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8차 회의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개최됐다. 회의에서는 과업 및 예산 확정 등 주로 내부 경제 문제가 논의됐다. 또 남한 말을 포함한 외래어의 사용을 단속하는 '평양문화어 보호법'을 채택해 눈길을 끌었다.
19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이번 회의가 지난 17~1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개최됐다며 △내각의 2022·2023년 과업 △2022·2023년 예산 △평양문화어 보호법 채택 △중앙검찰소 사업정형 △조직(인사) 문제 등이 논의됐다고 보도했다.
이 중 평양문화어 보호법의 경우 지난 2020년 제정된 '반동사상문화 배격법'과 마찬가지로 외부 문화 유입에 대한 북한 당국의 경계심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강윤석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은 보고에서 "평양문화어를 보호하며 적극 살려나가는 것은 사회주의 민족문화 발전의 합법칙적 요구"라면서 "언어생활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우는 사업의 중요성"이라고 해당 법 채택의 배경을 밝혔다.
그는 "평양문화어 보호법은 우리 언어생활 영역에서 비규범적인 언어 요소들을 배격하고 평양문화어를 보호하며 적극 살려나갈데 대한 조선노동당의 구상과 의도를 철저히 실현하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들을 규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북한 내에서는 남한의 언어가 상당 부분 통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1년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남한 드라마를 접하는 북한 청년층을 대상으로 '쪽팔린다'(창피하다) 등의 단어와 함께 남자친구를 '자기'으로,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등의 말투가 퍼져 있고, 북한이 이를 강하게 단속하고 있는 정황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이러한 법을 채택한 배경에 대해 이날 기자들과 만난 통일부 당국자는 "법률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 평가하기 좀 이른 점이 있다"면서도 "다만 사회 전반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나 추측된다"고 진단했다.
북한은 이번 회의에서 세수 납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간부들을 질책하기도 했다. 고정범 북한 재정상은 예결산 보고에서 "지난해 국가예산집행에서는 결함들도 나타났다"며 "경제부문 일군(간부)들속에서 국가예산수입계획을 순별, 월별, 분기별로 무조건 수행할 데 대한 당의 정책적요구를 철저히 관철하지 못한데로부터 일부 단위들에서 국가납부계획을 미달하였다"고 밝혔다.
그는 "일부 성, 중앙기관들에서 국가예산수입의 기본원천인 국가기업리득금(법인세)을 최대로 늘일 데 대한 당의 방침을 철저히 관철하지 못하였다"며 그 이유에 대해 "경제지도일군들이 국가적인 립장에서 과학적인 타산밑에 자기 단위의 새로운 발전국면을 열어나가겠다는 사상적 각오가 부족한데 있다"고 지적했다.
고 재정상은 "국가경제의 전면적발전과 리익보다 자기 단위의 협소한 리익만을 먼저 생각하는 경직된 사상관점과 일본새(업무태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자립경제의 지속적이며 전망적인 발전토대를 구축하고 장성궤도에 올려세우려는 당의 구상과 결심이 언제 가도 실현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의 올해 예산 및 지출 규모는 각각 지난해의 101%와 101.7%로 편성됐다. 이중 농촌 환경개선 등을 위한 예산이 지난해보다 14.7% 증가했는데 고 재정상은 "많은 자금을 농촌건설과 농업생산환경을 현대적으로 개변하는데 지출하게 했다"고 밝혔다.
이밖에 국방부문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전체의 15.9% 수준을 유지했고 지난해 33.3% 증액한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방역 예산은 올해도 이 수준에서 결정됐다. 이에 북한이 여전히 방역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한편 이날 회의 주석단에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김영철 전 통일전선부장이 주요 인사가 자리하고 있는 주석단에 앉아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김영철 전 부장은 당직을 내려놓았고 주석단 명단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주석단 두 번째 줄에 앉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에 대남 업무를 주로 맡았던 맹경일 조국전선 서기국장이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맹 신임 부의장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남북관계 개선에 주요 역할을 한 바 있다. 당시 앤드류 김 미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과 함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전 부장의 회담을 조율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맹 신임 부의장의 선임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현재까지 평가할 만한 특별한 사항은 없는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그는 김영철 전 부장에 대해서는 "지위 변동 등에 대해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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