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서울대학교 음대 C교수'가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2019년 4월 피해자의 '미투' 공론화 이후 3년여 만이자 2020년 8월 C교수가 검찰에 기소된 지 2년여 만이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부장판사 강혁성)는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C교수에게 징역 1년과 40시간의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를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는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판단 하에 법정 구속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피고인 측은 피해자의 경제적 사정 등을 근거로 '합의금을 노린 허위 무고'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피해자가 무고나 위증으로 처벌받을 우려,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 성적 수치심을 감수하면서까지 피고인을 무고할만한 동기나 유인을 찾아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재판부는 △피해자가 수사 기관 및 법정에서 피해 사실을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한 점 △피해자의 진술에 '경험하지 않고서는 꾸며내기 어려운 특정적인 정보'가 다수 포함된 점 등을 들어 피고인의 강제추행 행위를 인정했다. 당일 재판은 피고인 C교수의 요청으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지만, 7명의 배심원 전원 또한 만장일치로 유죄 평결을 내렸다.
"내가 이겨낼 수 있을 줄 알았어" … 재판부, '권력형 성폭력' 특수성 고려했다
서울대 음대 C교수 사건은 지난 2018~2020년, 소위 '대학 미투' 국면에서 고발된 서울대 내 수많은 '알파벳 가해 교수' 사건 중 하나다. 가해자 C교수는 지난 2015년 10월 18일 당시 피해자를 공연 뒤풀이 장소로 데려다주는 도중 대리기사 운전하는 자신의 차량 뒷좌석에서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한 혐의로 2020년 8월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통상의 미투 고발이 그렇듯 A 씨의 공론화 또한 숱한 의심의 눈초를 받아왔다. A 씨는 피해 발생 시점인 2015년 이후 공론화 시점인 2019년까지 가해자 C교수와의 관계를 유지했다. 얽히고설킨 학내 관계를 고려하면 선택이 아닌 생존의 방식에 가까웠으나 그 사실이 독이 됐다.
4년 동안 묻어뒀던 피해 사실을 고발한 데 대해, 가해자 측은 '피해를 당했는데 어떻게 친분을 유지할 수 있었겠느냐'는 질문을 핵심으로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피해자의 대학교 지인들 중 대부분은 가해자의 사사를 받은 이들이었다. 그들 중 다수가 가해자 측으로 돌아섰다. 14일 피고인 측 증인으로 재판에 참석한 피해자의 지인 B 씨 또한 "여러 정황상 왜곡된 점이 많았다"며 C교수의 무죄를 주장했다. 피해 발생 시점인 2015년 이후에도 'C교수에 대한 A 씨의 태도가 변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피해자와 가해자간의 관계가 우호적이었다'는 주장은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재판상의 주요 쟁점으로 작용해왔다. 지난달 15일 법원으로부터 성희롱이었음이 최종 인정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의 경우가 그렇다. 당시 박 전 시장의 유족 측은 '피해자가 박 전 시장에게 친밀감을 표시한 대화 내용을 볼 때 피해자를 피해자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당시 재판부는 박 전 시장이 "(피해자의) 직장 내 지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최고 권력자"였음을 지적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위계관계를 볼 때, 피해자가 △불쾌감을 표시하기 어려웠다는 점 △내키지 않아도 성희롱 피해를 감수했을 수 있다는 점 △피해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 재판에서도 비슷한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A 씨가 고발 과정에서 "무고나 위증으로 처벌받을 우려,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 성적 수치심을 감수"했다며 피해자에겐 "무고할만한 동기나 유인을 찾아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교내 혹은 학계 내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는 대학 교수의 권력, 즉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일부 고려한 셈이다. (관련기사 ☞ "팔짱끼자"부터 "넌 이효리"까지 … '교수 성폭력'은 왜 계속되나)
실제로 B 씨가 C교수의 무죄를 뒷받침하기 위해 증거로 제출한 A 씨와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 중엔, 아이러니하게도 A 씨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메시지들까지 담겨 있었다. 피해자가 △술자리에서 행해지는 C교수의 스킨십을 불편해하는 말 △가해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학계 내 본인의 위치를 토로하는 말 등의 '일관적' 정황들이었다.
2019년, '피해를 당했으면서도 왜 C교수와의 친분을 유지했느냐'는 B 씨의 질문에 A 씨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이겨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국민참여재판도 2차 피해 유발" … 지난 5년, 피해자의 삶은 파괴됐다
서울대 내 교수 성폭력 사건들에 대응해온 학생단체 '권력형 성폭력·인권침해 문제 해결을 위한 서울대인 공동행동'은 이날 선고 결과를 두고 "사건의 완벽한 해결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면서도 "권력형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이번 판결은 사건의 더 나은 마무리를 향해가는 중대한 지표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
대학 내에서 일어난, 특히 교수에 의해 일어난 성폭력의 경우 가해자가 가진 영향력에 따라 피해가 확산되는 경향을 보인다. 공동행동 측 권소원 대표는 지난 6월 진행한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C교수 사건 피해자는 공론화 이후 음악인으로서 학계 활동을 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을 맞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허위 미투'라는 C교수 측의 역공과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기 전엔 명확한 징계가 곤란하다'는 학교 측의 방관 속에서 피해자는 사회적 고립 상태에 내몰렸다. 공론화 당시엔 '피해자가 20억 원 가량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했다'는 악의적 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1심 판결만으로 "완벽한 해결"을 말하긴 힘든 이유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C교수 측이 "피해자가 거짓말을 한다고 비난하고 음악계에서 고립되게 하는 등 2차 피해를 가하고 있다"며 "피해자의 정신·경제적 고통이 크고 이는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재판이 배심원을 배석한 '국민참여재판' 형식으로 열린 점 또한 피해자에겐 2차 피해의 일종이 됐다.
방청연대를 조직해 피해자를 지지해온 남성아 천주교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15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재판 당시, 피해자의 행실이나 공론화 당시 경제적 상황 등 '무고' 동기를 추정하기 위한 2차 가해성 신문이 주를 이루었다"고 강조했다. "배심원들의 '사회적 통념'을 자극하기 위해 피고인 측이 피해자다움을 증명하라는 식의 신문 전략을 차용"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성범죄 사건에 있어 국민참여재판은 '가해자 측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프레시안>은 지난 6월 마찬가지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A교수 성폭력 사건' 1심에서도 비슷한 경향성을 확인한 바 있다. (관련기사 ☞ 무죄 선고받은 '제자 성추행' 교수...'서울대 미투'는 계속된다)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이 대법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일반재판에선 3.7%에 불과한 성범죄 무죄율이 국민참여재판에선 47.8%까지 치솟았다.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분석에 따르면 2021년 전체 767건의 국민참여재판 접수 건수 중 최다 접수 사례가 성범죄 재판(189건, 전체 24.6%)이었다.
남 활동가는 "국민참여재판에서 재판부는 배심원들의 평결을 뒤집기를 부담스러워 하고, 배심원들은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나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때문에 가해자들은 비전문가인 배심원들에게 판단을 받는 게 훨씬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다수의 배심원 앞에서 피해 사실을 진술하고 신문을 진행해야 하는 피해자의 상황은 그 자체로도 2차 피해에 해당할 수 있다. 남 활동가는 특히 이번 재판을 두고 "피해자는 온갖 2차 가해성 신문들을 감수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한 최후변론 기회는 제대로 얻지도 못했다"며 "재판부가 재판장에서 유발되는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소송지휘권’을 잘 발휘하고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그는 "이번 판결이 피해자를 고립시키는 문화예술계의 전반적 경향성을 한 번에 바꿀 순 없겠지만, 조금의 인식 변화를 일으킬 계기로라도 작용하길 바란다"고 이번 판결의 의의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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