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국내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수요량이 정부의 재생에너지 공급량을 넘어설 것이란 설득력 있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망의 요점은 명확하다. RE100 등으로 국내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수요량은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정부가 재생에너지 공급 목표량을 줄이면서 재생에너지가 부족해질 것이란 얘기다.
애플과 같은 주요 글로벌 기업이 협력사들에 RE100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에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14.7%가 해외 고객사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받고 있고 특히 대기업의 경우는 그 비중이 10곳 중 3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에만 삼성전자와 현대차, 네이버 등 13개 기업이 RE100에 가입하면서 2023년 3월 기준 국내 RE100 참여 기업은 29개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안에는 RE100 가입 기업이 40개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국내 산업이 부족한 재생에너지 발전량에 발목 잡힐 것이란 우려가 계속돼 왔다. 국내 기업이 RE100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 자동차와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의 수출액이 각각 15%, 31%, 40%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 바 있다.
주요 8대 대기업의 전력 소비량과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비교한 결과를 보면 이미 우려가 현실이 된 상황이다. 2020년 기준 국내 태양광·풍력 발전량은 22.4테라와트시(TWh)로, 8개 기업(SK하이닉스,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현대제철, 현대자동차, 포스코, 삼성 SDI, LG전자)의 전력 소비량(국내외 사업장 포함)인 84.9TWh의 4분의 1수준에 불과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전체 발전량 대비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율은 2020년 기준 5.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다. 독일(43.6%), 영국(43.1%), 이탈리아(41.5%) 등 유럽 국가들뿐 아니라 미국(19.7%), 일본(19%)에 비해서도 크게 뒤처져 있다.
그런데 2023년 전력산업기반기금 예산을 보면, 재생에너지 관련 예산 대부분도 전년 대비 감액됐다. 구체적으로 신재생에너지발전차액지원 △1,239.5억 원(△36.6%), 신재생에너지보급지원 △744억 원(△23.2%), 신재생에너지금융지원 △1,917억 원(△29.1%), 공공주도 대규모 해상풍력 단지개발지원 △10억 원(△11.1%), 신재생에너지핵심기술개발 △234.8억 원(△7.9%) 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올해 초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기어코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목표를 축소했다. 2021년에 확정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상향안의 2030년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30.2%(185.2TWh)이었는데 제10차 전력계획에서 그 비중을 21.6%(134.1TWh)로 낮췄다.
2030년에 재생에너지 공급량이 수요량에 비해 부족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19일 기업재생에너지 이니셔티브와 플랜 1.5가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30년 재생에너지 공급량은 기업 수요량의 절반에 그친다. 국내 기업의 2030년 재생에너지 수요는 최대 172.3TWh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반해 태양광(58.9TWh)과 풍력(38.9TWh)을 통해 공급가능한 재생에너지는 2030년 기준 97.8TWh로 기업 수요의 약 56% 정도에 불과하다.
RE100 수요 외에도 RPS, 건물 등 다른 부문의 재생에너지 수요도 고려해야 한다. 기후솔루션과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플랜1.5, 환경운동연합 등이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를 40% 이상으로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가 발간한 ‘2020 신재생에너지 백서’를 보면, 한국의 재생에너지 시장 잠재량은 태양광 495TWh, 풍력 171TWh로 2020년 기준 전체 발전량(579.9TWh)의 85.4%와 29.5%로 충분하다. 시장 잠재량은 정부의 지원정책과 규제정책을 반영할 때 현시점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을 말한다.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 40%는 주요 국가들과 비교하면 그리 높은 수준도 아니다. 주요 국가들의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는 독일(80%), 영국(70%), 미국(50~70%)에 이르고 일본도 36~38%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금은 재생에너지 공급 속도를 조절할 때가 아니다. RPS 의무공급비율을 재상향하고 소규모 FIT를 확대하는 등 재생에너지 지원 제도를 다양화해 보급 속도를 높여야 한다. 소규모 재생에너지 사업자 육성·보호를 위해 한국형 FIT 제도 용량 기준을 500킬로와트(kW) 미만으로 완화하고 지원을 강화해야 하며 주민수용성 확보 및 국토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 협동조합에 지속적인 인센티브를 지원해야 한다. 해상풍력 보급 확대를 위해서는 국회에서 계류 중인 관련 법안이 하루빨리 통과돼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
자가용 및 유휴부지 태양광 확산을 위한 예산을 확대하고 정책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자가용 태양광은 별도 계통연계가 불필요하고 도시 유휴부지 활용이 가능하며 요금 상승에 따른 비용 절감, 낮 시간대 전력피크 완화 등의 장점이 존재하므로 정책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전기요금이 비싼 독일(74%), 미국(40%) 등에서도 자가용 태양광 비중이 높다. 주요 국가에서 시행 중인 태양광 설치 의무화 등 자가용 태양광 확대를 위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인 재생에너지 관련 정책과 정반대로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때마침 기후솔루션과 시민사회단체, 청년, 지역환경단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 등으로 구성된 공동 원고인단이 10차 전기본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바로 잡을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고려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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