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했던 20대 대통령 선거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0.73%포인트, 24만 표라는 역대 최소의 투표수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 윤 후보는 역대 최다 득표로 당선자가 되었고 더불어민주당 후보 역대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이재명 후보는 패했다. 투표일이 며칠만 늦춰졌더라면 선거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거기까지 가게 해준 힘도, 거기서 멈추게 만든 힘도 국민들이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
이제 5월이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구성된 가운데 벌써부터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이행할지 여부가 여론의 관심을 끈다. 대통령실의 용산 국방부터 이전 발표는 거센 반대에 부딪쳤다. 민생추경 약속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 간의 회동은 석연찮은 이유로 무산되었다. 윤 당선인은 당선인사로 국민통합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차기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에는 세대 간, 남녀 간, 지역 간 통합의 의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선거가 열흘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윤 후보를 선택한 국민 일부조차도 벌써부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리얼미터가 미디어헤럴드 의뢰로 지난 10일과 1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정부가 국정수행을 잘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은 52.7%로 나타나 역대 대선 당선인 중 최저치였다.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된다. 윤석열 정부의 성공여부에 대한 우려를 국가적 차원에서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가 성공하지 못하면 이재명 지지자들은 행복할까?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남북이 모두 파멸되어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듯이, 비록 경쟁 정당의 정부라 하더라도 실패하면 여야는 물론 국민 모두에게 재앙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급변하는 역사적, 세계사적 대 전환기의 소용돌이 속에 함께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향후 5년은 순간의 선택이 역사가 되고 국가의 향방이 결정될 시기이다. 이 기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한국은 다시 개도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세계 일류 선도국가로 비상할 수도 있다. 우리들뿐 아니라 미래 후손들의 운명까지 좌우하는 중대한 5년이 될 것이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는 무조건 성공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가야 한다.
일본 아베 정권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한때 미국에 필적하는 기술선도국가였지만, 지금은 퇴행을 거듭하는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난날 일본은 빛나는 경제적 성공에 도취한 채 변화의 필요성을 경시하고 현실에 안주했다. 신기술 경쟁을 마다하고 기성산업 보호와 부동산 개발에 집중하며 기업과 국민들을 안주시켰다. 그 결과가 ‘잃어버린 30년’이다.
일본은 국가생존을 위해 불가피했던 디지털 전환의 고통을 정권연장을 위해 회피했다. 기업들의 지지를 받기 어려운 산업 구조 조정과 신기술 개발보다는 내수기업 보호와 토목사업으로 경기를 부양하는데 치중했다. 엔화를 평가 절하하여 기업들이 기술경쟁력 없이도 살아남게 만들어주다 보니 이제는 첨단 기술부문의 국가경쟁력을 대부분 상실해 버렸다.
이런 국가적 불행에는 정치적 계략에 힘입은 보수 자민당 정권의 장기집권이 숨어 있다. 예를 들어 아베 정권은 '사람의 생각마저 처벌한다'는 공모죄 법안을 강행 처리했고, 정권 비판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혐한 정서 조장, 독도 분쟁 도발, 소재·부품· 장비에 대한 수출 규제 등의 자충수를 거리낌 없이 두었다. 또한 군국주의 향수를 조장하면서 평화헌법 개정을 계속 시도했다. 이런 정략적 행위들로 인해 자민당은 집권을 연장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국가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의 사례를 답습할 우려가 있다. 주식 시장 보다는 부동산 시장으로, 친 재생에너지보다는 친 원전에너지로, 창의적인 노동보다는 시간 노동으로, 성 평등주의보다는 성 차별주의로 정책 기관차를 거꾸로 달고 달리려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국민들이 많다. 마치 이명박 정부가 4대강 토건사업과 묻지 마 해외자원개발에 매달려 국력을 낭비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윤석열 후보의 주요 공약내용과 산업과 경제를 보는 시각들을 보면 미래보다 과거로 회귀한다는 느낌이 든다.
윤석열 정부가 성공하는 법
능력의 여부를 떠나 앞으로 윤석열 정부가 마주해야 하는 대내외적 상황은 매우 어렵다. 더욱이 대통령 선거 공약을 실행할 정치적 여건도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의 헌법 구조는 대통령과 행정부만의 힘으로 새로운 법을 만들거나 혁신적 제도개혁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윤석열 정부의 핵심 공약은 입법을 통해서 실현해야 하는데 입법부는 민주당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과감하게 협치를 하겠다는 각오를 하지 않으면 하나부터 열까지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려워도 그 길을 가야 한다. 대안은 없다. 윤석열 당선인이 약속한 국민 통합의 길은 여야 협치를 통한 입법으로 구체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호 신뢰에 근거하여 협치를 하기 위해서는 선거법 개정을 통한 정치 구조 변화에 먼저 합의해야 한다. 실질적 비례대표제를 강화해 명실상부하게 다당제가 보장되면 통합정부 구성에 이를 수 있다. 이는 소수 여당 의석을 가진 행정부와 다수 의석을 가진 야당이라는 분점 정부하에서도 소모적인 대결을 대폭 줄이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국회 합의를 통해 다수 대표의 의견에 따라 입법과 예산이 결정되는 서구식 합의제 민주주의가 구현될 수 있다. 양대 후보의 득표율 차이가 24만 표에 불과한 이번 선거 결과가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정치 발전과 국민 통합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분열과 갈등을 증폭하여 대한민국의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는 이 상황이 우리나라의 발전의 선순환을 일으킬 계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정치공작으로의 퇴행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정치공작으로의 퇴행이다. 여소야대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어려운 협치의 노력이 아닌 검찰과 언론을 이용한 정치공작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퇴행이다. 극심한 사회 혼란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위험성은 윤석열 당선인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당선인이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검찰 권력 강화를 공약했기에 우려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역사의 비극을 초래할 것이다. 절대 꿈도 꿔서는 안 된다.
대장동과 소위 본·부·장 의혹을 어떻게 할 것인가?
선거는 국민의 모든 이해들이 집약된 의사표시의 결정판이다. 초박빙의 승패는 그만큼 현재 국민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증거다. 박빙의 차이로 패배한 절반의 국민들은 선거 운동 기간 내내 윤석열 후보 측이 제기한 대장동 의혹의 실체를 밝혀 억울함을 풀고 싶어 할 것이다.
여기에 윤석열 당선인과 배우자, 장모에게 제기된 여러 비리 의혹들이 있다. 이를 공정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임기 내내 국정수행에 발목을 잡힐 우려가 있다. 윤석열 당선인은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따라서 본인과 관련된 여러 의혹들이 해소되지 않고 묻히거나, 이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종결된다면 윤석열 정부의 정당성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공수처 권한 축소 공약은 철회해야
우리는 고위 권력자의 비리 수사를 위해 온갖 우여곡절 속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만들었다. 지금의 공수처는 거대한 검찰 조직과 인력에 비해 조직의 규모나 인력, 수사 경험이나 정보 면에서 비할 바 없이 왜소하다. 최소한의 역할이라도 수행할 수 있게 만들어 줘야 할 시점에서 윤석열 후보는 공수처 권한 축소를 공약하였다.
이는 촛불 시민과 민주당에 대한 폄하이며 위협으로 간주될 수 있다. 공수처 권한을 축소하려면 검찰과 사법부의 불법적 전관예우, 국민들을 억울하게 하는 자의적 기소와 편파 수사, 비 인권적 먼지떨이 식 강제 수사 등을 방지할 확실한 대안을 만들어 놓은 후 국민들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윤석열 당선인 본인과 가족, 그리고 검찰들의 비리의혹 수사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여겨질 수 있다.
정권의 성공을 넘어 성공한 국가로
이제 윤석열 당선인은 과거에 자신이 비난했던 제왕적 대통령 자리에 앉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동안 자신이 문재인 정부를 향해 했던 모든 비판과 비난의 화살이 본인과 국민의힘에 쏟아질 것이다. 그러기에 더욱 스스로를 돌아보고 겸손해야 한다. 지금의 여소야대는 촛불정신을 이행하라는 당시 절대 다수 국민들의 뜻이 반영된 지형이다. 그러기에 이번 대선에서도 국민은 절대 다수의 표를 윤석열 당선인에게 주지 않았다. 이러한 정치지형의 의미를 존중하면서 협치를 하라는 것이 윤석열 정부에 국민이 요구하는 선거 민심이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는 먼저 촛불 시민의 요구에 따라 민주당이 추진하는 시대적 개혁법안들의 의미를 존중하고 전향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그것이 협치의 출발점이다. 그런 노력을 지속한다면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핵심 민생과제들도 민주당의 적극적 협조와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겸허하게 수용한다는 증표는 포용과 협치의 노력과 성과를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여·야 정권의 성공을 보장할 뿐 아니라 국가를 성공으로 이끄는 길이 될 것이다. 정권의 성공을 넘어 성공한 국가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필자 이재섭 박사는 서울신학대학교 교수이며 (사)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공적연금수급자 유니온을 이끌며 연금개혁을 통한 노후빈곤 해소와 노후소득보장 강화를 위한 대정부 협상에 힘쓰고 있다. 사회정책·정치 칼럼니스트,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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