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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성전환수술 없이도 '성별정정' 가능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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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성전환수술 없이도 '성별정정' 가능 판결

트랜스젠더 인권에 영향 줄까? … "당사자 의사에 반하는 수술 강제는 '프로크루테스의 침대'"

법원이 외부성기를 제거하는 성전환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을 허가하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 2021년 생식능력 제거수술을 받지 않은 FTM(여성에서 남성으로의 전환) 트랜스젠더 남성이 성별정정을 허가받은 데 이어, 이번엔 MTF(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전환) 트랜스젠더 여성이 수술 없이 성별정정을 허가받았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방법원 제2-3민사부(우인성 부장)는 지난달 14일 트랜스젠더 여성 A 씨가 제기한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정정 신청 항고심에서 A 씨의 성별정정을 허가했다.

생물학적 남성으로 태어난 A 씨는 성전환수술을 받진 않았지만 여성으로서의 성정체성이 확고했고, 8년간 여성 호르몬제를 투여 받으며 학교 및 직장 등에선 여성으로 생활해왔다.

앞서 지난 1심은 기존 성별의 성기를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성별정정이 "사회적 혼란과 혐오감·불편감·당혹감 등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A 씨의 신청을 기각한 바 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성별정정에 있어) 성전환수술은 필수요소가 아니며,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는 생식능력 박탈 및 외부성기 변형 강제는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점을 들어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성별정정 신청자가 이전 성별의 성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사회적 혼란 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한 1심 판결에 대해서는 "성전환자의 외부 성기가 제3자에게 노출되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라며 "극히 이례적인 경우를 전제해 사회에 혼란이 초래된다고 일반화할 수 없다"고 봤다.

무엇보다 재판부는 A 씨의 경우처럼 "호르몬 요법만으로도 성별불쾌감이 해소되는 경우가 있"다며, 그럼에도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여 성별불쾌감을 해소시키는 정도를 넘어 육체적 변형을 추가로 요구한다면, 이는 일정한 키에 부합하지 아니하는 사람의 다리를 자르거나 몸을 늘리는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와 다를 바 없다"고 판단했다.

성별정정에 있어 의료적으로 수술이 필요치 않은 경우까지 '당사자에 의사에 반하여 수술을 강제'하는 것은 "인간 자체의 온전성"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게 법원의 지적이다.

실제로 유럽 등 해외에선 성별정정의 조건으로 성기 제거 및 부착 수술 등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추세로 자리 잡고 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지난 2017년 "본인이 원치 않는 불임수술(생식능력제거수술)을 성별 변경의 조건으로 명시하는 건 유럽인권협약을 위반하는 것"이라 판시한 바 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그에 앞선 2011년 생식능력 제거 등의 성전환수술을 성별정정의 요건으로 하는 법을 위헌이라 판단했고, 지난해와 올해엔 스페인과 핀란드에서 각각 비슷한 취지의 법안이 통과됐으며, 국내 대법원 또한 지난 2020년 성전환자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을 개정하면서 신청자의 (성전환)수술 여부를 '조사사항'에서 '참고사항'으로 수정했다.

다만 국내는 성별정정에 관한 법안이 명확하게 개정된 경우가 아니고, 이에 재판부에 따라 여전히 성전환수술이 성별정정 허가의 주요 기준으로 작용해온 경향이 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장서연 변호사는 지난달 22일 '공감' 홈페이지에 게시한 글에서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사건은 판사의 성향에 따라 법원의 결과가 다르기 때문에 예측하기 어렵다"라며 "법적 성별은 생물학적 요소와 정신적 요소, 사회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인권단체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또한 지난 15일 성명을 내고 "여전히 많은 법원들은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신청 사건에서, 신청인이 '성전환 수술'을 하여 생식능력을 상실할 것과 외부성기 성형수술을 한 경우에만 신청을 허가"하고 있다며 "이는 자신의 성정체성에 따른 성을 법적으로 확인받을 권리, 인간으로서의 존엄, 신체의 온전성, 자기결정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생식제거를 포함한 성전환수술이 성별정정의 조건에서 배제된다고 하더라도,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성별정정을 허가받기 위해선 수많은 증빙 과정이 필요하다. 신청인은 가족관계를 포함한 기본적 증명서류들은 물론이고 출입국 기록, 혼인관계, 정신과 진단, 수술확인, 의사의 소견, 성장환경에 대한 주변인 진술, 해당 진술에 대한 인우보증, 당사자의 신용정보 등을 법원에 증명서 형태로 제출해야 한다.

▲지난해 7월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2022 서울퀴어퍼레이드. ⓒ프레시안(이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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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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