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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 내릴 물도 없다"…도시는 모르는 지역의 '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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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변기 내릴 물도 없다"…도시는 모르는 지역의 '물 이야기'

[물과 불평등] ①수원은 있지만, 상수도는 없는 마을

도시 거주민들에게 가뭄 피해는 생소하다. 쩍쩍 갈라진 논과 농부의 한탄 섞인 인터뷰는 텔레비전 속 이야기다. 수도꼭지만 열면 물은 문제없이 쏟아진다. 전국 보급률 97.5%에 달하는 상수도 시스템 덕분이다.

다만 가뭄 현장에선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기 좋고 물 좋은 시골'은 없다. 상수도가 연결되어 있지 않은 마을에서는 소변을 처리할 물도 사치다. 여전히 수많은 산간지역 마을들은 상수도가 연결되어 있지 않아 지하수를 생활용수로 이용한다. 가뭄으로 지하수가 마르거나 미흡한 관리로 수질이 오염되면, 지역 주민들은 당장 마실 물이 없다.

전국 상수도 보급률은 97.5%다. 뒤집어 생각하면 국내 2.5%의 지역 주민들은 '상수도 없는 마을'에서 살아간다. 물관리기본법 제4조 1항은 "누구든지 사용 목적에 적합한 수질의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이용할 수 있고, 재해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건강하고 쾌적한 물환경에서의 삶을 누릴 권리"를 명시한다. 2.5%에겐 해당하지 않는 말이다.

2.5%의 지역을 <프레시안>이 찾았다. 상수도 없는 마을에서 살아가는 지역 주민의 이야기를 들었고, 도시보다 비싼 수도요금을 지불해야 하는 지역의 상황을 기록했다. 중앙정부의 개입을 요구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입장을 확인하고, 모색 가능한 대안을 탐색했다. 이 이야기가 존재하는 한, 한국에서 물은 불평등하다.  

강원도 사을기 마을의 '물 없는 날들'

"소변을 밖에서 해결해요, 변기 내릴 물이 없으니까..."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낙천2리 사을기 마을 주민들은 오전 10시가 되기 전 바삐 움직인다. 오후 동안 사용할 물을 미리 받아놓기 위해서다. 작년 겨울부터 시작된 제한 급수로 사을기 마을에선 오전 10시가 넘어가면 물이 나오지 않는다. 단수된 물은 오후 4시가 되어야 다시 공급되므로, 아침녘에 물을 부지런히 받아놔야 오후에도 몸을 씻고 밥을 먹는다.

"머리는 3일에 한 번씩만 감아요. 샤워할 때는 비누칠을 정말 최소한으로 하고요. 오후에 땀이라도 흘리는 날에는 제대로 씻지도 못하죠. 밥을 해먹을 때는 설거지를 최소화 하려고 밥그릇 하나만 사용해요. 물이 없는데 어떡해요. 너무 불편하죠." -사을기 마을 주민 김미정 씨(가명)

▲정오 시간, 물이 나오지 않는 김미정 씨 자택의 싱크대. ⓒ프레시안(이상현)

지난 16일, 가뭄 영향이 계속되던 사을기 마을을 찾았다. 마을주민 김미정 씨(가명)가 물이 나오지 않는 수도꼭지를 직접 돌려 보였다. 점심시간이 한창인 정오 즈음이었지만 미리 받아놓은 물 없이는 밥을 짓지도 못하고 설거지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물을 무제한으로 받아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제한된 물을 마을 전체가 사용해야 하니 혼자 가득 담아놓기엔 눈치가 보인다. 내가 물을 더 사용하면, 옆집은 그만큼 물을 못 쓴다.

"불만 정도가 아니라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지요. 물 없이 하루만 살아보시면 알아요. 아예 살기가 힘든 정도입니다." -사을기 마을 노인회장 박영민 씨

마을주민들은 벌써 반년이 넘도록 '물 없는 날들'을 보내왔다. 지난해 말, 생활용수로 쓰던 인근 지하수원에서 오염이 확인되면서다. 원래는 농업용수로 쓰던 수원이 식수용 수질검사 기준을 통과해 급히 용도를 변경했지만, 물의 양이 턱 없이 모자랐다. 올 여름 찾아온 '역대급' 가뭄으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사을기 마을이 속한 임계면 차원에서 매일 적게는 12톤(t), 많게는 24톤(t)까지 생활용수 지원 차량을 보내왔지만 역부족이었다. 물탱크에 채워 넣은 물이 낡은 관로를 통과하며 새어나갔다. 마을 밖 농수로에 접근하기 힘든 노인들은 생활용수를 밭에 사용하기도 했다. 여러 변수를 거칠수록 필요한 물의 절대량은 늘어나고, 지원할 수 있는 물의 양엔 한계가 생겼다.

임계면 급수지원 담당 민병익 주무관은 "사을기 마을 같은 소규모 수도시설 지역은 노후관로 문제도 있고, 지리상 수차가 드나들기도 힘든 구조라 (급수지원을 해도) 풍족하기가 어려운 면이 있다"고 말한다. 남는 건 주민 개개인이 물을 아끼는 방법뿐이다. 지난 겨울, 마을은 결국 급수를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멀쩡한 화장실을 놔두고 소변을 밖에서 해결하는 것도 절수의 일환이다. 단수가 시행되는 반나절 동안은 변기 내릴 물도 씻거나 밥하는 데 써야할 물이었다.

▲생활용수로 쓰지 못하는 오염된 물 호스를 가리키고 있는 사을기 마을 주민 ⓒ프레시안(이상현)

지역 곳곳 '상수도 없는 마을' … 수원 지척에 있어도, 쓸 물은 없다

"오래 전부터 물이 부족했던 지역."

지역 관계자들은 사을기 마을을 포함한 임계면 내 소규모 마을들을 이렇게 평가한다. 사을기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마을반장 전주호 씨는 "급수시설을 처음 설치한 1978년도에도 수도 및 수원 문제를 겪었다"고 증언했다.

사을기 노인회장 박영민 씨는 "사정이 비슷한 마을이 주변에 많다"며 "제한된 물을 마을 모두가 쓰다 보니 어떤 마을에선 주민들 사이 '물 갈등'이 일어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을기 마을의 '물 없는 날들'은 하루 이틀의 문제도, 마을 하나만의 문제도 아니라는 소리다.

'물이 부족한 지역'이라는 수식어가 민망하게도, 임계면엔 252만 제곱미터(㎡)의 상수원 보호구역이 존재한다. 서울시민이 사용하는 수돗물 '아리수'의 수원인 한강으로 흘러가는 물이다. 다만 사을기 마을과 임계면 인근 지역 주민들은 그 물을 사용하지 못한다. 상수도가 없기 때문이다.

상수도 체계상 '소규모 급수시설' 지역에 해당하는 사을기 마을에는 행정처에서 관리하는 광역·지방 상수도가 연결되어 있지 않다. 마을주민들은 직접 지하수 운영을 관리하며 생활용수로 사용한다.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의 상수원 보호구역 ⓒ프레시안(한예섭)

수도는 운영주체와 크기에 따라 광역상수도, 지방상수도, 마을상수도, 소규모 급수시설로 구분된다. 광역상수도는 둘 이상의 지방자치단체에 공급되는 수도이며 지방상수도는 지방자치단체가 관할 주민에게 공급하는 수도다.

서울이나 광역시 등지에서 가뭄과 상관없이 물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해당 지역들이 광역 혹은 지방상수도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상수원에서 물을 공급받고 정수장에서 정수 처리를 거쳐 가구에 공급하므로,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단수되는 경우가 없다. 수질 검사도 전문가에 의해 주기적으로 이뤄진다.

도시를 떠나 농어촌 지역으로 들어서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상수도 공급 사업은 '규모의 경제'다. 인구가 몰려있고, 밀도가 높을수록 상수도 공급이 원활하다. 농어촌 지역의 마을 단위는 인구도 적고, 몰려 살지도 않는다. 산 속에 있는 마을이면 그만큼 수도관이 연장되어야 해서 비용은 더 높아진다.

"주민들은 대부분 상수도가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하죠. 여기는 옛날부터 물이 부족한 마을이었어요. 지금 땅에 설치된 수도관도 엄청 오래된거라 누수되는 곳도 많고요. 일단은 노후된 수도관부터 고치고, 상수도까지 연결되었으면 좋겠어요." -낙천2리 이장 이창배 씨

"상수도 설치해달라고 (면사무소에) 건의야 수없이 했죠. 결국 불가능하다는 게 결론이에요. 이유는 예산 때문이죠. 여기 마을 규모가 21가구, 22가구쯤 되는데 인구 대비해서 그 수많은 돈을 쓸 수가 없는 거예요." -사을기 마을 노인회장 박영민 씨

2020년 기준 전국 광역·지방상수도 보급률은 97.5%에 이른다. 다만 임계면 내 여러 마을들처럼 농어촌 지역을 중심으로 여전히 지리적 혹은 비용적 문제로 상수도가 설치되지 않는 마을이 존재한다. 이곳 '상수도 없는 마을'들에선 도시민이 상상할 수 없는 '물 접근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가뭄 때마다 물 부족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급수시설 관리 부실로 인한 수질오염·시설노후화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사을기 마을도 기존에 사용하던 생활용수가 수질 검사에서 부적합 평가를 받으면서 물 부족이 심화됐다. 물탱크 청소와 소독, 관로 수리 등을 마을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관리하니 자연스럽게 전문성이 떨어지고 수질 문제가 발생한다.

▲사을기 마을의 물탱크. 지역 주민들이 직접 관리한다. ⓒ프레시안(이상현)

서울시는 100%, 청양군은 45.7% … 상수도 보급률이 가리키는 '물 불평등'

상수도가 없어 가뭄, 수질 문제를 겪는 마을은 사을기 마을과 같은 '오지 마을'이나 섬 마을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제상 전 한남대학교 교수는 '물 인권과 보편적 서비스'를 다룬 2013년 논문에서 "기본적으로 일반상수도와 마을상수도는 수돗물을 만들고 공급하는 시스템에서 큰 차이가 있고 서비스품질 등 지역 간의 형평성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광역·지방상수도가 설치되지 않은 지역과 설치된 지역 간에 △수량과 수질 안전성의 취약성 △집수시설 환경 열악 △관리 전문성 부족 등의 문제를 포괄하는 '물 접근성' 격차가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서울시와 대구광역시 등 대도시의 상수도 보급률이 100%인 것에 비해 농어촌 지역에는 상수도 보급률이 50%도 안 되는 곳이 존재한다. 환경부의 상수도 통계에 따르면 충청남도 청양군의 경우 상수도 보급률이 45.7%로 최하였고, 강원도내 군 단위 지역 상수도 보급률도 82.7%에 불과했다.

보급률이 떨어지면 물 문제가 발생한다. 국가가뭄정보포털에 따르면 2021년 마을에서 사용할 물이 부족해 지자체로부터 물을 공급받은 지역은 57개 읍면동 183개 마을에 달했다.

다시 한 번 가뭄이 찾아온 올 여름, 광역·지방 상수도 보급률이 68.6%로 미진한 강원도 화천군의 경우 계성리, 구만리 등 군내 7개 지역에서 발생한 물 부족 문제로 지난 6월 14일까지 총 2572t의 급수지원이 시행되기도 했다.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의 한 도로에서 물을 공급하고 있는 농업용수 급수차량 ⓒ프레시안(한예섭)

물 불평등과 물 인권 "적어도 먹는 물은 국가가 보장해야"

사을기 마을의 제한 급수는 지난 20일부로 끝났다. 생활용수로 쓰기 적합한 지하수 수원을 찾아내 물탱크에 연결하는 작업을 완료했다. 새롭게 사용할 지하수는 마을 뒤편 산까지 전기로 끌어올려 물탱크에 모은 뒤 각 가구로 보내질 예정이다. 그럼에도 마을 주민들은 "여전히, 언제라도 단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계산해보니까 이번에 사용하는 지하수에 50t 정도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게 또 실제로 얼마나 쓰일 수 있을 지는 모르는거니까요. 수도관도 노후되어 있고 지하수가 언제 고갈될지 몰라서요. 또 급수시설에 이용되는 전기요금에 쓸 비용을 주민들에게 걷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그런 부분은 아직 걱정이죠." -사을기 마을 노인회장 박영민 씨

주민들은 "마을의 지리적 문제로 상수도관이 들어오기 어렵다면 노후된 수도관이라도 고쳐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적어도 아깝게 새는 물 없이 물을 사용하고 싶다는 염원이다.

지자체는 상수도 없는 지역 주민들의 안정적인 물 공급을 위해서는 '중앙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적어도 주민들이 먹는 물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보장을 해줘야 한다는 말이다.

강원도청 수질보존과 관계자는 "현재는 지역 상수도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적어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들이 적자를 감수해가며 상수도 보급 및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라며 "산간지역이 많은 곳은 수도요금 원가가 워낙 비싸서 요금현실화율도 50% 수준이라 적자는 계속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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