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탄생을 믿지 않아도 많은 이들은 크리스마스가 화이트 하길 기대한다. 덩달아 들뜨며 축복한다. 산타로 변장하고, 보따리 선물을 만든다. 그래서 열두 달 동화 속 산타 마을은 분주하다.
대장 산타 선출도 하고, 각지에서 배달된 아이들의 편지를 열심히 읽고, 장난감 씨앗을 뿌려야 한다. 꼬마 사슴들은 썰매 끌기와 하늘 나는 법을 배우고, 산타들은 체중 관리를 한다. 장난감을 수확하고 누구에게 어떤 선물을 줄지 의논한다.
그러나 정부는 산통 깨듯 이런 날 기습적으로 무엇인가를, 이를테면 문제 많은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같은 것을 처리하기도 한다. "산타의 선물? 그런 건 동화 속 이야기일 뿐이야!" 일갈해주는 셈이다. 전력수급기본계획 확정은 국회 보고를 의무로 하는데 한전법 부결 후폭풍으로 무산되었다. 고요하고 거룩한 크리스마스 이브 직전에 처리 가능한 시간이 확보될지도 분명치 않다.
재생에너지 줄이고 핵발전 늘리는 전기본
10차 전기본의 주 골자는 재생에너지 비중은 줄이고, 핵발전은 늘리고, 화석연료 비중은 유지 내지 소폭 감소하는 것이다. 결국 보따리 배송이 늦어도 태양광이 쏙쏙 빠진 자리에 방사성물질이 가득할 것이란 소문은 흉흉한 채 그대로이다.
지난달 28일 10차 전기본 공청회가 있었다. 지난해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확정하면서 세운 2030년 신재생에너지 비중 30.2%를 10차 전기본은 21.6%로 낮추고, 핵발전 비중은 23.9%에서 32.4%로 높여놓았다.
환경단체와 에너지전환 활동가들은 '정부의 기승전 원전 반대!', '기후위기 대응 실종 계획 규탄!', '기후위기를 방사능 위험으로 대체하는 그런 전기는 필요없다!'고 강하게 항의했다.
탈핵 탈석탄 기후정의를 외쳤다. 기후위기 시대에 사고 위험이 더욱 높아지는 핵발전은 대안이 아니며, 10만 년 이상 독성이 사라지지 않은 핵폐기물만 양산하는 핵발전은 가능한 빨리 꺼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핵발전소 신규 건설과 노후 핵발전의 연장 가동으로 인해 추가 송전망까지 건설하겠다는 계획은 심각한 환경 훼손뿐 아니라 지역의 강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는 번연함을 지적했다.
물론 재생에너지를 무작정 늘릴 수는 없다. 햇빛과 바람으로 발전하는 재생에너지는 방사성 오염물질도 이산화탄소도, 대기오염물질도 배출하지 않는다. 그러나 설비를 위해 채굴해야 하는 많은 자원과 희토류, 리튬, 코발트 등 희귀금속을 생각할 때, 또한 그 금속들이 대체로 지구 남반구에 집중되어 있음을 고려할 때, 무작정 늘어가는 전력을 확충하기 위해 설비를 늘려서는 안된다.
광물의 채굴과 공정과정에서 오염되는 수질과 토양오염, 생태계 파괴, 노동착취 등도 외면되어서는 안된다. 전력, 에너지 소비의 대폭 절감 없는 에너지전환은 지속가능하지도 윤리적이지도 않다. 강력한 수요관리 정책으로 전력 수요의 대폭 감축을 전제로 한 계획으로 수정되어야 하는 이유다.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도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라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의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입장이 엇박자가 날만큼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우려되는 것을 입증해주는 셈이랄까? 그러나 엇박자가 나는 현상이 오히려 어딘가에서는 '정상'이 일부나마 작동하고 있다는 생각에 반가울 뿐이다.
그 엇박자의 이유가 재생에너지 확대 참여 기업이 증가함에 따라 증가할 수요를 맞추기 어렵다는 명분에 힘입어, 그리고 결국은 재생에너지란 표현이 아니라 무탄소전원이라 표현되었을지라도, 가능성은 남아있다는 안도감으로 위로해도 되는 상황이라 기대해도 될까. 아니면 며칠 후, 현실을 깨우쳐 줄 태양광은 빠지고 핵발전을 채워 넣은 산타의 보따리를 선물이랍시고 받게 될까.
아무튼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모처럼 걷히지 않은 눈을 반갑게 밟아본다. 기후변화가 몰고 온 겨울철 건조와 가뭄으로 인해 죽어가는 침엽수의 가시 바른 듯 앙상한 뼈무덤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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