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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유연화, 일자리를 '증발'시키다

[오민규의 인사이드경제] 구조조정 수단으로 악용되는 특별연장근로

"한쪽에선 해고하고 다른 쪽에선 특별연장근로를 신청해요. 이런 방식으로 우리 일자리는 다 증발해 버립니다."

지난 2년 전 한국지엠은 창원물류센터를 폐쇄하겠다는 계획을 노동자들에게 일방 통보한 바 있다. 지엠 측에서 내세운 이유는 창원과 세종, 2곳으로 운영되던 물류센터를 세종으로 일원화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지엠의 비정규직노조는 물론이고 정규직노조도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지난해 3월 31일 창원물류센터 폐쇄는 강행되고 말았다. 그곳에서 일하던 20여명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다른 곳으로 전환배치가 되었지만 30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전원 해고되고 말았다.

해고와 특별연장근로를 섞으면?

문제는 그 뒤에 세종물류센터에서 벌어진 일이다. 창원물류센터에서 하던 업무와 물량이 모두 세종물류센터로 옮겨졌으니 업무량이 폭증하게 된다. 한국지엠 측은 늘어난 물량을 위해 정규직 충원이 아니라 세종물류센터 내 하청업체인 우진물류를 통해 17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충원하게 된다.

하지만 8월에 이르면 이 인력으로도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와 물량이 밀리기 시작한다. 그럼 한국지엠은 추가 인력충원에 나섰을까? 아니다. 우진물류를 통해 고용노동부에 '특별연장근로'를 신청하게 된다. 주당 52시간 한도를 넘겨 주 64시간 근무를 통해 밀린 물량을 해결한 것이다.

장시간 노동으로 증발하는 일자리

즉, 창원물류센터에서 일하던 정규직·비정규직 50여개의 일자리는 세종물류센터로 통합되면서 17개의 일자리만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 과정에서 30여개의 일자리는 공중으로 증발해 버렸는데, 여기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특별연장근로'이다.

노동시간 단축이 과연 일자리를 늘릴 수 있을까? 보수적인 학자와 이론가들은 자꾸 이런 질문을 던지며 노동시간 단축 무용론을 전파하려 애쓴다. 하지만 그 반대의 명제는 의문의 여지 없는 진실이다. 노동시간 연장은 일자리를 확실히 줄이고 있지 않은가.

ⓒ오민규 제공

업무량 폭증 핑계만 대면 허가

2019년까지만 해도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는 ▴재해·재난 대응에만 제한되었다. 그러나 2020년 1월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인명·안전 확보 ▴시설·설비·고장 ▴업무량 폭증 ▴연구개발로 대폭 확대되기에 이른다.

인가사유가 확대된 2020년에 특별연장근로 승인 사업장 수는 4,204개로 2019년 대비 4.6배로 대폭 늘어나게 된다. 2021년에는 6,477건으로 다시 2020년 대비 1.5배로 뛰어 2년 사이 7배 넘게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만 해도 ▴재해·재난 대응으로 특별연장근로 승인을 받은 사업장 비중이 절반 가까이 되었으나, 2021년부터는 ▴업무량 폭증으로 승인받은 사업장 비중이 60%에 이르게 된다. 앞서 사례로 든 한국지엠 세종물류센터 특별연장근로 역시 업무량 폭증을 근거로 지난해(2021년)에 인가받은 사례였다.

화끈한 서비스 : 신청 후 3일 이내 인가

"아니, 한국지엠 사례처럼 누가 봐도 업무량 폭증이 일시적인 사유가 아닌 경우는 고용노동부에서 걸러내야 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일자리와 고용을 줄일 목적이라는 게 분명한 사안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특별연장근로 제도는 이런 상식적인 문제제기가 불가능하도록 승인 절차를 매우 간소화해놓았다. 고용노동부가 요구하는 제반 서류를 준비해서 신청하면 그 날로부터 3일 이내에 인가 여부를 결정해주도록 하고 있다.

단 3일이라니, 세상에나! 고용노동부가 해주는 서비스 중 이토록 신속하게 승인 여부를 결정해주는 제도가 있을까? 최저임금 위반이나 불법파견 문제로 진정 또는 고소·고발을 넣어도 결과가 나오려면 2~3개월 시간을 끄는 건 기본인데, 자본가들을 위해 노동시간을 유연화하는 데에는 정말 화끈한 서비스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3일이라면 한국지엠의 세종물류센터에서 들어온 신청이 창원물류와 연광된 사안이라는 점을 파악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다. 업무량 폭증이 일시적 사유인지 여부, 일자리와 고용을 줄일 의도로 들어온 신청인지 여부를 3일 내에 판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가율 90%대, 실화인가

그 결과 특별연장근로 인가 절차는 자본가들에게 그저 '통과의례'처럼 되고 말았다. 이 절차를 통해 일자리 증발 또는 구조조정 수단으로 악용되는 허위 신고를 잡아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절대로 과장하는 게 아니다.

강은미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연도별 특별연장근로 신청 사업장 대비 인가 사업장 수, 그러니까 인가율을 계산해보았다.(위 표) 특별연장근로 활용이 많지 않았던 2017~2018년에는 인가율이 60~70%에 머물렀으나, 신청이 폭증한 2019년부터는 인가율이 90%를 훌쩍 넘어선다.

수천 개의 사업장이 신청하는데 각 사업장별로 3일 이내에 인가 여부를 결정해줘야 한다. 그런데 신청 사업장 10개 중 9개 이상이 인가되었다는 얘기다. 과연 공정하고 정확한 절차에 의거해 특별연장근로 승인이 이뤄지고 있다고 신뢰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이고 윤석열 정부가 계승하려는 노동시간 유연화의 핵심 수단 특별연장근로, 저 어마무시한 숫자들 속에서 증발해버린 일자리들, 길바닥에 내쫓긴 비정규직 노동자들 숫자는 또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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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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