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 이래 자연자원 수탈은 끊임없이 이루어져 왔고 바야흐로 우리는 일상적인 기후재난 시대에 당도했다. 이번 여름 전 세계를 할퀸 폭염과 산불, 홍수 등의 피해는 우리에게 분명한 사실을 알린다. 지금 당장 화석 자본주의에 근간한 배출 중심의 기존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인류는 지금보다 더 자주, 더 강력한 기후재난에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해결책은 '탄소중립(Net Zero)'이다. 온실가스 배출량과 흡수량의 균형을 맞춰 순(net) 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것이다. 탄소중립 자체만 강조하다보니 문제가 발생했다. 탄소중립 자체만 강조하다보니 문제가 발생했다. 배출량을 실제로 줄이기보다 일단 탄소 배출을 허용한 뒤에 탄소를 흡수하는 기술적 해결책이 각광 받게 된 것이다. 탄소포집기술이 그 대표적인 예다. 또 다른 예가 바로 산림을 흡수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수목의 탄소 흡수력에 착안해 식목을 늘리면 그 수목의 탄소 흡수력만큼 탄소감축을 할 수 있다는 발상이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탄소포집기술처럼 상용화가 안 된 기술적 해결책이 모색되거나 숲을 그 생태적 역할보다 단순한 탄소 흡수원으로 취급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기후위기의 만병통치약, 나무심기?!
'산림 파괴를 최소화하고 나무를 심어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는 산림 흡수원 확대정책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한국판으로는 '30억 그루 나무심기', 또는 '2050년 탄소중립 벌목정책'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식으로 산림청이 진행하는 '탄소중립 벌목정책 패키지' 중 잘 알려지지 않은 사업이 있다. 바로 '개도국 산림파괴 방지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활동(Reducing Emissions from Deforestation and Forest Degradation Plus; REDD+)'이다. 산림청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에 기여하겠다고 제시한 3400만t 중 500만t이 REDD+의 몫이다. 탄소중립위원회도 지난 8월 국내에서 확보하지 못한 탄소감축분을 REDD+와 같은 해외조림을 통해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REDD+는 산림 파괴로 인해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다양한 사업으로, 통상 경제선진국이 개발도상국 산림 관리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형태를 취한다. 불법 벌채가 많이 일어나는 곳에서 산림 감시단을 운영하거나,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쓰는 지역에 고효율 스토브 등을 보급하는 등 산림파괴를 막는 모든 활동이 REDD+가 될 수 있다.
REDD+는 2005년 1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1)에서 코스타리카와 파푸아뉴기니가 RED(개도국의 산림파괴 인한 온실가스 감축)를 제안한데서 시작됐다. 양국은 당시 교토의정서체제에서 온실가스 감축의무가 없었지만 산림파괴로 인한 온실가스 발생이 심각해짐에 따라 '감축의무가 없는 개도국이 산림을 보전해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다면, 선진국이 이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을 제안했다. 2년 후 발리에서 열린 13차 당사국총회(COP13)는 발리행동계획(Bali Action Plan)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산림 파괴 방지 활동뿐만 아니라 산림 보전, 지속가능한 산림 경영, 산림 탄소 축적 증진 활동이 추가돼 REDD+로 총칭하게 됐다.
REDD+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산림 지역이지만 산림 파괴가 일어나는 곳을 대상으로 하며, 현재 산림의 보전가치가 있는 곳에서 진행된다. 이 지역에서 실질적인 현장 활동을 통해 산림 파괴를 막고 모니터링을 통해 감축결과물을 증명해 내면 이를 국가 감축목표(NDC)로 활용하거나 탄소배출권의 형태로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다. REDD+ 사업을 통한 감축 결과를 증명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과거와 현재의 데이터를 비교하여 산림 파괴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명확히 드러내야 한다.
우리나라도 REDD+를 자발적 감축목표 달성의 한 방안으로 삼아 2012년부터 신규 예산을 확보하여 국가 간 REDD+ 시범사업을 착수하게 됐다. 2013년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를 시범사업국으로 선정해 사업을 진행해왔다. 산림청은 2020년 9월 시범사업 중 최초로 캄보디아 시범사업을 통해 온실가스 65만t을 감축하는 성과를 냈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지역주민에게 양봉과 같은 대체소득원 발굴을 지원하고 농업 신기술 보급과 교육 등을 통해 산림파괴를 막고, 11종의 멸종위기종을 보존하는 데 기여했다고 밝혔다.
이 추세면 10년 내 숲은 사라진다
국내에서 산림파괴청, 임업진흥청이란 비판을 받고 있는 산림청이 '성공적인 REDD+ 진행'이라 밝힌 사업의 실상은 무엇이었을까? 김한민 씨(작가·환경운동가)와 환경운동연합, 생명다양성재단은 지난 5월부터 약 3개월간 캄보디아 현지 조사를 진행했다. 연초부터 캄보디아 현지 활동가들로부터 '툼링 REDD+ 프로젝트' 구역 내 산림 훼손이 심각하다는 제보를 꾸준히 받았기 때문이다. 위성 정보 분석과 관련 전문가 인터뷰는 물론, 캄보디아 현지에 조사 팀을 꾸려 REDD+ 사업 구역 내의 '커뮤니티 산림(Community Forest)' 총 14 곳 중 13 곳에 해당하는 숲을 수차례 직접 답사하여 벌목 현황을 조사했다. 현지조사는 2016년 골드만 환경상을 수상한 캄보디아 인권태스크포스(CHRTF) 욱 렝 대표가 지휘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조사 결과 해당 REDD+ 사업 구역에 존재하던 산림의 약 3분의 1 이상이 사업기간 중 훼손 또는 유실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메릴랜드대학이 제공하는 인공위성 자료에 따르면, 2015년에 약 5만6084ha에 달했던 해당 구역 산림 면적이 지난해 말에는 약 3만5544ha로 크게 줄어들었다. REDD+ 사업을 시작한 후 37% 이상의 산림이 파괴됐다. 지난 6년간 툼링 REDD+ 시범사업지에서 여의도 면적의 24배에 달하는 숲이 사라진 것이다. 당장 올해 산림 파괴 추세만 해도 크게 우려된다. 올해 1월부터 7월 초까지 이미 2948ha(약 8.3%) 산림이 훼손 또는 유실된 것으로 나타나 작년 수준(8.76%)을 웃돌 것이 확실시 된다.
벌채된 산림은 주로 고무, 카사바, 캐슈넛 등을 기계로 재배하는 대형 플랜테이션 농지로 바뀌었다. 지역 주민 인터뷰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벌목되는 나무 대부분은 지역 소비가 아니라 외부로 유출된다. 목재를 노리는 타 지역 벌목업체들이 지역 관료나 산림 감시 인력에게 접근해 불법적 거래를 성사시키고, 벌목 작업은 지역 주민 손으로 이뤄지도록 처리한 다음, 해당 목재를 외지인 소유 회사가 사들인다는 증언이다. 이런 식으로 많은 양의 고급 목재가 가까운 베트남을 비롯해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REDD+ 구역 산림 내에 성행하는 토지 강탈(land grabbing)도 문제로 지적된다. REDD+ 구역 동남쪽에 위치한 소체(Sochet) 커뮤니티 숲 대표인 쳄 소펙은 외부 자본이 임야를 강탈하려다 경찰에 적발된 사건이 최근에도 발생했으며, 영세한 지역 주민이나 원주민을 사칭해 토지등기(land titling)를 시도하는 사례도 끊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벌채·벌목 압력으로부터 지역 사회 스스로 숲을 지킨다는 취지의 산림 정찰은 REDD+ 사업의 핵심 활동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 역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지 인력 착취에 가까운 구조적인 문제가 그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정찰 수당은 팀당 약 50달러로 알려져 있는데, 그나마도 조사팀이 인터뷰한 팀들의 경우 평균 38달러 밖에 받지 못하고 있었으며, 제때 지급받지 못하는 일도 잦았다. 팀당 약 5명의 인원이 참여해 오토바이 연료와 식비 등 필수 경비를 제외하면 남는 것이 없다. 커뮤니티 숲 중 하나인 오 돈테이(O Dauntey) 숲 지역 대표 침 행은 "넓은 숲을 제대로 순찰하려면 10명은 필요하다. 비용도 현재의 5배는 필요하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렇듯 열악한 조건과 낮은 인센티브 때문에 한 달에 겨우 한 번 정찰을 하는 경우도 많으니 벌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산림청은 "캄보디아 사업지에서 대규모 불법 벌채가 발생한 사실은 없다"고 부인했다. 이에 대해 '캄보디아 툼링 REDD+ 시범사업 산림파괴 조사'를 총괄한 김한민 씨는 "매년 3500ha 이상의 산림 유실이 대규모가 아니라면, 숲이 완전히 없어져야 한단 말이냐"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사업구역의 3분의 1에 달하는 산림을 날려먹고도 65만t이라는 탄소감축 '인증'을 받은 산림청!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나무와 숲, 강과 바다, 그 곳에 깃들여 사는 모든 생명까지도 탄소로 환원해버리는 탄소 환원주의 때문일까? 일반인은 도저히 알아 들을 수 없는 전문용어로 가짜 해결책을 내세우는 테크노크라트들의 문서, 숫자놀음 때문일까? 관리감독이 부실한 먼 타국에서 혈세로 방만하게 사업하는 산림청의 탓일까? 산림청에 묻어서 탄소감축 의무를 회피하는 산업계와 그들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정부일까? 이들의 얽히고설킨 촘촘한 이해관계는 오늘도 기후재난의 최전선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속삭인다. 분리수거 열심히 하고, '친환경' 인증 받은 지속가능한 제품 소비하라고. 기후위기는 똑똑한 우리들이 나무 심어서 해결하겠다고! 정작 탄소중립을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저들의 거짓말을 파헤칠 상식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의 '감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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