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가 성별 불평등에 기반한 젠더폭력과 역무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신당역 살인사건'의 구조적 원인으로 짚었다.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은 20일 오전 서울시청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에서 노동자를 안전히 지켜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피해자를)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며 9월 19일부터 30일까지를 신당역 사건 추모주간으로 선포했다.
기자회견엔 현장 근무 중인 역무원 조합원들과 함께 이은주 정의당 비대위원장, 권영국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 등이 함께 참여했다.
노조는 "(신당역 사건은) 개인 간의 사건이 아닌 명백한 사내 성폭력 사건으로, 산업재해에 해당한다"며 "오래전부터 지적됐던 (역무원) 안전 인력을 확보하지 않고 사건을 방지하지 못한 책임은 서울교통공사의 예산과 인력을 최종 결정하는 서울시에도 있다"고 강조했다.
발언에 나선 권영국 민변 노동자위원회 변호사는 "해당 사건은 사회구조적인 여성차별에 따른 젠더폭력 문제와, 안전한 일터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사회구조적인 (노동) 문제가 함께 중첩된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권 변호사는 "현행 스토킹처벌법이 규정하고 있는 반의사불벌죄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다시 접근해서 '제2의 스토킹'을 하게 만드는 매우 잘못된 독소조항"이라며 제도적 문제를 짚었다. 신당역 사건의 가해자 전주환 씨는 지난 1월 스토킹 범죄로 검찰에 송치된 이후 피해자에게 수차례 연락하며 합의를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또한 실질적인 문제로 지적됐다. 스토킹 범죄가 갖고 있는 위험성에 대한 수사기관과 법원의 철저하지 못한 인식과 태도가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일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 10월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올해 8월까지 경찰은 스토킹 범죄와 관련해 377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이 중 123건(32.6%)을 기각했다. 3건의 구속영장이 신청되면 1건은 반드시 기각된 셈이다.
권 변호사는 여성차별에 따른 젠더폭력과 함께 열악한 노동환경도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권 변호사는 "사건의 본질은 젠더폭력일지언정, 순찰근무가 2인1조로 실행됐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던 사건"이라며 "역무원들이 처한 노동환경에 대한 조사와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 변호사는 "IMF 이후 공기업이나 기관 등에서 시작된 경영효율화와 비용절감, 인력감축의 흐름은 서울지하철 내에서 꾸준히 제기되어온 2인1조 근무 지침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며 "지금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 중인 경영합리화 정책도 이와 맞닿아 있어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서울교통공사가 운영 중인 서울지하철 1~8호선 인력 현황을 살펴보면, 전체 265개역, 1060개 반 중 73개 역, 416개 반이 '2인 근무'로 운영되고 있다. 역사 근무인원이 2명밖에 되지 않으면, 역사를 지키는 인원과 순찰 등 근무 인원이 나뉘어야 하는 역무원 근무 특성 상 2인1조 근무는 불가능해진다.
김정섭 서울교통공사노조 정책실장은 "현재도 악성 민원인 대응 등 위험근무에 대해서는 2인1조 지침이 실행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2인1조 근무가 불가능한 2인근무 역사가 전체 역사의 40%를 넘는 상황 속에서 그러한 지침은 사실상 실행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노조는 "안전한 서울교통공사를 만드는 최종 결정권자는 결국 서울시다"라며 서울시의 책임을 강조했다.
명순필 서울교통공사 노조 위원장은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소셜미디어에 (서울지하철) 2인1조 근무를 지시하는 글을 올렸다가 바로 삭제했다"며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정책) 방향성이 시민들이 바라는 안전인력대책과는 정반대라는 것을 증명한 것과 같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 노조는 △과도한 업무지시, 단독근무 문제 해소 등 역무원 현장 안전 확보 대책 수립 △현장 역무원들에 대한 심리상담 및 근무지 재배치 등 사망사고 관련 조합원 보호 대책 수립 △성평등 직장문화 수립 등 노사 공동 전사적 조직문화 개선 대책 수립 등 "긴급하게 준비해야 할 대책들"을 사측에 제안한 상태다. 공사는 노조의 제안을 수용해 오는 22일 특별교섭을 진행하기로 했다.
김 정책실장은 현장 안전을 위협하는 "과도한 업무지시"가 무엇인지 묻는 <프레시안>의 질문에 "부정승차 단속 등 승객과 물리적 갈등이 일어나기 쉬운 업무에 대해 사측은 해당 업무에 대한 성과를 인사평가 제도와 연동시키고 있다"며 "인사평가 제도 등을 통해 위험할 수 있는 업무를 과도하게 노동자 측에 밀어 넣는 방식은 결국 역무원들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하나의 사례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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