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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이기는 나만의 시간 갖기

[그녀들의 맛있는 한의학] 13화. 봄소풍 가는 마음으로

"봄철 석 달을 발진發陳이라고 부르는데, 이때 자연에서는 생기가 일어나고 만물은 다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봄에는 밤중에 자서 아침 일찍 일어나되 일어나서는 뜰을 여유롭게 거닐고 머리는 꽉 묶지 말고 느슨하게 풀며 몸을 이완하여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모든 것을 살리는 데 힘쓰고 죽이지 말며, 주되 빼앗지 않고, 상을 줘야지 벌을 줘서는 안 된다. 이것이 봄기운에 응하는 양생의 방법이다.

春三月, 此謂發陳, 天地俱生, 萬物以榮, 夜臥早起, 廣步於庭, 被髮緩形, 以使志生, 生而勿殺, 予而勿奪, 賞而勿罪, 此春氣之應, 養生之道也." - 동의보감 내경편 권1 신형身形 중에서-

"봄이라 그런가, 갱년기라 그런가. 만사 귀찮고 밥맛도 없고 밥 차려주기도 싫고 그러네요. 애들도 귀엽지 않고, 남편은 뭐…."

마지막을 얼버무리는 환자의 말에 왠지 아내 속을 썩이는 철부지 남편들의 대표가 된 것 같아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 서늘함의 끝에 요 며칠 유난히 피곤해하는 아내의 모습도 떠오른다.

기후변화의 시대에도 절기는 무시할 수 없어서, 입춘이 지나면서 봄을 타는 환자들을 자주 본다. 변화의 문턱을 가뿐하게 넘기에는 일상이란 배낭의 무게가 버거운 사람들이 있다.

한의학은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고, 몸과 마음을 자연의 변화에 맞출 것을 강조한다. 현대 도시인이 자연이란 단어에 떠올리는 기억은 다양하지만, 아직 인간의 몸에는 만물의 영장보다는 자연의 일부였던 시절의 기억이 더 강하게 남아있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의 변화, 바람 끝에서 느껴지는 온도와 습도의 변화에 몸은 스스로를 예민하게 조정한다.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의 상황에 따라 이 과정이 순조롭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후자의 경우를 우리는 ‘봄을 탄다’라고 이야기 한다.

동의보감에서는 봄에는 살리고 베풀고 상을 주라고 했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는 죽음과 빼앗기, 그리고 죄를 묻는 이야기들만 가득하다. 그런가 하면 버젓이 전쟁이 벌어지고 사람이 죽어가는 중에도 각국은 자신들의 이익을 생명의 무게보다 무겁게 저울질 하고 있다. 2년 이상 지속된 전염병 시대 또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좀 먹고 있다.

온 세상이 이런 판국인데 한 국가와 사회가 온전할 리 없고 가정과 가족이 무사할 수 없다. 언론기사를 보고 화를 내고 속을 끓이는 것도 이제는 정말 지친다. 알면 알수록 끝이 보이지 않을 미궁으로 빠져들 땐, 결국 내 마음을 새롭게 할 수 밖에 없다.

"아래 땅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먼지가 날리며 생물들이 서로 숨을 불어 주고 있구나. 위를 보니 하늘은 푸르기만 하구나. 이것이 원래 하늘의 올바른 색일까? 끝없이 멀기 때문에 푸르게 보이는 것은 아닐까? 아마도 대붕이 아래를 내려다보면 이와 같이 보일 것이다." -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 강신주 지음/ 그린비 / p35

'장자'하면 떠오르는 대붕에 관한 이야기 중 일부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바람이 불고 생물이 소생한다는 것을 보니, 북명의 곤이 대붕으로 변해 구만리 창천으로 날아오른 계절 또한 봄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하는 것이 이 이야기가 실린 장자의 편명 때문이다.

'소요유逍遙遊'

마음 내키는 대로 슬슬 걸어서 놀러 가는 일. 장자의 소요유에는 절대자유와 같은 깊은 의미가 담겨 있겠지만, 올 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동요 속 가사처럼 맨발로 한들한들 나들이 가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진지하고 심각한 것도 재미와 행복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잊으면 몸과 마음이 병들고 만다.

봄을 타는 환자에게는 장자의 편명을 딴 한약을 처방하고, 하루 중 잠깐이라도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시라 당부했다. 내가 여유가 생기면 아이들도 귀엽고 남편도 어느 한구석은 봐줄 만할 거란 이야기도 했다.

환자를 보내고 아내와 통화를 하며, 나는 봐줄만한 구석이 있는 남편일까 생각한다. 순간 뒷골이 쭈뼛 선다. 오늘 퇴근길에는 꽃 한 다발을 들고 가고, 저녁 설거지를 꼭 해야지

▲봄나물주먹밥. ⓒ고은정

그녀들을 위한 레시피 : 봄나물주먹밥

봄이 되면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이상하게 실내에 있는데 바깥보다 춥게 느껴지기도 한다. 봄날의 햇볕이 겨우내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이기에 실내의 난방을 이길 온기를 지녀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한낮의 봄볕을 잠시라도 쪼이려고 바깥으로 자꾸 나간다.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들이나 두꺼운 껍질을 이기고 세상 밖으로 나온 새순들도 어쩌면 나 같은 생각으로 겨우내 얼마나 몸살을 했을지 알 수 없다.

올해는 봄이 유난스레 게으름을 피우며 더디게 온다. 벌써 올라왔어야 하는 산마늘도 아직 소식이 없고 감나무 아래서 이맘때면 늘 고개를 내밀던 달래가 한 줄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어제 잠시 내린 비로 추위는 여전한 것 같지만 세상은 달라졌다. 내가 아무리 모른 척하고 지나치려 해도 자꾸 땅으로 눈이 가고 이파리 하나 없는 나무들에 눈이 간다. 마른 풀들 사이로 푸른빛이 돌고, 마른 나무 끝 가지로 붉게 물이 오르고 있음을 내 몸이 느낀다.

곧 더 따뜻해질 것이다. 그러면 그때 나는 이웃들과 함께 소풍을 나가려고 한다. 옷차림은 가볍고 발걸음도 가볍게 나갈 것이다. 차 없는 마을길을 천천히 걸어 자유롭게 소요하다 올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도시락을 싸서 들고 나가고 싶다. 대단한 밥이 아니어도 좋다. 봄나물 썰어 넣고 아무렇게나 손으로 쥐어 만든 주먹밥이면 충분하다.

<재료>

쌀 2컵, 봄나물 100g, 표고버섯장아찌 약간, 소금‧통깨‧참기름 약간

<만드는 법>

1. 쌀은 깨끗하게 씻어 체에 건진 다음 40분간 불린다.

2. 봄나물은 끓는 소금물에 넣고 데쳐 찬물에 헹군 뒤 꼭 짜서 물기를 제거한다.

3. 봄나물을 송송 썰어 소금, 통깨 참기름을 넣고 잘 무친다.

4. 표고버섯장아찌를 잘게 다진다.

5. 쌀을 깨끗이 씻어 불려 고슬고슬하게 밥을 한다.

6. 밥에 양념으로 무친 봄나물과 표고버섯장아찌를 넣고 고루 버무린다.

(밥알이 으깨지지 않게 주걱을 세워 버무린다.)

7. 한입에 들어갈 양만큼 덜어 손바닥에서 굴려 주먹밥의 모양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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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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