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논란 많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법)'이 지난 1월 27일부터 시행됐다. 약 세 달이 지난 지금, 결코 적지 않은 기업들이 법을 위반한 혐의로 수사대상에 올랐다는 소식이 들린다. 하지만 법 시행 이후에도 중대재해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지 않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의 중대재해 발생이 기여한 바가 크지만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보여주기식' 안전사고 예방 행태는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 건강을 위협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중대재해법 때문에 기업 활동이 위축되니 그 수위를 낮춰달라는 자본가들의 요구는 여전하다. 이 요구야 당연히 자본 축적과 관련된 그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새로운 정부를 준비하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중대재해법을 기업에 대한 대표적인 '족쇄 규제'라고 화답한 바 이제 '중대재해법'은 국가권력과 경제권력 연합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중대재해법'이 얼마나 더 누더기가 될지 알기 어렵지만 노동자 건강의 소외와 억압을 구조화하는 그 메카니즘의 힘이 더 강력해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건강이 권력의 함수라면 비정규직과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자본가의 이윤이 더 중요한, 시장 원리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중간착취의 지옥도'에서는 돈뿐 아니라 안전과 목숨마저 착취의 대상이다.(☞ 관련 기사 : <한국일보> 2021년 1월 25일 자 '노동의 대가를 도둑맞은 100명의 이야기')
한전에서 지난 5년 간 산재로 사망한 39명의 노동자 중 38명이 하청업체 소속이었다는 점은 그것이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결과임을 보여준다. 최소한의 조치, 안전장비 제공은 비용절감을 이유로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데, 한전은 안전경영책임보고서에 대부분의 산재 사망 원인이 노동자 과실이라 보고했다.(☞ 관련 기사 : <오마이뉴스> 1월 7일 자 ''산재사망 대부분 노동자 과실'이라는 한전, 사실일까') 위험의 개별화!!
위험마저 '외주화'된 한국 사회 전반에서 용역, 파견, 민간위탁, 사내하청 등의 형태로 '간접고용'된 이들은 원청 정규직보다 2배 더 많이 다쳤지만, 산재보험 처리비율은 원청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다.(☞ 바로 가기 : 국가인권위원회 2019년 1월 18일 자 '간접고용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조사') 위험의 외주화!!
더군다나 경제 권력의 책임 회피와 위험의 개별화·외주화는 이전과 비교하여 더욱 노골적이다. 동국제강은 하청업체 노동자의 죽음을 또 다시 개인 탓하며 '합의금'을 제시했다. 책임과 사과는 커녕, 합의금을 받기 위해서는 기업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서류를 써달라는 적반하장격의 단서까지 달았다.(☞ 관련 기사 : <프레시안> 4월 13일 자 '"잘 갔다 올게"라는 남편의 말은 유언이 됐다') 노동자와 그 가족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무시해도 된다는 권력의 태도는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노동자들의 죽음, 그들 가족들의 슬픔과 절망을 토대로 축적된 자본이 다시 다른 노동자들의 죽음과 그 가족들의 슬픔과 절망을 재생산하는, 그 말도 안 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순환구조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힘은 무엇인가?
위험의 개별화와 외주화 뿐 아니라 위험의 비가시화 역시 구조적이고 정치적이다. 얼마나 중대한 재해를 산재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판단기준은 물론, 누구의 어떤 건강문제를 산재라 정의할 것인가부터 그렇다.
산재 인정 기준 및 범위에 영향을 미치는 그 구조와 정치는 차별과 배제의 그것이다. 예컨대 역사적으로 산재, 또는 직업안전보건의 범위는 일하는 남성의 병리상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왔다. 여성 노동자의 노동환경은 비교적 안전하기 때문에, 이들이 경험하는 건강문제는 명확한 진단명이 없거나 또는 사례가 없어서, 또는 여성의 노동은 경제활동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노동으로 인한 여성의 건강문제는 산재라 정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관련 기사 : <한겨레> 2021년 7월 13일 자 '건설업은 위험, 돌봄은 안전?… 성별 편견에 가려진 여성 산재') 일하다가 다쳤는데도 그 사업장이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으면,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더라도 근무기간이 짧으면, 산재로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 이 역시 제도라는 구조에 의한 차별과 배제이다. 그 제도 역시 정치의 산물이라면 차별과 배제의 정치의 결과이다.
4월 28일 세계산재사망 추모의 날을 앞두고, 오늘 우리는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을 다시 생각한다.
우리는 지난 논평에서 "무엇이든 살기 위한 노동이라면 병들거나 목숨을 잃지 않는, 건강과 생명을 의심하지 않는 노동"을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이라 했다.(☞ 관련 기사 : 故김용균 추모 기간에 '김용균法' 없애겠다는 대선후보가 있다)
일하는 모두가 안전하고 건강하기 위해서는, 그래서 생명과 일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기존의 '산재' 정의를 넘어서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즉, 상품화된 노동과 건강이 아니라, 권리 그 자체로서의 건강, 권리 그 자체로서의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을 정의해야 한다. 이때 노동은 유·무급의 모든 종류의 일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는 기존 제도 및 구조와 정치를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죽음과 질병, 사고의 위험을 적극적이고 의식적으로 제거하고 매일을 온전히 잘 살아갈 수 있는 상태를 지향하는 것.
이는 결국 새로운 힘의 관계를 만드는 일에서 시작된다. 일하는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을 스스로 정의하고 이를 구현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 자본가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중대재해법을 개악하려는 국가권력과 경제권력의 책동이 예상되는 만큼 그 힘이 특히 중요한 상황이다. 또한 노동을 소외하고 억압하는 국가, 경제, 지식, 언론 권력을 집중적으로 타격하고 견인해야 한다. 이들의 책임을 끊임없이 드러내고, 일하는 모두의 안전과 건강과 생명을 보장하라고 끈질기게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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