 위주 교육과 권위주의적 문화는 학생 개인의 다양한 사고나 행동을 무시하고 규격화하기 때문에, 다양한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러한 문화에서 계급과 학업 성적, 외모, 인종, 장애, 성 정체성 등 차별의 힘은 강하게 작동하고, 갈등과 서열은 힘의 논리에 지배받게 된다. 그리고 학생 간 폭력 역시 이와 무관할 수 없다.

ⓒ넷플릭스

하지만 학교폭력은 이런 구조적 문제의 영향을 배제한다. 그리고 학생을 선도해야 하는 존재로 바라보며, 문제의 핵심을 학생 개인의 행위와 인성으로 파악한다. 이는 언론에서 반복적으로 '학교폭력이 흉포화되어 간다'며 심각성을 강조하고 학생을 특별히 문제적 존재로 만드는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학생 간 폭력이 학교에서 일어나는 여러 폭력의 현상들 중 하나라는 점도, 왜 교사에 의한 학생 폭력이나 비청소년 간 폭력과는 다르게 흉포한 이미지로만 확산되는지도 이야기되지 않는다. 가해 학생이 어떤 끔찍한 행동을 저질렀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선도를 위해 어떤 징벌이 필요한지 말할 뿐이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도 자세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한 판단 위에 만들어진 법률과 관련 조치들은 학생 간 관계의 복잡성을 무시하고, 사법과 행정의 통제 안에서 절차적 해결에 기대게 해 학생들이 스스로 관계를 꾸려갈 기회를 앗아가는 건 아닐까. 물론 당사자들끼리 풀기 힘든 문제가 있어 중재자가 필요하거나, 괴롭힘에 힘들어 도움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지속한 괴롭힘과 장난 등에서 시작한 충동적 싸움은 엄연히 다르고, 모든 갈등의 스펙트럼에 학교와 교사의 개입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특히나 학교폭력이라는 이름이 낙인적 수치심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무게를 갖는 요즘, 학생 간 모든 갈등이나 피해가 '학교폭력'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묶여 동일한 층위로 해석될 수 있다면 학생 간 관계는 더 납작해지고 공동체적 해결은 어려워질 수 있다.

정말 학생 간 폭력이 걱정된다면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와, 갈등에 비폭력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명령과 복종에 기반하는 학교의 질서와 비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변화시키지 않고, 일상에서 학생들이 인권을 존중하고 존중받는 경험을 할 수 없다면 학교폭력 문제는 나아질 수 없다.

엄벌주의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학생 간 폭력을 '예방'하겠다는 논의들은 가해자 법적 처벌, 생기부 기재, 정시에 학생 간 폭력 가해 전력을 반영하는 등 가해자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가해자가 응보를 받아야 한다는 식의 접근으로는 학생 간 폭력을 바로잡을 수 없다. 목표는 이미 일어난 피해를 회복시키는 것이어야 하고, 그러려면 피해자가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피·가해자를 분리시키는 '피해자 보호'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피해자가 문제의 해결 과정에 참여하여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박탈당한 통제력을 되찾음으로써 자율성을 경험하고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학생 간 폭력을 해결하는 절차나 논의 방안에서 당사자인 학생은 개입할 수 없다. 고작해야 전담 기구의 조사 및 심의 위원회 개최 시 의견 진술의 기회를 제공받을 뿐이다.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을 하기 위해서는 피해 사실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과정에서는 본인이 겪은 일이 잘못된 일이라는 확인과 주변인들의 지지 역시 필요하다. 피해자에 대해서는 상태 파악과 신변 보호, 상담을 통한 정서적 지지 받기 등이 매뉴얼화되어 있긴 하지만, 사실상 신고를 하더라도 학교와 교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기도 하고 개입을 꺼리기도 한다. 오히려 피해자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말하며 피해자가 피해의 부당함에 대한 지지와 이해를 받지 못하면서 회복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 학생 간 폭력 해결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피해자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에서 가해자에게 고통을 더해주는 것이 피해자의 응분을 가라앉히는 것에 도움이 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가해자를 처벌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가해 행위에 대한 적절한 조치라기보다 가해자에 대한 새로운 징벌에 가깝다.

가해자가 본인의 행동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신의 행동이 다른 이에게 끼친 영향을 이해하고, 잘못을 고칠 수 있도록 하고, 그 방법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가질 때 가능하다. 하지만 사법적 제재나 입시에 불리하도록 만드는 것은 오히려 가해자들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벌을 회피하게 만든다. 벌을 받는 경우에는 본인은 벌을 다 받았으니 자신의 죄는 이제 지워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엄벌주의는 가해자에게 도덕적인 책임을 묻지 않는다.

또한 가해자 보호자의 직업과 재산, 부(富)가 상위 계급이라면 회피하는 것은 더욱 쉬워진다. 〈더 글로리〉에서 가해자들이 형벌이 무서워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본인이 가진 자원을 동원하여 피해자에게 입막음을 시도하고,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사건에서 집행 정지와 행정 심판, 행정 소송을 통해 생기부 기재를 지연시킨 것처럼 말이다. 엄벌주의는 피해자에게도 가해자에게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학생 간 폭력은 학교가 갖는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구조와 문화를 인권친화적으로 변화시키고, 엄벌주의를 넘어 실질적인 피해자의 회복과 가해자의 책임을 말할 때 비로소 유의미한 논의의 영역으로 발을 내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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