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 없는 최대의 정치 이벤트, 제20대 대선
헌정사상 최악이라는 세간의 비판 속에서 제20대 대통령선거가 종료되었다. 다양한 세력의 경합이라는 정치의 이상적 구도는 소실된 채, 거대 양당의 극단적 양자대결만 남은 대선이었다. 그나마도 지지하는 후보의 장점을 보고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지지할 수 없는 후보의 낙선을 바라는 투표가 횡행했다. 정치평론가 김민하가 최근 펴낸 책 제목처럼, 이제 우리의 민주주의는 기껏해야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에 정체되어 있음이 드러났다.
정치는 갈등을 드러내는 장치인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국가든 사회든 모든 공동체 안에서 이해관계의 대립은 필연적이며, 정치는 이러한 이해관계를 조정해 사회를 조화롭게 만드는 책임을 감당한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는 날이 갈수록 반목과 질시를 원동력으로 삼아 분열과 대립의 구도를 종용함으로써 자기 존재의 의의를 찾고 있을 뿐이다. 그 와중에 대중의 정치혐오는 확산하며 정치적 냉소주의의 골은 깊어만 간다.
정치혐오와 정치적 냉소주의는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들이 정치적 효용을 체감하지 못함에 따라 발생한다. 정치혐오와 냉소의 해소는 시민들이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직접 참여함으로써 그 결과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정치구조가 활성화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자신의 이야기가 정치적 과정을 통해 전체의 이해관계로 전환되며, 이로써 다양한 정치세력의 경합이 활발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정치개혁의 요체다. 그런데 어째서 이러한 원리가 전혀 그 가치를 드러내지 못할까?
정치개혁은 말만 무성한 채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번 대선에서도 여러 경로에서 정치개혁의 요구가 제시된 바 있다. 예컨대, 참여연대, 한국진보연대 등 여러 시민단체가 함께하고 있는 '정치개혁공동행동'은 각 대선후보에게 ‘정치개혁 10대 과제’를 공약으로 채택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이 제시한 과제 중에는 다양한 정치세력의 활동 보장과 밀접하게 관련된 의제로서 △각급 의회 선거에서 비례성 확보를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 △선거공영제 확대 △정당설립요건 완화 및 지역정당 인정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각계각층에서 제기된 이러한 정치개혁의 요구는 대선의 의제로 주목받지 못한 채 유야무야 되었다.
대선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에야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국민통합 정치개혁안'을 제안했다. 선거가 박빙 양상을 보이게 되자 급하게 들고 나온 안이었다. 이 안 중에는 "실질적인 다당제를 구현"하기 위한 취지에서 "세대, 성별, 계층, 지역 등 다양한 민심이 반영되는 선거제도를" 만들겠다는 다짐이 있었다. 그 방법으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지방의원선거 중대선거구제 도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송영길 대표의 제안은 정치개혁공동행동이 제안한 정치개혁과제에도 전혀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다양한 민심이 반영되는' '실질적인 다당제 구현'을 목적했다면, 차라리 정치개혁공동행동의 개혁안을 전면 수용하겠다고 하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개혁안 중 주목할 만한 '지역정당 인정'을 중심으로 하는 정당법 개정 정도는 들고 나와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자치분권 2.0과 지역정당
지역정당(또는 지방정당, Local Party)은 전국정당에 익숙한 많은 이들에겐 생소해 보일 수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지역정당은 보편적인 정당의 형태이다. 지역정당은 전국단위 선거에는 참여하지 않으면서 지방선거에만 참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활동한다. 정치적 활동범위를 해당 지역으로 한정하고, 해당 지역의 주민 등 지역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주체들이 당원으로 참여한다. 다양한 지역적 및 분야별 삶의 욕구가 다원적으로 분출되는 현대사회에서 더욱 활발하게 결성하고 활동하는 정당의 한 형식이다.
특히 지역정당은 소위 '자치분권 2.0' 시대로 대변되는 분권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풀뿌리 정치의 분발을 위하여 더욱 필요한 정당구조이다. 전면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올해 1월 13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수준 높은 자치분권의 단계가 예정되었는데 이를 자치분권 2.0이라고 흔히들 칭한다. 자치분권 2.0의 핵심은 지방자치의 중심을 자치단체가 아닌 주민에게 돌려준다는 데에 있다.
주민이 중심이 되는 지방자치의 요체는 주민 스스로가 정치주체가 되는 것이다. 지역의 의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이 활동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역단체 구성원으로서 활동하는 것이다. 단체의 개입을 통해 지역사안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와 직간접으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개인은 단체에 소속되어 문제에 접근하고 참여할 수 있다. 그런데 주민단체 또는 시민단체의 활동은 그 자체로 정치적 책임을 직접 담보하는 활동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이러한 활동은 정치적 측면에서는 위임정치에 해당한다. 즉 다른 정치주체에게 자신의 문제를 대리시키기 위한 수준으로 활동이 제한된다.
지역의 의제를 자기책임으로 수용하여 정치적 책임을 지는, 즉 주민단체가 제기하는 정치적 사안을 주민단체 등을 대표하는 정치조직은 결국 정당일 수밖에 없다. 정당은 선출직으로 구성되는 의회 또는 행정기구의 일원이 되어 사안을 정책적으로 해결하며 궁극적으로는 제도화할 것을 목적으로 활동한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시행되는 선거를 통해 그간 활동의 정치적 책임을 진다. 이것이 정당과 단체의 가장 극명한 차이점이다. 따라서 위임정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주민이 직접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조직은 정당이 될 수밖에 없다.
반민주적 1962년 정당법 체제와 그 기생물들
그런데 현행 정당법은 전국정당(또는 국가정당)만을 인정하고 있다. 즉 전국을 정치활동의 대상으로 하는 정당만이 정당으로 승인되며, 특정 지역을 한정하여 정치활동의 대상으로 하는 정당은 창당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전국정당은 중앙당과 시도당을 두고 있으며, 중앙정치를 정치활동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정당 구조 속에서 전국정당의 지방조직은 중앙정치의 이해관계에 의해 통제되며, 지역정치는 중앙정치를 위한 자원동원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중앙정치에 대한 지역정치의 종속성은 강고하며, 중앙당의 지시와 통제를 통해 지역정치는 고사한다. 결국 지방선거는 전국정당의 대리전으로 전락하고, 주민의 참여와 책임에 기반한 지방분권은 미명에 그치게 된다. 전국정당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역 고유의 의제에 천착한 정치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지역정당이 없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자치분권 2.0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
지역정당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정당법 체계는 1962년에 만들어졌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 후 본격적으로 집권을 위한 수순을 밟기 시작한 시기이다. 군사정권은 특정한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는 정치세력은 아예 제도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만드는 정당법을 기획했다. 중앙당과 최소한의 지역조직 및 최소한의 당원 수를 제한하는 한편, 중앙당은 수도에만 두어야 한다는 조항 등을 둠으로써 군소정치세력의 정치결사와 정치활동의 자유를 억제하는 규정을 두었다. 군사정권은 이러한 내용의 정당법을 1962년 제정하고 1963년 시행했다. 군사정권은 이 정당법을 근거로 공화당을 창당했고, 군복을 벗은 박정희를 민간인 신분으로서 대통령 후보로 추대했으며, 그 이후 1979년 박정희가 사망할 때까지 집권했다. 그 기간에 풀뿌리 민주주의는 고사했고, 국가 전체의 민주주의가 퇴행했음은 부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유신정권이 종말을 고한 후에도 이 정당법 체계는 전두환 신군부 정권에 의해 유지되었다.
그런데 87년 개헌 이후 민주화가 진척되었다고 하는 이 순간까지도 이 정당법은 그 골간을 그대로 간직한 채 위용을 발하고 있다. 민주화가 되었음에도 기존의 반민주적 정당법의 체계가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현행 정당법 구조가 거대정당들의 기득권을 철저하게 보장하기 때문이다. 즉, 군사정권의 그림자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국민의힘은 물론이려니와 민주화 운동의 후신이라고 자처하는 더불어민주당조차 현행 정당법 체계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하게 유지할 수 있다. 이들은 군사정권이 만들어놓은 반민주적 적폐를 공유하는 공범으로 자족하면서 주기적으로 권력을 주고받는다.
87년 6월 항쟁과 7·8·9 노동자 대투쟁의 결실인 현행 헌법은 정당설립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헌법은 제8조 제1항에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정당법은 수도에 설치하는 중앙당과 5개 이상 시도당을 두도록 하고 있으며, 각 시도당별 1천인 이상 최소 5천인 이상의 당원을 갖지 않으면 정당설립이 불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외에도 현행 정당법은 정당의 조직구성이나 당원의 자격 등을 일일이 법으로 정하여 제한하고 있다. 이러한 정당법의 규정으로 인해 한국에서는 오로지 전국정당만이 정당으로 인정될 수 있으며 지역정당은 설립이 불가능하다.
지역정당에 대한 오해와 진실
군소정당의 난립을 방지하여 정국안정을 도모한다는 입법취지에 따른 이러한 제한은 사실상 그 기준이 모호하다. 시시콜콜히 정당설립의 요건을 법으로 정하고 있는 나라는 알제리,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이라크, 카자흐스탄, 캄보디아, 케냐 등 몇 나라에 불과하다. 하물며 이들 나라조차도 중앙당을 수도에 둬야 한다는 얼토당토않은 규정을 법으로 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민주국가라고 할 수 있는 나라들 중 지역정당을 막고 있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군소정당 난립방지가 정국안정에 필수적인 요건이라면, 가까운 일본을 비롯해 지역정당이 수도 없이 활동하고 있는 세계 각국은 정쟁으로 인해 망국의 위기에 직면했어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으며, 이러한 현상에 대해 헌법재판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유권해석이 가능한 한국의 어떠한 기관도 합리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간혹 지역정당을 허용하면 그러잖아도 망국의 병폐인 지역감정이 더욱 심화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우려는 현상을 왜곡한다. 실제로는 현재의 양당구도가 지역감정 심화의 원천이다. 한국정치를 양분하고 있는 거대 양당은 고전적인 지역기반 정당이다. 반도 남단을 동서로 양분한 이 두 정당은 각 지역을 자원동원의 기지로 대상화하면서 정치적 수탈을 자행하고 있다. 이렇게 지역을 정치적으로 분할 점유한 상태로 인해 심화하는 폐해가 바로 지역감정이다. 거대 양당은 패권을 장악한 지역을 중심으로 권력을 할거한 채 필요할 때마다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정치적 이익을 누려왔다.
그러므로 만연한 지역감정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우선 필요한 조치가 바로 양당의 지역분할구도 해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양당이 장악한 지역에서 대안적 정치세력이 힘을 키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호남이라고 해서 더불어민주당이 마냥 좋아서 찍어주는 게 아니고, 영남 역시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이 국민의힘을 밀어주는 형국이다. 서로가 상대의 지역에서 대체제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됨에 따라 울며 겨자먹기식 투표행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가 지역정당이다. 지역정당은 지역적 기반을 해당 지역에 두고 있는 거대양당과 그 지역 안에서 맞붙을 수 있는 세력이다. 패권정당이 아니면서 동시에 상대지역의 정당도 아닌 제3의 대안세력으로서 지역정당이 지역의 유권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전국사안과 지역사안이 교착하는 순간 사안을 왜곡하면서 지역감정에 호소할 수 없게 된다. 지역감정에 기대지 않는 지역정당과 오로지 지역의 의제에 대해 정책적으로 경쟁을 펼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즉, 한국정치의 지정학적 구조를 살펴보면 오히려 지역정당이 지역감정을 불식시킬 계기가 될 수 있음이 드러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오늘날 지역정당이 필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주민이 직접 지역정당을 통해 교육, 환경, 복지 등의 지역정책을 제시하고 문제 해결 과정에 참여하면서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으로서 정치적 책임을 질 때, 자치분권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그 실체적 효용을 드러낼 것이다. 전국정당에 종속된 지역정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으며,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한 다양한 정치세력의 등장이 활성화될 것이다. 지방분권을 방해하는 중앙집권적 정당 제도 혁파야말로 중앙정치에 의한 예속의 고리를 끊는 핵심이라고 한다면, 그 핵심엔 결국 지역정당이 자리하게 된다.
이제 지역정당운동을 시작할 때
경험이 없기에 낯설 수는 있다. 어떤 일이든 처음엔 시행착오도 나오게 마련이다. 오랫동안 권위주의적 정치구조에 익숙해진 관성이 첫걸음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지방자치 역사는 그리 빈약하고 일천한 기반 위에 있지 않다. 우리는 주권자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룩했고, 그 이래 한 세대가 지나는 시간 동안 자치분권 2.0이 논의될 정도로 차근차근 지방자치의 경험을 누적해왔다. 다원화된 사회와 다양한 이해관계의 종횡이 촉발하는 각종의 반목과 분쟁을 제어하여 이를 사회발전의 근간으로 전환시키는 정치의 책무가 더욱 막중해지는 시기이다. 중앙정치에 매몰된 전국정당의 활동만으로는 이러한 변화를 감당할 수 없다. 당사자의 직접참여를 보장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활성화만이 새로운 변화의 중추적 가치가 될 수 있으며, 그 중심에는 지역정당이 있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하여 지역정당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 시대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서울의 영등포구와 은평구, 경기도의 과천시, 경상남도의 진주시에서 본격적인 지역정당의 창당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을 시작으로 전국 각처에서 들불처럼 지역정당이 건설되고 활발하게 활동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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