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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다시 병역거부를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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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다시 병역거부를 선언한다

[2022 여성병역거부선언] ⑦ '피보호자' 여성이 전쟁을 거부하는 법

5월 15일은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International Conscientious Objector’s Day)'입니다. 이날은 폭력에 가담하지 않기 위해 전쟁을 거부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날이며, 전쟁에 동원돼 이웃을 살해하고 세상의 평화를 훼손하는 일에 가담하지 않으려는 개인의 양심에서 시작됐습니다.

'여성병역거부선언'은 이러한 평화운동의 맥락에 동의하며 군사주의가 '정상성 이데올로기'로 선점한 '기존의 의미체계'를 비판하고, 권력이 부여하는 '병역'의 사회적 의미를 고찰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타자화되어온 여성들이 병역을 거부하는 운동입니다. 일상에서 재현되는 모든 종류의 구조적 억압과 폭력에 저항하기 위한 운동이자 특히 구조적으로 전쟁을 '평화를 위한 수단'으로 강화시켜온 군사주의와 가부장 문화 자체를 비판하며 '무엇이 전쟁이고 무엇이 폭력인가?'를 질문하는 운동입니다.

한국에선 2018년에 처음 여성으로서 병역거부 선언이 있었고 이어서 2019년에 강정마을에 사는 세 여성이 병역거부를 선언하였습니다. 그리고 2022년에 네 명의 여성들이 병역거부선언을 하게 되었습니다.2022여성병역거부선언모임

<2022 여성병역거부선언>

① "나는 여성이고, '병역거부자'입니다"

② 보이지 않는 '병역'으로부터 있는 힘껏 도망치기

③ 여성병역거부선언, 병역의 '자격' 너머 다양성 사회로 가는 길

④ "저는 모든 형태의 전쟁을 양심적으로 거부합니다"

⑤ "국가와 애국이 아닌, 생명과 지구가 정의인 시대를 살겠습니다"

⑥ 여성병역거부선언, 그리고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 여성의 날

"전쟁에 저항하는 병역거부선언자이다. 비건 베이킹이나 요리를 만들어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것을 즐기고 숲, 책, 춤, 산책을 좋아한다. 접경지역에 주소지를 두고 있고 도시와 시골의 경계와 접경지역을 오가며 살고 있다." -필자 '숲이아' 소개

저는 병역거부자입니다.

종종 "숲이아는 뭐 하는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듣는다. 나는 병역거부자다. 2018년 평화살롱 레드북스에서 병역거부 선언을 했다. '2022여성병역거부선언모임'에 함께하면서 2018년, 그 이전부터 했던 고민과 그 이후에 했던 고민을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선언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갈등을 회피하는 사람

"경계에서 전쟁이 일어나죠. 제 몸은 경계선이고 제 몸이 전쟁터라는 생각이 들어요. … 저의 비국민성과 제 몸이 전쟁터라는 걸 깨닫고 나니 이게 병역거부와도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제 몸이 전쟁터인데, 더 큰 전쟁이 일어나길 바라지 않습니다."

2018년에 적었던 선언문의 일부분이다. '경계'로 작동하는 몸을 이야기하며 "몸이 전쟁터이기 때문에 더 큰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갈등을 회피하기 위해 도망 다닌 경우가 많았다. 외부와의 갈등을 피하고자 내면에서 갈등했다. 

이를테면 일하면서 갈등이 생길 것이 두려워 먼저 일을 그만두거나, 갈등 상황이 생길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몸이 아파지는 등의 경험들이 그렇다. 고등학생 시절엔 단짝이었던 친구가 나에게 어느 순간부터 말을 걸지 않고 차갑게 대한 일이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 왜 그러는지 끝내 묻지 못하기도 했다. 내 안의 여성과 남성이 싸우고, 노동자와 운영자가 평행선을 이루며 팽팽하게 마주 선다. 노사갈등이 한 사람의 내면 안에서 일어나는 때가 있다.

내면에서의 갈등을 쉽게 겪고, 늘 생각이 많다 보니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 영성단체를 찾아 세미나에 참가하기도 했다. 전에는 힐링이니 치유니 하는 말에 거부감이 들었고, 그것들이 나와는 먼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근 1년 몸과 마음이 아팠던 시기를 지나면서 '살려면 뭐든 필요하다'는 심정으로 치유나 영성 분야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영성계도 결국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갈등이 일어나고, 여러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모습을 그곳에서도 지켜봤다. 폭력을 용인하는 구조는 어느 곳에서나 작동한다.

살아오면서 겪은 여러 갈등과 폭력의 구조 속에서 나는 피해자이기도, 가해자이기도, 침묵했던 방관자이기도 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다툼·싸움이나 조직과 국가 차원의 분쟁·전쟁에 이르기까지 여러 갈등에 취약한 사람으로서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진다. 싸우는 건 두렵고, 조직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피하고 싶고, 전쟁이 일어나는 건 너무 무서운 일이다.

2012년, 환경 단체 안에서 폭력 사건을 겪은 뒤 병역거부 운동을 하는 시민사회단체 '전쟁 없는 세상'에서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평화 이슈는 내 삶에 훅 다가와 있는 것 같다. 폭력과 갈등은 때로 평화에 대한 깊은 갈망을 추구하게 만든다. 나는 여전히 경계에 있고, 바라지 않았던 더 큰 전쟁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

▲5월 15일 세계 병역거부의 날 행사장에 붙어있던 걸개. 강정 평화활동가들이 손수 만들었다. ⓒ숲이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났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군 사상자뿐 아니라 민간인 사상자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라디오나 화면에서 전쟁 관련 뉴스가 나올 때면 그에 주목한다.

지금 시대엔 기술이 발전해서, 폭격으로 무너진 지구 어딘가 건물의 모습을 드론이 세계 곳곳으로 찍어 나른다. 세계 곳곳의 집 안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시간으로 전쟁 장면이 송출되기도 하고, 그 뉴스 보도에 실시간으로 댓글을 달 수 있는 세상이다. 실감이 나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재난과 전쟁 이미지에 익숙해져, 오히려 그에 대해 갈수록 무뎌지고 무감각해지는 건 아닐까 싶다.

며칠 전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상자 수가 4천 명을 넘었다는 보도를 접하고 놀랐다. 전쟁의 여파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만 머물지 않는다. "유럽의 곡창지대"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되는 밀을 주식으로 삼고 있던 나라들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 곡물 거래 시장에선 밀 가격이 상승하는 추세이며, 전 세계 식량안보에 이 전쟁이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기사가 쏟아진다.

당장 우리 눈앞에도 전쟁의 파급효과가 나타난다. 국제유가가 상승해서 제주도에 가는 비행기 푯값이 오르고, 베이킹을 할 때 필요한 재료인 밀가루와 식물성 기름 가격이 오른다. 세계화된 지구에 살아가는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이럴 때 밀가루와 식용유를 쟁여놓고, '주가가 오른다'며 전쟁으로 배를 불리는 기업에 투자하는 선택을 할 것인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전쟁에 대해 눈을 감고 침묵할 것인가?

집에서 밥을 해 먹고, 일터에서 청소를 하고 지우개 똥을 치울 때 일상의 평화에 대한 생각과 지구의 다른 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에 대한 생각을 종종 해왔다. 평화는 일상을 지키는 행위들로 지켜진다는 감각과 함께, 그 평화가 깨져버린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전쟁이 나서 갑자기 살던 곳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과 많은 생명들이 다치고 죽고 있는 현실이 떠오를 때가 있었다.

바로 지금 적극적인 '평화 실천'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평화를 실천하는 건 무엇으로 가능할까, 하는 고민을 했다.

'아무도 해치지 않는' 밥상에서 시작된 병역거부선언

평화가 무엇이냐 할 때, 나에게 평화는 밥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화할 화(和)자는 벼(곡물) 화(禾)자에 입 구(口)자가 합쳐져 만들어진 글자다. 화목하다는 것은 밥을 함께 나누는 행위와 떨어질 수 없다. 비건 채식을 지향하면서 밥을 차리고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행위가 나에게는 일상을 유지하고 평화를 실천하는 중요한 행위 중에 하나다.

하루는 친구 농어(활동명)가 동아시아 에코토피아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기로 했다며 초대를 해주었다. 그때가 3월 7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지 열흘 정도 지난 뒤였다. 채식을 하는 동아시아 에코토피아 친구들과 함께 오향 두부, 한라봉, 단호박 스프, 비건 바나나 케이크와 브라우니, 갓김치 등을 나누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2022년 3월 7일, 동아시아 에코토피아 친구들과 함께 나눈 '아무도 해치지 않은' 밥상 ⓒ숲이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사태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나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우려, 군비증강이 아닌 군축에 대한 목소리를 어떻게 낼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에 농어가 "병역거부 선언을 해볼까?" 말을 했다. 5월 15일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에 무언가 해보아도 좋겠다, 라고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앞서 농어와 병역거부 선언에 대한 마음을 나누었던 연대자 N이 병역거부를 해보자고 연락했다. 그 뒤 2018년과 2019년에 병역거부선언을 했던 나와 강정의 평화활동가들이 그들과 연결됐고, 모임이 꾸려졌다. '2022여성병역거부선언모임'이 그렇게 시작됐다.

2022년 5월 15일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이하여 강정 성 프란치스코 평화센터에서 여성병역거부 이야기 모임이 열렸다. 지난 2018년 하나의 사건으로 일어났던 병역거부선언이 다음 2019년 병역거부선언으로 이어진 순간이었다. 또한 새로운 병역거부선언자 연대자 N, 농어, 카레가 자기 선언문을 직접 낭독하고, 키미의 말은 대독되면서 2018년부터 2022년까지의 모든 선언에 '연결점'이 생겨나는 순간이었다. 

징병국가 대한민국. 이 가부장제, 성차별주의, 군사주의 사회 속에서 병역, 안보, 전쟁에 대해 논의할 때 -그리고 평화를 논의하는 테이블에서조차- 배제당하기 쉬운 위치에 있는 여성들이, 병역거부선언을 하는 모임을 결성해 모여서 떠들기 시작했다. '보호자' 남성 군인과 '피보호자' 여성으로 나뉘는 세상에서 여성이 '군대에 의해 보호받는 위치'를 거부한다는 선언. 이것이 혁명이 아니고 무엇일까.

전쟁에 저항하는 움직임, 적극적인 '평화 실천'을 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가 병역거부이다. 나는 갈등을 두려워하고 전쟁이 무섭지만, 함께 평화를 말하고 실천할수록 이 지구의 생명들이 안전하고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전쟁을 멈추기 위해선 전쟁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군산복합체들이 전쟁으로 돈을 버는 세상이 유지되기보다는 군비가 축소되고 복지로 수많은 돈이 흘러 들어가기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무기를 내려놓기를. 백악관에서 아시아계 혐오범죄를 멈추어야 한다고 연설한 방탄소년단이 군대에 가지 않고 대체복무 할 수 있기를. 전 세계 BTS 팬 '아미'들이 한국의 병역거부, 평화운동을 지지하기를. 세계에 코스타리카 같은 '군대 없는 나라'가 많아지기를. 국가 안보 논리에서 벗어난 대안적인 안보 논의가 확장되기를. 피해자/가해자, 보호자/피보호자, 이성/감정, 여성/남성 등 여러 '틀'에 대해 우리 사회가 끊임없이 질문하기를. 그렇게 해서 경계가 허물어지는 '전쟁 없는 세상'이 실현되기를 꿈꾼다.

평화와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을 나누기 위해 다시 병역거부를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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