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해임건의안 처리를 둘러싼 대치 여파로 내년도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을 결국 넘기게 됐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이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를 위해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소집해달라는 야당의 요구를 물리친 대신 오는 8·9일 양일간 잇달아 본회의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2일 입장문을 내고 "헌법이 정한 예산안의 법정 처리시한이 오늘이지만 내년도 나라살림 심사를 마치지 못했다"면서 "국회의장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어 "여야가 '정치 현안'을 가지고 대결 구도를 이어가면 예산안 처리가 어렵기 때문에, 양당 원내대표들과 정부에 예산안 처리 일정을 최우선으로 합의해 줄 것을 지속해서 촉구해 왔다"면서 "여야가 의견을 달리하는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논의하면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해법을 마련할 수 있도록 국회의장으로서 최선을 다해 조정·중재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이 언급한 '정치 현안'은 이 장관 해임건의안으로 풀이된다.
김 의장은 "2014년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을 지키지 못한 경우라도, 모두 정기국회 회기 내에 예산안을 처리했다"면서 "국회에 주어진 권한이자 책무를 이행하기 위해 12월 8일, 9일 양일간 본회의를 개최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9일은 정기국회 종료일이다.
김 의장의 입장 발표에 따라 이날로 예정된 본회의 개의는 무산됐다. 김 의장은 앞서 이날 오전 국민의힘 주호영,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와 재차 회동을 갖고 입장 조율을 시도했으나 양당은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민주당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거듭 김 의장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김 의장 입장문 발표 직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일방적으로 국회를 운영한 의장에게 깊은 유감을 표한다"면서 "오늘 밤을 새서라도 예산안 쟁점 사항을 협상해 타결하고, 주말에라도 본회의를 열어서 의결하면 될 일을 의장과 국회가 왜 예산안 처리를 뒤로 미루는지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미 물러났어야 할 장관 한 명 지키고자 국회가 예산안 처리의 법정시한마저 어기고 기약 없이 멈춰 선다면 국민 상식에 부합할 수 있겠느냐"고 그는 반발했다.
다만 박 원내대표는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모든 권한을 가용해 다음주 정기국회가 끝나기 전에 반드시 이 장관 문책을 처리할 것"이라고 해 이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시도를 다음 주로 넘길 방침을 시사했다. 오영환 민주당 원내대변인도 의총 결과 브리핑에서 "8·9일 본회의에서는 이 장관에 대한 인사조치를 마무리하기 위한 결정 추진도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지난 30일 이 장관 해임건의안을 단독으로 발의했다. 해임건의안이 국회에 접수되면 본회의 보고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표결에 부쳐야 한다. 민주당은 예산안 처리를 위해 이미 잡혀있던 1, 2일 본회의에서 이 장관 해임건의안을 보고한 후 표결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본회의 개최를 반대하고, 김 의장은 '여야 합의를 통한 본회의 개의'를 우선하며 본회의 직권상정에 나서지 않으면서 민주당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당초 여야 간 합의된 정기국회 의사일정상 12월 본회의 예정일은 1·2·8일이었다. 때문에 2일 본회의에서 해임건의안이 보고되더라도 다음 본회의를 8일에 열 경우 72시간이 초과돼 표결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의장이 사전 합의된 8일 본회의에 이어 그 이튿날인 9일에 본회의를 또 열겠다고 밝힌 것은 민주당에 해임건의안 처리를 위한 가능성을 열어준 의미도 있다.
민주당은 다음 주 본회의까지 여야 협상이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단독으로라도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당내 일각에서는 8~9일 본회의 일정이 정기국회 마지막날이라는 점을 감안, 이미 발의된 해임건의안 처리를 건너뛰고 탄핵소추안 발의로 곧바로 건너뛸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오 원내대변인은 해임건의안 대신 바로 탄핵소추안을 발의할 가능성에 대해 "(오늘 의원총회에서) 어떤 방법으로 갈지는 논의되지 않았다"면서 8일 본회의를 하루이틀 앞두고 다시 의원총회를 열어 의원들의 총의를 모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년도 예산안의 법정시한 내 처리는 결국 무산됐지만, 여야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예산안 심사와 해임건의안 등과 관련된 협의를 김 의장 주재로 이어나갔다. 양당 원내대표는 오후 회동에서 △주말 동안 양당 예결위 간사와 정책위의장을 중심으로 감액·예산부수법안 쟁점 해소를 위한 논의를 하고 △오는 5일 원내대표들이 정책위의장 협상 내용을 보고받은 후 직접 나서서 추가 협상에 임하기로 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여야 회동 후 연 기자 간담회에서 "법정 시한 내에 예산안을 처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기한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여당 원내대표로서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주 원내대표는 "내년 예산안에 대한 민주당의 태도는 대선 불복"이라며 "국민 뜻에 따라 윤석열 정부 새로 출범했음에도 민주당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아직도 문재인 정권이 집권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 원내대표는 "저희는 민주당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굴복해 법정시한을 지키기보다, 헌법·법률과 대선에서 내세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예산안 처리 지연 사유를 설명하며 "민주당의 대선 불복 책략에도 9일 정기국회 폐회 이전에 반드시 예산안을 처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주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이상민 장관 해임건의안 추진에 대해서는 "국정조사(합의) 고의 파기"라며 "민주당이 이 장관의 즉각 해임을 주장하는 것은 유족의 아픔을 달래기 위한 게 아니라 유족의 아픔을 이용해 정치적 주도권을 잡으려는 책략"이라고 비난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자당 의원들에게 보낸 공지 문자메시지를 통해, 당 의원들에 내렸던 비상대기 조치는 해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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