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인류를 포함한 지구의 안보를 가장 위협하게 될 문제는 무엇일까? 영국의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2012년 1월 8일 70회 생일을 맞아 "핵전쟁이나 지구 온난화와 같은 재앙으로 인류가 1000년 이내에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1000년 이내"라는 시간은 먼 훗날일 수도 있지만, 가까운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말이다.
호킹이 이러한 경고를 내놨을 때, '설마' 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당시에 핵보유국들인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도 있었고 북한 등 일부 국가들이 핵무기 개발에 나서기도 했지만, 지구촌의 핵무기 숫자는 꾸준히 줄고 있었다.
미국·러시아·중국 등 핵강대국들도 핵전쟁과 핵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경쟁하면서도 협력했었다. 1990~2000년까지 상승했던 지구 평균 기온이 2000~2010년 사이에는 주춤하면서 지구 온난화가 과장된 걱정이라는 주장도 나왔었다.
그러나 인간의 더디기만 한 행보를 질타하듯 호킹의 경고는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오고 있다. 미국-중국, 미국-러시아 중심으로 전략 경쟁이 첨예해지면서 또다시 지구촌에는 '신냉전'과 전 세계적인 군비경쟁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특히 이들 사이의 전략 경쟁은 대만 해협에서의 무력 충돌 가능성 및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그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핵무기를 비롯한 군비경쟁 역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5대 핵보유국들은 핵무기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비공식 핵보유국들인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북한도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이란 핵협정의 부활 여부도 짙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각종 군비통제 조약도 하나둘씩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코로나 19와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세계 군사비는 폭등하고 있다. 냉전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군비경쟁에 있었다면, 오늘날의 국제질서를 '신냉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후 변화가 위기를 거쳐 재앙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여름 미국에서 극한 기후로 인명과 재산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코드 레드"(심각한 위기에 대한 경고)를 입에 올렸다. 심지어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지구 온난화를 "우리 세계의 심각한 파괴력"이라고 부르면서 미국 국가안보에 "존재론적 위협"이라고 평가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발언은 여기서 몇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2021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개막식에서 "지구 종말 시계는 자정 1분 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류는 기후변화에 있어 오래전에 남은 시간을 다 썼다"며 "오늘날 우리가 기후 변화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으면 내일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늦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발언 속에는 지금까지 기후 변화에 대한 주요 국가들의 대응이 "빠르게 온난화되는 바다에 떨어진 물방울"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에 앞서 <2050 거주불능 지구>를 쓴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는 "오늘날 우리가 곳곳에서 목격하는 재난은 미래에 지구온난화가 초래할 재난에 비하면 최상의 시나리오나 다름없다"며, "인류 자체는 물론 우리가 문화와 문명이라고 일컫는 모든 것을 자식처럼 길러 낸 기후 시스템은 이제 고인이 된 부모나 마찬가지"라고 일갈했다. 인류가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일상 자체가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기후위기가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당장의 문제라는 점을 지적한 연구 결과도 있다. 호주의 모나시 대학과 중국의 산둥대 주도로 만들어진 연구팀에 따르면, 기후 변화가 초래하는 극한 기후로 인해 매년 세계 도처에서 약 5백만명이 사망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 사망률의 9.4%에 해당된다. 기후 변화로 인한 사망의 주된 원인은 혹한과 폭염이다. 또 기후 위기는 식량과 식수의 혼란과 해수면 상승을 초래해 무력 충돌과 대량 난민 발생의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이처럼 인간의 주된 사망 원인이자 인류 종말의 시나리오로 언급될 정도로 기후위기가 악화되면서 이에 대한 대책도 다양하게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거대한 예외 지대'가 존재한다. 바로 군사 분야이다. 각종 군사 활동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이 회원국들에게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 보고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군사 분야에서의 배출 보고는 여전히 '자발적인' 영역으로 남겨두고 있을 정도이다. 지구라는 행성에 군사 분야는 마치 별개의 행성처럼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실이다.
냉전시대의 '게임 체인저'는?
돌이켜보면 2차 세계대전 말엽부터 싹트기 시작한 전후 세계 질서의 '게임 체인저'는 핵무기였다. 전시 연합국들로 파시즘을 격퇴하기 위해 손을 잡았던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의 등장을 계기로 잡았던 손을 놓고는 서로 삿대질하는 사이로 돌변했다.
1945년 포츠담 회담 기간에 핵실험 성공 소식을 접했던 미국의 트루먼 행정부는 소련을 대하는 태도를 크게 바꿨다. 소련에 하루빨리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태평양 전쟁에 참전해달라고 요청했다가 '절대 무기'를 손에 쥐자 신무기의 힘으로 일본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미국의 비밀 핵무기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미 알고 있었던 스탈린은 이러한 미국의 의도를 간파하고 있었다. 그리고 포츠담 회담 말미에 소련의 원자력 프로젝트의 수장인 이고르 구르차토프에게 전화를 걸어 전폭적으로 지원할 테니 "속도를 내라"고 명령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스탈린은 몰로토프 외교장관에게 "소련은 그동안 속았소"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다짐했다. "미국과 영국은 유럽과 국제문제에 대해 자신들의 계획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려 하지. 절대로 그렇게는 안 될거요."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8월 6일 히로시마 상공에 피어오른 거대한 버섯구름은 세계사의 중대 분수령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스탈린과 참모들은 원자폭탄이 "일본이 아니라 소련을 겨냥한" 것이라고 뜻을 모았다. "균형이 무너졌다"고 느낀 스탈린은 대일전 참전 일정을 앞당겼다.
당초 8월 15일로 예정되었던 참전일을 8월 9일로 앞당겨 일본이 점령하고 있었던 만주와 사할린 지역에 대한 작전을 명령한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트루먼은 윌리엄 리히 제독에게 물었다. "저 친구들, 정말 서두른 거 아닙니까?" "예, 빌어먹게도 그렇습니다. (원자)폭탄 때문입니다. 다 끝나기 전에 끼어들길 원한 겁니다." 리히의 답변이었다. 그리고 미국이 선택한 것은 나가사키에 또다시 핵폭탄을 투하한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 종식이 냉전으로 둔갑하고 있는 현실을 날카롭게 포착한 사람이 바로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두 달 후에 쓴 칼럼에서 "우리는 몇 초 만에 수백만의 사람들을 몰살시킬 수 있는 무기를 보유한 두세 개의 괴물과 같은 슈퍼파워 국가들이 세계를 분단시키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며, "대규모의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줄어들겠지만, 영원히 '평화가 없는 평화'의 상태, 즉 '냉전(cold war)'을 그 대가로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후 인류의 역사는 오웰의 경고대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매우 역설적인 상황도 벌어졌다. 핵무기가 다른 의미의 '게임 체인저'가 되면서 미소 데탕트 및 냉전 종식에 기여한 것이다. 서로 으르렁대던 미국과 소련이 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한 계기는 3차 세계대전의 문턱까지 갔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였다.
이 위기의 원인은 다각도로 분석할 수 있지만, 핵심은 핵무기에 있었다. 미국이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를 사정거리 안에 두는 주피터(Jupiter) 핵미사일을 터키에 배치하자 소련도 미국의 턱밑인 쿠바에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해 맞불을 놓은 것이다. 그리고 이 위기 역시 양측이 터키와 쿠바에 배치한 핵미사일을 철수키로 함으로써 수습되었다.
그리고 미소는 나와 동맹국의 안보를 지켜줄 것을 믿었던 핵무기가 모두를 파멸시킬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는 핵무기 확산 방지와 핵전쟁 예방을 위한 협력에 나섰다.
핵실험 금지조약과 핵확산금지조약(NPT)은 그 산물이었다.
1972년에 시작된 미소간의 1차 데탕트도 핵전쟁의 공포가 나은 산물이었다. 1960년대 중후반 들어 미소는 핵클럽의 문을 닫고 핵전쟁 방지를 위해 협력하면서도 핵군비경쟁뿐만 아니라 핵미사일을 막기 위한 방어용 무기 경쟁에도 불을 댕겼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바로 공멸의 위험이었다. 그래서 양측은 핵무기 통제뿐만 아니라 방어용 무기인 미사일방어체제(MD) 통제에도 나섰다. 공격용 무기를 제한하는 전략무기제한협정(SALT)과 방어용 무기를 통제하는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은 그 산물이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미국의 전략방위구상(SDI) 천명으로 종말을 고할 위기에 처했던 데탕트를 되살리는 과정에서도 핵무기는 중심에 있었다. 1980년대 미소의 핵무기 보유량은 둘이 합쳐 7만개에 달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는 "악의 제국"과의 핵전쟁에서 승리를 도모하겠다며 전략방위구상(SDI), 즉 미사일방어체제(MD)를 만들고자 했다. 핵 군비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핵겨울(nuclear winter)'라는 말이 지구촌을 배회했고 이 공포를 물리치고자 지구촌 곳곳에서 반핵운동의 열기도 뜨거워졌다.
그러자 미국의 레이건과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핵무기 감축에 나섰고 핵전쟁 가능성의 구조적인 원인인 냉전을 종식하자고 의기투합했다. 역설적으로 핵무기가 품고 있는 공멸의 두려움이 냉전 종식에 기여한 것이다.
21세기의 '게임 체인저'는?
그렇다면 전쟁과 신냉전에 들어선 오늘날의 세계를 구하기 위한 '게임 체인저'는 있을까? 저마다 느낌과 대책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지구촌 앞에 성큼 다가오고 있는 존재론적 위협은 분명 존재한다. 바로 기후위기이다.
기후위기가 지구안보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는 경고는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데에 군사 활동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도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핵무기가 절대안보와 패권을 지켜줄 수 있다는 '믿음'은 냉전의 등장과 격화의 주된 원인이었다. 그 핵무기가 나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파멸시킬 수 있다는 '자각'은 냉전 종식의 주된 동력이었다. 이제는 전쟁과 군비경쟁이 그 자체로도 위험할 뿐만 아니라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주범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할 때이다. 이를 자각할 수 있어야만 신냉전과 기후위기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는 지구를 살릴 수 있다.
핵전쟁이 기후변화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개 핵전쟁의 위험은 섭씨 3천도에 달하는 불덩어리, A급 태풍 위력에 1천배인 핵폭풍, 그리고 거대한 버섯구름이 품고 있는 다량의 방사능 물질로 대표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수십 개의 핵무기가 사용되는 소규모 전쟁만으로도 오존층의 40~70%가 파괴되고, 핵 먼지가 태양열을 흡수해 세계 연평균 기온이 1.25C 정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태풍은 대개 비구름을 동반하지만, 핵폭풍은 뜨거울 뿐만 아니라 건조하다. 거대한 산불을 일으키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핵전쟁과 기후위기가 절멸의 위험을 잉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유사점이 있지만, 매우 중요한 차이점도 있다. 핵전쟁의 공포는 통제할 수도 억제할 수도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진 이후 실제로 핵무기가 사용된 사례는 아직 없다.
또 한때 7만 개에 달했던 핵무기 숫자가 오늘날에는 1만 2000개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아직 안심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핵의 위험이 커질수록 이를 통제하고자 하는 인류사회의 노력도 배가되어왔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즉 임계점을 지나면 돌이킬 수 없다. 섭씨 1.5도는 이를 대표하는 수치이다. 이 수치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인류의 안전 및 생태 보전을 유지할 수 있는 '한계선'으로 제시한 수치다.
각국이 2100년까지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대비 2도, 더 나아가 1.5도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고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와 그 이후 기후변화회의에서 채택한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2019년 배출량을 기준으로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84%를 줄어야 하고 이에 앞선 2030년까지는 43%를 줄어야 한다. 그러나 2030년까지 오히려 탄소 배출량이 약 14%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홀로세(Holocene)'를 '인류세(Anthropocene)'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신생대 제4기의 마지막인 홀로세는 빙하기 후 약 1만 1700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지질학적 시대를 뜻하는데, 기온의 진폭이 섭씨 1도 내로 머물게 함으로써 인간을 비롯한 대다수 생명체에게 안정적인 생존 환경을 제공했었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지구의 평균 기온은 크게 높아져왔고 급기야 홀로세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이에 따라 지구의 지질시대를 정하는 기구인 국제지질학연맹 산하 국제 층서위원회의(International Commission on Stratigraphy) 인류세 워킹그룹은 2016년부터 홀로세가 끝나고 인류세에 진입했다고 주장해왔다. 이는 "인간의 활동이 기후와 환경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쳐 홀로세를 이미 벗어났다는 점에 근거하고 있다.
스티븐 호킹은 2018년 3월 14일에 사망했지만, 그게 생전에 남긴 말의 울림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가 경고한 핵전쟁의 위험과 기후위기가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이러한 위기는 더욱 증폭되고 있다.
다음에 이어질 글 :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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