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의 핵심 어젠다로 환경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첫 정부는 녹색성장을 추진한 이명박 정부로 볼 수 있다. 정권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환경을 바라보는 관점에 차이가 있지만,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의 그린데탕트, 문재인 정부의 2050 탄소중립,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그린데탕트를 적극 수용하는 현 윤석열 정부 입장까지 적어도 환경적 가치가 발전국가의 시기를 이끌었던 경제적 가치만큼 중요해졌다는 사실은 지난 20년 한국의 분명한 변화이다.
환경 문제는 국내적으로 뿐만 아니라 남북대화·협력을 위한 마중물로도 기대가 크다. 특히,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핵심 행위자인 탄소의 배출을 막으려는 탄소중립에 정책적 관심이 쏠린다. 이념, 진영과 같은 오래된 경계를 넘어서 전 세계가 탄소를 공동의 적으로 규정하는 상황에서 남북한 사이에 굳게 닫힌 경계의 문도 탄소감축으로 인해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자리한다. 하지만 탄소중립이 곧 정치적 중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남북의 환경 문제 대응을 바라보는 많은 이들이 북한을 한국의 '추가적 탄소흡수원'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탄소배출권 거래시장 활성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대는 북한의 필요(needs)에 대한 이해에 바탕을 두기보다는 우리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우선하는 데서 나온다. 이 같은 시각에는 남한중심주의와 경제결정주의가 엿보인다. 언젠가 탄소중립을 의제로 남북이 대화 테이블에 앉기 전에 그 만남이 양측 모두에게 의미 있으려면 우리 안의 남한중심주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탄소중립에 대한 북한의 다면적 인식을 인식해야
2019년 9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북한대표단이 파견된 사실은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적 공조에 북한이 적극 협력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지만, 외부의 지원을 받기 위한 일회적인 정치적 제스처로 볼 여지도 있다. 김정은 집권 시기동안 북한 내부적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가 꾸준히 공론화(노동신문 등의 주요 북한매체에서 기후변화와 자연재해에 관한 기사들이 지속 보도)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적 실천들(대표적으로 녹색건축기술, 재생에너지기술 개발, 산림복구전투 등)이 있었다는 점은 정치적 제스처 이상의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
특히, 최근 몇 해 동안 각종 수해와 가뭄, 팬데믹까지 겪으면서 자연의 위력을 실감한 김정은은 작년 8월의 한 연설에서 전통적인 군사위기와 더불어 전염병과 자연재해를 새로운 위기로 언급했다. 북한지도부의 인식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로 볼 때, 현재의 경색된 남북관계가 호전된다면 우리 정부의 탄소중립 제안에 북한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비교적 최근인 2019년 북한 당국의 정책적 관심사를 유추할 수 있는 주요 학술지인 <김일성종합대학학보>에는 탄소거래와 관련한 북한의 역할을 논한 글이 게재되었다.
"우리나라에는 국제탄소무역시장에 적극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이 충분하다. 우리나라에는 온실가스방출감소대상으로 선정할 수 있는 대상들이 많으며 탄소와 관련한 과학기술발전 수준도 높다"(문춘광, 2019, "국제탄소무역시장과 그 진출에 나서는 몇 가지 문제", <김일성종합대학학보 경제학>)
위의 발췌 글만 본다면 우리 정부의 제안에 북한 당국이 관심을 가질 가능성은 한층 커진다. 하지만 같은 글에서 저자는 "발전된 나라들은 자금과 기술을 발전도상나라들에 투자하여 간접적으로 이산화탄소방출할당량을 획득하려 하고 있다"(문춘광, 앞의 논문)면서 탄소감축의 경제적 효과뿐만 아니라 이를 둘러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경제적·환경적 불균등발전에 대한 비판적 의식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발전된 나라' 한국이 자신의 화석연료 기반 경제성장을 위해 북한으로부터 이산화탄소방출할당량을 획득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는 문제제기를 북한 당국이 못할 것도 없다.
이러한 북한 내부의 정책 담론에서 순환되는 탄소감축에 대한 다면적 인식은 단순히 경제적 효과만을 내세운 안을 가지고서 북한과의 대화 테이블에 나서기보다는 환경, 지속가능성과 같은 비경제적 가치와 제1세계/제3세계 환경불평등 구도에 대한 북한 측의 내밀한 인식까지 고려해야만 실질적인 진전이 있는 남북대화가 가능할 것임을 시사한다.
북한 주민이 있다
이 글의 제목인 탄소중립은 정치적 중립과 동일하지 않다. 해외 여러 나라(특히, 권위주의 국가들)에서 탄소중립의 명분으로 조림사업을 위하여 본래 지역에서 살던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켜 그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거주의 권리를 박탈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다. 인류 공동의 적인 탄소 앞에서 우리 내부에 그어진 차이들(계급, 계층, 젠더, 인종 등)이 사라지는, 아니 무시해도 된다는 논리로 이어지는 것이다.
2010년대 중반 김정은의 제안으로 시작된 전국적인 나무심기운동인 산림복구전투는 탄소배출감소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고무적인 국가사업이다. 하지만 북한 국방위원회 산하 인민보안부가 발표한 포고문에는 산림복구를 방해한 주민들은 사형에 처할 수 있다는 문항도 수록되었다. 당장 생계를 목적으로 벌채행위를 한 주민에게 가혹한 사법 조치가 적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즉, 탄소흡수를 위한 식생을 심기에 앞서 북한의 토양 위엔 북한주민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북한 당국이 추진하는, 어쩌면 우리가 지원한 탄소중립 사업이 북한주민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까지 고려되어야 한다.
현재 탄소중립 논의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북한의 공간은 탄소감축 잠재량을 가리키는 숫자들로 재현된 추상적인 공간이다. 이러한 추상적 공간은 오직 탄소를 흡수할 수 있는 식생이 있는 토양과 그렇지 못한 불모지로 나뉜다. 어떤 식물, 동물, 인간이 살아가고, 그 인간과 비인간들은 어떠한 바람을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공간은 확보되지 못한다.
지금까지 북한 연구는 주로 권력을 쥐고 있는 김정은과 지배세력에 초점을 두는 정치학 연구로 충분하다 여겨졌다. 자연은 인간의 의도대로 인간 활동의 배경으로만 머물던 시대였다. 하지만 자연이 이제 배경이 아닌 무대 전면으로 나와 인간의 판단과 행동에 좀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군사위기와 함께 자연재해, 전염병 위기를 묶어 3대 위기로 규정한 김정은의 발언은 역설적으로 북한을 대화의 자리로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북한 지도층을 둘러싼 자연, 그리고 그들의 주민들에 대한 분석이 필수적으로 다뤄져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남과 북, 한쪽은 이익을 얻고, 다른 한쪽은 피해를 감수해야하는 탄소중립이 아닌 한반도에 살아가는 인간과 비인간들의 지속가능한 공존을 실현하는 탄소중립을 위해서 우리 안의 남한중심주의를 자각하고, 보다 다양한 다학제적 접근이 필요하다. 탄소중립은 섬세한 정치적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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