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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주 69시간제, 이게 아젠다가 된다는 게 경악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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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주 69시간제, 이게 아젠다가 된다는 게 경악스럽다"

신간 기자간담회서 尹 정부 정책 비판 "한미일 공조 휘말려서 안 돼"

세계적 석학 장하준 런던대 경제학과 교수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주 69시간제 개편안을 "19세기적인 낡은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생산성을 높이는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데 현 정부는 시대착오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과 화해 협력에 나서는 한편 중국과는 껄그러운 상황을 이어가는 것을 두고는 "절대 일본이 주도하는 한미일 공조 체계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일침했다.

장 교수는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신간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부키) 출간을 기념하는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 같이 말했다.

장 교수는 "(주 최대 69시간 노동을 허용하자는 개편안) 이런 게 아젠다가 된다는 게 경악스럽다"며 "일인당 국민소득 3만5000달러에 달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발상) 걸 하느냐"고 질타했다.

장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강조한 '일할 자유'를 두고 200여 년 전 미국에서 나온 사고방식이라고 꼬집었다.

장 교수는 "1905년 미국 대법원이 당시 하루 15~16시간이던 노동시간을 10시간으로 제한한 뉴욕주의 주법을 위헌 판결한 적 있다. 당시 대법원 논리가 '일할 자유의 침해'였다"며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일할 자유'는 18세기~19세기적 사고방식"이며 "사회과학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이 생각하는 자유"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일할 자유'의 발화자가 누구인지, 그 '자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우리 사회가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간의 자유를 말할 때 그 상황을 규정하는 구조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강도에게 위협당하는 사람의 예를 들었다. "강도가 총을 들이대고 '지갑을 줄 건지, 총을 맞을 건지' 결정하라는 '선택의 자유'"와 "일할 자유의 논리"가 똑같다는 지적이다.

장 교수는 "자유에 관해 논하려면 '왜 어떤 사람은 일하다 죽을지도 모르는 독극물 공장에서 오래도록 일할 수밖에 없는(자유를 가지는)가'를 물어야 한다"며 "상황상 어쩔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은 기피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두고 '자유'를 논하는 건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라고 꼬집었다.

장 교수는 이어 지금 한국은 노동시간을 늘리거나 임금을 낮게 유지해서 생산성을 높이는 시대를 지났다"며 "별다른 묘수는 없다. 기술 개발하고, 교육과 연구에 투자하고, 특히 젊은 사람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끔 하는 사회적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하준 영국 런던대 교수가 2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 교수는 현 정부 주도의 감세정책도 비판했다.

장 교수는 "영국과 미국 등 여러 선진국이 투자를 늘린다는 명목으로 감세 정책을 취했지만, 세율의 높고 낮음이 투자와 관련된다는 증거는 없다"며 "오히려 영국과 미국 등은 1950년대 당시 소득세 최고 세율 90%를 매겼다(하지만 투자는 잘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 국가가 198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하며 감세에 나섰지만 "특히 영국의 경우 오히려 투자가 크게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장 교수는 "세금을 단순히 세율 자체만 볼 것이 아니라 손익분석적 시각으로 봐야 한다"며 "법인세를 무조건 낮추는 게 좋다면 세계 모든 기업은 법인세를 10%만 걷는 파라과이로 가야 할 것"이라고 일침했다.

장 교수는 반면 "독일의 경우 법인세 30%를 매기지만 여러 기업이 장사를 잘 한다. 그곳의 사회 인프라, 노동력 등이 파라과이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라며 "중요한 건 세율을 몇 퍼센트로 정할 거냐가 아니라, 정부가 세금을 걷는 만큼 적절히 경제주체에게 서비스를 해주느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현 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대 미국, 대 중국, 대 일본과의 경제정책을 '정치 이념'에 따라 정하는 건 현명하지 못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중국을 상대로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미국을 두고 "미국은 원래 그런 나라"라며 새로울 게 없다고 말했다. 미국이 과거 일본이 부상하던 당시는 일본을 상대로도 같은 규제를 취한 사례를 들며 그는 이같이 전했다.

장 교수는 이미 여러 저서를 통해 미국이 건국 초기부터 세계대전 전까지는 일관되게 국가 산업정책을 세우고 보호무역에 의존하는 국가였으나, 세계 최강대국이 된 후에는 자유무역 기치를 내걸고 세계의 문을 열어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을 위시한 이 같은 세계 강대국, 자본주의 세력의 행태를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비판해 왔다.

장 교수는 한때 자유무역의 전도사 역할을 한 미국이 이제 중국을 상대로 제재를 가하고, 자국에는 정부가 나서서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을 펴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며 "이제 자신들이 (경쟁에서) 불리해지니 그간 몰래 하던 (정부 주도) 산업 육성 정책을 노골적으로 한다"며 좋게 말해 미국은 실용주의적인 나라"라고 언급했다.

장 교수는 한국도 미국의 실용주의적 태도를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메시지는 매우 거칠게 내지만, 군사 분야와 관련 있는 반도체 등을 제외하면 여전히 중국과 교류를 유지하는 실용주의적 접근법을 유지한다"며 한국이 이를 보고 "'어느 쪽(미국)에 확실히 붙어야겠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중국이 "여전히 한국의 경제 부문 제1 파트너"라며 "우리는 미국하고만 놀아야지, 아니면 우리는 가까운 중국이랑만 놀아야지 하는 태도는 둘 다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일본을 두고는 "한국이 (적극적으로 미국과 공조하는) 일본을 본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장 교수는 강조했다.

장 교수는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된 경제 체제 국가 중 하나다. 일본의 무역의존도는 15% 정도밖에 되지 않아, 우리처럼 50%에 이르는 나라가 아니"라고 말했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미국과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대 중국 전선을 공동으로 펴도 우리와 달리 위험이 덜하다는 뜻이다.

장 교수는 "한국은 현재 일본이 추진하는 소위 한미일 공조에 휘말려들어서는 절대 안 된다"며 "일본이 미워서가 아니라, 일본과 (대외 의존도가 큰) 한국의 위치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장하준 영국 런던대 교수가 2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세계 경제 상황을 두고 장 교수는 "2008년 금융위기의 속편"으로 진단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지금까지 이어진다는 얘기다.

그는 "금융위기 대응을 위해 당시 세계가 공적자금을 대거 투입했고 이자율을 제로 금리 수준으로 떨어뜨려 유동성을 키웠다"며 "그 결과 엄청난 자산거품이 끼어 현재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장기간 이어진 저금리 시대를 두고 장 교수는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을 사실상 10년 간 폐쇄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자본시장에서 이자율이 제로면 투자의 옥석이 가려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즉 자본시장의 실패로 과도한 유동성이 자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가 지금의 세계적 거품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앞으로 세계 경제 상황은 "어디서 SVB 사례처럼 잘못된 게 또 숨어있을지 알 수 없다"며 "앞으로 또 뭐가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기본소득론에 관해서도 장 교수는 일정 부분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그는 "미국의 실리콘밸리 갑부들이 주창하는 기본소득은 반대한다"고 단호히 말했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인 밀턴 프리드먼, 프리드리히 하이예크 등도 기본소득에 찬성했는데 그들은 복지제도를 완전히 없애고 시민 각자가 알아서 기본소득으로 대응하게끔 하자고 주장했다. 현재 미국 갑부들이 주장하는 기본소득론이 이 같은 내용이라고 장 교수는 지적했다. 장 교수는 이처럼 국가가 부담해야 할 복지를 시장에 맡기는 건 "공평이냐 불공평이냐를 떠나 매우 비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복지제도의 한 가지 좋은 점은 사회보험을 공동구매해서 단가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정부가 제약회사로부터 당뇨병약 3000만 명 어치를 사는 반면, (복지가 민영화한다면) 보험회사는 기껏 수만 명 수준의 약을 산다. 그만큼 복지 단가가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그 반면교사로 미국 사례를 들었다. 그는 "(의료 체계가 민영화한)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17%를 의료에 지출하는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0~12%보다 낮다"며 "하지만 미국의 건강지표는 멕시코 등을 제외하면 선진국 중에서는 최하위 수준이다. 결국 의료비 지출은 엄청나게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하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어 한국 정부의 복지 서비스가 떨어진다며 최근 이례적으로 낮은 합계출산율이 유지되는 한국 사회 현실을 꼬집었다.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이다. 장 교수는 지속가능한 사회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복지제도의 효율성을 우리 사회가 깊이 새겨야 한다고 전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장 교수의 신간 출간을 기념해 마련됐다. 장 교수는 책에서 마늘, 도토리, 쇠고기 등 18가지 음식 재료를 예로 들어 경제 현상을 진단하고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했다. 쇠고기 챕터가 남미의 축구 얘기로 시작해 쇠고기 이야기를 거친 후 국제무역 체제의 문제를 짚는 방식으로 마무리되는 식이다. 고추 부문에서는 쓰촨요리로 시작해 돌봄노동을 짚는다. 들어가는 말에서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마늘을 예로 들며 영국 요리(!)를 거론한 후 경제학의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그는 지적한다.

장 교수는 "경제 문맹 퇴치가 중요하다. 우리 사회의 모든 게 경제논리에 따라 결정되므로, 모든 시민이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민주주의가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경제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을 상대로 쓴 책"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2007년 펴낸 <나쁜 사마리아인들>(부키)을 2006년 탈고하고 처음 '음식과 경제학을 잇자'는 생각을 했다. 당시 쓴 두 챕터가 도토리와 멸치인데, 책에 실린 멸치 부분은 당시 원고 거의 그대로"라며 "원래는 더 빨리 쓰고 싶었지만 15년간 (제 속에서) 부글부글 끓다가 나온 책"이라고 언급했다.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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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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