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4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기후정의행진이 이루어진다. 지난 6월 중순 이를 준비하기 위해서 조직위원회를 구성하였다. 340개 넘는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고, 2000명이 훨씬 넘는 추진위원들이 힘을 보태고 있다.
행진을 위해서 모아야 할 1억 8000만 원도 순조롭게 쌓이고 있다. 제주를 뺀, 모든 광역시도에서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다. 아예 시군별로 버스를 대절하여 사람을 모으고 있는 지역도 있으며, 무궁화호 한 차량의 모든 좌석을 빌려 사람을 태워 서울역에 내려놓겠다는 곳도 있다.
수도권의 거의 모든 지하철과 전철 역에 '924기후정의행진'을 알리는 포스터를 붙여 시민들에게 알리고, 광화문 사거리를 비롯하여 곳곳에서 거리연설회를 열어서 시민들에게 함께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배우 문소리, 뮤지션 전범선과 같은 이름난 이들이 얼굴과 말을 내주어 함께 하자고 독려하고 있고, 기후위기를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될 노동자, 농민, 여성, 청(소)년, 장애인, 성소수자 등이 기후정의행진은 우리가 만든다고 선포하고 있다.
서울시와 경찰이 우리들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서 광화문 광장과 도로를 내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모일 것이고 또 행진할 것이다. 이제 행진까지 일주일 남았다. 최소 2만 명을 기준으로 준비된 집회와 행진에 사람들이 모이도록 마지막까지 노력하고, 또 기도할 것이다.
흔치 않은 이 움직임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다. 기후위기는 나날히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과학자들의 경고가 거듭되고 있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세계 곳곳에서 기후재난들이 벌어지고 있다. 폭우와 빙하의 해빙으로 국토의 1/3이 잠긴 파키스탄이나, 가뭄으로 2200만 명이 기아에 빠진 아프리카 뿔 지역이 심각성을 상징한다.
국내에서도 기후재난은 피할 수 없었다. 8월 초 중부권 폭우로 강남대로가 물에 잠기고 반지하 거주민이 폭우에 목숨을 잃었다. 강력한 태풍 힌남노는 남부권을 강타하면서 지하주차장을 무덤으로 만들었고, 포스코 포항 공장을 물과 불로 휩쓸었다. 전 세계가 지난 30년간 온실가스 감축을 주저하면서 그 대가를 치루기 시작했다. 더 늦기 전에 기후위기를 해결하도록 촉구하기 위해서 우리는 행진하려 한다.
이미 한 차례의 행진이 있었다. 지난 2019년 9월 21일, '기후위기비상행동'을 위해서 서울 대학로에 모인 5천 명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7천여 명이 모여서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했다. 그때 세 가지 요구안은 내걸었다. 기후위기 비상선언, 과감한 배출제로 계획, 독립적인 법국가기구. 형식적으로나마 모두 정부와 국회에 의해서 받아들여졌고, 기후운동의 승리로 자축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녹색성장을 달고 나타난 탄소중립과 기업 대표들로 가득 채운 탄소중립위원회가 상징하듯, 정부는 회색자본의 위기 탈출책을 마련하고 새로운 이윤 추구의 기회를 마련하려는데 골몰했다. 지구가 아니라 기업을 구하려 애를 썼을 뿐이다. 기후재난을 가지고 온 책임이 기업과 부유층에게 있다는 명백한 분석에도 그 책임을 묻지 않았다. 이번 행진에서 '기후위기 해결'만이 아니라, '기후정의 실현'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는 이유다.
9월 24일 기후정의행진을 준비하는 조직위원회는 '우리의 요구'를 채택했다.
첫째, 화석연료와 생명파괴 체제를 종식해야 한다. 둘째, 모든 불평등을 끝내야 한다. 셋째,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의 목소리는 더 커져야 한다. 이 요구에서, 우리는 기후위기의 근본적 원인이 '자본주의 성장체제'라는 점을 명확히 지적했다. 그 구체적인 양태인 화석연료, 핵발전, 채굴주의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기후위기는 본질적으로 불평등하고 부정의하다"고 선언하며, 국내외의 모든 불평등에 저항하여 싸울 때만이 기후위기도 해결할 수도 있다 강조했다.
무엇보다 기후위기는 민주주의 실패의 결과라 분명히 말했다. 기후위기를 만들어낸 "기업과 (특히 금융)자본,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기후위기를 온몸으로 겪으며 지금 여기서 다른 길을 만들기 위해서 분투하고 있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로부터 기후위기 해결이 시작되어야 한다. 행진의 규모가 더욱 커지고 있지만 우리의 말과 행동은 둔해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욱 뾰족해질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가 직면한 상황이 급진적이기 때문이다.
이 행진을 통해서 기후운동을 더이상 환경운동이라고만 부를 수 없다는 점을 드러낼 것이다. 조직위원회에 참여하는 단체들과 추진위원들은 환경운동 이외의 수많은 운동에 관여하고 있다. 노조 활동가들이 세계 각국의 노조들과 함께 기후정의 국제포럼을 조직하고 있다. 기후악당 대기업들을 규탄하기 위해 강남대로의 행진을 준비하는 이들은 평화활동가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불평등이 재난"이라는 피켓을 들고 기후정의행진에 합류하겠다고 선언한 반빈곤 활동가, 장애인차별 철폐 활동가, 인권활동가들이 있다.
기후정의운동은 자본주의 성장체제에 맞서 싸우는 모든 운동을 묶는 이름이 되어 가고 있다. 우리는 수많은 운동을 합류시키고 있지만, 경계도 명확히 했다. 기업과 관련 단체, 그리고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정당들은 '우리'가 될 수 없다. 특히 정권을 잃고 갑자기 야당 행색을 하는 민주당이 기후정의운동을 반윤석열 전선으로 이끌어 자신들의 실정을 세탁하려는 시도와 맞설 것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기후운동의 여러 활동가들이 탄소중립위원회에 합류하였다. 어떤 이유와 계획으로 관료와 기업들이 지배하는 위원회에 참여하는지 설명할 것을 요구했지만,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 청소년 위원과 종교계 위원들은 사퇴했지만, 그들은 불충분하고 부정의한 2030년 감축목표와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채택하는데 들러리를 섰다.
어쩌면 그들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것을 보며, 그렇게 타협해서라도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채택한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라 자위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기후정의행진은 그 반대편을 서려고 한다. 강력한 대중운동의 망치를 만들려 한다. 정부와 기업의 반대편에 앉아서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과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며,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는 우리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무시할 수 없도록 하려 한다. 우리의 행진은 불평등한 탄소체제를 부술 망치를 만드는 일이다.
두렵고 무섭다. 슬프고 막막하다. 죄책감이 들고 무기력하다.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면서 많은 이들이 겪는 감정들이다. 이러한 감정들은 개인들이 혼자서만 감당해낼 수는 없다. 우리는 함께 모여서 이 감정들을 나눠야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기후위기를 헤쳐 나갈 용기를 얻고, 기후재난 속에서도 존엄하게 살아갈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이불 밖은 위험하지 않다. 광장과 거리에서 동료 시민들을 만나 안전함을 찾고 위로를 얻자. 다른 세상, 새로운 세상을 찾기 위한 용기를 얻자.
9월 24일, 기후정의행진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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