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Winker가 제안한 돌봄 혁명이 흥미롭다. 피부양 인구의 증가를 따라잡지 못하는 돌봄 인력 수급문제에도 불구하고 임금에 비해 높은 노동 강도가 요구되는 돌봄 서비스 기피와 이에 따른 이주노동자의 유입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점점 더 열악해져 갈 것으로 예상되는 돌봄 환경에 대비해 노동자를 보호하고, 나아가 상호협력과 연대에 따른 촘촘한 사회안전망(Safety-Net)을 기반으로 모든 시민의 참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가자는 것이 돌봄 혁명의 주 내용이다.
지역공동체, 돌봄 문제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는 1990년대 말 진노 나오히코(神野直彦)가 제시한 Work-Fair 원리의 전제와 매우 유사해 보인다. 그는 고령자 돌봄, 아동 보육·교육, 쓰레기 청소나 보건활동과 같은 환경위생, 공원·상하수도·보도(步道) 등 생활관련 사회자본, 치안·소방 등 안전에 관한 분야는 소득이나 자산상황에 따라 대상자를 한정하지 않는 보편적 서비스로서 현대사회에서는 이러한 대인사회서비스가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때문에 이로부터 상호협력에 따른 사회안전망(Safety-Net)이 창출되며 여기에서 원칙적으로는 지역 사회에 속한 전원이 공동작업에 참여하는 노동 제공 의무가 발생한다고 진노 나오히코는 강조한다. 하지만 안전 문제는 비전문가의 참여만으로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지방정부를 설립하고 그 지방정부가 공무원을 고용하여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또는 민간부분에 서비스 실시를 위탁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진노 나오히코는 본다. 즉, 돌봄과 같은 상호부조로써의 노동제공을 사회적 서비스 시스템으로 대체하고, 주민은 향유하는 서비스에 일정의 비용을 지불하고 그 재원으로 서비스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치매국가책임제가 시행될 당시 필자 또한 그 시행에 따른 구체적인 준비와 점검의 몫은 지역주민들 자신과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과 해당 지방자치단체에게 주어져 있고, 이들이 각자의 지역이 가진 실정과 특색을 고려한 치매대응모델을 만들어내고 활용 가능한 자원들(보건의료, 복지, 주거환경, 법률, 재활, 고용 등과 같은 직접적인 자원들뿐만 아니라 교통·치안·안전·교육·금융·일반시민 등 비공식적이고 간접적인 자원들에 이르기까지)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일정한 역할을 감당하게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치매인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지역이라는 차원을 넘어 '누구라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즉, 도시 혹은 공동체에서의 노년(Aging in city, Aging in community) 구현을 피력한 바 있다.
지역사회 통합 돌봄으로 불리는 커뮤니티 케어나 장애인 탈시설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 사회가 풀어가야 할 돌봄 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보다 탄탄하고 지속가능한 체계를 구축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디지털 돌봄의 등장과 한계
한편 코로나19가 미친 파장은 돌봄도 예외가 아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공급자와 수요자 간 대면에 의한 서비스 제공이라는 전통적 방식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AI나 ICT 등 기술에 힘입은 스마트 헬스케어나 스마트 돌봄과 같은 디지털 돌봄 산업도 조금씩 몸집을 불려가고 있다.
스마트 헬스케어란 '개인의 건강과 의료에 관한 정보·기기·시스템(플랫폼) 관련 산업으로서 건강과 의료 IT를 결합, 개인이 소유한 기기(디바이스·웨어러블)나 시스템에서 확보된 생활습관·신체정보·의료이용정보·유전체정보 등을 인공지능·가상현실 등을 활용한 분석을 통해 제공하는 건강관리시스템'이다.
이에 반해 스마트 돌봄이 무엇인지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 필자는 '개인의 생활 또는 건강과 기관의 의료·복지·교통·영양·물류·법률 등 다양한 자원을 연계·통합한 정보·기기·시스템(플랫폼) 관련 산업으로서, 개인 또는 기관이 소유한 기기나 시스템 등에서 확보된 생활습관, 신체정보, 인지정보, 유전체정보, 프로세스와 각종 서비스정보, 가상현실정보 등을 빅데이터·인공지능 등을 활용한 분석 결과를 제공하는 통합관리시스템'으로 정의한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산업을 기술발전에 따라 4단계로 구분한다. 증기로 대변되는 1차 산업사회, 전기와 컨베이어벨트에 의한 2차 산업사회,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3차 산업사회, 그리고 AI·ICT·IoT·로봇 등을 기반으로 하는 4차 산업사회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사회보장·사회복지와 같은 돌봄은 어느 단계에 와 있는가?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근현대적 돌봄의 등장을 1차 산업이라고 할 때 돌봄은 2차 산업단계에 해당하는 표준화·규격화·체계화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지, 3차 산업에서 컴퓨팅을 기반으로 하는 OA(사무자동화)나 ERP(전사적 자원관리) 등은 얼마나 구현되었는지, 앞선 발전이 4차 산업에서의 스마트 돌봄 내지 스마트 헬스케어와는 어떻게 서로 연관을 맺고 있는지 알기 쉽지 않다.
스마트 헬스케어나 스마트 돌봄의 발전이 인간의 삶의 질에 긍정적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여기의 인간은 비단 서비스를 받는 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서비스공급자나 행정·자원 등 관련 분야 종사자도 당연히 포함된다. 아래 그림은 일본의 요양시설에서 발생하는 업무 중 발생 횟수와 부담이 높은 순을 도표로 나타낸 것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컴퓨터 입력이 최상위권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돌봄과 같은 업무가 지닌 고도의 공공성으로 인해 종사자는 이행하는 모든 업무를 기록·보관해야 하는 데서 기인한다. 돌봄 담당자는 이송과 관련된 실제 업무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내용을 기록해야 하는 이중적 부담을 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평가나 모니터링이 강화 내지 제도화되어있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핵심은 전달체계 개혁이다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지만 돌봄에서의 모든 업무도 전달체계와 관련된다. 종래 전달체계는 공공과 민간, 행정과 집행 등 관점에서 수직적·수혜적 측면으로만 이해됐다. 그것이 수많은 정책과 시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옥상옥과 같은 부작용을 야기하기도, 돌봄 진보의 발목을 잡은 원인이 되기도 했다. 디지털 돌봄의 등장에도 작금의 기술 역시 같은 문제를 가진 보통의 소비자상품 수준이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통합 돌봄에서의 전달체계 고도화에 관한 논의마저도 여전히 이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깝다.
필자는 돌봄 체계 구축을 위한 과제의 우선순위를 전달체계 주체의 다각화와 초연결로 본다. 즉, 이용자를 중심으로 돌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각 이용자는 정부 등 관리감독기구, 서비스공급자, 자원 등과 직접적인 다채널을 가져야 하며 전달체계의 주체가 누구더라도 그 체계는 변함없이 작동해야 한다. 여기에 체계성·효율성·전문성·투명성 등도 담아내야 한다. 예컨대 앞서 본 바와 같이 컴퓨터 입력이 중요한 업무라면 그 취지나 목적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이에 소요되는 시간을 최소화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한편, 전문성과 투명성을 반영한 현장 중심 업무 환경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디지털 돌봄 기술이다. 때문에 디지털 돌봄을 단순히 AI나 ICT 기술을 이용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준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필자가 스마트 헬스케어나 스마트 돌봄을 디지털 돌봄으로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보장·사회복지와 같은 돌봄의 규격화·표준화·체계화를 통해 전 사회 차원의 컨베이어벨트를 형성하고, 이를 OA나 ERP 등으로 뒷받침해 돌봄 기반을 구축해야 하며, 여기에 다양한 기술을 접목해 두터운 보호체계와 혁신적 업무시스템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디지털 돌봄이 기존의 돌봄 전달 체계 내에 포섭됨과 동시에 그 안에서 확장성을 가짐을 포함하는 의미다.
변화를 갈망하며
돌봄 문제는 당연히 국가적 과제이지만, 앞서 치매국가책임제에서 말한 바와 같이 지역사회 계속거주(AIP)나 커뮤니티케어의 측면에서 보면 지방정부의 책임과 역할이 더 중요하다. 실제 한국에서도 정부 주도의 통합 돌봄 사업이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지방자치단체장의 돌봄 체계 구축 의지는 더 강고해짐을 짐작 가능한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사실 국가가 하향식(top-down) 방식으로 돌봄의 이념적·제도적·인적 체계를 구축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자칫 각 지역이 처한 상황이나 환경에 맞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때문에 오히려 상향식(bottom-up) 전략을 통해 전달체계 개혁을 목표로 제대로 된 지역 디지털 돌봄 모델을 구축하고 이를 다른 지역으로 확장해가면서 중앙정부와 결합한 최종모형을 완성하는 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대통령 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가 출범했다. 모든 데이터를 연결·활용하여 정부뿐 아니라 기업·국민이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그 달성 목표에는 인프라, 서비스, 일하는 방식의 혁신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 완성되면 국민이 원하는 것을 미리 알아서 제공하는 먼저 찾아가는 정부가 실현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신규사업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위원회는 강조한다. 이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도 든다. '디지털 플랫폼 정부'는 앞선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왔던 전자정부나 스마트도시와 무엇이 다른가. 종래 인프라를 개선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인프라를 만들겠다는 것인가. 어떤 아이디어나 기술력으로 서비스나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이끌어 내겠다는 것인가.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알아내고 그에 걸맞게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인가. 그만 중단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무엇이 핵심인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돌봄혁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분명하다. 주민들이, 지방정부가 스스로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돌봄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갖지 않는다면, 중앙 정부가 이들의 역량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사상누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만들어보고자 하는 디지털플랫폼이 제대로 구축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지역주체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거버넌스를 숙고하지 않는다면 '속 빈 강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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