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은 '세계병역거부자의 날(International Conscientious Objector’s Day)'입니다. 이날은 폭력에 가담하지 않기 위해 전쟁을 거부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날이며, 전쟁에 동원돼 이웃을 살해하고 세상의 평화를 훼손하는 일에 가담하지 않으려는 개인의 양심에서 시작됐습니다.
'여성병역거부선언'은 이러한 평화운동의 맥락에 동의하며 군사주의가 '정상성 이데올로기'로 선점한 '기존의 의미체계'를 비판하고, 권력이 부여하는 '병역'의 사회적 의미를 고찰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타자화되어온 여성들이 병역을 거부하는 운동입니다. 일상에서 재현되는 모든 종류의 구조적 억압과 폭력에 저항하기 위한 운동이자 특히 구조적으로 전쟁을 '평화를 위한 수단'으로 강화시켜온 군사주의와 가부장 문화 자체를 비판하며 '무엇이 전쟁이고 무엇이 폭력인가?'를 질문하는 운동입니다.
한국에선 2018년에 처음 여성으로서 병역거부 선언이 있었고 이어서 2019년에 강정마을에 사는 세 여성이 병역거부를 선언하였습니다. 그리고 2022년에 네 명의 여성들이 병역거부선언을 하게 되었습니다.2022여성병역거부선언모임
<2022 여성병역거부선언>
환경 다큐멘터리 영화 <대지에 입맞춤을(Kiss the ground)>은 땅의 회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를 통해, 역사상 전례 없는 규모의 가장 강력한 산업형 식량 생산 시스템 구축이 다름 아닌 '전쟁 무기'로부터 비롯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는 질산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활용해 폭탄을 제조했는데, 전쟁이 끝나고 미국 화학 회사들이 하버의 독극물을 제초제로 개발한 것이 지금의 식량 생산 시스템에 이른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대규모 단작지(1년에 한 종류의 작물만을 재배하는 지대)와 군사기지가 묘하게 닮아있지 않나 생각했다. 자연을 인간의 부속품 정도로 여기기에 땅이 견디고 있는 만성 스트레스를 무시하고, 자연과 대화하는 방법을 잊은 것이 아닐지. 매우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군대를 생각하면 여전히 다양한 틀거리가 작동한다. 군대라는 울타리와 국가라는 틀은 '이것'과 '저것'의 경계선을 분명히 하여 '분리'를 이룬다. 전쟁은 적을 상정함으로써 명분을 만든다. 국가가 군사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동안엔 적이 곧 시민이 될 수 있고, 국가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우리를 배제하고 통제할 수 있다. 대전 골령골 학살이 그랬고, 제주 4.3항쟁과 5.18민주화운동 등 멀지 않은 근대의 역사에서도 상처의 대물림이 이어져 오고 있음을 기억한다.
나의 역사 속에도 이는 반복되고 있다.
처음 떠오르는 기억은 친구들과 노래 부르고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한창 행복해했던 어느 밤이었다. 2017년 9월 6일의 늦은 밤에 정부가 사드 추가 배치를 강행한다는 뉴스를 들었다. 한 친구는 바로 길을 나서 성주로 향했고, 남은 친구들은 불안과 무력감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SNS를 통해 비슷한 마음을 공유하는 소식들을 보았고 우리들은 온오프라인을 통해 각자의 위치에서라도 마음을 표현하고 목소리를 내보기로 했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 "평화는 무기로 지킬 수 없다", "나라 간의 전쟁만이 전쟁이 아니다. 시민들의 거부권을 폭력으로 짓밟는 것도 전쟁이다"라는 문장을 들었다.
두 번째는 올림픽의 이면에서 시민들을 향한 통제와 감시가 강화된다는 것을 알게 된 때다. 2018년 2월 개최된 평창올림픽에선 경찰과 군대와 국정원, 그리고 테러방지법에 따라 설립된 대테러센터가 협력하여 만들어진 '평창올림픽 대테러안전대책본부'가 편성됐다.
올림픽에 대한 특별 병력과 보안 작전에 동원된 군인만 5만 명 이상이었다. 경기장 주변엔 움직임 감응 폐쇄회로(CC)TV 900대가 설치되고, 특수산탄총을 탑재한 특공 헬기가 대기하며, 차량형 엑스레이 검색기도 동원됐다. 무기를 든 군인들을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일이, 우리의 안전을 지켜준다는 감각보단 우리가 언제든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감각을 더 날 서게 한다는 걸 알려준 사건이었다.
세 번째는 2018년 10월 제주 강정에서 강행된 국제관함식 행사를 반대하러 가는 길이었다. 석유 에너지를 최대한 지양하며 지구에 덜 해로운 이동 방식을 찾고자 서울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제주로 넘어갔다.
처음에는 장거리 자전거 여행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점점 몸이 유연해지고 근력이 붙는 게 느껴지니 신나고 생기가 돌았다. 경유지마다 친구들을 만나 소식을 나누고 응원과 지지도 얻었는데, 평화가 무언지, 우리가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되면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가능성을 보게 된 계기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달려와 강정에서 마주 본 플래카드엔 "친구는 군함을 타고 오지 않는다"라고 적혀있었다. 대형 군함이 즐비한 군사기지 바깥에서 나는 국가로부터 배제된 이들과 함께 친구로서 곁에 있었다.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구럼비와 산호초, 근방을 유영하던 돌고래, 멸종위기종 붉은발말똥게 등 야생동식물 친구들이 그리웠다.
위의 경험들은 모두 군대가 시민을 상대로 국가폭력을 자행한 사건들이다. 지금껏 우리 사회에선 '군대에 가는 것'이 당연시되어 왔지만, 군대가 수행하는 일에는 '당연한 것'이 하나도 없다.
감사하게도 각 경험의 자리마다 군사기지가 없는 세상에서의 평화와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기존의 세계가 요구해 온 질서들에 의문을 던지며 어떤 틀이 무너졌을 때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꼈다.
병역이 지정하는 특정 '자격' 너머를 생각하고 싶다. 장애, 성, 인종 등의 다름이 존중되는 방향에 대한 제도적 장치를 고민하는 사회, 집단화된 체제 내 위계와 규율보다 다양성을 포용하는 사회를 꿈꾼다. 군사기지를 만들기 위해 뭇 존재들의 서식처가 더 이상 착취당하지 않기를 바라고, 생태계가 회복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왠만하면 모든 존재와 친구가 되고 싶다.
나는 참 친구들로부터 많은 지혜를 얻는다. 내가 여성이든 그 무엇이든 상관없이 나라는 고유성을 인지하게 된 것도 서로를 비추며 배워가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평화를 위한 노력은 자신이 잘 서 있고자 하는 바람으로부터 드러나는데 어떤 친구들은 식물과 같아 본인이 정착하여 지내는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정작용을 하기도 하고, 어떤 친구들은 곤충이나 새와 같아 이곳과 저곳을 연결 짓고 이야기를 이어주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느티나무가 되기도 하고, 버드나무가 되어 숲으로 자라나기도 하다가 휘파람새처럼 여름 한철 맑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끝내 풀 한 포기가 되어 차분히 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렇게 점차 경계가 없이 열린 상태가 되고 구분 짓지 않으며 일상의 평화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역사 속에서 전쟁의 상처는 집단무의식 속에 두려움과 상실감을 깊이 새겼다. 그렇지만 우리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힘을 떠올릴 때 대물림의 역사는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군사적 긴장감이 해제된 자리에 우리에게 다가올 선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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