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0일,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제6차 종합보고서를 국제사회에 내놓았다. IPCC는 기후변화 관련 과학을 평가하기 위해 1988년 유엔(UN)이 만든 국제기구로 현재 195개국이 가입되어 있다. IPCC는 기후변화의 과학적 근거, 그 영향 및 미래 위험, 적응 및 완화에 대한 정기적인 평가 보고서를 제공하는데, 최근 발간된 6차 보고서는 여러 가지 충격적인 내용을 담았다.
우선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1℃ 이상 상승했고(기상청에 따르면 한국은 최근 100년 동안 평균 10년마다 0.2℃씩 상승), 이는 인간의 활동 때문임을 보고서는 명확히 했다. 2030년에는 1.5℃ 상승할 확률이 40~60% 정도이고, 지금과 같이 계속 간다면 금세기 말에는 4.4℃ 정도 상승할 것이라고 보고서는 전망했다.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최근 200만 년 동안 최고치를 찍었다. 복합적인 폭염과 가뭄이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기후 관련 질병 발생률이 증가할 것으로 보고서는 내다봤다. 이 같은 변화는 식량 생산에 악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앞으로 인간에게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 점점 더 많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서는 예측했다. 작년 11월 COP27 개회식에서 UN사무총장이 "우리는 액셀러레이터에 발을 올리고 기후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있다."라고 한 말은 다 이유가 있었다.
IPCC는 과학적 사실뿐만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도 제시하고 있는데, 의외로 해답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그것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아주 빨리, 그리고 많이 줄여야 하며, 특히 2030년까지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거의 절반으로 줄일 것, 복원력을 강화하기 위한 사례 및 인프라를 확장할 것, 다양한 측면에서 필요한 조치들을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보고서는 앞으로 현재 기후 투자액의 3~6배가 필요하고, G20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더 많은 투자로 개도국을 지원해 더 빠른 시일 안에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고 요구하했다. 무엇보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의 절반을 줄여야 한다는 명확한 목표는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UN사무총장이 "국제협약은 기후연대 협약이 되든지 집단 자살 협약이 되든지 둘 중 하나이다"라고 할 만큼 정치적 합의와 실행은 쉽지 않다.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 IPCC 보고서가 더 빠르고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데서, 어쩌면 혹시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이 의심이 거의 확신으로 가는 새로운 자료가 3월 21일 발표되었다. 그 자료는 대한민국 정부와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발표한 제1차 국가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안)이다. 이 계획은 작년 3월부터 발효된 '기후위기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에 따라 처음 수립되는 계획으로, 2050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한다는 국가 비전을 위한 국가전략 및 중장기감축목표, 이행기반 강화를 위한 정책을 담아야 한다.
그런데 20년 계획이라는 이 계획을 보면 2042년까지의 계획이 아니라 주된 목표가 2030년 온실가스 감축에 집중되어 있다. 장기비전을 세워 기업들에 전환의 시그널을 명확하게 주고, 풍력발전과 같이 인프라 구축에 시간이 걸리는 사업들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2030년~2042년 사이의 전략이 불확실하다. 전 탄소 배출 주체 중 가장 많은 양을 배출하는 산업계는 어디로 방향을 잡아야 할까?
게다가 2030년 436.6백만 톤 배출 달성을 위한 연도별 목표를 보면, 이번 정부 임기 내에는 찔끔찔끔 줄이다가, 2029년에 급격하게 약 100만 톤을 줄이는 계획이다. IPCC 6차보고서의 온실가스 감축 경로를 보면 초반에(지금 당장) 급격하게 온실가스를 감축하도록 하고 있는데, 누가 봐도 윤석열 정부는 제 임기 안에 온실가스를 감축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2030년에 온실가스 배출의 절반을 줄여야 한다는 목표 도달은 생각도 없는 이 정부와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보며, 이미 평균기온이 2℃ 이상 훌쩍 상승한 한반도에서 기후재난을 잘 견디며 살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문재인 정부가 2021년 UN에 제출했던 NDC(14.5%)보다 산업부문의 감축 비율(11.4%)이 약 3%포인트 정도 줄어들었다. 이 감소분은 전환(전기) 부문, CCUS, 국제감축분으로 넘겨졌다. 이전 정부는 감축이 가능하다고 판단했기에 해당 감축 안을 UN에 제출했을 텐데, 이번 정부에서는 왜 감축이 불가능한지 모르겠다. 전환부문을 보면 윤석열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의 공급비중을 키웠고 그만큼 신재생에너지 공급목표를 축소했다. 앞으로 기업들의 RE100은 불가능할 것이고, 유럽의 탄소국경조정(CBAM) 대응도 어려워 국제무역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 너무나 분명하게 보인다.
절차적으로도 문제다. 3월 25일까지 수립해야 하는 국가계획을 예정 시한 사흘 전(22일) 공청회를 해서 어떻게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공론화를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전체 내용과 구체적인 내용들이 다 알려지지도 않아 연구자들이 검증도 할 수 없는 국가계획을 두고 시민과 지자체와 청년과 노동자들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까? 이 정부는 노이즈 마케팅으로 NDC를 공론화하고 싶었던가? 늦었지만, 정부는 충분한 논의와 의견수렴이 가능도록 절차를 갖추어야 한다.
온실가스 감축 의지가 없는 정부 하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국가계획 수립 후 17개 특·광역시도의 계획수립과 226개 기초지자체의 계획수립 순서가 기다리고 있다. 우선 지방정부의 계획 수립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자. 중앙정부의 계획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목표를 수립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하자. 두 번째로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나의 네트워크, 나의 조직, 나의 친구와 가족들을 조금 더 자주 만나고 이야기하자. 대신, 1.5℃를 넘길 것 같다는 절망이나 격앙의 감정이 아니라, 재난의 정도가 심해질 것 같은데 괜찮은지, 감당할 수 있을지, 어떻게 예방하고 책임질지를 담담하게 이야기하자. 부동산 이야기만큼, 일자리 이야기만큼, 출생률 이야기만큼 기후위기 이야기를 소소하면서도 웅성웅성하도록 해보자. 세 번째로 나의 평안을 챙기자. 1.5℃가 넘으면 곧바로 시간이 멈추고 종말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2℃, 3℃, 4℃가 넘어도 우리는 그 안에서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언제나처럼 어떻게 살 것인지를 지금 결정할 기회가 주어진 것뿐이다. 나의 평안이 우리의 평안이 되어 기후위기 속에서 함께 살아갈 방도를 머리를 맞대고 마련하자.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여전히 분노와 화가 치민다면 거리로 나서보자. 4월 14일 금요일, 기후파업에 나서보자.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냐고 외쳐보자.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