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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첫 좌파 대통령, 부통령도 빈곤층 출신 40대 흑인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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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첫 좌파 대통령, 부통령도 빈곤층 출신 40대 흑인 여성

불평등 완화 공약 내세워 당선…중남미 '핑크타이드' 부활하나

부자증세와 무상교육 등 불평등 완화 공약을 내 걸고 젊은층에서 압도적 지지를 얻은 콜롬비아 첫 좌파 대통령 당선인 구스타보 페트로(62) 옆에는 빈곤층 출신으로 첫 흑인 여성 부통령이 될 환경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 프란시아 마르케스(40)가 있었다.

19일(현지시각) 치러진 콜롬비아 대선 결선 투표에서 좌파 연합 '역사적 조약'의 페트로 후보가 50.5%를 득표해 47.3%를 득표한 '반부패 통치자 리그'의 로돌포 에르난데스(77)를 따돌리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페트로는 8월 취임하면 콜롬비아 역사상 첫 좌파 정부를 이끌게 된다. 페트로는 지난 2010년과 2018년에 이어 세 차례 대선 도전 끝에 승리를 거머쥐게 됐다.

페트로 당선에는 우파인 이반 두케 현 정부에 대한 반감이 주요 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대유행 뒤 경제난으로 빈곤율이 40%를 넘긴 콜롬비아에서는 지난해 소득세 및 부가세 증세를 골자로 한 정부의 세제개편안에 서민과 중산층이 반발하면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정부는 곧 개편안을 철회했지만 이미 불이 붙은 시위는 빈곤, 불평등, 부패 등을 문제 삼으며 계속됐다. 지난해 12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4~7월간 시위와 관련된 사망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적어도 28명의 시민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숨졌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올들어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전세계적으로 식품값 등 물가가 급상승하며 정부에 대한 불만은 한층 더 거세진 상황이다.

현 정권에 대한 반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이미 지난달 29일 치러진 대선 1차 투표에서 우파연합의 페데리코 구티에레스 후보가 탈락하며 결선 투표는 좌파 반군 출신으로 수도 보고타 시장을 지낸 현직 상원의원이자 경제학자인 페트로와 기업인 출신으로 전 부카라망가 시장 에르난데스 두 후보가 치르게 됐다. 포퓰리스트로 불린 에르난데스는 이번 선거전에서 부패 척결 외에 공약의 구체화 및 공식 토론을 피하고 소셜미디어(SNS) 틱톡 등을 활용한 홍보 전략을 펴며 '콜롬비아의 트럼프(미국 전 대통령)'에 비유되기도 했다.

페트로는 1980년대에 좌파 게릴라 조직 M-19(Movimiento 19 de Abril, 4·19 운동)에서 활동했고 불법무기소지 혐의로 수감된 적도 있다. 1970년 4월19일 콜롬비아 총선 및 대선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조직된 M-19는 콜롬비아의 대표적 무장반군 조직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에 비하면 규모가 작고 폭력성이 덜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반군 조직이 벌인 가장 잔혹한 사건 중 하나로 꼽히고 적어도 94명의 사망자를 낸 1985년 대법원 습격을 주도한 조직이다. 페트로는 당시 수감 중이었다며 이 공격에 대한 연관성을 부인했다. M-19는 이후 1990년 정부와 평화협정을 체결한 뒤 합법적 정당 활동에 뛰어들었다.

변호사이자 정치분석가인 헥토르 리베로스는 수세대 동안 좌파를 무장조직과 연계시켜 생각해 왔던 콜롬비아에서 2016년 FARC가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은지 불과 6년만에 페트로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낙인이 벗겨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워싱턴포스트>(WP)에 말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콜롬비아는 2018년 이후 멕시코, 아르헨티나, 페루, 칠레 등에서 이뤄진 우파에서 좌파로의 정권교체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10월 치러질 브라질 대선에서도 좌파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이 권력을 탈환할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2000년대 초반 중남미를 휩쓴 '핑크타이드(좌파물결)' 부활이 예견된다. 페트로는 이미 다른 남미 좌파 정부와의 협력을 언급했다. 미국과의 관계도 변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페트로는 반미 독재정권이 집권 중인 베네수엘라를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외교 전략에 대한 협력 등에 대해 재고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마르케스, 선거 과정에서 흑인 정체성 드러내며 불평등 논쟁 촉발…페트로, 마르케스 지적에 임신중단 지원으로 입장 바꾸기도

이번 선거에서 빈곤 및 불평등 완화 정책을 내세운 페트로는 젊은층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콜롬비아에서 빈곤층이 평균 소득에 근접하기 위해서는 11세대가 소요돼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을 정도로 콜롬비아의 불평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같은 조사에서 OECD 평균은 4.5세대였다. 여론조사에서 18-25살 연령대의 페트로 지지율은 64%에 달했다.

페트로는 이번 선거에서 고액자산가에 대한 부유세, 회사의 배당금 및 역외자산에 대한 과세 등을 골자로 한 '부자증세'로 걷은 세금으로 시민들에게 무상 고등교육, 보편적인 건강보험제도 확립, 비혼모를 위한 기본소득을 보장하겠다고 내걸었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이 조치는 4000~5000명 정도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사회정의를 가져오고 생산을 촉진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자금의 원천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페트로의 러닝메이트로 콜롬비아의 첫 흑인 여성 부통령에 당선된 환경·인권운동가 마르케스는 불평등에 초점을 맞춘 페트로의 선거 전략에 설득력을 더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자신이 빈곤층 출신으로 16살에 비혼모가 된 마르케스는 아이를 부양하기 위해 금광에서 일했고 가사 도우미로도 일한 적이 있다. 그는 2014년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불법 금 채굴에 반대하는 행진을 주도한 공로로 2017년 환경 분야 노벨상으로 불리는 골드만 환경상을 수상했다. 2020년에는 지역 대학에서 법학 학위를 취득해 변호사로도 활동했다.

마르케스는 선거 유세 과정에서 커다란 장신구와 화려한 무늬의 옷을 착용하며 아프리카계 콜롬비아인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그는 "나는 역사적으로 예속되고 소외되고 배제된 공동체의 일원이다. 이는 단지 피부색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자신은 우월하고 나머지는 열등하다고 믿는 엘리트의 문제"라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매체는 마라 비베로스 비골라 콜롬비아국립대학 젠더연구·인류학 교수를 인용해 "마르케스는 엘리트에 의해 통치되는 정부의 정당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당신은 당신이 전혀 모르는 공동체를 대표해 말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콜롬비아 인구의 적어도 6.2%를 차지하고 있는 아프리카계 콜롬비아인은 대부분 금광 채굴을 위해 스페인인들이 데려온 노예의 후손으로 여전히 전국 평균보다 높은 빈곤율에 직면해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마르케스가 선거 유세 과정에서 "콜롬비아의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집요하고 솔직하고 날카로운 분석을 통해 콜롬비아의 가장 강력한 정치 집단에서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 인종과 계층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했다"고 짚었다. <워싱턴포스트>는 "마르케스는 노동계급 출신의 흑인 페미니스트 활동가로, 최고 권력에 거의 도달해 본 적이 없는 종류의 사람"이라며 "그는 다른 흑인 정치인들이 거의 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특권에 대해 질문하도록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마르케스의 불평등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은 젊은층, 흑인뿐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소구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페트로는 선거 과정에서 페트로는 여성을 위한 공약으로 가난한 비혼모를 위한 기본 소득, 전업주부를 위한 연금에 더해 임신중단에 대한 조건 없는 지원을 약속했다. 이 중 임신중단에 대한 지원은 지난해 마르케스의 비판 뒤 페트로가 기존 입장인 '임신중단 제로' 정책을 바꾼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페트로와 함께 출마하기로 한 마르케스의 결정은 여성으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됐을 것"으로 봤다.

▲19일(현지시각)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콜롬비아 첫 좌파 대통령으로 당선된 구스타보 페트로(왼쪽)와 첫 흑인 여성 부통령이 된 프란시아 마르케스가 당선 확정 뒤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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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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