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좋은 일자리'를 원한다고 한다. 그런데 좋은 일자리란 대체 어떤 일자리일까?
우리 시대 '일자리'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 <톡 까놓고 이야기하는 노동>의 저자들이 <프레시안>과 만났다. <프레시안>은 지난달 29일 서울 합정동 디어 라이프에서 <톡 까놓고 이야기하는 노동> 오프라인 북토크를 개최했다.
책을 지은 이들은 다름 아닌 현장의 노동자들이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공장 비정규직 노동자와 대리운전 기사, 쿠팡 물류센터 직원과 플랫폼 라이더 등 각 분야 노동자들이 노동정책 활동가 및 연구자들과 만나 세 차례의 대담을 나눴다. 현장 실무자들끼리 톡 까놓고 이야기했던 그때 그 내용들이 그대로 책이 됐다.
좋은 일자리는 왜 안 만들어지는가? 애초에 좋은 일자리란 무엇인가? 그리고 전환기의 미래에 필요한 노동정책은 무엇인가? 저자들은 "좋은 일자리를 쌓아올리기 위해" 되돌아봐야 할 정책적 실패와 현장의 투쟁 경험들을 기록했다. 플랫폼 산업과 미래차 산업에서 '갈려져 가는' 노동의 현실을 포착했다. 그래서 필요한 게 뭔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이날 북토크엔 노동자들과의 대담을 진행하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과 안진이 더불어삶 대표가 저자 대표로 참여했다. 두 사람은 플랫폼 노동, 미래차 산업 등이 상징하는 노동 전환기 시대에 맞춰 우리 사회가 '좋은 일자리에 대한 감각'을 길러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상식적인 일자리조차 없다" … 이 시대에 '노동연대'가 필요한 이유
청년 노동자들과 나눈 대담의 일부를 소개하며, 안 대표는 "정말이지 머쓱했던 순간"이라고 해당 순간을 돌이켰다. '갑질 없는 일자리'라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 실제 노동현장의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절실한 것이라는 역설 때문이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취급되는 일자리가 만연한 작금의 노동시장이 "뭔가 잘못돼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 노동현장 속 부조리들을 지목했다.
33.4도에 달하는 고온의 작업환경에서 일하며 "냉방기 좀 설치해 달라" 요구해야 하는 쿠팡물류센터의 노동자들, "점심시간 1시간 보장", "임신한 노동자의 휴가 보장" 등을 얻어내기 위해 53일에 이르는 단식농성을 진행했지만, 그 상식선의 권리가 여전히 요원한 파리바게뜨 노동자들, 본사의 '수주 대박'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최저임금 수준의 처우에 고공농성을 선택한 대우조선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 등 갖가지 사례가 줄을 이었다.
'좋은' 일자리를 논하기 이전에, "너무 기본적인 걸 요구하면서 싸우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고 안 대표는 지적했다.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일어난 '파리바게뜨, SPC 불매 운동'이나 대우조선 하청지회를 지원하기 위한 민주노총의 노동자 대회와 같은 '노동연대'가 지금 이 시대에도 계속되고 있는 이유다.
배달 노동자들과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왜 힘을 합쳤을까?
지난 6월 28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에서도 이 노동연대의 풍경이 펼쳐졌다.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가 폭염대책 마련과 생활임금 보장 등을 요구하며 쿠팡 본사에서 로비 점거 농성을 이어가는 가운데, 플랫폼 배달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이 현장을 찾아 연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해당 사례를 들어 보이며 전환기 시대에 이윤만을 추구하는 플랫폼 기업의 행태에 "분노한 노동자도 뭉치기 시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쿠팡 물류센터, 쿠팡이츠 라이더, 쿠팡플렉서와 쿠팡친구 택배 기사 등" 각각의 고용형태를 대표하는 노동자들이 뭉칠 수 있는 이유는 이미 자신의 현장에서 "한 번씩은 겪어본" 불합리와 부조리 때문이다.
가령 플랫폼 기업과 특수고용 관계로 배달 일을 하는 라이더들은 지금껏 산재보험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하나의 업체와 한 명의 노동자가 고용관계를 맺는' 기존의 고용형태에서 산재보험의 필수요건이었던 '전속성' 때문이었다. 라이더들은 하나의 업체에서만 배달 일을 받아선 생계유지가 힘들어 여러 업체를 이용해 일을 하는데, 이로 인해 "배달의민족에서 일을 하던 노동자가 쿠팡이츠에서 작업 중 사고를 당하면 전속성 문제로 산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등의 일이 일어났다.
2022년 7월 현재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산재보험에 대한 전속성 요건은 폐지된 상태다. 오 연구실장은 "(전속성이 폐지될 경우) 고용자 한 명에 사용자 여럿이 대응되니 각종 세금을 어떻게 거두냐가 문제가 됐다. 각각 사용자에게 배달 1건 당 산재보험료, 건강보험료 등을 따로따로 걷자고 주장하니 미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다"며 "그런데 그거 지금 잘만 하고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사용자의 행정편의에 과도하게 치우친 정책 방향성'이 전환기 노동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5년 안에 다시 '톡 까놓고' 해야 할 말들
오 연구실장은 특히 이러한 노동의 전환을 정책뿐만 아니라 운동적인 측면에서도 고민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노동의 기본요건이었던 전속성이 라이더들의 산재보험을 가로막았던 경우와 같이, 노동의 형태와 성질이 바뀌면서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정책에 있어서 대대적인 친 기업 행보를 예고한 바 있다. 임금체계 개편 등 굵직한 전환 사업 또한 공약으로 예정된 상태다. 오 실장은 윤 정부 5년에 대응하는 노동운동에 있어 플랫폼 노동, 5인 미만 사업장 등 '주류와 다른' 형태의 노동들이 노동계의 생존을 위한 필수과제로 남을 것이라고 봤다. "앞으로 엄청나게 출렁일 5년 동안, 이들을 포괄하지 못하면 노조 운동은 결국 고인 물로 빠져들 것"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삶 그 자체인 노동은 이제 "새로운 것"이 되고 "새로운 틀"이 되고 있다. 익숙하던 것들은 익숙하지 않아 지고 익숙하지 않은 것들은 익숙해지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노동"의 시대가 열린다. 앞으로의 5년은 "그래서 출렁일 것이다." 출렁임의 끝에서 우리가 마침내 '좋은 일자리'를 발견할 수 있을까? 알 수 없겠지만 누구나 좋은 일자리를 원하고 있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노동에 대해서, '톡 까놓고 이야기하는' 자리가 더욱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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