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지업체인 무림 페이퍼의 자회사가 인도네시아 열대 우림에서 진행하는 개간 사업이 보존가치가 높은 산림과 지역 토착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기후솔루션, 공익법센터 어필 등 국내 단체와 국제환경단체 마이티어스 등 6개 시민단체는 15일 서울시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기에 처한 인도네시아의 숲과 사람들:무림피앤피의 파푸아 섬 플랜테이션의 실체'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는 국내 제지업체인 무림페이퍼의 자회사가 인도네시아 서뉴기니의 파푸아 숲에서 진행하는 사업이 생태계를 파괴하고 토착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무림페이퍼는 국내 2위의 제지업계이며 산림 자원을 책임 있게 조달했을 때 받을 수 있는 국제산림관리협의회(FSC)의 인증을 받은 기업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무림페이퍼가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PT Plasma Nutfah Marind Papua(이하 PT PNMP)는 파푸아섬 내 서울시 면적보다 큰 6만 4000헥타르 규모의 사업장을 가지고 있으며 2015년 이후 6년 동안 6000헥타르 이상의 산림을 개간했다.
환경단체들은 PT PNMP의 사업장이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일차림(인간의 개입 등 교란이 흔적이 보이지 않는 자연림)과 사바나, 습지 등을 포함한 지역이라고 주장했다. 사업장 부지가 "세계 야생동물 기금(WWF)가 지정한 생태구역 2곳 등을 포함한 생물다양성 군집지"라는 지적이다. 또한 나무 캥거루, 돼지코거북 등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 목록 내 '멸종위기범주'에 속한 종들의 서식지 범위라고 언급했다. 국제자연보전연맹의 적색 목록은 종의 멸종 위험도를 판단하여 작성된다. 적색 목록에서 '멸종위기범주'로 분류된 종들은 멸종위기에 직면하여 보호와 관심이 필요한 종들이 속해있다.
보고서는 세계산림감시(Global Forest Watch)와 인도네시아 환경산림부의 자료를 인용하며 "PT PNMP 사업장 내 일차림이 상당 부분 파괴되었으며 향후 몇 년 내에 수천 헥타르에 달하는 보존가치 높은 산림이 추가적으로 파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공익법인센터 어필 정신영 미국변호사는 "파푸아섬 내 PT PNMP 사업장은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생물 다양성을 자랑하는 지역"이라며 "그러나 무림페이퍼는 목재칩을 만들기 위한 조림 플랜테이션 사업을 하면서도 이 지역이 어떤 환경적 가치가 있는지 파악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산림의 무분별한 개간은 탄소흡수원을 파괴하고 저장하고 있던 탄소를 재방출함으로써 기후변화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네이처> 등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아마존 열대 우림은 산림 벌채, 화재 등으로 인해 탄소 흡수 기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고 보고됐다.
보고서는 이에 더해 PT PNMP의 개간 사업에서는 탄소흡수원인 이탄지(습지)에 대한 개발도 이루어져 "인도네시아를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 중 하나로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탄지는 나뭇가지 등 식물 잔해가 침수 상태에서 분해되지 않고 수천 년 동안 퇴적되면서 형성된 토지로 많은 양의 탄소를 저장하고 있다. 산림청의 2020년 보도자료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의 이탄지 탄소저장량은 46기가톤이며 전 세계 이탄지 저장량의 8∼14%를 차지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PT PNMP은 펄프나 팜유 등의 생산을 위해 이탄지의 물을 빼내고 있고, 이 과정에서 습지에 저장된 '이탄'이 산화하면서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있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PT PNMP의 사업장은 늪지 산림과 군데군데 얕은 이탄지가 모여 모자이크처럼 형성된 구역에 위치해 있다"라며 "안타깝게도 PT PNMP가 토지 개간 전에 신뢰할 수 있는 이탄 조사를 수행했다는 정보는 없다"라고 보고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시민단체들이 지역 주민들을 인터뷰한 결과 PT PNMP는 토지 관리를 위해 이탄 위에 통나무들을 겹쳐놓는다고 전했다고 덧붙였다.
개발 과정에서 토착민들 성소 파괴했다는 주장도 나와
보고서는 PT PNMP의 사업이 지역 토착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사업 부지를 기반으로 살아온 지역민들의 '자유의사에 따른 사전인지동의 원칙'(이하 동의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의원칙은 산업개발의 영향에 대하여 토착민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UN 토착민 권리 선언문 제10조에 명시된 원칙이다.
환경단체들은 "PT PNMP가 해당 사업지에 진입하여 토지 전용을 시작하기 전에 적절한 동의원칙를 이행했음을 보여주는 근거는 없다"라며 "지역 공동체를 포함한 포용적인 절차로 사회적 갈등 현황을 식별하지도 않았다"라고 전했다. 실질적으로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지역 공동체 주민 전체가 참여한 논의를 거치지 않았고, 체결된 양해 각서에 대한 찬반 의사를 표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또한 사업지 내 지역 주민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공개하며 "토착민들의 조상 묘, 전통 의식터와 같은 많은 성소(성스러운 공간)를 보존하지 않고 주변 숲과 함께 불도저로 밀어버렸다"라고 전했다.
한편 무림 측은 환경단체들에 보낸 공문을 통해 "지역주민들과 충분한 협의와 보상을 진행했으며 양해각서 체결을 완료했다"라고 반박했다. 토착민 성소 파괴에 대해서도 "지역 부족과의 협력을 통해서 상의를 진행했고 보호구역에 대한 파괴적 행위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사업장 내 산림 파괴 지적에 대해서는 "인도네시아와 환경산림청으로부터 적합하게 허가 받은 사업이고, 환경산림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업 부지 내에 일차림이나 습지는 없다"라고 전했다. 무림 측은 "공정한 조사를 위해 현재 파푸아섬 내 사업은 일시적으로 중단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 해외산림자원개발 지원 융자 받은 무림P&P.. 환경 파괴 확인되면?
보고서는 "한국 산림청은 해외 산림자원 개발을 명목으로 무림페이퍼의 자회사이자 PT PMNP의 모회사인 무림P&P에게 91억 원의 융자를 제공했다"라며 "한국 정부는 무림P&P의 해외 산림 사업으로 인한 영향과 회사 측에서 이행해야 할 필요한 시정 활동에 대한 투명하고 포괄적 조사를 개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산림청이 2021년 4월 발표한 47억 원 규모의 해외산림자원 개발사업 융자 지원 대상자에는 무림P&P가 포함됐다.
이에 산림청 해외산림자원 담당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환경파괴나 지역민 피해 등이 확인되면 융자를 제한하는 지침이 있다"라면서도 융자 회수에 대해서는 "규정상 회수 규정은 있지만 환경 파괴는 회수 사유는 아니라서 강제로 (융자를) 회수할 수는 없다"라고 전했다. 또한 향후 융자 지원 시 기업들로 하여금 자사 활동에 대한 인권 및 환경 실사를 수행하도록 의무화하는 요건을 수립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올해 지침 개정을 위한 용역을 추진하고, 그 결과를 2023년 지침에 반영할 계획이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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