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국회 전원위원회가 소집되기도 전에 '의원 정수 확대'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전원위에서 논의할 3개 안 가운데 의원 정원을 현행보다 50석 늘리는 방안이 일부 포함되자, 국민의힘은 돌연 '전원위 불참 불사'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의 이같은 태도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대일 굴욕외교 국면 전환용 문제제기'라고 비판했다.
여야 양당 원내대표는 20일 오후 김진표 국회의장 주재로 만난 자리에서 선거제 개편안을 두고 맞부딪혔다. 김 의장은 모두발언을 통해 "두 분 원내대표가 적극적으로 해주셔서 정개특위 소위에서 합의안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 전원위원회에서 열어 논의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면서 "어려운 정치 현안이 많은 국회지만 국민들의 신뢰 받을 계기가 된다"며 양당 간 합의와 협력을 독려했다.
박 원내대표는 그러나 모두발언에서 "전원위 가동 전에 좀 논의가 제한되는 상황으로 치닫게 돼 제대로 된 정치개혁이 논의될지 심히 염려된다"며 주 원내대표를 저격했다.
박 원내대표의 말은 이날 오전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에서 나온 여당 지도부 발언을 겨냥한 것이다. 앞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소위원회는 지난 17일 △소선거구제 및 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 및 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 및 권역별·비례대표제 등 세 가지 개선안을 여야 소위 위원 간 합의로 국회 전원위원회에 상정하기로 했다. 국회의장 자문기구가 만든 안을 토대로 압축 의결한 것인데, 이 가운데 1, 2안은 의원 정수를 350명까지 확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20일이 되자 국민의힘은 "국회의원 정수는 절대 증원시키지 않겠다"(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라고 돌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김 대표는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안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그 근본 취지는 민주당이 앞장서서 비틀어놓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국적 불명, 정체불명의 제도를 정상 제도로 바꿔놓자는 데 있다"고 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이날 오전 국민의힘 정개특위 위원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뒤 기자들과 만나 "지난 17일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소위에서 내놓은 선거제도 결의안은 우리 당의 의원총회에서 나왔던 안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특히 1, 2안은 의원 정수를 50명 늘리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마치 우리당이 의원 증원에 동의하는 것처럼 알려져서 많은 항의와 혼란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22일 정개특위 전체회의 전에 우리 당 의원들의 의견이 반영된 안을 만들겠다. 만약 우리 당의 안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전원위 개최 여부를 다시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전원위 불참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의장 주재 여야 회동 후 취재진으로부터 '민주당에서 의원 정수 확대 방안을 그대로 두고 논의하자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자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전원위가 열리는 쪽으로 가야하고, 정수 늘리는 쪽으로 주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라 굳이 그렇게 해서 전원위 안 열리게 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했다. 그는 '의원 증원에 대한 김 의장의 의견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인원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것을 알고 계실 것"이라고 했다.
박 원내대표는 반면 "현재 의원 정수를 국민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늘리기가 쉽나. 그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라면서 "본인들이 대일 굴욕 외교로 엄청난 국민 비판과 성난 민심을 맞닥뜨리니 그것을 회피할 용도로 의원 정수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게 정치 상식을 갖고 있는 분들의 타당한 태도인지 묻고 싶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저는 사실 의장 자문기구가 의원정수 확대를 과도하게 해놨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저는 개인적으로는 수용할 수 없다"면서도 "절차적으로 전원위에서 논의하려면 안이 필요하니 몇 가지를 놓고 논의 시작하되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 정치 개혁을 달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게 기본 취지 아니었나, 그게 더 중요하다"고 비판했다.
정개특위 소위에서 전원위 토론에 부칠 안을 합의로 만들 때는 별 움직임이 없던 국민의힘이 갑자기 '의원 증원 반대'를 부르짖고 나선 데 대해 민주당은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앞서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전원위원회 논의를 위해) 절차적으로 안이 필요한 상황이고, 여야 안이 정해지지 않아 의장 자문기구의 안을 올려놓고 개별 의원들이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 안이 모여지면 정리를 하기로 했던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박 원내대표는 "의장 자문기구가 다양한 의견을 내놨으니 들어보자 이런 입장을 갖고 있는 분들 있다면 들어보라는 차원인데 여기에 대해 선뜻 동의하고 무슨 자기 밥그릇 챙기는 것처럼 상대를 일방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나쁜 정치 행태"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의석수 늘리는 것에 우리 의원들이 선뜻 동의하겠느냐"며 "(여당이) 대통령실과 사전에 개입해 어려운 여론 환경인데 이 국면을 빠르게 전환할 수 있는 (방안 아니냐고) 교감을 했을지 모른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양당 원내대표는 이날 회동에서 양곡관리법 처리 문제를 두고도 대치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27일 본회의에서 과반 의석을 앞세워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직회부했으나 김 의장의 거부로 표결에는 실패했다. 이에 민주당은 3월 국회 첫 본회의가 열리는 23일에는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양곡관리법 개정안 가운데 포함된 '의무 매입'을 문제 삼으며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박 원내대표는 "의장께서 이미 23일 본회의(3월국회 첫 본회의)에서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공언했다. 처리 시점은 불변"이라면서, "저희가 초과 생산량 3~5%, 가격 하락폭 5~8%에 더해 쌀 재배 면적이 늘어날 경우 의무 매입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까지 포함해 대폭 의장 의견을 수용했는데, 저희는 계속 양보하고 여당은 여전히 거부권만 믿고 가겠다고 하면 대화가 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부 여당을 향해 "대통령 거부권에 목매달고 있다"고 꼬집으며 "여러 가지로 봤을 때 대통령 거부권 행사만 오매불망 기다리며 자신들이 주도하는 중재안이나 타협을 전혀 구상하지 않는 정부 여당으로 보여질 뿐"이라고 밝혔다.
주 원내대표는 "다시 합의할 여지가 있는지 챙겨보겠다"면서도 "다만 의무 매입이 있는 한 저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 변함 없다는 정도의 입장 개진이 있었다"고 밝혀 양당 간 합의 처리가 사실상 난망한 상태임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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